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
사경寫經, 손으로 쓴 금빛 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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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 2022 년 6 월 [통권 제110호] / / 작성일22-06-07 11:00 / 조회4,941회 / 댓글0건본문
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6 | 사경장 다길 김경호
우리의 국보 제235호는 고려시대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紺紙金泥大方廣佛華嚴經普賢行願品’이다. 일단 이름이 무척 길고, 어떤 기물인지 한번에 이해하기 쉽지 않다. ‘감지금니紺紙金泥’는 고려시대 사경지로 가장 많이 사용된 ‘남색 닥종이에 황금빛으로 쓴 글’이라는 뜻이다.
물론 모든 사경이 금을 소재로 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먹으로 쓰는 묵서墨書와 화려한 금·은, 아주 드물게 자혈[血書] 사경이 전하고 있다.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화엄경』은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는 화엄종의 근본경전이며, 「보현행원품」은 『화엄경』 가운데 보현보살이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방법을 설법한 부분이다.
이 금빛 찬란한 책은 고려의 이야선불화李也先不花가 자신의 무병장수와 일가친족의 평안을 빌기 위해 간행한 『금강경』, 『장수경』, 『미타경』, 『부모은중경』, 『보현행원품』 가운데 하나이다.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책머리에는 행원품의 내용을 요약하여 묘사한 변상도變相圖가 금색으로 정교하게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얼마나 정교한지 머리카락보다 가는선, 미세한 점들과 문양은 정말 사람이 만들어 낸 작품일까 싶다. 더 놀라운 것은 2022년 현실세계에 이보다 더 정밀한 금빛 불경을 그려내고 있는 사경장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전을 섬세하게 옮기는 작업, 사경
경전에 담긴 부처님 말씀을 옮겨 쓰는 것을 사경이라고 한다. 글과 그림 모두 포함한다. 하나의 글자가 하나의 부처님을 모시는 일이기에 사경은 지극한 정성과 신심의 결정체다. 사경은 표지장엄, 경전 내용을 상징하는 변상도變相圖, 필사로 구성된다. 0.1mm 초정밀한 붓끝에 집중해야 하는 것은 물론 몸과 마음, 재료 세 가지가 청정한 가운데 이뤄지는 종합예술이면서 수행이기도 하다.
다길多吉 김경호(국가무형문화재 제141호 사경장 보유자), 그는 우리나라 전통유산 사경장寫經匠으로 홀로 지난하고 고독한 외길의 시간을 걸어왔다. 그리고 20m가 넘는 ‘감지금니 일불일자 <화엄경약찬게>’와 ‘감지금니 7층보탑 <법화경 견보탑품>’이라는 시대의 수작을 완성했다.
그가 사경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어쩌면 주어진 운명 같은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서예와 그림을 그렸고 불교집안이다 보니 경전의 글귀 쓰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렇게 불심은 자연스럽게 생겨났고, 고등학교 때 불교에 심취해 출가도 했다. 부모님이 그를 찾지 않았다면 지금쯤 선승의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서예는 부친의 영향을 받아 한문공부와 한글쓰기로 시작되었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당대唐代 해서의 명필 저수량체와 구양순체를 『서도대자전』 한 권만으로 배움의 길을 열었다. 묵향은 향긋하고 부드러운 붓선은 놓고 싶지 않을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배운 사경은 불교의식을 베껴쓰는 의식이다. 이리 남성고에 입학해서 ‘룸비니불교학생회’에 가입, 불교에 심취한 것과, 선승이 되겠다며 부모 몰래 야간열차 타고 해남 대흥사로 가 세속을 초월한 2년의 세월을 토굴 속에서 보냈다. 방방곡곡 아들 찾아 헤매시던 아버지 손에 잡혀 집으로 돌아온 것도 세 차례나 된다. 용담龍潭, 원조圓照라는 법명은 이때 얻었고 그 인연이 사경과 연관이 깊다.
전북대학교 국문과 재학 시절에 그는 시詩도 쓰고 서예도 계속했다. 동아일보가 주관한 ‘전국학생휘호대회’서 공동 우승과 시 부문 공모에 우수상을 차지했다. 당시 모든 공모에서 1등 아니면 거부할 정도의 자신감이 충만하던 시절, 글씨 잘 쓰고 한문 잘 알아서 족히 200만 자를 썼던 군대생활도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는 시간의 대부분을 글 쓰는 데 보냈고, 그 시간들은 너무 빨리 지나갔다.
찬란한 금빛 불심을 밝히다
2022년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사경장이 되었다. 그 단초는 고려사경에서 찾았다. 고려사경의 작품성에 비해 그것에 대한 연구나 인지도는 낮았다. 안타까운 일은 좋은 작품의 대부분을 일본이 소장하고 있었던 점이다. 특히 변상도의 섬세함과 완성도는 코란과 기독교 경전의 장식 사본들에 비교했을 때 절대 뒤처지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에 꺼내 놓을 보물이었다. 이후 김 사경장은 티베트 만다라에 관심을 가졌고, 2003년 이후로는 미국 메트로폴리탄과 같은 세계적인 박물관에서 작품전을 하면서 우리의 사경을 세계에 알리는 일에 힘을 쏟았다.
전통적인 기법을 그대로 살려내는 일도 중요했지만, 새로운 창안을 통한 작업을 시도하는 일도 중요했다. 우리의 것을 보여주는 일과 우리와 그들의 것이 하나되어 통섭되는 작업도 함께 했다. 다길 김경호는 작품을 통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고려의 사경과 비교해 지금의 사경 수준은 어떨까? 그의 대답은 명쾌하다.
“지금 제자들의 작품 수준을 보더라도 고려사경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습니다. 고려사경의 경우 어떤 작품은 국보라 하더라도 확대해서 보면 광배가 한쪽으로 쏠려 있다든지, 선이 명확하지 않다든지 채색이 생략되거나 간소화해 버린 경우들이 종종 보입니다. 그런 작품들을 다시 리메이크해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공간에 그려진 부처님이라도 의습衣褶 하나, 보관寶冠 하나 완벽하게 구체화합니다. 확대해도 완벽하게 색과 형상을 유지하도록 하지요.”
제자를 대하는 김경호 사경장의 교육방식은 조금 특별하다. 그는 전수 교육생들에게 가급적이면 연습하지 말라고 당부한다고 말한다. 아니 보통의 선생님이라면 열심히 연습을 하라고 할 텐데 연습을 하지 말라고 하니 참 독특한 교육방식이다.
“사경 수행은 연습이 아닙니다. 매순간 얼마큼 집중하고 몰입하는가가 중요하지요. 그게 핵심입니다.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예를 들면 경주 남산에 가면 마애불이 있지요. 기술적으로 보았을 때 완벽한 모습은 아니죠. 하지만 그 불상들을 조성했던 석공들의 마음은 얼마나 절실했을까요? 그것이 수행이고 매순간 최선을 다함에서 오는 진심이 표현된 것이죠.”
사경장의 말에는 일리가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냉혹한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습 하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과 집중의 실전만이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정리하고 있는 사경의 바탕 네 가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첫 번째는 ‘하심下心’으로 자신을 끊임 없이 낮추어야 하며, 한 글자 한 글자를 마치 한분의 부처님으로 생각하며 경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두 번째, 전심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한다. 매순간 붓을 잡으면 붓을 놓고 정리하는 그 순간까지 마음의 총력을 다 쏟을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세 번째, 법계에 회향할 줄 알아야 한다. 내 것이 아닌 타인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네 번째, 순일해야한다. 즉 처음부터 끝까지 맑음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지키면서 사경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정성과 신심이 갖추어진 수행의 사경이 된다고 다길 김경호 사경장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듯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오늘도 찬란한 금빛 불심을 밝히는 그의 손길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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