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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과 함께 하는 인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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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자  /  2019 년 9 월 [통권 제77호]  /     /  작성일20-06-27 17:30  /   조회56,00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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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자 | 불교전문 작가 

 

내 친구 J는 고교동창 모임 여섯 명 가운데 가장 활달하고 마음도 넉넉하기 이를 데 없다. 어려워 보이는 일도 수월하게 뚝딱 해내고 생색을 내는 법이란 없다. 몇 해 전 친구들 여섯 명이 스위스 자유 여행을 2주 정도 했는데, 앞장서서 모든 일을 리드했다. 음식점을 찾아내고 길을 찾는 것은 모두 그녀의 몫이었는데, 웬만하면 우리에게 맡길 다른 일도 알아서 다했다. 물론 얼굴 한번 찡그리는 법이 없었다. 나이 들수록 참 멋있게 늙어간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친구다.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시댁식구들과 형제자매처럼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이다. 둘째 아들과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에 유학 가 있는 큰아들을 대신해 10여 년 동안 큰며느리 노릇을 해냈다. 시부모님 두 분 모두 편찮으셔서 고생을 하셨는데, 생활비를 대고 자주 찾아뵙는 일은 당연했고, 시누이들이 대학을 다니는 데도 힘을 보탰다. 가끔은 힘들다면서 툴툴대기도 했지만, 그런 모습은 아주 드물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형제자매들 사이가 다 좋고 특히 친구의 시집식구들에 대한 마음이 여전히 좋아 보인다. 자주 만나고 아들 둘이 돌아가면서 집안 제사를 지내자고 제안한 것도 친구다. 어쨌든 그녀를 보면서 사람은 저 정도 마음 그릇은 가져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음을 곱게 쓰니 자식들도 머리가 뛰어나고 인성도 좋다. 결혼하고 남편이 하와이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바람에 애들 둘을 6년 동안 그곳에서 키웠다. 초등학생이던 큰딸은 머리가 명석해서 모든 면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중고등학교를 여기서 마친 다음 다시 미국으로 가 대학을 마쳤다. 모두가 선망하는 대학에서 예술과 과학을 접목한 학문을 공부했다. 아들도 물론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지금은 유수의 회사에 다니고 있다.

 

마음 넓은 친구의 고민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나와 직장에 다니던 딸이 같은 직장에서 만난 프랑스 남자와 교제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매사 긍정적이고 포용력이 넓던 친구는 펄쩍 뛰며 반대했다. 딸이 자기애가 강한 애라서 문화가 다른 외국인과 잘 살 수 있을지 의문이고, 익숙한 미국인도 아니고 유럽 남자라서 안 되고 등등 반대하는 이유가 많았다. 그러나 젊은 자식들의 사랑 앞에 부모의 반대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친구의 딸은 3년 넘게 지속해온 사랑으로 증명했다. 워낙 개성 있고 똑똑한 딸이라는 걸 아니까 더 이상 반대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프랑스에서 남자 친구의 부모님이 와서 만나봤는데 얼마나 인품이 좋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이던지 마음에 쏘옥 들었던 모양이다. 반대하던 마음이 자연스레 사라지고, 이젠 ‘그래 언제 결혼할 거니’ 하는 물음으로 바뀌었다. 서른이 훌쩍 넘은 딸은 이번에도 개성 있게 반응했다. 

“꼭 결혼이란 걸 해야 하나? 그리고 그 친구도 결혼할 생각이 없대.”

 

프랑스에서는 결혼이라는 형식을 우리처럼 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걸 알기는 했지만 현실의 내 일로 부딪치니 친구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헤어지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기회가 찾아왔다. 딸이 미국으로 다시 박사과정을 하러 가게 된 것이다. 자국민도 받기 어렵다는 장학금을 받아 가게 된 마당이니,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으로 유학을 간 딸은 여기 한국에 있는 프랑스 연인과 하루에 한 시간씩 화상통화를 하며 엄마인 친구의 전화는 바쁘다며 받지를 못했다.

 

그 말을 듣고 헤어지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다른 친구들도 했던 이번 여름, 드디어 모임에 나온 친구가 ‘내년에 결혼하기로 했다’는 발표를 했다. 결혼이라는 형식 자체를 싫어했던 프랑스 사위가 어떻게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은 걸까? 들어보니 순전히 친구의 넉넉한 마음 씀 덕분이 아닌가 싶다. 서울 시내 대학의 외국인 교수로 있게 된 딸의 남친이 집을 얻는데 친구가 발을 벗고 나서서 여기 저기 발품을 팔아 원하는 집을 얻어주었는데, 그 마음 씀에 감동을 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가 그렇게 말하자 친구도 부인하지 않는 걸 보니, 무심하게 쏟는 인정이라는 게 만국의 공통 언어가 아닐까 싶다. 결국 사람 좋은 친구의 덕성이 통한 것이다. 결혼하기로 결심한 사위 감이 프랑스에 있는 부모에게 결혼하겠다고 메일을 보내자 그 어머니가 이렇게 답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여자 친구는 미국에 있고 너는 한국에 있는데 결혼이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

 

친구는 결혼한 아들이 아내와 따로 떨어져 지내는 것을 원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며 그분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다음이 감동적이더라고.”

바로 다음날 그 어머니가 다시 아들에게 이렇게 메일을 보내왔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결혼인데 얼마나 네가 심사숙고해서 결정한 일이겠니? 그럼에도 어제 엄마가 내 입장에서 반대하는 마음을 보인 것은 잘못된 일이다. 네가 결정한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외국인 여성과 결혼하는 것 자체도 수용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공부하겠다고 따로 떨어져 있겠다는 며느리를 얻고 싶겠어? 그런데도 아들의 결정을 절대적으로 신뢰해주며 축하해주는 입장을 보인 것은 정말 감동적이더라.” 

그 말을 전해 들으면서 나도 정말 감동했다. 자식의 인생을 독립적으로 바라보고 어떤 결정도 수용할 줄 아는 부모가 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자식의 인생에 끼어들기만 하지 않으면 자식들은 알아서 제 길을 잘 간다. 그런데 그들이 운전하는 길에 부모가 끼어들기를 하는 게 문제다. 끼어들기는 사고만 유발할 뿐이다.”

어느 스님에게 들은 말인데, 백번 옳은 말씀이지만 우리 부모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끼어들기를 하며 사는가.

내년 5월쯤에 프랑스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는 친구의 말에 우리들 모두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그런데 너, 아들 결혼 숙제는 이번 일로 저절로 풀리겠네?”

 

그 사연은 또 이렇다. 이번에는 친구의 아들이 외국인과 교제를 시작한 것이다. 몇 달 전 어느 날, 모임에서 친구는 아들이 인도네시아 아가씨와 사귀고 있다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하소연했다. 이번에도 친구는 딸 때와 마찬가지로 아들이 외국인과 결혼하면 나타날 수 있는 부정적인 양상을 이야기했다. 아들이 사귀는 아가씨는 인도네시아와 한국을 오가면서 일하고 있는 능력 있는 직장 여성으로, 마음이 잘 통해서 아들이 좋다고 했다는데, 이번에는 남편까지 속상해하면서 반대하는 모양이다.

 

자식의 인생은 그들에게 맡기자

 

“딸은 워낙 개성이 강하니까 수용을 했는데 아들은 다른 나라 여성과 결혼할 거라곤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거든.”

수심에 가득한 친구에게 내가 말했다. 

“우리가 네 사위 될 사람 어머니 태도를 본받아야하지 않을까? 그들 자신의 인생 문제인데 자식을 믿고 맡겨야 할 것 같아.”

내 말에 옆에 있던 친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도 조금 시간을 두고 봐야 되지 않을까? 기왕이면 여기 우리나라 아가씨와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친구의 아들이 그 인도네시아 아가씨와 결혼을 하게 될지, 다른 사람과 할지 사람의 내일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속 깊은 친구는 아마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할 뿐, 결국 아들의 사랑을 수용하게 될 것이다. 부모는 다 그런 존재니까.

 

주변을 보면 자식의 결혼을 좌지우지하며 끼어드는 사람이 간혹 있다. 부모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결혼일수록 생기 없는 결혼생활이 되기 싶다. 가능하면 자기가 결정하고 자기 힘으로 살도록 응원해주는 것이 부모로서 현명한 처사가 아닐까 싶다. 인생에 정답은 없으니까, 그리고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그들이니까. 그리고 그들은 순수 불성의 에너지를 가진 존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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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자

불교 전문 작가.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중국 문학을 전공했고, 동국대학교 역경위원을 역임했다. 108배를 통해 내면이 정화되고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하면서 108배 예찬론자가 되었다. ‘불교입문에서 성불까지’를 지향하는 인터넷 도량 금강카페(cafe.daum.net/vajra) 운영자로 활동하며 도반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1박2일 정진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인홍 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길 찾아 길 떠나다』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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