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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사형 원융 스님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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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9 년 4 월 [통권 제72호]  /     /  작성일20-06-19 14:03  /   조회7,118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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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 스님 : 발행인


벌써 세월이 그렇게 훌쩍 지나갔나 봅니다. 소납이 출가한 세월 말입니다. 입문을 위해 백련암 ‘영자당影子堂’에서 7일 동안 새벽·오전·오후에 각 1000배씩 해야 하는 기도는 법열이 아닌 고통으로,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 힘든 시련 끝에 소납은 1972년 1월, 음력 섣달 보름에 백련암으로 출가하여 삭발하였습니다. 9월엔가 큰 절에 있던 말쑥한 행자가 큰스님 시자 하러 백련암으로 올라오게 되었다면서, 원주 스님이 소개 해주었습니다. 소납은 7월 달인가 사미계를 받고 행자 시절을 졸업했는데, 방금 온 행자님은 아직 사미계를 받기 전이었는데, 얼마 안 있어 사미계를 수지하고, 앉는 순서는 소납이 먼저 앉고 올라온 스님은 ‘원융’이라는 불명을 큰스님께서 주셔서 소납 다음 좌석에 앉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6년이나 세수가 많았으나, 백련암에는 제가 먼저 출가했다는 이유로 사형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당시 절에서는 과거에 대해 묻지도 않았고, 굳이 자기 이력을 밝혀야 할 의무가 없어 얼굴만 알고 지냈지, 서로의 경력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중앙의 성철 스님을 중심으로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원융 스님, 원영 스님, 원택 스님이 경행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새로 온 원융 스님은 매사에 빈틈이 없고 모든 일에 열심이었으며 하루 24시간을 큰스님을 본받는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듯 했습니다. 몇 개월 지나 ‘큰스님께서 깨치신 후 10여 년 용맹정진의 세월을 가지셨다’는 말씀을 원융 스님이 듣고는, 사미 신분으로 용맹정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저들과 같은 방에서 생활하며 저녁 9시 취침시간에 우리는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면, 원융 스님은 혼자서 좌복 위에 가부좌하며 날 밤을 새며 참선공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소납들은 원융 스님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멀리서 큰스님이 나타나시기라도 하면 우리들은 무슨 큰 죄나 짓고 사는 곰 새끼처럼 움츠러들었습니다.

1974년 3월에 범어사로 비구계인 구족계를 받으러 갈 때, 큰스님께서 “부처님 계율 법에는 비구계는 그 절의 출가 순이 아니라 나이 순으로 자리가 정해지는 것이니, 원융이가 원택이 보다 6년이 위이니까, 비구계를 받으면 원융이가 사형이고 원택이는 사제가 되는 것이니 명심해라.”고 다짐을 주셨습니다. 그러다 1975년 하안거 때 원융 스님은 큰절 선방으로 자리를 옮기고 평생 선방을 떠나지 않으시다 지난 3월3일 세수 82세, 법납 48세로 세연을 마치셨습니다. “원융 스님은 1938년 9월27일 전남 고흥군 풍양면 율치리 사동에서 태어나, 광주제일고와 성균관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 조달청에 근무하다, 청담 큰스님의 『신심명』의 법문을 듣고 문득 발심하여, 1972년 35세 가을에 해인사로 출가하여 성철 스님을 은사로 모셨다.”는 소개를 듣고서야 비로소 이력을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원융 스님은 평생을 해인총림 퇴설당을 거점삼아 12년 동안 장좌불와의 용맹정진을 마다하지 않았고, 해인총림 선원장과 유나를 역임하였고, 2006년부터 오늘까지 해인총림 2인자격인 수좌 직책으로 후학을 제접해 오셨습니다. 오로지 평생 선수행자의 삶을 살았던 사형이 홀연히 떠나시니, 그 섭섭함과 이런 저런 인연이야기를 짧은 글과 말로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의지하였던 사형이 이렇게 홀홀히 떠나니 소납이 더욱 허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속히 수의생사 하시어 저희들을 지도하여 주십시오!”라는 생각이 더욱 더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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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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