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삼국의 선 이야기 ]
조동종의 중흥조 케이잔 조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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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상 / 2024 년 9 월 [통권 제137호] / / 작성일24-09-05 09:09 / 조회878회 / 댓글0건본문
일본선 이야기 9
일본 순수선의 원천을 개척한 도겐선은 케이잔 조킨(瑩山紹瑾, 1264〜1325)을 만나 장강을 이루며 발전하게 된다. 열렬한 관음신앙인이었던 모친의 영향을 받은 케이잔은 5살 때 흙으로 불상을 만들거나 독경을 하기도 하여 주위에서는 관음대사의 출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케이잔 조킨의 수행과 깨달음
8살 때 영평사의 데츠 기카이의 문하에서 사미승이 되고, 13세 때 고운 에조에 의해 정식 출가를 한다. 18세 때부터 수행 편력의 길에 오른다. 그의 선사상의 활력과 융통성은 이때에 형성되었다. 도겐과 함께 천동여정 문하에 동참하고 도일한 중국 승려 자쿠엔(寂圓), 엔니 벤넨의 제자이자 고칸 시렌을 키운 도잔 탄조(東山湛照), 『무문관』의 저자 무문혜개의 문하에서 득법한 신치 가쿠신(心地覺心) 등 제방의 선자들을 두루 섭렵했다. 조동과 임제의 종요는 물론 비예산에서 천태학을 배웠다.
22세 때 그는 자신의 저술인 『동곡기洞谷記』에서 성문오도聲聞悟道했다고 한다. 어떤 기연인지 구체적인 것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향엄격죽香嚴擊竹과 같은 형태가 아닐까. 같은 해에 『법화경』 「법사공덕품」의 “부모로부터 받은 눈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다 보네[부모소생안 실견삼천계父母所生眼 悉見三千界].”를 독송하는 중에 깨달았다고도 한다.
26세에 기카이를 따라 가가현의 대승사로 옮긴다. 이후 대승사 주지를 역임하고, 동산양개의 가풍을 이은 동곡산 영광사永光寺, 오늘날에도 영평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시카와현에 제악산諸嶽山 총지사總持寺(화재로 인해 1911년 가나가와현으로 이전함)를 창건한다. 많은 재가들의 귀의에 힘입어 조동종은 번창하게 된다. 문하에는 4철四哲로 부르는 메이호 소테츠(明峰素哲), 무가이 치코(無涯智洪), 가산 조세키(峨山韶碩), 고안 시칸(壺庵至簡)의 제자들이 배출되었다.
58세에 제자 가산 조세키에게 총지사를 물려주고 다음해에 열반에 들었다. 그는 『동곡기』에서 두 가지 원을 발한다. 첫째는 보리심을 금생에 발하여 신명身命을 돌보지 않고 세세생생 화도이생化度利生(중생을 제도하여 이익을 주는 것)하고 정등각에 이르겠다는 서원, 둘째는 금생의 자비로운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여성을 제도하는 보살이 되겠다는 서원이다. 홍원과 별원을 함께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발원은 제자들에 의해 계승되고, 조동종의 민중 포교는 케이잔 문하에 의해 본격화되었다. 만 오천여 개의 사찰 중 약 8할이 총지사파에 속할 정도로 그는 종단의 반석이 된 것이다. 교단 내에서 고조高祖 조요대사(承陽大師)에 버금가는 태조太祖 조사이대사(常濟大師)로 부르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종동종의 정체성 확립
무엇보다도 케이잔은 조동종이라는 정체성을 명확히 했다. 여정으로부터 ‘불법의 총부總府’라는 수시를 받은 도겐은 자신의 선맥이 어떤 종파의 범주에 가둬지는 것을 극구 회피했다. ‘정법안장의 불법’을 주장하며 선종은 물론 조동종이라는 말마저 강하게 부정했다. 2대, 3대도 이 뜻에 따라 종명을 세우지 않았다. 『케이잔 청규』에서 도겐을 ‘일본 조동초조曹洞初祖 영평화상永平和尙’이라는 말을 씀으로써 비로소 조동종의 명을 갖게 되었다. 케이잔대에 이르러서도 초기에 불과한 도겐 교단이 본격적인 체제를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자신의 대에 이르는 법계를 확정하고, 영광사에 오로봉五老峰 전등원傳燈院을 조영한다. 즉, 천동여정, 도겐, 고운 에조, 뎃츠 기카이, 그리고 자신까지 5조사의 계통을 분명히 하고 단일 교단 체제를 수립한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문도 가운데 사법嗣法의 차제를 잘 지켜 주지는 교단을 흥행시켜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는 네 제자들이 차례대로 1기를 5년으로 영광사의 운영을 맡는 윤번제를 확립시켰다. 케이잔의 뒤를 이은 가산 또한 총지사에 윤번제의 유게를 남겨 제자들이 돌아가며 계승하도록 했다. 총지사의 이 전통은 근대에까지 계승되었다. 이는 주로 임제종에서 차지했던 5산총림이 명승을 천하에서 초빙하던 시방주지제와는 다른 방식이다. 총지사파는 내부의 단결을 도모하면서 내부의 인재를 두루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케이잔선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가 석존으로부터 에조에 이르기까지 역대 조사의 전기를 설한 『전광록傳光錄』에 도겐과는 차별화된 선의 원리가 드러난다. 먼저 도겐이 사사한 여정이 ‘부증오염不曾汚染’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보았다. 일찍이 오염되지 않은 그것은 본래 불오염의 본각문에 입각한 것이다. 그러나 연구자들에 의하면, 여정의 수증관은 리理 위에서는 본각문, 사事 위에서는 시각문이지만, 도겐은 본각문을 이사의 양 측면에서 밀고 나갔다고 본다. 도겐은 묵조선의 본질대로 깨달음을 하나의 대상이나 목표로 삼지 않았던 것이다.
케이잔은 도겐의 지관타좌를 계승하면서도 스스로 지知의 길이라고 제시하며 심화시키고 있다. 『케이잔화상법어』에서는 좌선에 의해 얻어진 삼매의 경지를 즉심성불의 직도直道, 제불의 심인이라고 하여 깨달음의 경지라고 보고 있다. 또한 이는 행주좌와의 일상에서 일념상속이 바로 대오라고 한다. 『전광록』에서는 무위무사無爲無事, 무상적멸無相寂滅에도 머물지 않고, 마음의 본래묘명本來妙明이 바로 깨달음임을 제시한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케이잔은 기카이가 제창한 ‘평상심시도’에 의해 깨달음을 얻었으며, 그의 법을 이은 기연이 되었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본증묘수의 단계를 검증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를 통해 케이잔선은 틀에 사로잡힌 세계에서 벗어나 대중성을 구축하게 된다.
케이잔이 제정한 청규는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도겐의 『영평 대청규』는 총림의 규칙, 수행자의 자세 등 6편으로 이뤄져 있지만, 『케이잔 청규』는 상권은 일중과 월중의 행사, 하권에는 연중행사를 제정하여 종문의 행사 차제를 규정하고 있다. 전자는 주로 출세간적이며 개인 수행자의 정신적 세계를 강하게 지향하고 있는 데 반해, 후자는 세속과의 관계, 집단적인 의식 세계를 다루고 있다. 스승 기카이의 개방적이며 진보적인 종풍을 계승하고 있다. 이는 수행자들만의 고립된 사원으로부터 시대와 사회와의 접점을 확장해 가는 측면을 보인다. 도겐으로부터 팔재계의 인판印版을 물려받은 그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 조동종의 민중교화를 도모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케이잔의 선법은 외연을 확장한 선밀쌍수禪密雙修라고 할 수 있다. 총지사의 이름이 그렇듯 총지는 다라니, 즉 진언을 의미한다. 총지사의 전신인 제악관음당諸嶽觀音堂의 주지였던 조겐(定賢) 율사는 진언종의 승려였다. 1321년 그의 꿈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영광사에 케이잔이라는 고덕의 승려가 있다. 바로 그를 불러 이 절을 물려주어라.”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닷새 후에 영광사의 방장실에서 좌선을 하고 있던 케이잔도 같은 꿈을 꾸게 되었다. 그 뜻에 따라 관음당의 문전에서 자바라를 치며 누문樓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수많은 승려들이 나와 환영해 주었다. 조겐과의 이야기 도중 꿈 이야기가 부합함을 알게 되었다. 관음당을 기진寄進받은 케이잔은 산호를 제악산으로, 사찰 이름을 총지사로 했다. 1322년 고다이고 왕이 10종의 칙문勅問(임금의 물음)을 내렸다. 이에 대한 케이잔의 명쾌한 답변에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총지사를 ‘조동 출세의 도량으로 보임補任’하고 그 주지의 자색 법복 착용을 인가했다. 그리고 친필의 총지사 서액을 내려 관사로 삼았다. 조동종으로서는 최초의 관사가 되었다.
중생제도를 중시하는 가풍
케이잔은 밀교적인 다양한 행사를 도입했다. 기도회나 『대반야경』 전독회를 통해 진호국가鎭護國家나 양재초복禳災招福을 위한 행사를 열었다. 이는 고대로부터 궁중이나 진언종 사찰에서 해 오던 풍습이었다. 그러나 도겐이 여정으로부터 정치권력과는 거리를 두도록 한 가르침을 지킨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도겐은 왕법보다는 불법을 철저히 우위로 두었다. 그렇다고 그가 기도나 제례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승려들의 안전이나 기상문제에 대한 기도를 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제방에서 호지승護持僧으로 행하는 가지기도를 멈출 것을 설하기도 했다.
도겐의 의도와는 달리 『케이잔 청규』의 월중행사에는 하중夏中기도, 인병因病기도, 연중행사에는 정월 삼조三朝기도, 능엄회 등이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불교 내의 천부 제신, 중국과 일본의 신에 대해서도 기도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일본 밀교에서 행하던 시아귀회도 들어 있다. 이는 여정으로부터 “참선은 신심탈락身心脫落이다. 소향, 예배, 염불, 수참, 간경은 필요치 않으며, 오직 지관타좌뿐이다.”(『보경기』)라는 가르침을 받은 도겐의 선풍과는 다르다. 케이잔은 고대로부터 세력을 지닌 밀교와의 절충을 꾀하는 현실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즉 도겐의 출가중심주의에서 적극적인 재가교화를 목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시대의 불안을 느끼는 하급무사나 상인 계급에 교선을 확대하는 효과를 낳았다.
또한 케이잔선의 특징 가운데는 동제겸수洞濟兼修로써 공안선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에 대한 평가는 연구자마다 다르다. 도겐은 『정법안장수문기』에서 “공안화두가 약간의 지각이 있을지는 몰라도 불조의 길과는 멀다.”고 단호히 설한다. 케이잔에게 가탁되어진 것으로 보는 『비밀정법안장』에서 염화미소, 문전찰간, 확연불식 등 십칙十則을 골라 제시하고 있으며, 이를 참득하지 않는 자는 자신의 손孫이 아니라고까지 하고 있다. 이 문헌은 케이잔 사후 얼마 뒤에 시작된 무로마치 시대에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케이잔은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제방을 편력하며 불법의 다양성을 몸에 익혔다. 두 스승 중 기카이는 달마종을 통해 졸암덕광의 양기파와도 관계가 있고, 에조 또한 달마종에서 공안을 투과하여 깨달음을 얻었으며, 에사이를 조옹祖翁으로 존중하였으므로 양기와 황룡 양 파와도 관련이 있었다. 이들의 가르침을 받은 케이잔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임제종의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케이잔은 교화가 필생의 사명이었다. 그는 “사람에 따라서는 암주庵主라고 칭하고, 혹은 산주山主라고 칭하고, 혹은 화상이라고 칭한다. 사법嗣法(법사로부터 법을 이어 받음)의 존숙을 위해 포살상당布薩上堂을 행하고, 치백緇白(승속) 2중衆을 위해 또한 수계 입실을 행한다. 원院(사찰)의 대소를 논하지 말라. 이는 인천의 스승이며, 이는 위로부터 불조의 가르침의 비결이다. 화상을 함부로 칭하지 말라. 부처를 대신하여 교화를 드날려야 한다. 이를 주지라고 하며, 그것이 바로 그의 위상이다.”(『동곡기』)라고 설한다.
그는 중생제도를 위해 평생을 출가와 재가를 가리지 않고 수계 득도의 의식을 행해 왔다. 비구와 비구니에 대한 차별도 없었다. 불법은 누구를 위해 있는가라는 물음에 케이잔의 일생은 그 해답에 다름이 아니다. 정법의 원칙하에 삶의 모든 객관적 조건을 대기대용大機大用의 분상에서 능소능대能小能大하고 살활자재한 선사의 위용을 케이잔만큼 잘 드러낸 자가 있을 것인가.
원영상 원불교 교무, 법명 익선. 일본 교토 불교대학 석사, 문학박사. 한국불교학회 전부회장, 일본불교문화학회 회장, 원광대학교 일본어교육과 조교수. 저서로 『아시아불교 전통의 계승과 전환』(공저), 『佛教大学国際学術研究叢書: 仏教と社会』(공저)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일본불교의 내셔널리즘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그 교훈」 등이 있다. 현재 일본불교의 역사와 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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