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다도]
색色 향香 미味 한마음 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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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룡 / 2021 년 8 월 [통권 제100호] / / 작성일21-08-04 15:13 / 조회4,720회 / 댓글0건본문
한국의 茶道 8. 지운 스님 3
지난 호부터 차 수행에 대해 지운 스님의 저서 『찻잔 속에 달이 뜨네』를 교재(주1)로 하여 배운 내용과 스님께서 한국차학회에서 특별 강연(주2)한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한마음 차선
한마음이란 현상계와 본질계의 경계가 본래 없는 것을 알고, 너와 나의 경계가 사라져 주객이 본래 하나임을 아는 마음이다. 차의 색향미를 통해 이러한 한마음이 이루어지기에 이런 차를 ‘한마음차’ 혹은 ‘색향미 한마음차’라 한다. 여기에 차공양까지 더하면 ‘색향미 한마음 공양차’가 된다.
사진 1. 자비선사 차선실 현판.
명상瞑想은 ‘그윽이 생각하다’라는 뜻으로, 영상映像을 떠올려 마음상태를 그 영상의 내용과 같게 하여 마음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 반면 선禪은 말과 생각을 떠나는 것으로, 미세한 영상이나 생각을 용납하지 않는다. 여기서의 색향미 한마음차나 공양차는 먼저 명상冥想을 통하여 마음을 정화시킨 후, 말과 생각을 떠나는 선禪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이른다.
빛깔[色]은 탐욕, 향기는 성냄, 맛은 어리석음과 관계가 있다. 색향미 한마음 차선은 탐욕을 남을 도와주는 마음으로 바꾼다. 또한 남을 해치는 성내는 기운을 한없는 자비심으로 변하게 하는데, 차향기의 미묘함을 명상함으로써 이에 이를 수 있다.
어리석음은 ‘차맛’이 변해가는 순간순간을 알아차려 고정관념을 타파함으로써 극복되는데, 이렇게 하여 차맛에 대한 무지를 지혜로 전환한다. 이 지혜가 또한 차맛이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임을 알게 하여 차맛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無常], 독립된 실체가 없으며[空], 맛을 조절하는 주체가 없음[無我]을 알게 한다. 무상無常, 무아無我, 공空을 자각하기 시작하면 차맛에 대한 무지가 온전히 타파된다. 나아가 확고부동하다고 생각되는 몸과 대상에 대한 무지도 버리게 된다. 왜냐하면 무상, 무아, 공은 차맛에만 한정되는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색色 한마음 차선茶禪
한 잔의 차를 마시기 전에 먼저 찻잔 속의 찻물의 색깔을 주시한다. 차의 색을 연녹이라고 확언하기 어렵지만, 차의 빛깔은 맑고 투명하다. 미묘한 색, 맑고 투명한 그 빛깔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이 맑고 투명하다고 명상한다. 그리고 그 빛깔을 다음과 같이 무한히 확대하고 나서 다시 축소한다.
사진 2-1. 차선을 강의 중인 지운 스님.
1) 찻잔은 자기의 몸이요, 찻물의 맑고 투명함은 자신의 마음임을 명상한다.
2) 작은 연못을 연상하며 연못은 자기의 몸이며 연못의 맑고 투명함은 자신의 마음임을 명상한다.
3) 바람 한 점 없는 맑고 투명한 잔잔한 호수를 연상하여 마음이 그와 같음을 명상한다.
4) 맑고 투명한 바다를 연상하여 마음이 그와 같음을 명상한다.
5) 나아가 동서남북 상하가 텅 비어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는 하늘을 연상하여 마음도 그와 같음을 명상한다.
6) 그렇게 하면 맑고 투명한 마음이 무한히 확대되면서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맑고 투명해진다.
7) 다음으로 하늘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호수로, 호수에서 연못으로, 연못에서 찻잔 속의 차의 맑고 투명한 상태로 되돌아온다.
이렇게 명상을 계속해 나가면 무한히 확장되고 축소되는 본인의 마음 작용을 쉽게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마음의 본성인 맑고 투명함이 무한해짐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바늘구멍 같이 좁은 자신의 마음이 무한히 확장되어 무엇이든지 자기 것으로 하려는 탐욕이 사라진다. 큰일을 당해도 대범해지며 시야가 한없이 넓어지기 때문에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으며 상대방에 대해서도 관대해진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어려운 남을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향香 한마음 차선
맑고 향기로운 차 향기를 자신의 마음에 대입하여 명상하는 것이 ‘향 한마음 차선’이다. 마음의 향기는 더러운 몸의 냄새와 정신적 냄새를 지워 준다. 우선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다음과 같이 명상 해 간다.
사진 2-2. 차선 강의 뒤의 기념 촬영. 가사를 수垂한 분이 지운 스님.
1) 찻잔이 코에 가까이 오면서 차향기를 감지하고, 혀끝에서 차맛과 함께 향기를 느껴 코와 입안에 맑고 향기로운 차향이 가득함을 연상한다.
2) 맑고 향기로운 차가 목구멍으로 넘어가서 온몸 안의 세포 하나하나에 차향기가 스며들어 가득함을 명상한다.
3) 온몸에 가득한 맑은 차향이 땀구멍을 통해 일시에 온몸 밖으로 투과되어 나감을 연상한다.
4) 투과되어 나간 맑은 차향기가 어머니가 아기를 감싸듯 온몸을 감싸 안음을 연상한다.
5) 맑고 향기로운 차향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맑지 못한 모든 탁한 냄새를 제거하고 정화한다고 명상한다. 그리고 정신적 냄새로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인한 더럽고 탁한 기운, 물건을 태우는 기운, 무지의 기운, 이기심으로 인한 차고 냉한 기운 등을 맑고 향기로운 차향으로 정화한다고 명상한다.
6) 나아가 몸 안의 차향기가 충만한 채로 그 차향기가 방안을 가득 차오름을 명상한다.
7) 맑고 향기로운 차향은 내가 사는 집을 에워싸고 나서 마을 전체로 퍼져나가 온 동네의 나쁜 냄새를 없애고 향기로 가득 채우는 것을 명상한다.
8) 온 동네로 퍼져나간 향기는 이어서 동, 면, 군, 시, 도, 대한민국, 아시아 나아가 지구 전체로 차향기의 맑고 향기로움이 모래에 물이 스며들 듯 가득 차오름을 명상한다.
9) 향기는 지구에서 온 우주로 확대하여 전 우주와 모든 물질과 생명을 정화한다고 명상한다.
10) 온 우주에 가득한 향기를 확대된 역순으로 거두어 들여 지구, 방안, 몸의 차향기가 찻잔의 차향기로 되돌아온다.
‘향 한마음 차선’의 명상은 성냄으로 인해 몸의 기맥이 막혀 오는 갖가지 증상을 해소해 주어, 몸은 새털같이 가벼워지고 마음도 번뇌의 무거움에서 벗어나 아주 가벼워진다. 나아가 남의 잘못을 사랑으로 용서해 줄 수 있는 아량이 생긴다.
맛 한마음 차선
‘맛 한마음 차선’은 느껴지는 맛의 변화를 잘 주시하는 것이다. 맛의 생성소멸의 변화를 잘 관찰하면 맛은 차물, 혀, 마음 이 삼자가 조건에 의해 생성되고 소멸된다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다.
사진 3. 맛은 차 혀 마음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
먼저 모든 강물이 흘러 바다에 이르면 모두 똑같이 한 맛이 됨을 명상한다. 그리고는 명상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선禪으로 들어간다. 다시 말해 차 맛의 변화를 처음과 중간과 끝을 관찰하고, 차 맛이 생기는 순간순간이 차 맛이 사라지는 순간임을 보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정신적 물질적 현상이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음을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차 맛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기에 무상無常하며, 독립된 실체가 없기에 공空이며, 자아自我라고 할 만한 것이 없기에 무아無我인 것을 자각한다.
사진 4. 차 빛깔.
차 맛에는 고유한 어떠한 실체도 없음을 아는 것, 즉 무미無味의 맛을 체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님께서 강조하신 것은 처음의 차 맛이 변하여 맹물 맛이 될 때, 그 맹물 맛을 무미의 맛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순간순간 변화는 차 맛 속에 차 맛의 실체가 없는 무미의 맛을 알아차려야 한다. 이렇게 무미의 한 맛을 바다의 한 맛과 같음을 연상하면서, 생각과 몸의 현상과 밖의 모든 형상들이 무미의 맛처럼 무실체임을 꿰뚫어 보고 아는 것이 스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요체要諦이다.
사진 5. 차 향.
또한 무미의 한 맛을 분명하게 체험했을 때 또 다른 한 맛을 만나는 경계에 도장 찍듯이 해보면 모두 무미의 한 맛으로 변하니 무미의 맛 하나로 관통하는 ‘일미차一味茶’가 된다. 즉, 모든 사물과 그에 상대하여 일어나는 정신작용이 마치 인드라망(주3)의 그물처럼 상호의존하고 있음이 확연해지고 동시에 평등해진 하나의 맛으로 관통됨을 체험하게 된다.
사진 6. 차 맛
‘맛 한마음 차선’의 효과는 모든 존재는 독립되어 있으며 변화없이 고정되어 있다는 어리석음[無知], 즉 고정관념의 타파에 있다. 무미의 한 가지 맛이 무지의 마음을 지혜의 마음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색·향·미 한마음 차는 차의 성품을 빌려 진흙에서 피는 연꽃처럼 번뇌에 물든 마음을 깨끗이 정화하고 어두운 마음을 환하게 깨어나게 한다. 그래서 색·향·미의 한마음 차선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지운 스님의 시 한편을 감상해 보자.
색 향 미 한마음 차
맑고 투명한 미묘 빛깔로
좁고 두텁게 쌓인 마음 벽 허물어
허공처럼 투명하고 빈 마음의 본성 열고
미묘한 차향으로
얼룩지고 냄새나는 몸과 마음 정화하니
시방세계가 법향法香으로 가득차고
차 맛 미묘 변화
일어나도 일어남 없고
사라져도 사라짐 없어
무미의 맛 체득하니
일체 차별경계 만날지라도
무미無味의 법미法味로
차별번뇌 관통하여
너 나 경계 사라지고
안과 밖 무너져
연꽃망울 터지듯
한 마음경계가 깨어 나네
주)
(주1) 지운, 『찻잔 속에 달이 뜨네』 도서출판 법공양(2000. 4).
(주2) 지운, 한국차학회 1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 ‘몸과 마음을 깨우는 차선茶禪’ 특별 강연 자료(2004. 10. 22).
(주3) 인드라망Indra網은 제석천의 궁전에 무구한 구슬로 만들어진 그물을 말하며, 그 그물은 한없이 넓고 이음새마다 구슬이 있는데 그 구슬들은 서로를 비출 뿐만 아니라, 그물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세상이 스스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서로가 연결되어져 있으며 서로 비추고 비추는 밀접한 관계 속에 있는 것에 비유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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