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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선문정로 ] 서언과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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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인검  /  2020 년 7 월 [통권 제87호]  /     /  작성일20-07-20 14:29  /   조회38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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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성철 스님  [옮김]  활 인 검

 

  * 이번 호부터 성철 스님의 저서 『선문정로』를 쉽게 풀어 소개합니다. 수행자가 가야할 길을 간결·명료하게 집약한 훌륭한 저서임에도 접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한문체를 보다 이해하기 쉬운 말로 풀었습니다. 강조체는 성철 스님이 쓴 원문이며, 본문체는 풀어 쓴 것입니다. 많은 관심과 제언을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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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반의어느 날 회암사지에서 성철 스님, 청담 스님

 

[1] 영취산정靈鷲山頂에서 세존이 염화拈花함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함이요, 소림암굴少林岩窟에서 이조二祖가 삼배三拜함은 모난 나무로 둥근 구멍을 막음이니, 고금古今 선지식들의 현언묘구玄言妙句는 모두 눈 속에 모래를 뿌림이다.

 

  영취산 정상에서 부처님이 꽃을 들자 가섭이 미소 지은 것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말한 것이고, 소림사의 바위굴에서 혜가가 달마에게 세 번 절한 것은 네모난 나무로 둥근 구멍을 막으려는 것 같은 헛된 노력이며, 옛날과 지금의 뛰어난 스승들이 내뱉은 그윽한 말과 기묘한 구절들은 모두 눈 안에 모래를 뿌리는 행위들이다.

 

[2] 열갈熱喝과 통방痛棒도 납승의 본분이 아니거늘 어찌 다시 눈뜨고 꿈꾸는 객담客談이 있으리오마는, 진흙과 물속에 들어가서 자기의 성명性命을 불고不顧함은 고인古人의 낙초자비落草慈悲(주1)이다.

 

  귀가 멀 듯이 뜨거운 호통소리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방망이질도 수행자의 본래 일이 아니거늘 눈뜨고 꿈꾸는 것 같은 쓸데없는 말을 어찌 다시 하겠는가마는, 진흙과 물속에 들어가며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는 것은 옛 스승들이 자비심으로 하신 행동들이다. 

 

[3] 정법상전正法相傳이 세구연심歲久年深하여 종종種種 이설異說이 횡행하여 조정祖庭을 황폐케 하므로 노졸老拙이 감히 낙초자비落草慈悲를 운위云謂할 수는 없으나, 만세정법萬世正法을 위하여 미모眉毛를 아끼지 않고(주2) 정안조사正眼祖師들의 수시법문垂示法門을 채집하여 선문禪門의 정로正路를 지시指示코자 한다.

 

  부처님 가르침이 전래된 지 오래되고 많은 시간이 흘러 여러 그릇된 주장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 조사의 가르침을 황폐하게 하므로 늙고 서투른 내가 감히 자비행을 실천한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세세생생 이어질 올바른 가르침을 위해 눈썹이 떨어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참다운 가르침을 이어온 스승들의 말씀을 채집해 수행의 바른 길을 가리켜 보이고자 한다. 

 

[4] 선문은 견성見性이 근본이니 견성은 진여자성眞如自性을 철견徹見함이다. 자성은 그를 엄폐한 근본무명, 즉 제8아뢰야의 미세망념이 영절永絶하지 않으면 철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선문정전禪門正傳의 견성은 아뢰야의 미세가 멸진滅盡한 구경묘각究竟妙覺 원증불과圓證佛果이며 무여열반無餘涅槃 대원경지大圓境智이다.

 

  수행자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존재의 참모습인 실상을 몸으로 깨닫는 것이니, 존재의 참모습은 공성[진여자성]을 철저하게 증득하면 드러난다. 이를 위해서는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어리석음인 제8아뢰야식의 미세한 망념을 완전히 끊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수행자들의 깨달음은 바로 미세한 번뇌인 아뢰야식을 깨끗하게 소멸시킨 궁극의 깨달음이자, 조금의 흠도 없는 원만한 깨달음이며, 번뇌가 남김없이 사라진 큰 거울 같은 밝은 지혜를 터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5] 이 견성이 즉 돈오頓悟이니, 오매일여寤寐一如·내외명철內外明徹·무심무념無心無念·상적상조常寂常照를 내용으로 하여 십지등각十地等覺도 선문의 견성과 돈오가 아니다. 따라서 오후보임悟後保任은 구경불과究竟佛果인 열반묘심涅槃妙心을 호지護持하는 무애자재의 부사의대해탈不思議大解脫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정확하고 올바른 깨달음인 돈오이다. 자나 깨나 마음이 한 결 같이 집중되고, 안과 밖이 철저하게 밝으며, 집착하는 생각과 마음이 조금도 없고, 존재의 참모습을 항상 고요히 살피는 경지가 바로 돈오이다. 수행의 십지를 모두 밟은 등각도 존재의 참모습을 몸으로 터득하지 못했다. 따라서 존재의 참모습을 본 후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은 궁극의 깨달음인 열반의 즐거움을 간직하는 걸림 없는 불가사의한 해탈을 말한다. 

 

[6] 견성 방법은 불조 공안을 참구함이 가장 첩경이다. 불조 공안은 극심난해極深難解하여 자재 보살도 망연부지茫然不知하고 오직 대원경지大圓鏡智로써만 요지了知하나니 공안을 명료明了하면 자성을 철견한다. 그러므로 원증불과인 견성을 할 때까지는 공안 참구에만 진력하여야 하나니, 원오圜悟가 항상 공안을 참구하지 않음이 대병大病이라고 가책함은 이를 말함이다.

 

  존재의 참모습을 몸으로 깨닫는 방법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은 공안을 참구하는 것이다. 부처님과 조사들이 남긴 공안은 매우 깊고 미묘해 알기 어렵다. 자재 보살도 그 앞에 서면 어쩔 줄 모르며 오직 큰 거울 같은 맑은 지혜로만 공안을 타파할 수 있다. 공안을 명쾌하게 통과하면 존재의 참모습을 체득하게 된다. 그러므로 조금의 흠도 없는 깨달음을 몸으로 터득할 때까지 공안 참구에만 모든 힘을 쏟아야 되니, 원오극근이 공안을 참구하지 않는 것이 모든 병의 근본이라고 질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7] 공안을 타파하여 자성을 철견하면 삼신사지三身四智를 원만증득하고 전기대용全機大用이 일시에 현전한다. 이것이 살활자재殺活自在하고 종횡무진縱橫無盡한 정안종사이니 정안이 아니면 불조의 혜명慧命을 계승하지 못한다. 마조馬祖 제자 80명 중에 정안은 수삼인數三人이라고 황벽黃檗이 지적함과 같이 정안은 극난極難하다. 그러나 개개箇箇가 본래 비로정상인毘盧頂上人이라 자경자굴自輕自屈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면 정안을 활개豁開하여 출격대장부出格大丈夫가 되나니 참으로 묘법 중 묘법이다.

 

  공안을 타파하여 존재의 참모습을 터득하면 법신불·보신불·화신불의 세 가지 몸과 성소작지·묘관찰지·평등성지·대원경지의 네 가지 지혜를 완벽하게 갖추어 몸으로 어떤 행동을 해도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몸의 움직임 그대로가 진리가 된다. 이것이 삶과 죽음을 초월하고 삼계에 자유로이 활보하는 참수행자의 진정한 모습이다. 올바른 지혜의 눈을 얻지 못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을 수 없다. 마조도일의 제자 80명 가운데 참다운 지혜의 눈을 얻은 사람은 3-4명 정도라고 황벽이 지적한 것처럼 누구나 쉽게 지혜의 눈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비로자나불의 머리 꼭대기 위에 설 수 있는 자질을 갖고 있으니 자신을 가벼이 여겨 낮추지 말고 끝까지 노력하면 올바르고 크나큰 지혜의 눈을 얻어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대장부가 되니 참으로 신기한 가르침 중의 가르침이다. 

 

[8] 무릇 이설 중의 일례는 돈오점수頓悟漸修이다. 선문의 돈오점수 원조元祖는 하택荷澤이며 규봉圭峰이 계승하고 보조普照가 역설한 바이다. 그러나 돈오점수의 대종大宗인 보조도 돈오점수를 상술한 그의 『절요節要』 벽두에서 하택은 시지해종사是知解宗師니 비조계적자非曹溪嫡子라고 단언하였다. 이는 보조의 독단이 아니요 육조六祖가 수기授記하고 총림이 공인한 바이다. 따라서 돈오점수사상을 신봉信奉하는 자는 전부 지해종도知解宗徒이다.

 

  무릇 그릇된 주장 가운데 하나가 돈오점수이다. 선문에서 돈오점수의 뿌리는 하택이며 규봉이 계승하고 보조가 역설했다. 그러나 돈오점수의 큰 줄기인 보조도 돈오점수를 자세하게 설명한 『절요』의 첫 머리에서 하택은 알음알이를 중시하는 수행자로 깨달음의 궁극을 향해 매진하는 참다운 실천자는 아니라고 단언했다. 이는 보조의 독단이 아니요 육조가 예언하고 선림의 스승들이 공인한 사실이다. 따라서 돈오점수 사상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전부 알음알이를 따라가는 사람들이다.

 

[9] 원래 지해知解는 정법을 장애하는 최대 금기이므로 선문의 정안조사들은 이를 통렬히 배척하였다. 그러므로 선문에서 지해종도라 하면 이는 납승의 생명을 상실한 것이니, 돈오점수사상은 이렇게 가공한 결과를 초래한다.

 

  알음알이는 원래 올바른 가르침으로 나아가는 수행자를 방해하는 최대의 도적이기에 참다운 지혜의 눈을 갖춘 스승들이 통렬히 배척했다. 그러므로 알음알이를 좇는 수행자는 물고기의 눈을 진주로 착각하는 것처럼 고귀한 생명을 헛되이 사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돈오점수 사상은 이렇게 가공할 결과를 초래한다.

 

[10] 이렇듯 이설들의 피해가 막심하여 정법을 성취하지 못하게 되나니, 참선고류參禪高流는 이 책에 수록된 정전正傳의 법언法言을 지침 삼아 이설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용맹정진勇猛精進 확철대오廓徹大悟하여 고불古佛도 미도未到하는 초군정안超群正眼을 원증圓證하여 하택·규봉과 같은 지해종도가 되지 말고 마조·백장과 같은 본분조사本分祖師가 되어, 조계적자로서 불조의 혜명을 계승하여 영겁 불멸의 무상정법無上正法을 선양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이렇듯 그릇된 주장들의 피해가 매우 심해 참다운 가르침을 성취하지 못하게 되니, 수행하는 고귀한 사람들은 이 책에 수록된 올바른 진리의 말씀들을 지침으로 삼아 그릇된 주장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용맹하게 수행해 조금의 흠도 없는 경지에 올라서서, 옛날의 부처들도 감히 도달하지 못한 뛰어나고 원만한 지혜의 눈을 얻어 하택·규봉과 같이 알음알이를 신봉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마조·백장과 같은 뛰어난 눈을 가진 스승이 되어, 부처님 가르침을 정확하게 계승하여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위없는 진리를 선양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11] 

허허, 구구한 잠꼬대가 어찌 이렇게 많은고! 억!

둥근 달 밝게 비친 맑은 물결에 

뱃놀이 장단 맞춰 금 잉어 춤을 춘다.


[12] 

신유辛酉 중추가절仲秋佳節

가야산伽倻山 백련암白蓮庵에서

퇴옹성철退翁性徹 지識

1981년 가을, 가야산 백련암에서, 퇴옹성철 쓰다.

 

 『선문정로』 차례

 

1. 견성즉불見性卽佛     견성이 바로 성불이다

2. 중생불성衆生佛性     중생에게는 불성이 있다

3. 번뇌망상煩惱妄想     두 가지 번뇌 망상

4. 무상정각無上正覺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

5. 무생법인無生法忍     일체 만법이 생기지 않음을 깨치다

6. 무념정종無念正宗     무념이 바른 종지이다

7. 보임무심保任無心     무심을 보임하다

8. 오매일여寤寐一如     자나 깨나 한결같다

9. 사중득활死中得活     죽은 자리에서 살아나다

10. 대원경지大圓鏡智    크고 둥근 거울 같은 지혜

11. 내외명철內外明徹    안팎이 환히 밝다

12. 상적상조常寂常照    항상 고요하고 항상 비추다

13. 해오점수解悟漸修    이해로 깨닫고 점차 닦아 나아가다

14. 분파분증分破分證    부분적으로 타파하고 부분적으로 증득하다

15. 다문지해多聞知解    들은 것이 많아 알음알이만 있다

16. 활연누진豁然漏盡    남김없이 번뇌를 다 없애다

17. 정안종사正眼宗師    바른 안목을 가진 종사

18. 현요정편玄要正偏    임제의 3현3요와 조동의 정편

19. 소멸불종銷滅佛種    부처가 될 종자를 없애다

 

* 편집자의 사족蛇足 

제1장부터 제4장까지가 『선문정로禪門正路』의 요점이다.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견성을 제1장에서 설명했고,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는 토대인 불성을 누구나 갖고 있다는 점을 제2장에서 밝혔고, 깨침을 방해하는 번뇌를 제3장에서 철저하게 분석했고,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이 무엇인지를 제4장에서 명확하게 해설했기 때문이다. 제5장부터 제8장까지는 깨달음의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적시摘示했고, 제9장부터 제12장까지는 제5장과 제6장의 내용을 보충했다. 제5장부터 제12장까지는 선문의 핵심적인 가르침인 강종綱宗을 밝힌 것이다. 

 

  깨달음과 수행에 대한 그릇된 견해와 수행과정에 생기는 병폐들을 통렬히 공박한 내용이 제13장·제14장·제15장에 들어있다. 밝고 올바른 지혜의 눈을 얻고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털어낸 수행자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설명이 제16장·제17장·제18장에 상세하다. ‘선문의 가르침’[종승宗乘]과 ‘진실한 수행’[실참實參]에 두루 정통한 참 수행자의 모습이 이 세 장章에 들어있다. 부처가 될 종자를 잘 지키고 불법佛法을 선양하라는 내용을 담은 제19장은 단순한 당부가 아니고 제1장에서 제18장에 걸쳐 설명한 내용들을 숙지하고 실천할 때 비로소 불교가 끊임없이 전승되어 꽃필 수 있다는 점을 냉철하게 밝혀 놓은 ‘부촉付屬의 종장終章’이다.

 

  제1장 ‘견성’에서 제19장 ‘당부의 말’에 이르기까지 말과 문자로 불교가 가야할 길을 설명하고 기술했으나 사실은 말하지 않았고 자구字句의 흔적마저 없다. 말과 글을 뛰어넘는 지혜로 밝혀놓은 ‘수행자의 바른 길’[궤칙軌則]만이 오롯이 있을 뿐이다. ‘깨달았다는 의식조차 사라진’[몰종적沒蹤跡] 무심과 ‘그림자 없는 큰 나무’[무영수無影樹]의 향기가 ‘차례’에 가득하다.

 

주)

주1) 낙초자비落草慈悲에서 ‘낙落’은 ‘내려오다’, ‘초草’는 ‘깨닫지 못한 범부의 입장’을 의미한다. 자비심을 내어 말과 언어의 입장인 ‘제이의문第二義門’에서 가르침을 펴는 것을 말한다. 『운문광진선사광록』 권중卷中에 “예부터 뛰어난 스승들은 모두 자비심 때문에 범부를 위해 말로 가르쳤다. (상대방이 하는) 말에 따라 그 사람의 자질을 파악했다[古來老宿, 皆為慈悲之故, 有落草之談, 隨語識人].”고 나온다. 『벽암록』 제34칙에도 운문의 이 말이 인용되어 있다. 『운문록(상)』(선림고경총서 15), 합천:장경각, 1990, pp.127-128.

 

주2)  불석미모不惜尾毛. 언어로 교화하는 것을 말한다. 근본적인 진리와 동떨어진 설법을 하면 눈썹이 없어진다는 속설이 선문에 전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내 눈썹이 아직 붙어 있는가?”라는 의미의 “웨이마오짜이마尾毛在麽?”이다. 여기서는 “말과 문자로 교화하다보면 눈썹이 떨어질 위험이 있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보겠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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