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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실념失念, 정신 줄을 놓는 번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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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21 년 12 월 [통권 제104호]  /     /  작성일21-12-03 11:45  /   조회5,46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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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104 | 대수번뇌심소③ 

 

 

북한산 자락에 단풍이 곱게 물드는 계절이 왔다. 만산홍엽滿山紅葉의 그 황홀한 빛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둘레길을 지나 산 중턱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잠시 산자락 주변을 산책하고 돌아와 원고도 쓰고 이것저것 챙겨야지 다짐하며 길을 나선 터였다. 하지만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단풍에 마음을 빼앗긴 탓에 나도 모르게 산 중턱에 이르고 말았다. 살다 보면 이렇게 무엇에 마음이 홀리거나 분주한 일상에 매몰되어, 챙겨야 할 일을 깜빡 잊어버리고 엉뚱한 일에 빠질 때가 있다. 보통 그런 상황에 대해 ‘정신 줄을 놓았다’고 말한다. 

 

가을 단풍에 젖어 정신 줄 놓다

 

‘정신 줄’이라는 재밌는 낱말에는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정신 줄’이란 ‘정신’과 ‘줄’이 합성된 말이다. 따라서 ‘정신 줄 놓다’는 표현의 의미는 “연줄을 끊으면 연이 허공으로 날아가듯이 자유롭고 통쾌한 정신 상태”로 설명되고 있다.

 

 

사진 1. 발길 눈길이 저절로 멈춰지는 풍경, 마음도 노란 은행잎을 따라나선다.

 

 

연줄이 끊어지면 연이 날아가 버리는 것처럼 정신 줄을 놓으면 우리의 마음도 제멋대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 정신 줄을 놓지 말고 마음을 잘 챙기라고 당부한다. 심지어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잘 차리면 살 수 있다.”는 속담까지 있다. 정신 줄을 잘 챙기는 것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강조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경전에 보면 마음은 마치 원숭이와 같다고 비유하고 있다. 원숭이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쉴 틈 없이 옮겨다닌다. 하지만 날뛰는 원숭이의 목에 줄을 묶어 두면 제아무리 산만한 원숭이라도 통제할 수 있다. 허공으로 날아가는 연 또한 연줄을 묶어 두면 내 맘대로 조종할 수 있다. 소나 말과 같은 가축도 그냥 두면 남의 밭에 들어가기도 하고 제멋대로 날뛰지만 고삐를 잘 잡고 있으면 온순하게 통제할 수 있다.

 

결국 정신 줄이라는 표현은 연줄이나 가축의 목줄처럼 사람의 마음도 잘 붙잡아 놓아야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고, 해야 할 바를 놓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문제는 마음에는 손잡이도 없고, 소나 말과 같은 고삐도 없는데 어떻게 정신에 줄을 묶는가이다. 연줄이나 가축의 목줄이 갖는 역할은 대상을 내 의지대로 통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에 줄을 묶는다는 것은 인식이 깨어 있어 마음의 움직임을 잘 알아차리고, 의도치 않는 곳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음이 깨어 있어야 해야 할 바를 놓치지 않고 챙길 수 있으며, 엉뚱한 곳에 정신이 팔려 실수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살다 보면 가을 단풍에 빠져 산길을 배회하는 필자의 경우처럼 정신 줄을 놓칠 때가 많다. 그렇게 정신 줄은 놓으면 실수가 생기게 마련이고, 뜻하지 않게 일을 그르치게 된다. 그래서 유식학에서도 정신 줄을 놓은 상태를 번뇌로 설정하고 있 다. 이번 호에 살펴볼 실념失念, 부정지不正知, 산란散亂이라는 세 가지 번뇌심소는 모두 정신 줄을 놓친 것이거나 그로 인해 비롯되는 번뇌라고 할 수 있다.

 

실념失念, 정신 줄 놓고 산란해진 마음

 

정신 줄 놓고 있는 마음 상태와 상응하는 번뇌의 첫 번째는 8가지 대수번뇌심소 중에서 여섯 번째인 ‘실념失念(muṣitasṁṛtitā)’이다. 실념은 글자의 의미대로 보면 ‘생각을 잃어버림’이라는 뜻이다. 생각을 잃어버린 상태라고 해서 의식 자체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기억하고 있어야 할 바른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를 말하기 때문에 ‘실정념失正念’이라고 한다. 실 정념이란 단지 기억의 망각이 아니라 마음이 혼란스럽고 산만해져 담아 두어야 할 선법善法을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실념에 대한 『성유식론』의 정의를 보면 “모든 인식대상에 대하여[於諸所緣] 분명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본성이다[不能明記爲性]. 바른 기억을 방해하여[能障正念] 산란의 의지처가 되는 것이 작용이다[散亂所依爲業].”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 2. 심우도 중 득우得牛. 소는 언제든 도망가려 한다. 고삐를 꽉 틀어쥐어야 한다.

 

 

첫째, 실념의 본성은 인식하고 있어야 할 것들에 대해 분명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을 산빛에 마음이 홀려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고 산자락을 배회하는 것은 기억하고 있어야 할 바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나아가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마음에 새겨 두는 것 도 여기에 포함된다. 정신 줄을 놓고 있으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생각을 놓쳐버리게 되는데, 그것이 실념의 본성이다.

 

둘째, 실념으로 인해 나타나는 작용은 마음을 산란하게 만드는 것이다. 마음에 새겨 두고 잊지 말아야 할 ‘바른 기억[正念]’을 놓쳐버리면 자연히 마음은 이런저런 대상을 쫓게 되어 산란해지기 마련이다. 정신 줄을 놓지 않고 항상 잡고 있어야 마땅히 해야 할 바와 하지 말아야 할 바를 잊지 않고 바르게 행동할 수 있다.

 

부정지不正知, 바르지 못한 앎의 번뇌

 

대수번뇌심소의 일곱 번째 심소는 ‘부정지不正知(asamprajñānya)’이다. 부정지는 대상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왜곡되게 이해하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따라서 부정지는 대상을 바르게 이해하는 정지正知를 방해한다.

『성유식론』에 따르면 부정지에 대해 “관찰되는 대상에 대해서[於所觀境] 그릇되게 이해하는 것이 본성이다[謬解爲性]. 바르게 아는 것을 방해하여[能障正知] 계율 등을 훼손하고 범하는 것이 작용이다[毀犯爲業].”라고 정의하고 있다.

 

첫째, 부정지의 본성은 대상을 그릇되게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쁜 것은 나쁜 것으로 알아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알아야 한다. 그와 같이 바르게 아는 인식이 없으면 나쁜 것을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여 거리낌 없이 하게 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서도 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된다.

 

둘째, 부정지의 작용은 계율을 지키지 않고 범하는 것이다. 바르게 알지 못하면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서 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히 계율에 어긋난 행동을 하게 되어 범계犯戒를 일삼게 된다. 그래서 『성유식론』에서는 “바르게 알지 못하는 사람은 계를 훼손하고 범하는 일이 많다[多所毀犯].”고 했다. 실념이 기억해야 할 바를 놓쳐서 생기는 번뇌라면 부정지는 대상에 대한 왜곡된 정보로 인해 생기는 번뇌라고 할 수 있다.

 

산란散亂, 제멋대로 마음이 흘러가는 번뇌

 

정신 줄을 놓고 대상을 바로 알지 못하면 마음이 제멋대로 흘러가는 것은 자명하다. 여기서 대수번뇌심소의 마지막 심소인 ‘산란散亂(vikṣepa)’이 나온다. 산란은 마음[심왕]으로 하여금 온갖 대상을 쫓아가게 만들고, 마음이 고요히 안주하는 것을 깨뜨리므로 바른 선정[正定]을 방해하고, 결과적으로 ‘나쁜 지혜[惡慧]’를 자라게 하는 심소이다.

 

『성유식론』에 따르면 산란이란 “모든 인식대상에 대하여[於諸所緣] 마음을 방탕하게 흐르게 하는 것이 본성이다[令心流蕩爲性]. 능히 바른 선정을 방해하여[能障正定] 나쁜 지혜의 의지처가 되는 것이 작용이다[惡慧所依爲業].”라고 했다.

 

첫째, 산란의 본성은 마음을 방탕하게 흐르게 하는 것이다. 마음이 차분하게 안정되지 못하면 보고 듣는 인식대상에 자극받게 되고 결과적으로 대상을 따라 마음이 흩어지게 마련이다.

둘째, 산란의 작용은 바른 선정[正定]을 방해하여 나쁜 지혜[惡慧]를 자라나게 하는 것이다. 마음이 굳건하지 못하면 이런저런 대상에 휘둘려 산란해지고, 자연히 선정은 깨지고 그로부터 나쁜 지혜는 자꾸 늘어나게 된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실념은 정신 줄을 놓고 기억해야 할 바를 놓치는 것이고, 부정지는 대상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왜곡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정신 줄을 놓고 왜곡된 정보를 받아들이면 마음은 산란해지고 번뇌로 들끓게 된다. 하늘을 나는 연에는 연줄을 매달고 날뛰는 송아지에게는 고삐를 묶어야 하듯이, 번뇌로 산만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정신 줄을 꼭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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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불교평론>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성철사상연구원 연학실장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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