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책 이야기]
승가교육 불서와 의례서 그리고 영가선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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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정 / 2022 년 3 월 [통권 제107호] / / 작성일22-03-04 11:16 / 조회5,001회 / 댓글0건본문
성철스님의 책 이야기3 조선시대 판각 불서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 초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선의 승려 장인> 전시가 열렸다. 유교가 국가지배 이념으로 채택된 조선시대에 출가 수행자이면서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또 다른 예술을 만들어낸 승려 장인들을 만나볼 수 있는 뜻 깊은 전시였다. 5백여 년 동안 시기별로 조성된 다양한 불상과 불화를 둘러보다 보면 조선시대에 이토록 정성스런 불사를 조성할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도록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조선시대에 불교는 공적 영역에서 배척되고 경제적으로도 타격을 입었으나, 불교문화와 신앙 활동은 여전히 성행했다. 특히 이 시기의 불교는 대중화·서민화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기층민의 종교로 뿌리내리게 된 것이 특징이다. … (중략) … 조선 전기에는 왕실 발원의 불상, 불화, 범종을 관영수공업 체계에 속한 장인이나 그림을 담당하는 관청인 도화서 소속 화원이 만든 사례가 많았다.
반면 조선 후기에는 불상과 불화의 제작을 승려 장인이 전담하게 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 원인으로는 연산군(재위 1494~1506) 대와 중종(재위 1506~1544) 대에 관영수공업 체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서 붕괴 조짐을 보였던 역사적 배경을 꼽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임진왜란(1592~1598) 당시 의승군을 일으켜 국난 극복에 앞장섰던 불교계가 전란 때 피해를 본 전국 사찰들을 재건하면서 건축, 불상, 불화 등을 승려 장인을 주축으로 하여 조성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17세기에는 사찰의 중창과 중수가 급증함에 따라 승려 장인으로 이루어진 불교계의 자급자족적 불사 조영 체계가 구축되었다. 이로써 승려 장인 조직의 편성과 운용이 원활해졌고 축적된 기술을 다음 세대에게 안정적으로 전하는 일도 가능해졌다.”
조선시대 판각 불서
이러한 흐름은 조선시대 판각 불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조선시대 전국 주요 사찰에서 판각한 불교 서적에 대한 현황을 집대성한 『조선 사찰본 서지 연표』가 발간되었다. 작은 책자이지만 40년 동안 직접 실물 조사와 연구를 이어온 서지학자인 중앙대학교 송일기 명예교수님의 숨은 노고가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책에 따르면, 조선시대 전국 300여 개 사찰에서 개판한 불서는 대략 1,700여 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된다.
사진 1. 『십현담요해』(1475).
조선 전기에는 국가기관인 간경도감이 주도한 언해 불서와 왕실 후원의 불서 간행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조선 후기에는 승과가 폐지됨에 따라 자체적으로 승가교육에 필요한 불서와 의례를 설행하기 위한 불서, 그리고 민중을 중심으로 공덕을 기원하는 불서 간행이 일어난 것이 특징이다. 주로 16, 17세기에 전국 사찰에서 대대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성철스님 소장 책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보인다.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간기가 확인되는 목판본 불서는 대략 60여 종이다.
승가교육 불서와 의례서 그리고 선서
승가교육과 관련된 불서로는 사집과四集科의 『대혜보각선사서』(1633), 『선원제전집도서』(1633),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1604, 1681), 『고봉화상선요』(1647, 1681), 사교과四敎科의 『묘법연화경요해』(1649), 『대승기신론소필삭기회편』(1695)과 사미과沙彌科의 『치문경훈주』(1695) 그리고 대교과大敎科의 『화엄경소주』(1557, 1634~1635), 『화엄경소초』(1690, 1775, 1856), 『화엄현담회현기』(1695), 『경덕전등록』(1614), 『선문염송집』(1634~1636), 『선문염송설화』(1707) 등이 확인된다.
의례 불서로는 예참법禮懺法의 『예념미타도량참법』(1503, 1607)과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1769), 상례喪禮의 『승가예의문』(1670), 제공齋供 의식의 『제반문』(1719), 복장腹藏 의식의 『조상경』(1824) 등이 있다. 조선시대 전국 사찰에서 집중적으로 간행했던 수륙재나 예수재, 천도재 등의 봉행 의식을 담고 있는 『결수문』이나 『중례문』, 『지반문』 등의 의례서를 백련암 소장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게 주목된다. 이러한 이유는 선禪 수행을 강조했던 성철스님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선종 관련 불서로는 앞서 사집과와 대교과에 속한 선서를 제외하고 『영가진각선사증도가』(1424), 『선종영가집언해』(1464), 『십현담요해』(1475), 『선종영가집』(1499), 『몽산화상육도보설』(1521), 『인천안목』(1529), 『십현담요해언해』(1548), 『선종영가집과주설의』(1568), 『원돈성불론』(1604), 『고려국보조선사수심결』(1799), 『육조대사법보단경』(1869) 등이 확인된다.
그 중 『십현담요해』와 『십현담요해언해』는 2009년 9월에 처음 학계에 소개된 희귀본과 유일본으로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십현담요해』는 중국 동안상찰同安常察(?~961) 선사가 조동종曹洞宗의 개조인 동산양개洞山良价(807~869)의 동산오위洞山五位를 열 가지 조항으로 칠언팔구七言八句 율시律詩로 해석하고, 여기에 청량문익淸凉文益(885~958)과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 주석을 덧붙인 책이다. 【사진 1】 다소 어려운 내용 탓일까 조선시대에 대중적으로 더 이상 간행되지 못했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영가선사서
백련암에는 선종의 제6조 혜능慧能(638~713) 선사를 찾아가 법거량을 하고 하룻밤 쉬어갔다 하여 일숙각一宿覺이라고 불렸던 당나라 영가현각永嘉玄覺(665~713) 선사와 관련된 저술도 주목된다. 『영가진각선사증도가』와 3종의 『선종영가집』이다.
사진 2. 『영가진각선사증도가』(1424).
성철스님이 20세 전후의 나이에 한 노승으로부터 받은 『증도가』를 읽고 본격적으로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불교 서적을 탐독한 사실이 알려져 있다. 백련암에 소장된 『영가진각선사증도가』에는 성철스님이 증여받은 불서마다 날인한 ‘법계지보’의 인장이 확인되지 않는다. 출가 전에 받았던 『증도가』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사진 3. 『선종영가집과주』 언해본(1464).
1424년 전라도 고창 문수사에서 개판한 『영가진각선사증도가』 【사진 2】는 『남명천화상송증도가』와 같은 내용으로 천경산千頃山 사문沙門 법천法泉이 계송繼頌한 판본이다. 1076년에 쓴 중국 축황祝況의 후서後序에는 “현각과 혜능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 증도가의 의미를 설명하고 후대 사람들이 공부하고자 하여도 주석마저 어려운 까닭에 영가법천永嘉法泉이 이를 해설하여 오래도록 전해지게 하였으므로 판각하여 널리 펴고자 한다.”라고 했다.
사진 4. 『선종영가집과주』 한문본(1499).
판본의 형식은 『증도가』 원문을 매 구절 단위로 나누고 글자 한 칸의 간격을 둔 다음에 법천의 송을 이어서 덧붙이고 있다. 선의 도리와 경지를 표현하고 있는 『영가진각선사증도가』는 조선시대 수많은 선사들의 수행 지침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철스님의 저술에도 자주 인용된 선서이다.
『선종영가집』은 현각 선사가 남긴 글을 당나라 위정魏靜이 편찬하고 서문을 쓴 것이다. 조선시대에 유통된 『선종영가집』은 현각선사의 원문에 송대 행정行靖의 주해註解와 정원淨源의 과문科文까지 포함된 일종의 주석서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 책은 『선종영가집과주禪宗永嘉集科註』라고 불러야 하지만, 현재 『선종영가집』으로 통칭되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되는 조선시대 『선종영가집』의 가장 오래된 판본은 1464년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선종영가집과주』 언해본이다. 세조가 직접 구결口訣을 달고, 신미信眉와 효령대군孝寧大君 등이 국역한 것이다. 【사진 3】 언문은 ○ 표시 아래 소자쌍행小字雙行으로 새겨져 있다. 그리고 간경도감본에는 함허기화涵虛己和(1376~1433)가 찬술한 「함허당찬송병서涵虛堂讚頌幷序」와 「함허당설의涵虛堂說義」 13장 분량이 언해 없이 한문으로 부록되어 있다. 간경도감본 이후 언해본은 1520년 경상도 안음 장수사長水寺에서 한 차례 번각되었다. 그 밖에 16세기까지 주로 한문본이 십여 차례 간행되었다. 백련암 소장본 중 1499년 경상도 합천 석수암石水庵 판본이 바로 『선종영가집과주』의 한문본이다. 【사진 4】
석수암본과는 달리 1568년 충청도 보은 속리산 복천사福泉寺 판본에는 기화가 각 장을 칠언절구 형식으로 지은 송頌과 서문이 책 서두에 실려 있을 뿐만 아니라 본문에 기화의 주석까지 포함되어 있다. 현각의 원문은 대자로, 행정의 주석은 중자로, 기화의 주석은 소자로 구분하여 새겼다.【사진 5】 이 책도 『선종영가집』의 또 다른 주석서로 엄밀한 의미로 부른다면 『선종영가집과주설의禪宗永嘉集科註說誼』이다. 이처럼 15, 16세기에 판각된 『선종영가집』은 『선종영가집과주』의 언해본과 한문본 그리고 『선종영가집과주설의』의 한문본 계통이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선종영가집』은 중국에서 불교가 천태종, 화엄종, 선종 등 다양한 종파로 분열되면서 교와 선으로 양분되기 시작할 무렵에 현각 선사가 불교의 종지를 마음으로 삼고 천태와 선, 교와 선의 종합을 모색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내용은 수행인의 자세와 수선修禪의 요결 등을 10개의 장章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1장 「모도지의慕道志儀」, 2장 「계교사의戒憍奢意」, 3장 「정수삼업淨修三業」, 4장 「사마타송奢摩他頌」, 5장 「비파사나송毗婆舍那頌」, 6장 「우필차송優畢叉頌」, 7장 「삼승점차三乘漸次」, 8장 「사리불이事理不二」, 9장 「권우인서勸友人書」, 10장 「발원문發願文」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제4장부터 제6장까지 지止·관觀·중도中道에 관한 사마타, 비파사나, 우필차 수행법을 설명하고 있다. 영가 선사는 천태의 공空·가假·중中의 3관觀으로 이 세 가지 수행법을 논하지만, 이것은 결국 중생심 안의 진여심을 자각하여 부처가 되는 길인, 선종의 견성성불의 길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5. 『선종영가집과주설의』(1568).
조선시대 판각 불서의 흐름과 특징으로 살펴볼 때, 상업적인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당시, 여러 사찰에서 꾸준히 불서를 판각하고 인출했던 것은 불교 승가 안에서 교육과 깨달음으로 이끄는 수행, 그리고 일반 민중을 구제하거나 신앙을 돕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제재와 사회적인 천대에도 굴하지 않고 불교계 자체적으로 자립의 힘을 길러 오히려 예술과 교육으로 승화시키고, 왕실에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부처님께 공덕을 기원하는 시주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기록하며, 6백 년이 지난 우리들에게까지 위대한 한국의 유산으로 물려준 조선시대 승려 장인들에게서 현재 우리가 새겨야 할 의미는 무엇일까. 같이 찾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국립중앙박물관 편, 『조선의 승려 장인』, 서울: 국립박물관문화재단, 2021.
송일기 편찬, 『조선 사찰본 서지 연표』, 완주: 현재기록유산보존연구원, 2021.
한자경 저, 『선종영가집 강해』, 서울: 불광출판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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