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한국 화엄학 연구의 초석을 다진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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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 2022 년 6 월 [통권 제110호] / / 작성일22-06-07 09:41 / 조회3,623회 / 댓글0건본문
근대한국의 불교학자들 18 | 김잉석金芿石(1900~1965)
김잉석金芿石(1900~1965)은 한국 화엄학 연구의 초석을 다진 선구적 학자이다. 승려 출신으로 전통 강학과 근대적 교육을 동시에 경험했고, 일본에도 유학한 정통파 불교학자로서 동국대 교수와 불교대학장을 지냈다. 그는 다수의 불교학 관련 논저를 남겼는데, 화엄학, 보조지눌, 삼론학의 원조인 고구려 승랑에 관한 글이 대부분이다. 대표 저서는 『화엄학개론』이고, 공저로는 『불교학개론』이 있으며, 평생 학문 연구와 후학 교육에 매진했다.
불교학자 김잉석의 학문적 여정
김잉석은 1900년 1월 5일 전라남도 승주군 쌍암면에서 태어났다. 12살 때 순천 송광사의 해은海隱에게 출가하였고 이후 10여 년 동안 사미과, 사집과, 사교과, 대교과로 이어지는 전통 강원의 이력 과정을 이수했다. 이 시기 송광사에는 전통적 방식의 불교사 서술의 명맥을 이은 금명보정錦溟寶鼎이 주석하고 있었다. 보정은 『조계고승전』, 『불조록찬송』 등을 저술하여 보조지눌의 유풍과 송광사를 본산으로 하는 조선후기 부휴계, 조계종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각시켰다. 또한 1920년에는 김잉석의 은사인 해은의 『조선불교사대강: 조선불교 종파 변천사론』이 등사되어 나왔다. 이는 선종과 교종의 두 흐름으로 한국불교사를 개관한 저술로 조선후기 불교를 임제 선종과 화엄 교종으로 나누어 파악하는 것이다. 이처럼 김잉석은 송광사 수학 시절에 교학과 불교사에 대한 식견을 키우면서 학문적 소양을 닦을 수 있었다.
이어서 그는 서울에 있는 근대적 불교 교육기관인 중앙학림을 다니다가 1928년 일본 도쿄에 소재한 조동종 종립대학 고마자와대학 예과에 입학하였고, 정토진종 본원사파에서 세운 교토의 류코쿠대학 문학부를 1931년에 졸업했다. 김잉석은 일본 유학 당시 저명한 화엄학자였던 유스키 료에이湯次了榮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유스키는 『화엄대계』, 『화엄오교장강의』, 『화엄학개론』 등의 저작을 남기는 등 중국 화엄종의 3조 법장의 교학을 중심으로 근대 일본 화엄학 연구의 기반을 닦은 학자이다.
일본에서 귀국한 김잉석은 당시 조선불교 중앙교무원이 운영하던 보성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다가 1934년에 중앙불교전문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중앙불전은 1940년에 혜화전문학교로 교명이 바뀌었고 해방 후인 1946년에는 동국대학으로 승격 개편되었다. 김잉석은 동국대 교수를 지내면서 도서관장 등을 맡았다. 1958년에는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장에 취임하였고 1961년에 정년퇴임했다. 1963년에는 그간의 공헌을 인정받아 명예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65년 5월 31일 세상을 떠났고, 6월 2일 조계사 대웅전에서 영결식을 거행했다.
그가 남긴 저술은 20편에 달하는데 화엄학 관련 논저가 2편, 보조지눌에 관한 글이 8편, 삼론학과 승랑을 다룬 논문이 5편, 기타 논문 4편, 공편 저서 1편이다. 지눌에 관한 글 가운데 3편이 화엄과 관련되므로 화엄 관련 논저는 모두 5편이 되며 전체의 1/4에 해당하지만 대표작인 『화엄학개론』(1960)의 유명세 덕분에 김잉석은 화엄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공저로 『불교학개론』(1959)을 저술하였고, 「현수교학에 있어서의 연성이기론」, 「불일보조국사」, 「승랑을 상승한 중국 삼론의 진리성」 등을 대표 논문으로 들 수 있다. 「불타 성탄에 관한 역사적 소고」, 「불타와 불교문학」도 이채로운 주제의 글이다.
김잉석 화엄학의 날줄과 씨줄
김잉석은 류코쿠대학에 다니던 1930년에 「현수교학에 있어서 연성이기론緣性二起論」이라는 글을 썼다. 이는 중국 화엄학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현수법장의 연기緣起와 성기性起 논의를 고찰한 것으로 당시 대학 논문 용지로 320쪽이 넘는 긴 분량이다. 목차는 1장 일진법계론一眞法界論, 2장 연기와 성기의 고찰, 3장 차별연기법의 세 방면, 4장 평등성기의 고찰, 5장 연성이기의 관계, 6장 원융무진연기의 고찰이다. 그는 법장이 모든 법을 연기의 상相과 성기의 성性의 두 관점에서 해석하여 중중무진연기의 수승한 가르침을 펼쳤다고 보았다. 이것이 그의 화엄학의 첫 출발점으로서 뒤에 나오는 『화엄학개론』의 제4편에도 해당 내용이 수록되었다.
김잉석은 귀국한 뒤 교육에 힘쓰느라 별다른 연구 성과를 내지 못하다가 1941년부터 1943년까지 보조지눌의 생애와 저술, 정혜쌍수와 돈오점수, 성적등지문·원돈신해문·간화경절문의 세 수행체계를 다룬 짧은 글 4편을 발표했다. 이후 지눌 탄생 801주년이었던 1959년부터 1960년까지 연구를 심화시켜 지눌의 화엄관에 대한 3편의 글을 썼다. 김잉석은 지눌이 『원돈성불론』에서 이통현의 『화엄론』을 활용하여 원돈신해문을 세웠고 ‘성기취입性起趣入’ 등 화엄에 관한 독창적 견해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편 백성욱 박사 송수 기념 『불교학논문집』(1959)에 「고구려 승랑과 삼론학」을 실었고, 또 김병규, 장원규 등과 함께 공저로 『불교학개론』을 동국대 출판부에서 출판했다.
1960년에는 동국대 출판부에서 『화엄학개론』이 간행되었는데, 머리말에는 동국대 백성욱 총장의 후의에 의해 이 책이 출판될 수 있었음을 밝히고 발간에 도움을 준 조명기 교수 등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불교 관련 연구서가 거의 없던 시절에 화엄학을 주제로 한 단독 개설서가 나온 점은 높이 살 만하다. 다만 국내의 학문적 수준이 뒷받침되지 않은 척박한 환경에서 그 또한 일본의 연구 성과와 개설서를 참고하고 그 영향을 크게 받았음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이 책은 유스키 료에이의 『화엄학개론』(1935)과 편제와 주요 내용이 거의 흡사하다. 유스키의 『화엄학개론』은 제1부 교사(인도, 경론 번역, 중국, 한국, 일본). 제2부 본경(교주, 종취, 분과, 해인삼매, 설시와 설처, 경전 내용), 제3부 교판(5교판, 동별 2교), 제4부 교리(4종 법계, 이사무애, 사사무애), 제5부 수증(계급, 단혹, 관법, 성불, 화엄행자 등)으로 되어 있다
김잉석의 『화엄학개론』은 제1편 화엄교사, 제2편 본경 개설(종취, 번역, 교주, 설시와 설처, 삼매, 이통현의 화엄경관), 제3편 교판론(일승과 삼승, 동교일승과 별교일승, 5교판), 제4편 교리론(일심, 법계, 연성이기 등), 제5편 수증론(항포와 원융의 단혹설, 불신론, 불토론 등)으로 구성되었다. 양자를 비교하면 김잉석의 『화엄학개론』은 제1편 교사에서 인도와 중국 등을 간략히 서술하고 한국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책 전체 273쪽 가운데 70여 쪽에 걸쳐 한국 화엄학의 역사와 전개, 문헌의 전래와 간행 및 유통 등을 서술했다. 이는 권상로의 『조선불교약사』(1918) 부록의 「제종종요」에서 일본학계의 종파불교 이해를 토대로 하여 천태종, 화엄종, 법상종, 선종 등 동아시아 불교 각 종파의 연혁과 교리를 정리하면서 한국불교의 종파 및 교단사를 추가로 기술해 넣은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2편에서는 당의 화엄학자 이통현의 화엄경관을 별도로 목차에 넣었는데, 이통현 화엄은 보조지눌이 매우 중시했기에 한국불교 사상사의 흐름에서 특기할 만한 사례로 주목한 것이다. 김잉석은 한국의 화엄교학사에서 지눌을 독특한 존재라고 높이 평가하면서 그 이유로 ‘보광명지불普光明智佛의 견지’를 들었다. 지눌의 성적등지문, 원돈신해문, 간화경절문의 3문 수행체계 가운데 원돈신해문에서 이통현의 화엄사상을 특히 중시하며 활용했다. 지눌은 이통현이 주창한 ‘근본보광명지’를 내세워 중생은 본래부터 성불한 존재이므로 스스로 부처임을 깨닫고 실천해야 함을 강조했다. 한편 『화엄학개론』에서 한국 화엄의 특성과 관련하여 성기론을 내세운 점도 주목된다.
김잉석이 쓴 마지막 논문은 1964년 『불교학보』 2집에 게재된 「불일보조국사」였다. 이 글의 결론에서 그는 지눌 사상에 대해 “정통적인 화엄의 현수(법장) 교학을 비판하고 원돈교로서 화엄의 교학관을 새롭게 드러냈다.”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다. 송광사에서 출가하고 수학한 경력 때문인지 지눌의 사상과 송광사의 보조 유풍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음을 볼 수 있다. 앞서 1962년부터 1964년 사이에는 「삼론에서 본 중도사상」, 「승랑을 상승한 중국 삼론의 진리성」, 「승랑을 상승한 중국 삼론의 역사성」과 같은 논문을 학회지에 실어 삼론학과 승랑 연구를 마무리 지었다. 또 사후에 유고인 「불타와 불교문학」이 『동국사상』 4, 5, 6집에 나누어 실렸다.
김잉석은 근현대기 한국 화엄학 연구의 서막을 연 학자였다. 비록 그의 주저인 『화엄학개론』이 일본 학계의 연구 성과를 거의 답습한 측면이 있지만 한국 화엄학의 서술 비중을 늘리고 지눌에 영향을 준 이통현의 화엄사상, 그리고 한국 화엄의 특징인 성기론을 강조하는 등 한국불교를 특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인 점은 평가할 만하다. 무엇보다 식민지와 전쟁이라는 현실의 어두운 질곡 속에서도 평생 한국불교 연구와 교육에 매진한 몇 안 되는 학자로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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