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
한 마리 물고기처럼 하늘을 나는 기와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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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 2024 년 8 월 [통권 제136호] / / 작성일24-08-05 09:51 / 조회1,147회 / 댓글0건본문
국가무형유산 이근복 번와장
우리의 옛 건축물들은 부드러운 곡선 끝에 보여주는 아늑한 정서를 지닌다. 중국 전통 건축물은 웅장하면서도 절도 있는 용맹스러움을 자랑하는 것과 비교된다. 옛 건축물의 조형미는 지붕의 선이 어떻게 뻗어나가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특히 기와로 만들어진 지붕은 한 장 한 장의 기와들을 쌓아 이어가는 기술과 지역성, 문화적 정서가 함축되어 표현되는 것이다.
찬란하게 헤엄치는 기와지붕을 보았는가?
김홍도의 <풍속화첩> 중에는 기와를 올리는 <기와이기[葺瓦]>라는 작품이 있다. 지붕 위에서 기와를 쌓는 사람, 지붕으로 기와를 올려주는 사람, 기둥을 검사하는 사람, 대패질하는 사람 등 각자 분업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와는 건물의 경관과 치장을 위해 사용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역할은 건물을 굳건하게 유지하게 하는 데 있다. 눈과 빗물의 침수를 막고 이를 잘 흘러내리게 하여 지붕 재목의 부식을 방지할 수 있어야 잘 된 기와 쌓기라고 할 수 있다. 기능성과 예술성 모두를 만족해야 한다.
기와의 종류는 다양하다.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져 토가마에서 구워지는 전통기와, 일반 한옥에서 많이 쓰이고 철가마에서 구워지는 한옥기와, 합성수지 성분으로 만들어지는 플라스틱 기와 등이다. 요즘은 전통기와 보다는 한식기와, 플라스틱 기와가 쓰이는 비중이 많지만, 오래된 문화재급 건축물은 기와의 형태나 크기가 일률적이지 않고 옛 정서 그대로를 재현해야 하기 때문에 전통방식으로 만든 수제기와를 사용하게 된다.
전통기와의 쓰임이 줄어들었지만 기와를 만들고 잇는 기술은 오히려 정확히 유지되어야 우리 건축문화유산을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기에 귀중한 분야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편리하고 내구성이 좋은 쪽, 가격이 저렴한 쪽을 선택하겠지만 전통기와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매력을 알게 된다면 선택에 있어 고민이 깊어질지 모른다.
전통기와는 가마에서 구워지는데, 이때 나무 연소에 의해 생기는 그을림이 기와 표면에 입혀진다. 자연적인 현상이기에 기와색도 가마의 불이나 바람, 당시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입혀지는 자연의 색감이다. 비슷해 보여도 조금씩 각기 다른 빛깔을 가지고 태어나니 기와가 모여 지붕이 되면 태양 빛 아래서는 오묘하게 각기의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기와색은 제작 당시 재료, 제조 방식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완성 후 노출되었을 때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으니 그것이 바로 전통기와가 갖는 입체적인 아름다움이다. 한 개의 기와가 한 개의 비늘이라고 한다면 큰 지붕은 큰 물고기가 되어 하늘을 헤엄치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장엄한가. 큰 고래와 같은 종묘宗廟의 지붕을, 연못 앞에 어여쁘게 자리한 경복궁 향원정香遠亭의 지붕을, 한양도성의 큰 문인 숭례문崇禮門의 지붕을 그리고 우리 사찰들의 수많은 지붕들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근복 국가무형유산 번와장
약 3천 년 전 주나라 때 사용된 기와가 현재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기와를 사용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략 삼국시대부터 본격적으로 기와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는 기와기술이 발달하여 기록에 의하면 ‘와박사瓦博士’라는 장인이 있었고, 이들은 일본에 건너가 기와기술을 전해주기도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태조 원년(1392)에 ‘와서瓦署’를 설치하여 기와를 생산하도록 하였으며, 태종 6년(1406)에는 ‘별와요別瓦窯’에서 기와를 보급하도록 하였다. 별와요에는 와장을 비롯하여 승려도 배치하여 대대적으로 기와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와공의 명칭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기와를 만드는 제와기술자로 ‘와공瓦工’ 또는 ‘와장瓦匠’이라고 하며, 벽돌 만드는 장인이 기와도 함께 만들었기 때문에 ‘와벽장瓦甓匠’이라는 명칭도 사용되었다. 기와를 올리는 장인은 ‘개장蓋匠’이라고 하는데, 이는 제와장인과 구분하기 위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기와를 만드는 것은 ‘번와燔瓦’라고 하고 기와 덮는 일을 ‘번와飜瓦’라고 하기 때문에 기와 덮는 장인을 ‘번와와공飜瓦瓦工’이라 한다. 지금은 기와 만드는 장인을 ‘제와장製瓦匠’, 기와를 잇는 장인은 번와장翻瓦匠이라고 한다.
이근복 장인은 기와를 잇는 국가무형유산 번와장이다. 지붕과 기와에 관한한 국내에서 최고 전문가로 그의 손길을 거친 문화재 건축물이 무려 1,000여 채를 넘는다. 그는 고건축 분야의 대가인 고 기성길 선생으로부터 번와 기술을 전수받았다. 당시 불국사 대웅전, 부석사 무량수전, 경복궁 등 주요 문화재의 지붕은 선생의 손을 통해서 거듭났다. 전문 기술자인 스승으로부터 손의 기술뿐 아니라 기와 잇기에 대한 철학도 배우게 된다. 늘 신중해야 함은 물론 수만 장의 기와를 아무리 잘 놓았어도 마지막에 한 장을 제대로 못 놓으면 허사이니 매사에 꼼꼼하고 진중해야 했다.
완성된 지붕은 멀리서 보아야 잘 보인다는 스승의 말씀이 특별하다. 키 작은 꽃은 가까이 보아야 예쁘다지만, 지붕은 멀리서 자세히 보아야 선과 결의 이음이 완벽한지 살필 수 있다. 건축물의 가장 높은 곳에서 하는 일이라 때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는 수많은 시간을 그 높은 곳 하늘 바로 아래서 보낸다. 지붕이 완전하지 않으면 목재 건물을 오래 지켜내기 어렵다. 지붕이 잘 지어져야 건축물도 그 안의 기물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잘 지켜낼 수 있다고…
전통기와를 오랫동안 다룬 이근복 장인은 시간이 지나고 현대화되면서 기와에 관련해 아쉬운 일들이 늘어간다고 한다.
“감독기관에서는 규격 맞추는 걸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기계로 찍어내 철가마로 굽는 기와는 같은 규격을 맞추는 게 쉽지만 수제로 만들어 장작에 굽는 기와는 그렇지가 않아요. 공간마다
열이 다르게 가기 때문에 수축률도 다르고, 색도 다르게 나오지요. 게다가 현대식 기와보다 10배 정도 가격이 더 나가니 수제기와가 밀려나기 마련이죠. 장작가마라서 색상도 조금씩 다 다르게 나오는데 색이 특이한 것을 빼야 하는 경우도 있죠. 사실 붉은색, 은색, 갈색 다채로운 색의 기와가 이어져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전통 색상이 나는데 거기까지 생각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이 좀 아쉬워요.”
현대 기술이 발전하면서 편리한 부분도 많겠지만 옛 전통이 가지는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잊혀지는 듯하여 씁쓸하다. 이근복 장인은 수많은 지붕을 이어 왔지만 숭례문을 생각할 때 여러 감회를 느끼는 듯 눈빛이 깊어진다.
“직접 지붕과 기와를 보수하고 수시로 들여다보던 숭례문이었지요. 황망한 일이었어요. 그때 화재진압이 끝나고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한참 동안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답니다.”
우리는 2008년 설날의 마지막 연휴 저녁 예상치 못한 화마火魔를 기억할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숭례문이 화염에 휩싸인 것이다. 우리의 국보 1호, 서울 중심의 얼굴이 어이없게도 한 노인의 사적인 불만이 불씨가 되어 불타오른 날, 모든 국민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숭례문 2층 누각에서 시작된 불길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고가차와 굴절차를 동원해 지붕과 처마에 대량 살수撒水를 하였지만 쉽게 진화되지 않았고, 다음 날 새벽 2층 문루가 붕괴되었다. 처참한 순간이었다. 목조 문화재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지붕 위로 뿌려지는 물이 진화에 별 소용이 없다는 알 것이다. 촘촘히 이어진 기와 아래로 비가 새지 않고, 기와가 잘 버티도록 하기 위해 강회다짐을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이근복 번와장은 더욱 안타까웠다. 사고 소식에 택시를 타고 급하게 현장으로 이동했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숭례문을 바라보며 그의 속은 더욱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줄이 꺾여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부분의 소방호수를 이리저리 쫓으며 펴는 일에 묵묵히 손길을 더했을 뿐이었다. 국민들은 우리 역사를 품고 있는 숭례문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애도했다. 이후 문화재청은 전통 건축기법에 능통한 장인과 전문가를 초빙해 숭례문 복원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고, 이근복 장인은 숭례문 기와 복원을 담당하게 된다. 다시 그의 손을 통해 복원된 숭례문의 지붕은 오늘도 반짝이며 서울 도심속에서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다.
현재 이근복 장인은 국가무형문화재기·예능협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 국내외 활동을 통해 대중들에게 우리 국가무형문화재, 즉 인간문화재에 대해 널리 알리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무형유산 전승에 힘 쏟을 것이라고 한다. 이제 사찰의 대웅전을 마주한다면 멀리 떨어진 걸음에서 지붕을 먼저 보게 될 것 같다. 부처님의 공간을 그리고 우리내 일상을 덤덤하게 지켜주고 있어서 고맙다는 인사말과 함께.
※ 그동안 <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를 읽어주시고 아껴주신 애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집필을 통해 우리 불교문화의 소중함과 그것을 이루어 주시는 장인 선생님들의 삶과 진정성, 수행의 마음을 바라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아름다운 불교문화의 맥이 잘 이어져 나가길 바라며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인사드립니다. 항상 불보살님의 가피가 충만하시길 합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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