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주인공의 삶]
수고 많은셨습니다.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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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8 년 6 월 [통권 제62호] / / 작성일20-07-16 15:39 / 조회7,090회 / 댓글0건본문
경을 펼치면 ‘여시아문’ 다음에, 부처님께서 어느 때 어디서 1250명의 비구와 함께 계셨다는 말이 나온다. 그 옛날에 1250명이면 많은 숫자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경보다는 율장에 자세히 전한다.
<오분률>을 읽어보면, 부처님은 정신적인 스승일 뿐만 아니라 제자들의 안전과 생계를 책임지는 교단의 운영자이기도 했다.
율은, 그자체로 가르침이자 수행방편이지만 일차적으로 승가의 생존을 위해서 제정된 것이다. 승가의 목표가 수행에 있다 해도 우선 살아있어야 수행도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밥이었다.
부처님께서는 5비구와 함께 살면서부터 걸식을 해서 드셨다.
처음에는 먼저 도를 안 교진여와 구린에게 밥을 빌어오게 하고 아직 덜 된 제자들을 놓고 가르치셨다. 그러다가 다섯 명이 다도를 알게 된 뒤에는 함께 밥을 빌며 법을 전하러 다니셨다. 그 뒤에 가섭과 사리불 같은 큰 제자들이 합류하면서 몇 백 명 단위로 사람들이 늘어나 1250명이 되었다.
이때부터 부처님은 떼 식구를 책임진 교단의 수장이 되었다.
처음에는 거처가 충분하지 않아서 한 데서 도를 닦는 사람들이 많았다. 안전한 거처가 없으니 수행자들은 항상 위험을 안고 살 수밖에 없었다. 견디기 어려운 기후에 해충과 맹수의 피해가 심했다. 한적한 곳에서 혼자 수행하는 스님들은 도적의 쉬운 목표물이 되어 옷과 발우를 빼앗기고 폭행을 당하고 먼 지역에 종으로 팔아넘겨지기도 했다.
이런 일이 생기다 보니 안전한 거처가 절실해졌는데, 그것은 대부분 부처님의 힘으로 마련되었다. 부처님은 인물로 보나 언변으로 보나 품행으로 보나, 무엇 하나 흠잡을 데없는 사람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부처님에게 반했고 자신들의 집과 동산을 내놓기 시작했다. 전법을 하러 돌아다니는 곳마다 신도들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거처도 늘어났다. 그러나 비바람과 해충을 막았다 해도 아직 안심할단계가 아니었다. 밥과 생필품을 얻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오분률』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밥과 옷을 빌 때 이렇게 하라고 일러주셨다. “빌어서 얻으면 좋고, 얻지 못하면한 번 더 말해보고, 또 얻지 못하면 한 번 더 말해보고, 그래도 얻지 못하면 한 번 더 말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다른 곳에 희망을 걸고 그 자리를 떠나라.”고. 이것이 고수가 가르쳐준 동냥의 기술이라니. 웬만한 근기가 아니고서야 따라 하기 힘들 것 같다.
힘든중에서도 평판이 안 좋은 비구들은 밥을 얻기가 더어려웠다. 맹수보다 무서운 것이 동네평판이었기 때문이다. 품행제로의 비구들이 나쁜 짓을 저지르며 몰려다니자 평판이 나빠졌다. 동네에서 밥을 얻기가 힘들어진 이들은 걸식을 나갔다가 한 비구니를 보았는데 한두 사람에게서 밥을 얻는 것이 아니었다.
그 비구니는 착실하게 수행한다고 동네에 소문이 났기 때문에 밥 줄 사람이 줄을 선 것이다. 그래서 비구들은 이렇게 살 꾀를 낸다. “우리가 이렇게 고생할 것이 아니라 저 비구니 뒤를 따라다니자. 그러면 어렵지 않게밥을 먹을 수 있겠다.” 그리고는 다음날부터 뒤를 따라다니며 밥을 뺏어먹었다.
양심마저 없었던지비구니 몫을 남겨주어야 마땅한 일인데 하나도 남김없이 다 뺏어먹었다. 며칠 굶은 비구니는 길에서 휘청거리다가 마차에 치었다. 이 일이 알려지자 부처님께서 당장 그 비구들을 불러들여 사실을 확인한 뒤에 호되게 꾸짖으셨다. 그리고는 이제부터 ‘비구는 비구니 뒤를 따라다니며 밥을 얻어먹지 말라’는 율을 정해주셨다.
이 이야기에서 보듯이 승가는 평판으로 먹고 살았다. 수행을 잘한 사람은 밥을 얻고 비행을 저지른 사람은 밥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승가의 규모가 커지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다 보니 그중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고 별의별 일이 다 있었다. 율장을 읽어보면 “부처님 계실 때는 제자들의 근기가 높아서… 어쩌고…”하는 경전의 말씀이 다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승가는 부처님 계실 때부터 엉망진창이었다.
안팎으로 비행을 저지르는 비구와 비구니들 때문에 사건사고의 연속이었다. 몇 개만들어보자. 신참들이 애써 지어놓은 방을 6군비구들이 빼앗는 과정에서 심한 폭행이 있었다. 맞은 비구는 “땅에 쓰러져 거의 죽게 되었다.”고 전한다.
어떤비구는 싸움 붙이기 선수였다. 일어나지 않은 싸움은 일어나게 하고, 일어난 싸움은 더 부채질하고, 끝난 싸움은 불씨를 살려 재점화하는 식이었다. 당연히 그가 있는 곳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욕망의 화신이었던 어떤 비구는 자신이 여자들과 어울리는 것으로 모자라 거사들에게 여자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거사들이 그 비구에게 했다는 이야기는 이거다. “하룻밤에 얼마냐?”
비행을 저지를 때마다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고, 스님들 이름이 동네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사건이 알려질 때마다 동네 사람들은 이렇게 비난했다.
"석가의 제자들은 입으로는 소욕지족을 말하면서 욕심이 끝도 없다. 도를 닦는다면서 우리 같은 속인과 뭐가 다르냐.” 율장에 매우자주 나오는 말인데,언제나 ‘석가의 제자들…’로 시작한다. 세간어로 번역하자면 ‘느그 아부지가 그래 가르치더노?’ 이런 욕을 듣는 것이다. 동네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만드는 욕인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비구들이 원숭이처럼 볼따구 미어지게 먹는다.”, “한번 눌러앉으면 갈 줄모른다.”는 식의 원색적인 비난도있었고, “까까머리” “음녀”와 같은 상소리를 듣기도 했다. 욕만 먹으면 그래도 다행이다. 신도들은 밥과물자를 공급하지 않았으며, 신심을 접고 외도를 섬기는 쪽으로 가버렸다. 그러면 승가는 위기를 맞는다.피나는 수행으로 얻었던 것들을 나쁜 평판 한 번에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교단의 운영자 부처님에게는 이를 막기 위한 방편이 필요했다. 말썽이 날 때마다 지혜롭게 판단하여 골치 아픈 현안을 한 땀 한 땀 해결해 나가셨다. 얼마나 골머리를 앓았던지, 한번은 부처님께서 방에 들어가 두문불출하신 적도 있다.
시자에게 나를 찾지 말고 하루에 한 번씩 밥만 넣어달라고 하셨단다. 그 노고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계율이다. 계율은 이른바 승가의 공주법(共住法), 번역하자면 ‘함께 사는 법’이다. 1947년 봉암사 결사의 ‘공주규약(共住規約)’도 여기서 가져온 말이다.
사분율장
성철 스님은 왜색에 찌들어 망가질 대로 망가진 불교를 바로잡고자, 청정한 수행을 내걸고 부처님의 율을 다시 꺼내 드셨다. 율을 세운 것과 함께, 참선하는 데 방해가 된다며 향로까지 치우셨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독하고 맵짠 가풍을 몸으로 실천하고 전해주신 것이다.
지난 5월 2일, 불교계의 비리를 파헤친 피디수첩이 방영되었다. 보는 내내 참담했다. 불자들 중에는 “야속하게도 하필이면 ‘부처님오신날’을 얼마앞두고 그걸 내보내느냐!”고 엠비씨에 항의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부처님 당시에도 비판해주는 동네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승가가 바로 서지 못했을것이며,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깨알 같은 율장을 남겨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네 사람들은 계율의 숨은 공로자라 할 수 있다. 요즘은 언론이 그 일을 맡은 것이다. ‘부처님오신날’ 즈음에, 다시 ‘공주규약’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율을 뒤적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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