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
“돈오점수가 맞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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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승 / 2022 년 11 월 [통권 제115호] / / 작성일22-11-07 11:16 / 조회3,796회 / 댓글0건본문
고우스님은 봉암사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1971년 문경 도장산 심원사로 가서 좌선하던 중 ‘무시이래’라는 말에서 ‘공空’을 확연히 이해하고 체험하게 되었다. ‘무시이래無始以來’라는 말이 바로 『반야심경』에서 부처님 법이 불생불멸이라는 그 말이란 것을 확실히 이해하고 체험한 것이다. 이런 안목으로 보니 『금강경』에서 ‘과거심도 얻을 수 없고, 현재심도 얻을 수 없고, 미래심도 얻을 수 없다’는 공에 확연히 밝아졌다.
고우스님은 이제 더 막히는 것이 없었다. 공을 체험하고 나니 사유분별로는 더 이상 걸림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 고우스님이 존경하고 따르던 스님들이 모두 깨달음을 향한 수행을 돈오점수頓悟漸修라 하시니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당신도 심원사의 공 체험으로 세상만물의 도리에서 확연해졌으니 돈오頓悟한 것으로 알고 이제는 점수漸修해서 미세망념만 비워 가면 된다고 인식하였다. 그때 고우스님 나이 서른셋이었다.
범어사와 남해 용문사 염불암
1972년에 고우스님이 형처럼 따르던 지유스님이 봉암사 주지를 내려놓고 범어사 원효암으로 가게 되었다. 고우스님도 지유스님을 따라가서 범어사 원효암에서 지내게 되었다. 얼마 뒤 지유스님이 범어사 주지를 맡게 되자 고우스님은 본사의 교무직을 맡아 몇 철 지유스님을 모시고 소임을 살았다. 불법의 이치를 밝혔을 뿐 아니라 사무에도 밝았던 고우스님은 무탈하게 잘 살았다.
1975년 봄 범어사 소임을 마친 고우스님은 남해 용문사 염불암으로 가서 쉬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용문사龍門寺 이름의 절은 세 곳이 유명하다. 양평과 예천, 그리고 남해에 용문사가 있다. 모두 조선 왕실의 후원으로 중창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조선의 국토가 용의 기운으로 웅비하라는 뜻인데, 흔히 양평 절을 용의 머리, 예천은 단전, 남해 용문사를 꼬리로 비유한다.
용은 하늘을 날 때 꼬리가 가장 활발발하니 남해 용문사는 그런 기운을 지닌 도량이다. 남해 용문사가 자리한 호구산虎丘山은 여러 전설이 있는데 지리산 살던 호랑이가 섬이었던 남해로 와서 이 산에 살았다고 한다. 호구산을 멀리서 보면 호랑이가 앉아 있는 모습이니 참 어울리는 산 이름이다. 이 산에 남해에서 가장 오래된 절 용문사가 있다. 남해는 본래 섬인데 1973년 남해대교가 개통하여 육지와 연결되었다.
남해 용문사는 원효대사를 비롯한 숱한 고승들이 수행한 빼어난 도량이다. 조선조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의승군들과 함께 주둔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근세에는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의 한 분인 용성스님도 주석하셨다. 성철스님도 봉암사 결사가 전쟁으로 불가하자 피난하여 기장 묘관음사, 고성 문수암, 통영 안정사, 창원 성주사를 거쳐 1955년 하안거를 남해 용문사 백련암에서 지내고, 그해 동안거부터 팔공산 파계사 성전암으로 가서 10년 동구불출하셨다.
고우스님이 용문사 염불암에서 머물 당시 용문사 주지가 백졸스님이었다. 백졸스님은 성철스님의 따님이었던 불필스님과 함께 출가한 스님이었다. 백졸스님이 용문사 주지로 왔으니 출가 도반이었던 불필스님도 용문사에 와서 같이 정진하고 있었다. 비구니 스님이 용문사 주지를 맡고 있었지만, 고우스님은 큰절에서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는 가장 높은 염불암에서 정진했다.
당시 염불암에는 인법당과 법당 옆에 방 한 칸이 있었는데, 고우스님이 그 방을 쓰고, 서옹스님의 상좌 무량스님이 인법당에서 정진했다. 염불암은 용문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여 한눈에 멀리 남해 바다가 보이는 풍광이 빼어난 보임터였다. 염불암 아래에 백련암이 있는데, 성철스님은 그 백련암에서 한 철 사시면서 포행할 때 염불암으로 올라와 시원하게 펼
쳐진 남해 바다를 내려다보셨다고 한다.
남해 용문사에서 성철스님을 만나다
고우스님이 염불암에서 유유자적하며 소요하던 1975년 여름 어느 날 갑자기 해인사 방장 성철스님께서 암자에 올라오셨다. 상좌 천제스님과 시자 원타스님(지금 해인총림 유나)이 수행하여 왔다. 고우스님은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예전 용문사 백련암에서 한 철 계실 때 염불암으로 포행 와서 내려다본 바다 전망이 좋아서 하루 쉬러 오셨다는 것이다.
고우스님은 성철 방장스님이 오시자 당신이 쓰던 작은 방으로 모셔서 쉬게 해드렸다. 그리고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오늘 마침 잘 됐다! 우리 선방에서는 보조스님 이래로 돈오해서 점차 미세망상을 없애가는 돈오점수頓悟漸修를 깨달음으로 알고 있는데, 성철스님께서 ‘돈오점수는 교학에서 하는 말이고, 선禪은 돈오돈수頓悟頓修다. 화두 참선해서 확철히 깨치면 돈오고 돈수다’라고 하시니 통 영문을 알 수가 없다. 오늘 이렇게 뜻밖에 만났으니 하늘이 준 인연이다. 왜 그렇게 말하는지 따지고 물어 보자.”
이렇게 굳은 결심을 한 고우스님은 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성철스님이 계시는 방으로 들어가서 정중히 삼배를 드리고 나서 앉아 다짜고짜 말을 던졌다.
“스님, 돈오점수가 맞지 않습니까?”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성철스님은 획 돌아누워 버리셨다. 그렇게 누워서는 한 마디도 대꾸가 없었다. 너무나 뜻밖의 성철스님 행동에 고우스님은 당황하여 더 말을 붙일 수 없어 우물쭈물하다가 할 수 없이 그냥 물러나오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1975년 남해 용문사 염불암에서 고우스님과 성철스님의 역사적인 첫 만남은 불교사에서 가장 큰 쟁점이었던 “깨달음이 돈오돈수냐? 돈오점수냐?” 하는 법의 문제를 두고 고우스님이 당대의 대선지식 성철스님에게 대들었던 법전法戰은 성철스님께서 뜻밖의 대응과 고우스님이 더 촉발하지 않는 바람에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
그런데, 고우스님은 훗날 각화사 동암에서 또 한 번 큰 체험을 하고 성철스님의 『선문정로禪門正路』를 보고 나니 성철스님이 그때 획 돌아누우신 기행이 그대로 훌륭한 법문이었고 그때 더 대들어 성철스님께 법문을 더 다그쳤어야 했는데 그것을 몰랐다면서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철스님 시자로 염불암에 따라왔던 원타스님의 회고
이날 성철스님 시자로 따라왔던 원타스님은 훗날 수좌 선배인 고우스님을 늘 가까이 하였는
데, 어느 날 고우스님이 용문사 염불암에서 성철스님에게 대든 이야기를 말하자, 원타스님 당신이 그때 시자로 따라갔었다고 기억하여 옛날 이야기를 재밌게 나눴다고 한다. 그래서 2021년 8월 고우스님이 봉암사에서 입적하시고 전국선원수좌회 장례를 치를 때 총도감을 맡았던 원타스님께 이 이야기를 여쭈니 이렇게 회고하셨다.
사진 4. 해인총림 유나 원타스님.
“1975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시자로 성철스님을 모시고 살던 여름 어느 날, 노장께서 바람 쐬러 가자 하시어 따라나서니 남해 용문사로 갔다. 마침 용문사에 불필스님과 백졸스님이 있었다. 성철스님이 ‘너그들이 둘이나 여기 웬일이고?’ 하고 놀라시면서 인사도 안 받고 바로 염불암으로 올라가셨다. 그곳에는 고우스님하고 서옹스님 시봉 무량스님 두 스님이 있었다.
그때 염불암에는 세 칸 짜리 인법당과 붙은 방 한 칸이 전부라 작은 방에 노장이 쉬시고, 우리는 잘 때가 없어 큰절로 내려와 객실에서 잤다. 노장께서 갑자기 용문사 염불암에 가게 된 것은 예전에 용문사 백련암에 한 철 살 때 염불암에서 남해바다 보는 풍치가 좋아서 그걸 한 번 보러 가자 해서 갔는데 마침 고우스님이 계시어 만나게 된 것이다.”
참으로 묘한 인연이 아닌가? 성철스님께서 여름에 시원한 바다 보러 가자고 나서서 남해 용문사로 갔는데 마침 불필스님과 백졸스님이 있었고, 바다가 보이는 염불암에는 고우스님이 있었으니 참 묘한 인연이었다.
이날 염불암에서 처음으로 성철스님을 친견한 고우스님은 당시에 돈오점수를 기준으로 돈오한 뒤 점수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성철스님의 돈오돈수를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돈오돈수 대장 성철스님이 느닷없이 나타나자 대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안목이 아직 미진하여 성철스님이 획 돌아누운 법문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만 물러서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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