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중국 선종사 연구의 독보적 개척자 야나기다 세이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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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상 / 2022 년 1 월 [통권 제105호] / / 작성일22-01-05 09:08 / 조회4,790회 / 댓글0건본문
근대일본의 불교학자들 12 | 야나기다 세이잔柳田聖山 1922-2006
교토시의 동쪽에는 가모가와강이 남북으로 흐른다. 야나기다 세이잔柳田聖山(1922-2006)은 말년에 이 강을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다. 필자 또한 대학원 수업이 끝나면 이 강을 따라 걸으며 사색했다. 이 선학의 거목은 필자를 만나면 산책길에서 제자 삼아 강의를 했다. 한국선은 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세계에서도 자랑할 만한 우수함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도 자연의 한 부분인 양 초탈한 대학자의 겸손과 소박한 모습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야나기다는 비와호를 품고 있는 시가현의 임제종 사찰 연수사延壽寺에서 태어났다. 영명연수의 이름을 딴 사찰이다. 어릴 때부터 선의 세계에 둘러싸여 성장했다. 하나조노대학, 교토대학에서 수학했다. 당시 FAS선운동을 벌이고 있던 히사마츠 신이치久松眞一를 사사했다. FAS선운동은 “형상 없는 자아(Formless self)에 눈뜨고, 전 인류의 입장(All mankind)에 서서, 역사를 넘어 역사를 창조(Superhistorical history)하자”는 대승선 운동이다. 1949년부터 하나조노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후,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 중부대학을 거쳐 다시 하나조노대학으로 돌아왔다. 특히 국제 선학연구소 소장을 맡으며 선학의 외연 확장에 심혈을 기울였다.
무엇보다도 야나기다의 업적은 중국선종사 연구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선종의 등사燈史 자료를 비판적으로 탐구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다이쇼대학에서 연구하던 천태학의 대가 세키구치 신다이關口眞大와 더불어 “동에는 세키구치, 서에는 야나기다”라고 불렀다. 일본의 군국주의와 패망, 고도성장,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등 역사의 굴곡을 다 지켜본 그는 ‘선禪’이야말로 인류의 희망임을 누구보다도 확신했다. 과거를 현재에 재현하여 인류의 미망을 타파하는 길에 전 생애를 소진했다. 진실의 광맥을 선적 해석의 길에서 찾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야나기다의 업적은 중국 선종사에서 볼 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마조선 등장 이전의 초기 단계의 연구로 『초기선종사서의 연구』(1967), 『초기의 선사』Ⅰ·Ⅱ(1971)가 대표적이다. 다음은 선종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당唐의 순선純禪 시대의 연구로 『조당집』을 중심적으로 연구했다. 마지막으로 선어록의 편찬과 다양한 유파가 활동하는 송대에 대한 연구로써 간화선이나 묵조선을 통한 선의 본질을 탐구하던 시기이다. 이는 일본선의 연구로도 연동된다. 그의 일생은 엄밀한 텍스트 연구로 출발하여 선의 궁극에 대한 의미를 추구한 삶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야나기다를 일약 선 연구의 최고봉에 올려놓은 것은 『초기선종사서의 연구』였다. 북종에 관련된 등사燈史의 성립, 남종의 대두, 조사 선에 관한 등사의 발전, 『보림전』의 성립과 조사선의 완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구의 출발은 『속고승전』으로부터 시작된다. 문제의 초점은 사실과 전승의 관계였다. 그는 불교 사료로 서의 등사에 대해 “‘원초의 형태’라는 것은 역사적·시간적인 원초가 아니고, 의미 내포적인 원형을 가르킨다.”고 한다. 오래된 문헌을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신용할 수만은 없다. 따라서 “특히 종교관계 문헌에는 언제나 사실史實과 전승이 얽혀 있고, 전승적 기술을 무비판적으로 사실로 보는 잘못을 경계함과 동시에 전승을 단지 허구로써 떼어내 버리고 돌아보지 않는 어리석음을 반성해야 한다. 종교적인 전승이나 설화의 발생은 결코 자의적 우연이 아니다. 오히려 전승이 탄생하는 역사적·사회적 의미나 심리적인 이유를 추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즉, 등사가 발생한 시대, 인물, 문화적 배경의 컨텍스트를 충분히 고려해야만 그 본질에 다가설 수 있다. 등사에는 허구나 과장, 신화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지시하는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보지 않으면 한낱 이야기거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등사의 역사성과 전승의 의미가 이렇게 해서 세상에 밝게 드러나게 된다. 그가 이렇게 선학 연구에서 컨텍스트를 반영한 문헌 분석을 치밀하게 한 이유는 역사학자 츠다 소오키치津田佐右吉의 영향 때문이었다.
부국강병의 길을 걷던 근대 일본은 천황제를 강화하기 위해 8세기 초반에 나온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신화를 국민들에게 역사적 사실로 믿도록 했다. 츠다는 이에 반발하며 고증을 통해 그 허위를 분석하고자 했다. 야나기다는 츠다의 학문적 방법론에 감동을 느끼고, 선종 교단의 도그마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체험으로 수렴되는 선 텍스트에 대한 권위를 해체하고, 객관적이고도 엄밀한 문헌 비판을 가했다. 그는 “허구적인 기록 하나하나를 치밀하게 음미해 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그것을 허구화한 사람들의 역사적·사회적·종교적 본질을 명확히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일본이 서구에서 수입한 과학으로서의 종교학적 틀을 견지했다고 할 수 있다.
야나기다의 선 연구는 『조당집』에서 절정에 이른다. 『조당집』은 952년 남당南唐의 천주泉州에서 편찬되었지만, 유일하게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에 수록되어 있다. 1949년 해인사의 주지 환경幻鏡스님이 하나조노대학에 기증했다. 1972년 일본에서 영인본이 출판되었다. 1980~4년에 걸쳐 야나기다는 색인 3권을 출판한다. 그리고 순선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조당집』 연구를 발표한다. 1991년에는 해인사에서 ‘조당집의 여행’, ‘조당집과 나’를 주제로 강연하기도 했다. 그는 중국의 각종 자료를 수집하여 대중에게 제공했다.
1990년 중앙공론 대승불전 시리즈로 나온 『조당집』 초역抄譯에서 야나기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선서의 하나”임에도 “아직 누구에게도 완전히 읽혀지지 않고 있는 환幻의 텍스트”라고 격찬한다. 그리고 “당말 5대의 사회와 인간에 대한 참된 의미에서 전생명적인 고뇌와 구제의 충실한 기록으로서 그것을 생생하게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것의 하나로서 나는 『조당집』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다음 시대 관찬官撰 『전등록』 이하의 등사와의 차이를 이러한 점에 두고 싶다. 『조당집』의 종교는 최초 인도의 종교로서의 불교는 아니고 어디까지나 중국 토지에서 인간의 고뇌가 스스로 탄생시킨 종교적 요구의 결정이다. 그것은 철저한 중국 종교였다고 본다.”라고 한다. 중국적 토양에서 중국적 사고로 불타와 불법을 향한 전신의 노력이 바로 선수행인 동시에 그것의 기록이 『조당집』에 순수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비로소 주관적 진실인 선의 심층으로 연구의 시점을 확산하고 있다. 그것은 초기 선종을 연구함에 있어 도그마에서 해방된 텍스트를 지향했다면, 마침내 텍스트에서 본질, 즉 도그마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송대 선사상과의 관련성을 염두에 두고 『임제록』에 대한 연구에 돌입한다. 임제의 언어에 대한 연구를 필두로 『임제록』의 가장 오랜 판본인 『사가록四家錄』 또는 『천성광등록』을 저본으로 1972년 『임제록』의 해석을 펴낸다. 그리고 이어 간화와 묵조, 무자화두에 관한 연구로 이어진다.
근대에 호적胡適은 송대 선승들의 기록들은 망개妄改와 위조의 산물이며 믿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따라서 돈황문헌 등의 새로운 자료를 통해 복원해야 한다고 하며 새로운 연구방법을 확립했다. 그러나 야나기다는 반대로 『초기선종사서의 연구』에서 보여주듯이, 방대한 선적을 통해 그러한 허구성의 이면을 들여다봄으로써 진실에 더 깊이 다가갈 수 있다고 보았다. 『조당집』, 『전등록』, 『광등록』에 이르기까지의 등사의 계보, 임제의 ‘사조용四照用’ 또는 ‘사빈주四賓主’의 후대 정립과 관련, 송대 임제종과의 관련성에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자연히 송대의 선적 또한 선종사상사 연구의 핵심 영역임을 알 수 있다.
송대야말로 선어록의 전성기다. 보리달마, 육조혜능, 조주종심, 남전보원 등 초기선이든 순선의 시대든 송대의 선승들에 의해 그들의 사상은 세상에 나오게 된다. 송대의 등사나 어록 등을 통해 드러난 공안선은 대혜종고의 간화선에 의해 그 결정結晶을 이룬다. 선종의 특수성은 여기에서 절정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야나기다는 선의 역사를 텍스트를 통해 읽어 왔으며, 그 텍스트가 요구되는 시대의 상황과 정신을 밝히고자 했다. 이제 그는 초시간적이며 무제한적인 세계로 들어가 선의 본질, 선의 원형을 들여다보고 있다. 선수행자인 자신 스스로 주체자의 입장에 서게 된 것이다.
그는 특히 주자의 선불교 비판을 날카롭게 보았다. 주희는 마조·임제계의 ‘작용즉성作用卽性’에 대해 반발했다. 돈오의 입장에서 현실 언행 그대로가 자성의 움직임이라고 하는 것을 비판한 주자가 정곡을 찔렀다고 보았다. 모든 감각의 작용이 본성과 동일하다는 ‘작용즉성’은 선과 악에 대한 윤리적 판단마저도 불가능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야나기다는 당대의 무사선無事禪에 대한 대혜의 비판과 신유학의 윤리를 종합, 송대의 간화선이 현실계에 대한 부정과 그것마저도 넘어선 부정의 부정을 통해 절대적 긍정의 세계에 이르게 됨을 보게 된다.
야나기다는 『선문보장록의 기초적 연구』의 해제에서 중국에서는 자취를 감춘 위앙종이 한반도에 전해진 것과 간화선의 정착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처음에 『선문보장록』을 읽었을 때, 철저한 교외별전의 설에 놀랐고, 진귀조사眞歸祖師의 전등설에 말문이 막혔는데, 지금 새롭게 유래를 알고 보니 중국에서 5가의 제1진이 되는 위앙종이 태어나 바로 해동에 정착하니, 중국에서 그 전통이 끊어진 사정을 알겠다. 이는 조계의 현지玄旨였으며, 고려의 조계종도 동근동종의 선불교이다. 조계종은 규봉종밀에 의해 선교일치를 지향하는 한편, 대혜의 간화선를 받아들여 수도론의 정채精彩를 더한다.”고 말한다. 필자에게는 발해불교를 연구하는 것이 동아시아불교사의 공백을 메우는 데에 매우 중요하며, 한국의 학자들이 꼭 나서주기를 바랐다.
그가 남긴 많은 저술들을 읽을 때면, 한 글자 한 글자 선수행인으로서의 기품이 느껴진다. 엄정한 학문적 연구서 외에도 『임제록』을 비롯한 『신심명』, 『증도가』, 『십우도』, 『광운집』, 『이입사행론』 등의 선어록의 현대어 해석은 마치 자신이 그 주인공이 된 것처럼 친근함을 느낀다. 지금 돌이켜보면 야나기다는 지나가는 바람에도 흔들리며 대중을 제접한 무골도인無骨道人이 아니었다 싶다. 그리고 차 한 잔으로 그 사람의 심성 깊숙이 계합하며, 성불제중의 대승행을 소리없이 이끌었던 이 시대에 우리 곁에 온 수처작주 수처해탈의 임제였다. 언제든 교토의 가모가와강에 가면, 지팡이를 짚고 서서 “허허”하며 하늘을 보고 있는 야나기다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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