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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 오래된 미래]
<구사론>의 삼삼매(三三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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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스님  /  2018 년 3 월 [통권 제59호]  /     /  작성일20-07-01 10:21  /   조회7,35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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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명법 스님(구미 화엄탑사 주지)

 

세 가지 삼매, 즉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 삼매에 대한 논의는 대승불교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으나 매우 이른 시기의 경전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증일아함경』 제16권에는 세계를 실체화하고 차별화하여 소유하는 우리의 본성을 깨닫게 하는 선정수행으로 제시되어 있다.

 

공·무상·무원의 세 가지 삼매가 있으니, 공삼매는 모든 법을 모두 공허한 것이라고 살피는 것이며, 무상삼매는 모든 법에 대하여 어떤 상념(想念)도 없으며, 또한 [상이 없어] 볼 수도 없다고 살피는 것이며, 무원삼매는 모든 법에 대하여 원하지도 희구하지 않고 살피는 것이다.

 

 


 

 

이 삼삼매는 법을 실체로 보는 관념과 그에 따라 발생하는 집착과 소유욕을 해체시키는 것이다. 공삼매는 아(我)와 아소(我所)가 공하다고 보는 것이며, 공하기 때문에 차별상이 없다고 보는 것이 무상삼매이다. 그리고 차별상이 없기 때문에 원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보는 것이 무원삼매이다.

 

삼삼매에 대한 논의는 아비달마 교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초기불교의 선정법인 사선정(四禪定) 외에도 삼삼매를 중요하게 다룬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 연재에서 살펴보았듯이 사선정은 심(尋)과 사(司)라는 마음의 작용을 검토하고 검사하는 미세한 의식 활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선정의 상태에서도 마음은 하나의 상태로 유지되지 못하고 서로 다른 상태로 경험된다. 이 차이가 선정의 단계를 만드는데, 궁극적으로 제4선에서 심과 사의 활동이 멈추지만 선정의 과정에서 심일경성(心一境性)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이는 이미 살펴보았듯이 사마타와 비파사나의 반복적 수행이 필요한 이유였다.

 

바로 여기서 “선정이 과연 해탈을 가능케 할 수 있느냐”는 질문과 “선정이 지혜를 산출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이 문제는 “사마타와 비파사나를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관된 것이지만 먼저 ‘심일경성’을 획득하는 수행방법에 대한 논의를 통해 접근해보자.

 

『구사론』에 따르면, 마음을 평등하게[等] 유지하여[持] 한 대상에 전념하는 심일경성, 즉 삼매[等持, samādhi]는 두 가지로 분류된다. 첫 번째 분류는 지난 연재에서 살펴보았던 유심유사(有尋有伺)·무심유사(無尋有伺)·무심무사(無尋無伺) 삼마지이며, 두 번째 분류가 바로 공·무원·무상 삼마지이다.

공(空, śūnyatā)삼매란 유신견(有身見)의 두 가지 행상인 아(我)와 아소(我所)를 대치(對治)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은 오온으로 형성된 신체를 항상 나[我]라고 집착하고 그것을 자신의 소유물[我所]이라 착각한 결과 업과 번뇌를 일으킨다. 마음속에서 그 집착을 없애기 위해서 두 가지 대치법이 필요하다. 첫째, ‘나’란 집착에 대해 공의 행상으로, ‘나의 것’이란 집착에 대해서는 비아(非我 혹은 無我)의 행상으로 대치한다. 그 결과 이 행상들과 마음이 원만한 균형상태를 이루면 마음속에 있던 집착의 흔적이 사라지는데 이것이 곧 공삼매이다.

 

무상(無相, animitta)삼매란 멸제(滅諦)를 소연(所緣)으로 하는네 종류의 행상, 즉 멸(滅)·정(靜)·묘(妙)·이(離)와 상응하는 등지(等持)를 말한다. 여기서 멸(滅)은 현행(現行)이 상속되지 않고 상속이 끊어진 것을 말하고, 정(靜)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을 소멸하는 것이며, 묘(妙)는 모든 고통이 없어지는 승의(勝義)의 선, 즉 열반을 의미하며, 이(離)는 모든 고통의 원인으로부터 떠나 지극히 안온한 것을 의미한다. 이 네 가지 상에 의식을 집중하여 그 상과 마음이 평형을 이루면 색·소리·냄새·맛·감촉과 남·여, 그리고 생성·유지·소멸이라는 세 가지 유위(有爲)의 상이 사라진다. 이 열 가지 유위의 행상이 마음속에서 사라지면 원인[因]과 조건[緣]의 제약을 받지 않는 열반[滅]의 상태가 되고, 이 열반을 대상으로 하는 선정이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무상삼매이다.

 

무원(無願, apraihita)삼매란 진리[諦]를 소연으로 하는 열 가지의 행상과 상응하는 등지를 말한다. 그 열 가지란 고제의 고(苦)와 비상(非常)이라는 두 행상, 그 원인인 집제의 인(因)·집(集)·생(生)·연(緣) 및 도제의 도(道)·여(如)·행(行)·출(出)을 말한다. 사성제 중 고제의 고와 비상, 그리고 집제는 싫어하고 근심할 만한 것이기 때문에, 도제는 마치 뗏목과 같아서 결국 버려야 할 것이기 때문에 이것들을 소연으로 하는 선정을 ‘무원’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이 열 가지 행상은 열반을 얻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므로 그것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그것들을 비로소 해탈할 수 있다.

 

삼삼매의 단계에서 모든 행상은 싫어하고 버려야 하는 대상으로 간주된다. 다만 공과 비아는 열반과 비슷한 경계이므로 싫어하고 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버려야 할 대상에서 제외된다.

『구사론』은 삼삼매를 다시 세간과 출세간의 차별에 의해 번뇌가 있는 삼매[淨等持]와 번뇌가 없는 삼매[無漏等持]로 나누는데, 정등지는 세간의 등지이고 무루등지는 출세간의 등지이다. 이 가운데 무루의 세 가지 등지만 삼해탈문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번뇌가 없는 삼매는 공·비아·열반과 같은 행상을 떠올려 그것에 의식을 집중하여 마음이 행상과 하나가 되면 이것이 인식주관이 되어 사제(四諦)를 분석하여 세간의 현상에 관한 집착과 번뇌를 소멸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현상의 원인과 조건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생사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가 되어 열반에 도달하기 때문에 이 세 가지 무루등지를 세 가지 해탈로 가는 문(삼해탈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구사론』에 나타난 공(空)·무상(無常)·무아(無我)는 선정을 위해 마음의 표상으로 떠올린 것으로서, 법의 특징으로 파악된 것이다. 따라서 삼삼매는 마음의 표상에 떠올린 공등의 행상이 인식의 주체로서 기능하며 이어서 대상[四諦]을 향하여 나아가 그 대상을 지혜에 의해 살피고 번뇌와 업의 원인이 되는 유위의 행상을 마음속에서 대치하여 소멸시키는 수행법이다. 다시 말해 삼해탈문은 법의 공통된 특징인 16행상을 마음속에 떠올려 유위의 형상을 지혜로써 살펴 분석하고, 대치하고 마음속에서 유위법과 관련된 지각의 내용을 지워 무위의 세계를 체험하는 선정의 구조를 갖는다.

 

여기서의 공이란 대상화된 실체로서의 공이며 분별의 작용이다. 비아와 열반도 마찬가지다. 이는 결국 현상세계 너머에 그것을 존재하게 하는 그 무엇, 즉 법이 있다고 상정하는 태도로, 다만 그 법의 특징 중 하나를 공의 행상이라고 간주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점들을 볼 때 『구사론』에서 말하는 삼삼매는 제법의 존재를 전제로 한 아미달마 교학의 기본적인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 선정의 방법으로서, 대승불교의 공 개념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사론』에서 출세간을 위한 선정의 방법으로 삼해탈문에 주목했던 것은 선정수행 발달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구사론』에서 말하는 삼삼매는 마음속에서 지워야할 행상들을 대상으로 의식을 집중하는 수행법으로, 이런 과정을 통해 세간의 현상에 관한 집착과 번뇌뿐 아니라 선정의 단계에 따라 발생하는 희수(喜受)·낙수(樂受) 등에 대한 집착을 극복할 수 있다. 이 삼매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행상(空·非我·涅槃 등)은 번뇌가 소멸한 순수 인식의 경계[淨智]이며 언어와 사유를 초월한 세계, 진리 그 자체이다. 이처럼 삼매의 대상을 현상하는 차별적 법이 아니라 순수한 인식의 경계로 삼음으로써 선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분별작용을 배제할 수 있다. 따라서 초기불교부터 계승되었던 사선의 방법들이 갖는 부작용들, 즉 선정의 단계에 따라 경험하게 되는 심(尋)과 사(伺)라는 의식작용과 희수와 낙수 같은 차별상들에 대한 애착을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구사론』을 비롯한 아미달마 교학에 대하여 초기불교에서 특별히 강조되지 않았던 삼삼매를 다시 주목하고 그것을 수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대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 공적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법의 실체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대승불교의 공에 대한 이해와 일정한 거리가 있으며, 그런 한에서 선정과 해탈의 관계는 확립했을지 모르나 선정과 지혜의 관계를 확고하게 정립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바로 여기에 대승불교의 삼삼매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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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스님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해인사 국일암에서 성원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운문사 승가대학을 마치고 10년간 강사로서 학인을 지도했다. 경전 연찬을 하는 틈틈이 제방에서 정진했으며, 서울대와 동국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과 대안연구공동체 등에서 미학, 명상, 불교를 강의해오고 있다. 2016년 미르문화원을 열고 그곳에서 은유와마음연구소를 맡아 운영한다. 새로운 형식의 불교모임인 무빙템플을 수년째 이어오고 있으며, 이 밖에도 (사)한국명상지도자협회 이사와 문화재청 문화재 위원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은유와 마음』, 『미술관에 간 붓다』, 『선종과 송대사대부의 예술정신』 등이 있으며, 「무지한 스승으로서의 선사」, 「『선문염송』의 글쓰기-정통과 민족적 정체성의 지향」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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