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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불교 ] 생명의 진화와 무자성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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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진  /  2020 년 6 월 [통권 제86호]  /     /  작성일20-06-22 15:48  /   조회8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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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진: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뉴턴의 동력학 이론과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해 고전역학이 완성되면서, 근대물리학은 지상과 천상의 모든 물체의 운동을 거의 완벽하게 설명했다. 달은 모습을 바꿔 가면서 지구 주위를 공전하고, 지구는 계절을 바꿔 가면서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이런 달과 지구의 공전운동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공전을 가능하게 하는 힘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고전역학은 환상적으로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밀물과 썰물이 하루에 두 번 일어나는 이유를 비롯하여(주1) 지상에서 일어나는 물체의 운동에 대해서도 뉴턴 역학은 거의 완벽하게 모든 것을 설명했다.

 

물질세계와 생명세계의 변화

 

물질세계와 달리 생명세계가 어떻게 변하는 지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은 거의 두 세기가 지난 후에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고 나서야 가능해졌다. 물질세계에서도 달의 모습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는 등 변화가 있지만, 이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는 반복적인 것이다. 이와 달리 다윈 이후의 진화생물학이 제시하는 생명세계에서는 이전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 변화, 반복적이지 않은 변화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이로써 인류는 우리의 세계가 영원한 형상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게 됐다. 이는 이전의 세계관과 전혀 다른 아주 충격적인 것이어서, 이에 대한 완강하고 조직적인 저항이 있었고 일부 집단에서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진화의 증거

 

생명이 진화한다는 증거는 아주 다양하다. 우선 해부학적인 증거를 들 수 있다. 생김새가 다른 포유류라 하더라도 그들의 두개골을 이루는 뼈의 수나 구조, 기능 등은 모두 같다. 일례로, 기린과 사람과 고래의 목뼈는 길이는 아주 다르지만 그 수는 모두 7개로 같다. 또한 새의 날개, 육상 포유류의 앞발, 고래의 앞 지느러미 등도 현재의 모습이나 기능은 서로 다르지만 그 기본 구조는 모두 같다. 이는 그들이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하면서 자신의 신체 구조를 조금씩 바꿔 왔지만 모두 같은 조상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서로 다른 시대의 지층에서 발견되는 과거 생물의 화석은 진화의 고생물학적 증거가 된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삼엽충이나 암모나이트, 공룡 등의 화석이 나온다는 것은 생명종이 변화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층 연대별로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의 순서대로 척추동물의 화석이 발견되는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오래된 지층에서는 하등 동물의 화석만 나오지만 새로운 지층으로 가면서 고등 동물의 화석이 함께 나오는 것도 진화의 고생물학적 증거가 된다. 현존하는 생물들의 중간종이면서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시조새와 같은 생명체의 화석, 코끼리의 코가 길게 변하는 진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화석, 말의 발이 진화하면서 현재와 같이 하나의 발가락만 남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 화석 등은 생명 진화의 역사를 보여주는 예다.

 

오늘날 가장 결정적인 진화의 증거는 분자생물학이 제공한다. 동물과 식물처럼 전혀 다르게 보이는 생명체라 하더라도 유전자의 생화학적 구조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며, 분자 수준에서 관찰할 때 비슷한 생물종은 DNA의 염기 배열이나 단백질의 아미노산 배열이 비슷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에 근거해서 어떤 계통을 따라 진화의 역사가 전개됐는지를 분자 수준에서 추적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척추동물의 헤모글로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분자 하나가 다른 것으로 치환되는 데에는 약 600만년이 필요하다고 추정된다. 이런 계산은 산소 호흡을 하는 동물의 전자전달계인 씨토크롬C 에서도 가능하다. 이에 근거하여 추정해보면, 사람과 말의 공통 조상은 약 1억 년 전에, 포유류와 다랑어의 공통 조상은 4억 년 전에, 척추동물과 효모의 공통의 조상은 20억 년 전에 존재했다. 

 

생명의 탄생과 그 흔적

 

지구 위에서 최초의 생명이 태어났던 상황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는 없지만, 원시 지구의 대기라고 추정되는 기체에 강력한 에너지를 투입되어 원시 대기 속의 무기물이 유기물로 합성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Oparin 등의 가설은 Miller의 실험 이후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확인됐다. 이는 어떤 상황이 조성되면 생명체의 참여 없이도 생명의 기본이 되는 물질이 생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형성된 유기물이 원시 대양에서 농축되면서 간단한 유기물과 고분자 화합물 등의 생명물질이 형성됐으리라고 추측되며, 이를 바탕으로 막을 가지고 있으며 생장, 증식, 촉매작용을 하는 원시적인 자기복제체계를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여러 가지 실험으로 확인했다. 이는 무기물로부터 생명의 원형이 탄생할 가능성을 말해준다. 지구에서 최초의 생명체가 출현했다면, 아마도 이런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원시 지구의 대기에는 산소가 없었으므로 대기권 상층부의 오존층도 없었다. 이에 따라 태양에서 오는 강력한 자외선이 여과되지 않고 지상에 도달했으므로, 생명체는 지상에서 살 수 없었다. 그러므로 최초의 생명체는 강력한 자외선이 걸러지는 바닷물 속에서 생겨났을 것이다. 선캄브리아기 퇴적층에서 발견되는 화석을 통해 지구상에 최초의 생명체가 나타났던 시기는 38억 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지구상에 나타났던 초기 미생물의 하나인 남세균cyanobacteria이 퇴적돼서 층상의 줄무늬 모양으로 퇴적된 화석을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라고 하는데, 이는 호주 서부 샤크만 해안을 비롯하여 지구 곳곳에서 발견된다.

 

지구 생명의 역사

 

생명의 역사는 원시 남조류가 지배하는 단계에서 20억년 가까운 오랜 기간 동안 머물러 있었다. 그 후 지속적으로 도약을 계속하면서 개체수가 번성하고 종이 다양하게 되었다. 원생동물이 약 16억 년 전에, 해면동물은 약 9억 년 전에, 해파리는 약 7억 년 전에 나타났다. 이후 캄브리아기의 대 폭발이란 도약을 거치면서 5억5천만 년 전에 무척추동물이 나타나고, 그 후 해면동물이나 연체동물들이 번성하게 되었다. 4억3천만 년 전에 최초의 육상식물이 나타나며, 4억 년 전의 바다에서 최초의 척추동물인 어류가 나타난다. 

 

원시 노래기가 3억9천만 년 전에 육지에서 처음으로 활동했으며, 어류의 후손이 3억5천만 년 전에 육지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양서류의 시조는 3억8천만 년 전에 나타났고, 3억3천만 년 전에 육지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파충류는 3억5천만 년 전에 처음으로 나타났고, 공룡은 2억2천만 년 전에 나타나 1억5천만 년 전을 정점으로 전성기를 누리다가 7천만 년 전에 멸종했다. 조류는 1억4천만 년 전에 나타나며, 꽃식물이 번성한 것은 1억2천만 년 전이다.

포유류는 2억 년 전에 나타나, 공룡의 시대가 끝난 6천만 년 전 이후 번성했으며 이 시기에 영장류가 등장한다. 인류의 조상으로서 가장 오래된 라마피테쿠스의 화석은 1,200만 년 전 지층에서 발견되며,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하빌리스는 350만 년 전에 나타났다.

 

진화와 무상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종의 수는 대략 150만 종으로 추정되며, 많아야 400만 종이 안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언젠가 지구에서 살았던 생명종의 수는 적어도 40억 종이라고 추정한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볼 수 있는 생명종의 수는 생명의 역사에서 언젠가 존재했던 생명종의 수에 천분의 일도 안 된다는 것이다. 공룡이나 삼엽충, 암모나이트만 사라진 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생명종이 사라졌다는 것이며, 이는 생명 세계가 끊임없이 변화해 간다는 것을 말한다. 생명 진화의 역사는 개개의 생명체가 나고 죽는 것과 같이 생명종도 나타났다가 사라지면서 변화하는 무상無常함을 보여준다.

 

무자성無自性 공空

 

생명세계는 왜 무상이어야 하는가?(주2) 개개의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모두 인연이 화합하면 나타났다가 인연이 흩어지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생명세계는 왜 인연의 화합으로 나타나고 인연의 흩어짐으로 사라져야 하는가, 왜 인연에 따라 나타나고 사라질 수밖에 없는가? 그들은 그 자신이 스스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책상 앞에서 원고 마감 시간을 넘겨 가면서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존재다. 왜 그런가? 나는 음식을 먹어야 하고, 물을 마셔야 하고, 숨을 쉬어야하기 때문이다. 나는 음식과 물과 공기라는 조건, 즉 연緣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존재다. 그래서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

이렇게 나는 연緣에 의존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의 내가 존재한다고 해서 다음 순간에도 나의 존재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나뿐만 아니라, 일체의 모든 존재가 예외 없이 다 그렇다. 개개의 생명체 모두가 그렇고, 생명종 모두가 또한 그렇다. 연緣이 바뀌면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생명체나 생명종이 다음 순간 사라질 수 있다.

 

스스로 존재함을 자성(自性, svabhava, self-being)이라고 한다.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은 연緣과 상관없이 존재한다는 것이어서, 연緣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으므로 연緣의 흩어짐도 없다. 연緣의 흩어짐이 없으므로 자성을 가진 존재자는 그 스스로 영원히 존재할 수 있으며 자신의 본질을 변함없이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존재자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일체가 무자성無自性이다. 생명체나 생명종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무상無常한 생명세계에서 무자성無自性이 가장 확연하게 드러난다. 이 무자성無自性의 무상無常을 과학에서는 진화라고 한다. 생명세계가 그대로 연기緣起다.

 

『능엄경』에서는 “모든 것(오음五陰, 육입六入, 십이처十二處, 십팔계十八界)이 인연이 화합하면 허망하게 생겨나고, 인연이 별리別離하면 허망하게 멸한다.”고 하셨다. 의상 스님은 “참된 성품은 아주 깊고 지극히 미묘하니, 자성自性을 지키지 않고 연緣을 따라 이루어진다.”고 하셨다. 연緣을 따르지 않는 자성自性의 세계라면 깊고 미묘한 무엇이 어디 있겠는가. 『능엄경』에서는 “환망幻妄을 상相이라 하거니와, 그 성性은 참으로 모객妙覺의 밝은 본체”라고 하셨다. 참된 성품을 이르심이다.

 

주1) 바닷물을 끌어당기는 달의 인력에 의해 밀물과 썰물이 생긴다면, 지구는 하루에 한 번 자전하므로 밀물과 썰물은 하루에 한 번 생겨야 한다. 달이 머리 위에 왔을 때 밀물이 생기고, 그로부터 대략 12시간이 지난 다음에 썰물이 생겨야 한다. 그런데 인천 앞바다의 밀물과 썰물은 하루에 두 번씩 생긴다. 뉴턴의 고전역학은 그 이유를 완벽하게 설명한다.

주2) 생명세계만 무상인 것은 아니다. 일체가 무상이어서 제행무상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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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진
고려대학교 과학기술대학 물리학과 교수. 연구 분야는 양자정보이론. (사)한국불교발전연구원장. <산하대지가 참 빛이다 (과학으로 보는 불교의 중심사상)>, <양형진의 과학으로 세상보기>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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