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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이야기]
『육조단경』의 선사상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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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  2022 년 2 월 [통권 제106호]  /     /  작성일22-02-04 11:06  /   조회8,72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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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이야기 14 | 육조혜능六祖慧能 638-713 ⑤ 

 

『단경』에서 불법승 삼보에 대한 ‘무상삼귀의계無相三歸依戒’가 설해졌다면, 대승의 ‘사홍서원’ 역시 ‘자성자도自性自度’의 입장에서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귀결일 것이다. 따라서 『단경』에서는 ‘사홍서원’ 가운데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선지식들이여! 끝없는 중생을 다 제도하겠다고 서원하는 것은 이 혜능이 제도하는 것이 아니다. 선지식들아! 마음속의 중생이 각자 자신自身에서 자성자도自性自度하는 것이다. 무엇을 ‘자성자도’라고 하는가? 자신의 색신[自色身] 속에는 사견邪見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미망迷妄이 있지만, 또한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깨달음의 성품[本覺性]’도 있다. 다만 ‘본각성’으로 올바른 견해[正見]를 세워야 스스로를 제도할 수가 있다. 이미 정견正見을 깨달았다면, 반야의 지혜로 어리석음의 미망을 제거하며, 중생이 각각 자도自度하는 것이다. 사견을 정견으로 제도하고, 미혹함을 깨달음으로 제도하고, 어리석음을 지혜로 제도하고, 악을 선으로 제도하며, 번뇌를 보리로 제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제도하는 것을 바로 진정한 제도라고 하는 것이다.”(주1) 

 

사진 1. 남화선사의 입구에 걸려 있는 조계曹溪 편액. 남화선사는 광동성 곡강현 소관시에 위치해 있으며, 혜능대사는 이곳에서 37년 동안 선법을 펼쳤다. 

 

이로부터 분명하게 ‘자성자도’의 입장에서 ‘사홍서원’이 해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종보본에서는 “자심중생무변서원도自心衆生無邊誓願度, 자심번뇌무변서원단自心煩惱無邊誓願斷, 자성법문무진서원학自性法門無盡誓願學, 자성무상불도서원성自性無上佛道誓願成.”(주2)으로 표현하는데, 일반적인 사홍서원 앞에 ‘자심’과 ‘자성’을 첨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종보본에서는 이 ‘사홍서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사홍원四弘願이란, 건너감[度]을 원함이니 괴로움[苦]을 건너는 것이요, 끊음[斷]을 원하는 것이니 괴로움의 원인[集]을 끊음이요, 배움을 원함이니 도를 배움이요, 이룸[成]을 원하는 것이니 적멸寂滅을 이룸이다. 그러나 없애지만 없애는 바가 없으니 끊지 못하는 바가 없는 것이고, 도道를 행하지만 행할 바의 도가 없으니 건너지 못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주3)

 

이러한 사홍서원의 해석은 바로 ‘반야개공般若皆空’의 논리에 입각한 것이고, 또한 ‘무수무증無修無證’의 입장을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는 구절이라고 하겠다. ‘반야개공’의 입장에서는 번뇌 또한 그 자성自性이 공空함을 여실하게 말하는 것이며, 그 논리에 따르면 죄업罪業, 죄과罪過 등도 역시 자성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자성’을 일오一悟한다면 중생과 부처가 불이不二라는 입장에서는 ‘참회’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지만, ‘자성’에 미迷하면 중생이라는 입장에서는 여전히 참회할 죄업, 죄과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참회는 필요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인 측면에서는 참회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에 참회 역시 ‘무상참회無相懺悔’로 설해져야만 할 것이다. 따라서 종보본에서는 “무상참이란, 참회 하면서 참회하는 바가 아님이다[無相懺者 懺非所懺也].”(주4)라고 설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 ‘사홍서원’의 해석은 『단경』의 전체적인 불성론, 돈오견성의 사상과 완전히 그 틀을 같이한다고 하겠다.

『단경』에서는 이러한 ‘참회’를 다시 다음과 같이 설한다.

 

“선지식들이여! 이전의 생각과 이후의 생각 및 지금의 생각에서 염념에 어리석음과 미망에 물들지 않게 하고, 이전에 지었던 악행을 일시에 자성自性에서 제거할 수 있다면 바로 참회이다. 이전의 생각과 이후의 생각 및 지금의 생각에서 염념에 어리석음과 미망에 물들지 않게 하고, 이전의 교만함과 거짓된 것을 제거하라. 오염된 마음을 영원히 끊음을 바로 ‘자성의 참회[自性懺]’라고 칭한다. 이전의 생각과 이후의 생각 및 지금의 생각에서 염념에 병들지 않게 하고, 이전의 질투심을 제거하라. 만약 ‘자성’에서 이렇게 제거한다면 바로 이것이 참회이다.(이상 3창唱)”(주5)

 

『단경』에서 제창하는 ‘무상참회’는 그 바탕에 역시 ‘자성’과 연계되어 있으며, 이를 또한 ‘자성참회’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제법의 본체이며 삼보의 당체인 ‘자성’에 ‘참회’할 것이 발생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무상참회’가 또한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단경』에서는 이러한 ‘무상참회’를 설한 후에 다음과 같이 설한다.

 

“선지식들이여! 내가 설하는 ‘무상송無相頌’을 들어라. 너희들 미망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하여금 죄罪를 멸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니, 또한 ‘멸죄송滅罪頌’이라고도 칭한다.”(주6)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무상송’을 설하고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복福만 지으려고 할 뿐 도를 닦으려 하지 않고 다만 복을 짓는 것이 바로 도道라고 말하지만, 공양을 베풀어 복이 끝이 없어도 마음속의 삼업三業은 그대로 존재하도다.[愚人修福不修道, 謂言修福而是道. 布施供養福無邊, 心中三業原來在.] 

 

장차 복을 닦아서 죄를 없애려 하지만 후세에 복을 얻어도 죄는 여전히 존재하니, 만약 자기 마음속을 향하여 죄의 연緣을 풀려고 한다면 각자 자성에서 참다운 참회를 할 수 있도다.[若將修福欲滅罪, 後世得福罪原在, 若解向心除罪緣, 各自性中真懺悔.]

 

만약 대승의 참된 참회를 깨달으면 삿됨을 없애고 바름을 행하여 죄가 없어지니, 도道를 배우는 사람이 능히 스스로 관觀하면 바로 깨달은 사람과 같으리라.[若悟大乘真懺悔, 除邪行正即無罪, 學道之人能自觀, 即與悟人同一例.]

 

혜능이 지금 이 돈교頓敎를 전함은 배우는 사람들과 동일한 체體가 되기를 원함이니, 만약 당래當來에 법신法身을 찾으려 한다면, 삼독三毒의 악연을 마음속에서 씻을지어다.[惠能今傳此頓教, 願學之人同一體, 若欲當來覓法身, 三毒惡緣心裏洗.]

 

도를 닦음에 노력하여 한가롭게 지내지 말 것이며, 홀연히 한 세상이 헛되이 지나가 버리니, 만약 대승의 돈교법을 만났다면 경건히 합장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구할지어다.[努力修道莫悠悠, 忽然虛度一世 休, 若遇大乘頓教法, 虔誠合掌至心求.]”7)

 

이 ‘무상송’의 내용은 표면적으로는 간단하지만, 그 이면에 함축된 사상은 상당히 심오하다. 『단경』에서 설하는 다른 사상들과 마찬가지로 이 ‘무상송’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불성론으로부터 돈오와 정혜등학, 무념·무상·무주의 삼무三無 등 전체적인 사상들과 연계하여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바로 ‘돈오’를 이루었다면 ‘돈수頓修’, 즉 수행이라고 하는 것도 이미 완성된 상태가 되지만,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이들에게는 “홀연히 한 세상이 헛되이 지나니”, “노력하여 한가롭게 지내지 말 것”을 철저히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진 2. 남화선사 경내. 양나라 무제(서기 504년) 때에 창건된 남화선사는 처음에는 보림사寶林寺로 불리다가 남송 대에 이르러 남화선사로 불리게 되었다. 

 

이는 앞에서 “어리석으면 ‘점’을 권하고, 깨달은 사람은 ‘돈수’한다.”(주8), “어리석은 사람은 점수漸修하며, 깨달은 사람은 ‘돈수’한다.”(주9)라고 강조하는 점과 호응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단경』에서 설하는 ‘무수무증’은 결코 수행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저하게 수행을 강조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단경』에서 설하는 이와 같은 선리禪理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성’을 윤회의 ‘주체아主體我’와 같은 종류로 이해하는 경우도 보이고, 나아가 견문각지見聞覺知 등의 작용에 모두 성性이 존재한다고 이해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이러한 견해는 사실상 『단경』에서 시설한 사상과 본질적으로 어긋나며, 선리에도 맞지 않는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혜능의 제자인 남양혜충의 “저 『단경』을 개환改換하여 비천한 논리를 더하여 섞어서 성의聖意를 깎아버리고 후학들을 미혹하여 어지럽게 하니, 어찌 언교言敎를 이루었다고 하겠는가! 괴롭다! 나의 종宗이 손상되었도다.”(주10)라는 한탄이 출현하였다고 하겠다.

 

사실상 『단경』에 나타나는 선사상은 어떤 글 혹은 설명과 같은 형식으로 모두 밝히기에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상당히 함축적인 표현에 다양한 함의를 담고 있어 그를 모두 밝힐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오히려 『단경』에서 설하는 선리를 모두 상세하게 논증하고자 한다면, 도리어 남양혜충국사가 한탄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입장에서 이를 이어서 『단경』이 지니는 사상을 총괄하고, 그 의의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

 

<주>

(주1) 敦煌本, 『壇經』(大正藏48, 339b), “善知識! 衆生無邊誓願度, 不是慧能度. 善知識! 心中衆生, 各於自身自性自度. 何名自性自度? 自色身中, 邪見煩惱, 愚癡迷妄, 自有本覺性. 只本覺性, 將正見度. 旣悟正見, 般若之智, 除却愚癡迷妄, 衆生各各自度. 邪見正度, 迷來悟度, 愚來智度, 惡來善度, 煩惱來菩提度. 如是度者是名眞度.” ; 宗寶本, 『壇經』(大正藏48, 354a), “善知識, 心中衆生, 所謂邪迷心, 誑妄心, 不善心, 嫉妬心, 惡毒心, 如是等心, 盡是衆生. 各須自性自度, 是名眞度. 何名自性自度? 卽自心中邪見煩惱愚癡衆生, 將正見度. 旣有正見, 使般若智打破愚癡迷妄衆生, 各各自度. 邪來正度. 迷來悟度, 愚來智度. 惡來善度, 如是度者, 名爲眞度.”

(주2) 宗寶本, 『壇經』(大正藏48, 354a).

(주3) 앞의 책(大正藏48, 346c), “四弘願者, 願度, 度苦也, 願斷, 斷集也, 願學, 學道也, 願成, 成寂滅也. 滅無所滅, 故無所不斷也, 道無所道, 故無所不度也.”

(주4) 앞의 책.

(주5) 敦煌本, 『壇經』(大正藏48, 339b), “善知識! 前念後念及今念, 念念不被愚迷染, 從前惡行, 一時自性若除, 卽是懺悔. 前念後念及今念, 念念不被愚癡染, 除却從前矯誑. 染心永斷, 名爲自性懺. 前念後念及今念, 念念不被疽疾染, 除却從前疾妒心. 自性若除, 卽是懺.(已上三唱)” ; 宗寶本, 『壇經』(大正藏48, 353c), “제자들이여! 前念과 今念 및 後念에서 염념에 어리석음과 미혹함에 오염되지 않게 하라. 이전의 모든 惡業과 어리석음과 미혹함 등의 罪를 모두 참회하여 一時에 소멸하여 영원히 다시 일으키지 않도록 하라. 제자들이여! 前念과 今念 및 後念에서 염념에 교만과 거짓된 말에 물들지 않도록 하고, 이전의 모든 악업, 교만과 망언 등의 죄를 모두 참회하여 일시에 소멸하여 영원히 다시 일으키지 않도록 하라. 제자들이여! 前念과 今念 및 後念에서 염념에 질투에 물들지 않도록 해야 하며, 이전의 모든 질투 등의 죄를 참회하여 일시에 소멸하여 영원히 다시 일으키지 않도록 하라. 선지식들이여! 앞에서 말한 법들이 無相懺悔인 것이다.[弟子等! 從前念今念及後念, 念念不被愚迷染, 從前所有惡業愚迷等罪, 悉皆懺悔, 願一時銷滅, 永不復起. 弟子等! 從前念今念及後念, 念念不被憍誑染, 從前所有惡業憍誑等罪, 悉皆懺悔, 願一時銷滅, 永不復起. 弟子等! 從前念今念及後念, 念念不被嫉妬染, 從前所有惡業嫉妬等罪, 悉皆懺悔, 願一時銷滅, 永不復起. 善知識! 已上是爲無相懺悔.]”

(주6) 敦煌本, 『壇經』(大正藏48, 341a), “善知識! 聽吾說無相頌. 令汝迷者罪滅, 亦名滅罪頌.” ; 宗寶本, 『壇經』(大正藏48, 351b), “선지식들이여! 나에게 ‘無相頌’이 있으니, 각자 모름지기 염송하도록 하라. 在家이든 出家이든 다만 이에 의지하여 수행하여야 한다. 만약 수행하지 않고 나의 말만 기억하면, 그것은 아무 쓸데도 없을 것이다.[善知識! 吾有一無相頌, 各須誦取. 在家出家, 但依此修. 若不自修, 惟記吾言, 亦無有益.]”

(주7) 敦煌本, 『壇經』(大正藏48, 341a) ; 宗寶本, 『壇經』(大正藏48, 354c), “迷人修福不修道, 只言修福便是道. 布施供養福無邊, 心中三惡元來造. 擬將修福欲滅罪, 後世得福罪還在. 但向心中除罪緣, 名自性中眞懺悔. 忽悟大乘眞懺悔, 除邪行正卽無罪. 學道常於自性觀, 卽與諸佛同一類. 吾祖惟傳此頓法, 普願見性同一體. 若欲當來覓法身, 離諸法相心中洗. 努力自見莫悠悠, 後念忽絶一世休. 若悟大乘得見性, 虔恭合掌至心求.”

(주8) 敦煌本, 『壇經』(大正藏48, 338c), “迷卽漸勸, 悟人頓修.” 

(주9) 宗寶本, 『壇經』(大正藏48, 353a), “迷人漸修, 悟人頓修.”

(주10)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28(大正藏51, 437c-438a), “把他壇經改換, 添糅鄙潭, 譚削除聖意, 惑亂後徒, 豈成言敎! 苦哉! 吾宗喪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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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부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 저서로 『중국불교거사들』, 『중국불교사상사』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조선불교통사』(공역), 『불교와 유학』, 『선학과 현학』, 『선과 노장』, 『분등선』, 『조사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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