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만덕사지』의 불교사적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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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후 / 2022 년 11 월 [통권 제115호] / / 작성일22-11-07 09:47 / 조회2,946회 / 댓글0건본문
근대불교사서史書 23 |만덕사지萬德寺誌 ⑤
『만덕사지』 찬술의 일차적인 목적은 망실된 만덕사의 역사를 고거주의考據主義를 기초로 온전히 복원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고려시대의 백련결사를 위시하여 조선후기 선교학을 통해 만덕사가 지닌 불교사적 위상과 조선후기 불교계에서 차지하는 가치를 천명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찬자들은 고려후기 백련결사의 역대 주맹主盟들의 생애와 활동을 광범위한 자료 수집과 고증을 통해 재구성하였다. 이것은 조선후기 역사서술과 역사인식의 영향하에서 이루어져 주목되기도 한다.
강목체 역사서술 체제
우선 『만덕사지』는 각 권에 실린 중요사항을 체계적으로 1자씩 대두시키고 그에 대한 세부사항과 자료를 1자씩 낮춰 전재轉載하였다. 또한 이설異說과 해설은 ‘모안某案’, ‘모운某云’으로 표시하여 관련자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한 주제를 제시한 뒤 그에대한 관련 자료를 망라하여 자신의 논지를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이와 같은 체제는 다산이 1811년 찬한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에서도 살필 수 있다.
대체로 찬자의 결론을 앞에다 제시하고 그 다음에 그 결론을 뒷받침하는 국내의 자료를 넓게 망라하면서 그 자료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안설按說’로써 비판하고 검증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른바 강목체 역사서술이다. 강목체는 ‘강綱’에 해당하는 본문과 세부서술의 ‘목目’을 구성하고 있다.
당시의 강목체 서술은 의리론과 역사를 새로이 인식하고, 현재의 위치를 명확히 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비롯되었다. 불교계에서는 중관해안中觀海眼의 금산사(1636)·화엄사(1636)·대둔사사적기(竹迷記, 1636)를 비롯해 『대둔사지』가 강목체재 하에서 찬술되었다. 적어도 불교가 비록 탄압과 소외의 상황 속에 놓여 있었지만, 자국사에 대한 자주적 인식이 강조되고 있었던 상황에서 불교사 역시 일반사 차원에서 찬술되고 인식되었다.
“자굉안慈宏案 본조本朝 스님들의 계열은 만력萬曆(1573~1620) 이래 두 개의 종파로 나뉘어지는데 하나는 청허종淸虛宗이요, 하나는 부휴종浮休宗이다. 청허의 종파는 수십으로 전파되었으나 그 큰 줄기는 둘이니 하나는 소요태능종逍遙太能宗이요, 하나는 편양언기종鞭羊彦機宗이다. 우리 취여선사醉如禪師는 곧 소요의 적손嫡孫이며, 연사蓮社의 맹주盟主이다. 위로는 소요부터 아래로는 아암兒菴에 이르기까지는 마침내 8엽葉이 된다. 고려에는 8국사國師가 있고, 본조本朝에는 8대사大師가 있어 그 숫자가 서로 부합된다. 다만 본조에서는 불교를 숭상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호號나 고誥를 내리는 영광이 없었으니 이러한 일은 자리에서 물러나 피한 것과 같다.”
- 『만덕사지』 권4
인용문은 만덕사의 8대사大師가 조선불교의 중흥자인 청허휴정의 제자들로 당시 불교계를 대표할 만한 인물들이었으며, 이들은 고려 백련결사의 8국사를 계승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만덕사의 걸출한 승려들이 고려시대뿐만 아니라 불교가 혹독한 탄압을 받고 있었던 조선시대에도 그 계통을 이어가고 있음을 언급한 것으로 만덕사가 한국불교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천명하였다. 찬자들은 조선시대 만덕사의 8대사를 소요逍遙·해운海運·취여醉如·화악華岳·설봉雪峰·송파松坡·정암晶巖·연파蓮坡 대사로 설정하였다.
대흥사 12강사와 선교학의 종원
이들은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강사들로 취여·화악·설봉은 대흥사의 12종사이며, 연파대사는 대흥사의 12경사經師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하다. 대흥사의 12종사는 청허휴정의 문도로 대흥사가 조선후기 불교계에서 선교학의 종원으로 부상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들은 모두 『화엄경』을 수학하고, 그 강회를 개최하여 전국의 치림緇林이 대흥사를 선교학의 종원宗院으로 부상하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12강사 또한 12종사가 대흥사를 선교의 근기根基로 마련하였다면, 화엄학을 중심으로 한 강회를 통해 대흥사를 더욱 발전시킨 인물이다. 소요태능은 남쪽지방을 두루 유력하며 제방의 선지식을 찾아다닌 끝에 부휴선수에게서 대장경을 배웠으며, 다시 휴정을 찾아가 물어 비로소 무생無生의 실상을 깨닫게 되었다.
소요의 제자 해운경열은 스승 소요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수백여 명이나 되는 소요의 문도 가운데 오직 해운만이 종통宗統을 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그의 호 ‘해운’은 “붕새가 남쪽바다로 옮겨 감”을 뜻하는 것이고, 붕새가 날아가는 것은 자유로이 노닌다는 ‘소요逍遙’를 의미하는 것으로 소요가 해운에게 법을 전한 것이 당연하다고 할 정도였다. 일찍이 소요는 해운에게 주는 전법게傳法揭에서 “선망禪綱의 교골敎骨을 누가 대적하며, 화월華月의 이풍夷風을 누구에게 전할까.”라고 읊기도 하였다.
“이러고부터 종풍宗風은 오래도록 적적寂寂하였다. 대명大明 천계天啓의 말엽(1621~1627)에 취여삼우 대사가 있었는데, 다시금 산예狻猊의 자리를 웅거雄據하여 거듭 용상龍象의 석席을 개당開堂하다.”
- 『만덕사지』 권4
만덕사는 고려중후기 결사운동으로 불교의 본분과 중흥의 면모를 일신시켰지만, 고려말 조선초 불교의 탄압정책과 사찰의 소실로 겨우 명맥만을 유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전란 이후 소요로부터 시작된 만덕사의 종풍宗風은 당시 불교계에서 유행한 선교학과 함께 부활하였다. 예컨대 취여 삼우가 “원묘圓妙의 도량을 중흥시키고, 소요의 과업課業을 세운 것이다.” 또한 취여는 유년 시절 출가하여 제방의 선지식에게 불교경전을 두루 섭렵하고, 해운경열의 법을 이어 받았다. 그는 교학에 탁월하여 대흥사 12종사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대흥사 상원루上院樓에서 화엄종지를 강의할 때는 수백 명의 대중이 청강하였다고 한다. 그의 의발은 화악문신에게 전해졌다. 화악은 글을 몰라 출가 후에도 농기구를 시장에 내다 파는 소임을 맡고 있었는데, 취여의 화엄종지를 듣고 개오開悟하여 교학에 몰두했다고 한다.
취여에게 인가증명을 받은 이후 대흥사에서 수백 명의 대중에게 강의를 했는데, 북방에서 온 월저月渚 선사가 선문의 종지를 논하는 것을 보고 그에게 후학들을 가르치게 하니 월저가 “내가 남방에 와서 육신보살을 보았다.”고 할 정도로 학덕學德이 깊었다. 설봉 역시 화악에게 법을 물려받았는데, “여러 경전을 참호參互하여 증오證悟하되 정미精微하게 변석辨析하니 남방의 여러 비구들이 선림禪林의 종주라고 불렀다.”고 한다.
송파각훤은 삼장三藏과 경교經敎 외에 유교경전과 역사서에도 달통하여 거의 40여 년 동안 대중을 제접했다고 한다. 그리고 정암즉원은 스승 송파에게 사집四集과 사교四敎를 배우고, 대교大敎와 화엄현담華嚴玄談은 연담유일에게 받았다. 그는 많은 대중들에게 경전을 강의할 때 마음은 오로지 자비를 임무로 삼고, 보시를 본업으로 삼았다.
연파혜장은 정암의 제자이자 만덕사 8대사 가운데 마지막 인물이다. 그는 30세의 나이에 대흥사 청풍료淸風寮에서 『화엄경』 대법회를 열어 주관하였는데 100여 명의 대중이 참석하였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은 아암의 학덕學德에 스승 연담유일이 12종사 가운데 순서로는 가장 끝이고, 제자 아암 역시 12강사 가운데 가장 끝이었지만, 마지막이 아니라 정화精華라고 그를 칭송하였다. 아암의 이름은 중국에도 알려져 1812년 옹방강翁方綱의 시집 『담계옹시집覃溪翁詩集』 6책이 연경에서 대흥사로 전해지기도 하였다.(주1) 이밖에 『만덕사지』 찬자들은 조선후기 8대사 외에 취여의 제자 가운데 대중들에게 경전을 강의한 인물을 언급하기도 하였다.(주2)
요컨대 『만덕사지』의 찬자들은 이상 만덕사에서 배출한 8명의 승려들이 조선후기 불교계에 유행했던 화엄학을 중심으로 한 강경講經에 걸출한 인물들이었음을 강조하였다. 비록 조선후기 역시 불교계의 탄압이 지속되었지만, 선교학을 중심으로 한 출가자의 본분은 고려의 백련결사를 주도했던 선조들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노력과 함께 이어져 갔다. 결국 이러한 면모는 만덕사가 왜란과 호란 이후 휴정의 의발이 전해진 것을 계기로 선교의 종원으로 자리매김했던 대흥사와 함께 불교사적 위상이 강화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각주>
1) 『만덕사지』 卷4, 아세아문화사, 1977, 143~145쪽.
2) 『만덕사지』 卷4, 아세아문화사, 1977, 145~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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