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조선불교청년총동맹의 기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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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 / 2022 년 3 월 [통권 제107호] / / 작성일22-03-04 10:03 / 조회4,837회 / 댓글0건본문
근대불교잡지 산책 15 | 『불청운동』 (통권 11호, 1931.8-1933.8)
3.1운동 이후 각성된 불교청년의 현실 대응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전국적인 조직으로 조선불교청년회가 1920년 6월 각황사에서 출범하였다. 각 사찰에서 올라온 위원들과 경성의 불교청년 50명은 6월 15일 중앙학림 대강당에 모여 발기대회를 열었고, 6월 20일 백여 명이 각황사에 모여 총회를 개최하고 불교청년회를 창립하였다.
청년, 역사의 전면에 서다
불교청년회는 전국 사찰에 지회를 설립하였다. 1920년대 총 38개의 지회가 창립되었는데, 1920년 6월부터 1922년까지 3년간 22곳이 창립되는 등 활기를 띠었다. 조선불교회는 창립 이후 사찰령 철폐운동과 불교계 통일운동을 적극 추진하였다. 불교청년회는 10개 본산과 함께 1922년 1월 불교계의 통일기관으로 총무원을 세웠고, 이는 기존에 있던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교무원과 대립적인 구도를 형성하였다. 양원은 갈등을 지속하다가 상호 타협한 결과 1924년에 중앙교무원으로 통합되었다. 중앙교무원은 이후 일제의 식민 정책에 타협하는 길을 갔고, 이에 따라 불교청년회 활동은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다.
이후 청년운동은 조선불교청년대회(1928.3)를 개최하면서 강력한 불길로 재점화되었다. 불교청년회 구성원들은 1929년 1월 개최된 조선불교선교양종승려대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종헌 제정과 종회, 교무원 성립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불교청년회에서는 1930년 7월 하와이에서 개최된 범태평양불교도대회에 각황교당 포교사인 도진호를 파견하였다. 그는 1928년 불교청년회를 다시 일으킨 주역이자 조선불교승려대회를 주도적으로 이끈 인물로서, 그의 참여 활동과 대회 회의록은 당시 『불교』지에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세계 불교 청년운동의 실상과 전망을 소개한 도진호의 보고는 당시 불교청년회 구성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켜 기존의 조선불교청년회를 조선불교청년총동맹으로 전환시킨 계기가 되었다. ‘분산적 불청회로부터 통일적 불청총동맹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재조직된 운동은 1931년 조선불교청년대회(3월 22일)를 거쳐 조선불교청년총동맹 창립(3월 23~24일)으로 이어졌다. 【사진 1】
창립대회에서는 총동맹의 「맹헌盟憲」이 발표되었고 이로써 불교청년 운동의 구심점은 조선불교청년회에서 조선불교청년총동맹으로 전환되었다. 각 지역의 불교청년회 명칭 또한 ‘○○사 동맹’으로 개칭되었다. 1931년 3월 출범한 조선불교청년총동맹은 출범 시 『조선불교총동맹 맹헌』을 공포하였고, 별첨 자료에 기관지 발행에 대한 안건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그해 8월에 창간호가 발행되었다. 【사진 2】
맹헌과 잡지의 편제
『불청운동』은 조선불교청년총동맹이 출범하며 제시한 「맹헌」에 간행의 목적, 내용, 방식이 명시되었고, 발행의 제반 업무는 중앙집행위원회에 일임하였다. 매년 3월 개최되는 총동맹 전체대회 기간 외에 상시 업무를 담당한 것은 중앙상무집행위원회이었기 때문에 기관지의 간행 업무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그 결과 1931년 8월부터 1932년 3월 16일 전체대회 개최 직전까지 중앙상무집행위원으로 선출된 인물들이 『불청운동』 1~4·5합호까지의 업무를 관장하였다. 1932년 3월에 개편된 제2기 위원회에서는 6호와 7·8합호, 9·10합호를 발행했으며, 1933년 3월부터 개편된 제3기 위원회에서는 11호를 발행하였다.
『불청운동』은 별다른 하위 편제 없이 10여 편의 논설과 시와 시조(불청시단)를 중심에 두고, 서두에는 「권두언」을, 후미에는 「총동맹소식」, 「동맹소식」 등 활동일지를 수록하였다.
1호는 창간사에 【사진 3】 이어 석전 박한영과 만해 한용운의 축사를 실었고, 7·8합호와 11호의 권두언은 만해가 작성하였다. 불교청년운동의 정신적 좌장으로서 석전과 만해의 위상을 재확인할 수 있다.
논설은 앞서 소개한 불교청년운동의 강령과 안건을 구체적으로 풀어낸 다양한 수준의 글이 수록되었다. 논설 가운데는 호에 따라 ‘건달총’(2호), ‘살활검’(2호), ‘대원경’(7·8합호, 9·10합호)란을 두어 교계 비판을 담은 단평을 수록하였다.
총동맹 중앙집행부의 활동은 「총동맹소식」에, 지방 각 사찰의 소식은 「동맹소식」에 수록하였고, 7·8합호, 9·10합호에는 「종헌실행운동란」을 두어 하위 동맹의 종헌 실행 여부를 소개하였다.
교계 혁신의 논리, 그리고 갈등
조선불교청년총동맹운동을 앞장 서 이끈 대표적인 논사로는 이용조, 허영호, 정상진, 장도환, 김경주, 한영규 등이 있고, 여성동맹 관련 논사로는 김광호(2호)와 익명의 맹원(7·8합호, 9·10합호)이 있다. 이들은 대체로 일본 유학생 출신으로서 총동맹의 주요 임무를 맡은 인물이다.
이용조는 「불청총동맹조직종횡관」(1호), 「지방순례기」(2, 3호), 권두언과 「종정회기를 압두고 전선 법도의 일대결심을 촉함」(4·5호)을 발표하였다. 「종횡관」은 총동맹의 발기와 원인 고찰, 준비 과정, 대회 당시 현장을 소개하고 3강령에 대해 소개하였다. 「순례기」는 총동맹 위원으로서 ‘세포동맹 맹무시찰’과 훈련, 종무 상황조사를 목적으로 실시한 순시 결과 보고서다. 「종정 회기를 압두고」는 1932년 3월 개최될 종정 회기에 논의할 종헌의 제정 문제로 여러 의견이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제3안인 ‘원칙院則 인가설’을 제안한 글이다. 이는 사법의 개정이 총독부의 통제하에 있어 제기되는 여러 문제를 극복하는 하나의 조정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허영호는 「불청동맹조직과 나의 잡감」(1호), 「불청운동의 신과제」(3호), 「불청운동과 이상확립」(7·8호)을 발표하였다. 「잡감」은 총동맹의 내실을 다지는 방안으로 교학에 대한 관심 제고, 범어·팔리어·서장어·서역어 등의 연구, 불교경전사에 대한 연구, 현대의 세계불교에 대한 연구 등을 제안하였다. 「신과제」는 청년들에게 ‘새로운 불교 이데올로기’를 가질 것을 당부한 글이다.
정상진은 「교계전망」(2호), 「개정사법기초안의 비판」(3호)을 발표하였다. 「교계전망」은 총동맹에서 각 동맹과 사찰을 순시 결과를 가감 없이 드러낸 글로, 본산, 중소 말사, 도회 포교당의 문제점을 일일이 비판하였다. 「사법기초안 비판」은 1932년 3월에 종회에서 논의할 사법의 초안을 검토한 글이다. 조선불교를 통일하기 위하여 사법을 개정하는 것인데, 어느 구절 속에 그 정신이 담겨 있는가 반문하며, 위원들이 말하는 통일이란 실제로는 31개 독립국인 본산법을 도출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출범 당시부터 기획자로 함께 참여했던 불교청년들은 총동맹 결성 후 머지않은 시점에 일부는 교무원의 임원으로, 일부는 중앙불전 강사로, 일부는 각 지역 사찰의 운영자로 진출하였다. 이들의 입장 차이가 갈등으로 발전하여 때로는 극렬한 지상 논쟁으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허영호(분개생)의 「불교지상佛敎誌上 남명씨南溟氏의 변명을 재박再駁함 - 사십만 원 증자 폐지 폭론에 대해서」(9·10합호) 【사진 4】는 당시 교무원의 가장 큰 현안으로 등장한 재단의 40만 원 증자안과 관련된 주장을 담았다.
재단법인 교무원이 출범할 당시 기본금을 60만 원으로 책정했었는데, 1929년 3월 교무원 평의원 총회에서 불교전수학교를 전문학교로 승격시키기 위해 40만 원 증자안을 결정하였다. 당시 청년총동맹 중앙집행위원이자 교무원 재무부원으로 재정 실무를 담당하고 있던 정상진(남명)은 『불교』지에 이를 반대하는 글을 발표하였고, 허영호(분개생)는 정상진의 견해에 반론을 제기 하였다.
허영호와 정상진은 지면을 통해 격렬하게 논쟁하였고, 결국에는 감정적인 표현까지 드러내며 파국 일로로 치달았다. 중앙불전의 학감으로 있던 허영호, 재단법인 교무원의 재무부원 정상진의 갈등은 중앙불전과 교무원 간의 알력으로 비화되었다. 이후 중앙불전의 강사 다섯 명이 학감인 허영호를 해임하라는 청원을 교무원에 제기하였고, 이로 인해 교무원과 중앙불전의 갈등이 첨예하게 전개되었다. (결국 허영호는 중앙불전 학감 겸 교수직에서 사면辭免되었다.)
이러한 총동맹원 내부의 갈등은 이제 그들이 균일한 지향을 가진 순수한 청년집단에서 교단의 이해 관계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는 경쟁 관계로 변해 갔다는 것을 증명한다. 총동맹 최고의 기획가인 이용조는 이 사건을 시점으로 만주로 떠나게 되고, 불교청년총동맹원의 핵심 인물들이 결성하여 운동을 견인한 비밀조직 ‘만당’도 이 시기에 해체를 결의하게 된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총동맹의 활동도 급격히 미약해졌고 잡지도 11호로 종간하게 되었다.
시대에 대한 문학적 응전
『불청운동』에는 다른 불교잡지와 마찬가지로 불교청년들의 시와 소설이 수록되었다. 이 가운데 주목되는 작품은 김태흡의 소설 <신무대>(4·5합호), <열혈아>(7·8합호), <개척자>(9·10합호, 11호) 【사진 5】 세 편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총동맹 운동을 대표하는 전형적 인물이다. 1920년부터 현재까지 불교청년회 활동에 이어 불교청년총동맹을 세우고 주도적으로 활약한 주인공이 어떤 경과로 새로운 무대에 등장하였는지, 현재 어떤 도전 속에서 응전해 나가는지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열혈아>는 경성동맹 맹원 병규의 동맹 활동을 소개한 소설이다. 그는 지방으로 낙향하여 한 사찰에서 동맹운동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방학을 이용하여 두 달 동안 순회 전도를 떠났고, 아내인 정옥은 그사이 사찰에서 어린아이 100명 정도를 규합하여 당시 동아일보가 주창한 브나로드(문맹퇴치) 운동을 전개하였다. 병규가 순회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주지는 물론, 일본 유학생 출신인 감무마저도 그를 사찰 내 경쟁자로 인식하고 동맹운동을 그만두라고 요구하였다. 부부의 활동으로 인해 사찰이 경찰의 견제와 감시를 받게 되고 그 피해가 크다는 논리였다. 결국 병규는 그들에게 폭행당하고 쫓겨나는데, 병규는 본산 산림벌채 금액이 회계상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을 고발하여 상황은 역전된다. 주지는 주지직을 취소당하고, 감무 등은 구속되었다. ‘맹원들 은 사무실을 점령하여 감무, 법무, 감사, 서기를 보게 되었’고, 경성총동맹에서는 ‘열혈아인 병규에게 「××본산혁명군 만세」, 이와 같은 축전을 보냈다.’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되었다.
<개척자>는 경성불교동맹 맹원인 박태환이 새로운 불교사업, 즉 포교를 위해 경성에서 만주로 떠나는 이야기를 담았다. 출발 당일 아침부터 도착일까지의 흐름을 스토리의 축으로 하였고 후일담을 추가하였다. 동경에서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현재는 경성제대 병원의 조수로 근무하고 있는 그가 왜 정든 이 땅을 떠나 북풍한설 몰아치는 만주로 떠날 결심을 하였는지가 태환 부부의 회고담 속에 담겨 있고, 떠나는 당일의 생생한 광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대화와 장면 묘사로 인해 소설의 속도는 느리나 생생하고, 서술자의 요약으로 그의 불교청년회, 동맹 활동이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었다. 조선불교의 사회사업으로 의료기관을 세워 조선의 무산대중을 위해 자비를 실천하고자 일본에서 조선으로 귀국한 태환은 ‘조선 내지內地는 일할 무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무대, 새 불교 개척의 사명감을 가지고 만주로 떠난 것이다. 소설은 그곳에서 조선 민회 회원들의 환영을 받고, 미래를 기대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사진 6. 이용조(몽정)의 논설 「불청총동맹조직종횡관」(창간호).
<개척자>는 실제로는 『불청운동』 창간호에 「불청총동맹조직 종횡관」 【사진 6】을 써서 총동맹 기획자로서의 경과와 전망을 소개한 이용조를 실제 모델로 하였다. 이용조가 만주로 떠난 실제 이유는 총동맹 운동의 내부 조직인 만당 구성원 간의 갈등이 가장 큰 이유라는 분석이 선행연구로 나와 있는데, 소설에서는 그러한 내면의 동기는 드러나 있지 않다. 대신 그의 만주행은 새로운 불교포교를 위한 선구자적 행위로서 낙관적인 미래가 그려져 있다. 이 소설은 실제 인물 이용조에 대한 오마주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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