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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다도]
차 마시는 공간에 이름을 붙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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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룡  /  2022 년 12 월 [통권 제116호]  /     /  작성일22-12-05 13:33  /   조회3,42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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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茶道 24 |茶道과정 ⑦

 

지난 호에서 글 쓰는 사람에게는 필명이 있듯이 차 마시는 사람에게는 차호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였다. 우리 조상들은 규모 있는 가계에서는 집의 이름을 지어 대문에 붙이는 것은 물론 할아버지 방, 아버지 방, 마루 등에도 각각 이름을 지어 판각하여 붙이는 것을 좋아하였다. 

필자는 중국과 수교하기 전인 1991년 중국 항주에서 제2회 중국국제차문화절 행사에 논문을 발표하고 돌아와서 그때 참석한 분들과 같이 찍은 사진들을 인화하여 나누었다. 

 

사진 1. 91년 중국항주국제차문화절참가 기념.

 

그때 여의도의 아파트에 사시는 차인의 집에 방문하였다. 보통이면 창고나 옷방으로 사용했을 아파트의 작은 방에 한지로 도배를 하고 소박한 차 도구를 깔끔하게 갖추고 아주 작은 글씨로 방의 이름을 써 붙이고 차생활을 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때 바로 이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당장 수원포교당 감로다회에서 차마시는 공간에 이름 붙이기 캠페인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차이름 갖기는 지난 호에서 밝힌 바와 같이 1999년부터 평생교육원 차도과정 졸업생에게 차호를 지어 주면서 자연스럽게 현판 달기를 권유하게 되었다. 글씨를 쓰는 것과 나무를 구하는 것이 어려운 분에게는 목공 장인 농암 박봉규 선생이 나무를 제공하고, 고천古川 김동수 선생이 글씨를 써 주시는 등 활발히 진행하였으나, 고천 선생이 작고하신 후 다소 힘이 빠진 것이 사실이다. 

 

사진 2. 고천 김동수 선생의 생전 모습.

 

차의 호칭(주1)

 

차나무, 찻잎, 그리고 차나무의 어린잎이나 순을 재료로 해서 만든 기호음료인 ’차‘에 대한 호칭은 여러 가지로 사용되어 왔다.

그 음도 중국 본어음은 cha, 중국 광동어음은 cha, 중국 복건어음은 tey, 한국어음은 cha, 고조선어음은 sa, 일본어음은 cha, 몽고어음은 chai, 영어음은 tea, 프랑스어음은 the, 독일어음은 thee, 라틴어음은 thea 등으로 불린다.

특히 한자로는 가檟, 가맹檟萌, 고구사苦口師, 고도苦荼, 고로皐蘆, 고채苦菜, 고호苦芦, 과라過羅, 과로瓜蘆, 낙노酪奴, 차명茶茗, 도荼, 도과荼果, 도명荼茗, 도음荼飮, 도천荼荈, 도초荼草, 명茗, 맹萌, 물라物羅, 방도芳荼, 불야후不夜候, 불천不遷, 삼백森伯, 삼제三祭, 삼타三詫, 선選, 설蔎, 수액水厄, 어천御荈, 여감씨余甘氏, 유동游冬, 주삼숙主三宿, 차茶, 척번자滌煩子, 천荈, 천타荈詫, 청우淸友, 타詫, 태채苔菜 등으로 다양하게 씌었다.

 

차의 호칭이 다양한 이유와 통일

 

이렇게 차를 지칭하는 글자가 많은 것은, 중국의 광대한 대륙이 진시황秦始皇에 의해 통일되었으나 변방의 생활권은 여전히 단절되어서 각 지방의 언어와 풍습이 그 환경에 맞게 발전하면서 여러 방언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차뿐만 아니라 차나무의 품종 및 외관도 관목灌木, 교목喬木, 반교목半喬木 등 다양하고, 찻잎의 외형도 지역에 따라 각각 달랐다. 또한 지역에 따라 찻잎을 약용으로, 식용으로, 혹은 음용으로 각기 다르게 이용하여 부르는 이름도 각기 달랐다.

 

수양제隋煬帝는 605년에 광활한 중국 대륙을 편리하게 통치하기 위하여 중국의 남북을 잇는 대운하大運河를 건설하였는데, 이 운하를 통해 따뜻한 화남華南 지방에서 생산된 많은 차가 화북華北 지방으로 전해지면서 비로소 북쪽 지방 사람들도 차를 친근하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당나라(618~907) 중기에 이르자 교통은 더욱 발달하였고, 그 이전의 단편적인 차문화도 차츰 대중적으로 보편화되면서 각 지방별로 부르던 수많은 차의 이름들은 결국 하나의 차나무라는 인식이 생겨 찻잎의 이름 중 가장 많이 사용했던 ‘荼’ 자의 한 획을 지워 ‘茶’자로 통일했으나 완전히 차茶로 대체되지는 못했다. 육우陸羽가 그의 저서 『차경茶經』에서 차茶, 가檟, 설蔎, 명茗, 천荈 등 다섯 글자를 선택 정리함으로써, 9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차茶라는 글자의 개념이 정립되어 오늘날까지 차茶로 불려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설선당蔎禪堂 정곡 선사는 ‘茶’자와 같이 쓰이는 글자 12자를 정리하고, 그중에서 찻잎을 따는 차례에 따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다茶’는 차나무, 찻싹 ‘다(차)’로 일찍 딴 차를 뜻하고,

‘가檟’는 차나무 ‘가’로 두 번째 딴 차를 뜻하고,

‘설蔎’은 세물차 ‘설’로 세 번째 딴 차를 뜻하고,

‘명茗’은 늦게 딴 차 ‘명’으로 네 번째 딴 차를 뜻하고,

‘천荈’은 늦꺾이 차, 센차 ‘천’으로 다섯 번째 딴 차를 뜻한다.

 

한편, 불전에서는 알가[閼伽, arghya]라는 명칭이 여러 경전에 수록되어있다. 불교에서 차는 깨달음의 상징이다. 그리고 ‘불천不遷’이라는 말은 차나무는 직근성이라 뿌리가 땅속 깊이 뻗고 또한 큰 뿌리에 바로 잔뿌리가 붙어 있어 차나무를 이식하는 것이 어려워 붙은 이름이다. 이렇게 옮겨 심더라도 살아남기가 어려운 점, 그리고 차씨 역시 역경을 지나도 심으면 묵묵히 자라게 하는 특성 때문에 예로부터 시집보내는 친정어머니가 딸을 시집보낼 때 차씨 몇 개를 베개에 넣어 꿰매 주면서 딸에게 차나무처럼 죽을 때까지 변치 말고 일편단심으로 남편을 섬기고 결국 그 집 귀신이 되라고 가르쳐 왔다.

 

또한 ‘수액水厄’이라는 말은 ‘물고문’이라는 뜻이다. 차를 마시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차를 권하니 체면상 마시지 않을 수도 없고, 주는 대로 받아 마시다 보니 그것이 물고문이 되는 것이다. 천배부진千杯不盡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것은 차를 마시는 데 있어서 천 잔도 오히려 모자란다는 의미이다.

 

차방의 이름

 

필자의 집의 이름은 금천재金川齋이고, 연구실의 이름은 일미방一味房, 차방의 이름은 한선당 禪堂이다.

우리 이웃에 사셨던 대만인 고천孤荈 쨩유화姜育發 선생은 차방에 ‘수액형방水厄刑房’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물고문하는 장소’라는 뜻이다. 얼마나 재미있는 차실의 이름인가! 이 이름을 보고 그 뜻을 모르는 사람은 무서운 곳으로 생각하겠지만 차를 아는 사람은 미소를 지으며 저기 가면 차를 실컷 마시겠구나 할 것이다.

사진 3. 반향지실, 일헌 이순애. 

 

수필가이자 차인인 일헌一軒 이순애 선생은 1990년에 벌써 아파트의 작은방에 반향지실半香之室이라는 예쁜 현판을 걸고 차를 즐기셨다. 항상 온전한 향을 향해서 공부하고 있다는 아주 겸손한 차방의 이름이다. 

사진 4. 불천재, 불천 김창수. 노영 서각. 

 

사진 5. 각다헌, 원담 김주서, 고천 서각. 

 

1995년 경기도 안양에 한 젊은 신혼부부가 보금자리를 마련하면서 혼수로 쓸 돈을 다이아몬드 반지 대신 구리 반지를 하는 등 절약하여 차실이 포함된 집을 지었다. 불천 김창수님의 이야기이다. 이 집을 짓는 목수는 차실을 배치한 집 구조가 처음 보는 일이라 쓸모없는 집을 짓는다고 투덜대면서 몇 번이고 설계 변경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주인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집을 완성하였는데, 아마도 이 집이 현대에 와서 차실을 중심으로 집을 설계한 첫 집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 집 차방의 이름은 불천재不遷齋이다.

『계간 차생활』에 금천이란 이름으로 ‘차실현판기행’ 20여 회를 연재하였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조하길 바란다. 

사진 6. 녹원정, 녹동마을 차 정자, 성우당 서, 금천 각. 

 

사진 7. 다혜정, 다혜 남궁선자, 고천 서각. 

 

 

현판의 의미

 

현판이란 글씨를 쓰거나 새겨서 문 위나 벽 또는 기둥 등에 거는 널빤지를 말한다. 현판은 일반적으로 집, 누각樓閣, 정자亭子, 궁문宮門, 전각殿閣, 서원書院, 사찰寺刹 등 건물의 명칭을 나타내는 편액扁額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밖에도 누각, 정자, 재실齋室 등의 기문記文, 상량문上樑文, 시부詩賦 등을 새겨서 문 위나 실내 벽에 거는 예도 많다. 기둥에 거는 것을 특히 주련柱聯이라 한다.

 

현판의 명칭은 그 걸리는 곳에 알맞은 의미나 유래가 있는 좋은 어귀를 따서 짓는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부터 고도의 문화생활을 영위하였으므로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문선』 등 여러 문헌에 현판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존하는 것은 거의 없다.

현존하는 현판으로는 신라 때의 명필 김생金生(711~791)의 글씨로 된 공주 마곡사麻谷寺 ‘대웅보전大雄寶殿’ 현판이 가장 오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고려 공민왕의 어필御筆인 영주 부석사浮石寺의 ‘무량수전無量壽殿’이 있다. 

 

사진 8. 등설헌, 등설 손애섬. 고천 서각. 

 

현판은 때로는 재난을 방지하는 부적符籍 구실도 하였다 한다. 서울의 남문인 ‘숭례문崇禮門’의 편액을 가로가 아닌 세로로 건 것은 그 남쪽에 있는 화산火山인 관악산冠岳山의 불기운을 막는다는 의미에서였다 하며, 동문인 흥인문興仁門의 편액은 ‘지之’를 더해 ‘흥인지문興仁之門’이 되어 다른 문과 달리 4자의 편액이 된 것은 문이 위치한 동쪽 지역이 낮아서 그것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라 전한다. 또한 교태전과 강녕전 등의 궁중 현판은 최고급으로 치는 검은 색의 옻칠 바탕에 금색 글자이다. 검은 바탕인 것은 불을 제압한다는 뜻이 숨어 있다.

 

차방에 이름을 붙이자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정자가 가장 많은 나라다. 전국 명승고적의 건물과 서원이나 재실 등의 방문마다 부착된 현판을 모두 더하면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데 요즈음은 현판을 거는 일이 차츰 줄어들고 있다. 사람은 태어나면 이름을 짓는데 건물을 짓고 차방이 있지만 그 이름을 붙이는 일이 드물다.

 

우리 차인들은 모두 자신의 차마시는 공간에 차와 관련된 글자를 골라 이름을 지어 현판을 걸도록 하자. 그것은 우리 조상들이 즐기던 문화를 보존하는 길이요 우리 스스로의 격을 높이는 일이다. 또한 그 현판의 뜻과 염원이 우리를 지켜주고 성장하게 할 것이다.

 

우리 모두 차방에 현판을 달고 그 뜻대로 살도록 노력하자.

 

자연과학도인 필자의 무딘 붓으로 그간의 경험을 중심으로 ‘한국의 茶道’라는 이름으로 24회 연재한 글을 읽어 주신 여러 독자님께 두 손 모아 고개 숙입니다. 할 말은 100회도 부족할 정도이나 불교적 내용이 아닐 뿐더러 학술적인 글이 못 된 졸필은 이번 호로 마감하려 합니다.

새해 새 모습으로 독자들께 다가가려는 편집진의 방침에 따라 새로운 인연이 다가오기를 기대하며 독자제현께 고별인사 올립니다. 고마웠습니다. 고마웠습니다. 필자 오상룡 합장.

 

각주>

(주1) 오상룡, 『차도학』, pp.210-214, 국립 상주대학교 출판부(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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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룡
계간 《차생활》 편집인. (사)설가차문화연구원 이사장, (사)생명축산연구협회 협회장, (사)아시아-태평양 지구생명 환경개선협회 협회장, (사)한국茶명상협회 이사·감사. 현 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학 명예교수. 『차도학』(국립 상주대 출판부, 2005) 이외 저 역서 다수. 「차의 품질평가」 등 논문 및 연구보고서 100여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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