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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명청 선어록 ] 선해십진禪海十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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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귀  /  2020 년 7 월 [통권 제87호]  /     /  작성일20-07-20 15:11  /   조회81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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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귀 

 

  『선해십진禪海十珍』은 명대 말기에 위림도패爲霖道霈(1615-1702)가 편찬하고, 청대 초기 강희 26년(1687)에 고산鼓山의 성전당聖箭堂에서 자서自序를 붙여 간행한 것이다. 이것을 그 제자인 고조高兆가 백운당에서 서사한 것이다. 위림도패는 영각원현永覺元賢의 법사로 후세의 납자를 위하여 선종의 법보 가운데서 10편을 선별하여 각각에 강종綱宗의 말씀을 붙여 그 근원적인 종지를 논평한 것이다. 전체 10편 가운데 조동종과 관련된 문헌이 4편으로 비교적 많이 수록된 것은 도패가 조동종에 속하는 선사였음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다. 이 <선해십진>은 <여박암고旅泊菴稿> 권4에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서문」에 도패가 붙인 글이 있어 편찬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선해십진소서禪海十珍小序」  “무릇 교외별전의 도는 방편교학을 꾸짖고 초월한다. 그러나 교화의 손을 드리워 사람들을 교화하려면 언설을 폐지할 수가 없다. 때문에 보리달마로부터 육전六傳한 이후에는 두 갈래에서 다섯 종파가 출현하여 선에 대한 설명이 방대하였다. 자성의 바다는 하도 넓어 항하사와 같은 법보가 그 가운데 집성되어 있다. 이에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터득함에 있어서 자기 안에서 끌어내지도 않고 밖으로부터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곧 자기의 마음에 본유한 자성의 공덕일 뿐이다. 그러나 무릇 시대가 말운을 맞이하여 사람들의 근기가 점차 하열해졌다. 

 

  이에 상근기는 세간의 지혜로 대법을 헤아리느라고 다투고, 하근기는 스스로 숙맥菽麥도 구별하지 못하는 깜냥을 고수하여 분별하지 못하고, 또한 탐욕이 많아 얻으려는 것에만 빠져 종신토록 애쓰지만 궁극적으로 돌아갈 이치를 알지 못한다. 그러니 가히 애석하지 않겠는가. 이에 나도 모르게 그만 특별히 이 10편에 대하여 강종綱宗을 언설을 엮어 후래 납자들을 위한 표준으로 삼고자 한다. 비록 그 언설은 소략하지만 신명을 다해 밝히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깨침[實]은 책에 들어있지 않지만 실로 그 열 배나 많은 법이다. 진실로 혹 종지를 상실한다면 곧 삼장의 가르침[三藏教海]을 쥐고 흔들고 오등五燈 오등五燈은 구체적으로는 <경덕전등록>‧<속전등록>‧<천성광등록>‧<가태보등록>‧<연등회요>의 다섯 가지 전등사서傳燈史書를 가리키지만 불조의 가르침을 통칭한 말이다.

 

의 미묘한 언설을 다 궁구한다고 해도 그것은 마치 남의 집 보물만 헤아리는 꼴이니 어찌 자기에게 이익이 되겠는가. 때문에 이 <선해십진>을 유행시킨다. 지혜로운 사람들과 더불어 공유하기 바란다.”

 

구성과 내용 

 

<선해십진>에 수록된 10편은 다음과 같다. ①<칠불게전법七佛傳法偈>; ②<초조보리달마대사입도사행初祖菩提達磨大師入道四行>; ③<삼조승찬대사신심명三祖僧璨大師信心銘>; ④<육조대감선사이종삼매六祖大鑒禪師二種三昧>; ⑤<영가진각선사증도가永嘉真覺禪師證道歌>; ⑥<석두희천선사참동계石頭希遷禪師參同契>; ⑦<진주임제의현화상법어鎮州臨濟義玄和尚法語>; ⑧<동산양개선사보경삼매洞山良价禪師寶鏡三昧>; ⑨<동안찰선사십현담同安察禪師十玄談>; ⑩<부산원선사구대浮山遠禪師九帶>.

 

  ①은 과거칠불의 전법게송을 낱낱이 <경덕전등록>의 수록본에 의거하여 그대로 옮겨놓고,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칠불세존의 전법은 각각 게송 하나씩인데, 게송마다 모두 신身과 심心의 견해를 타파한다. 진실로 중생은 무시겁래로 진성眞性을 미실迷失하여 허망하게 사대를 신身으로 삼고 육진으로 반연한 영상을 심心으로 삼는다. 이미 자기에 미혹하여 물物을 삼았는데 다시 그 물物을 인정하여 자기 자신로 삼는다. 그래서 미혹으로부터 미혹으로 들어가서 점점 어긋나고 꼬여 고해에 빠졌는데 넓어서 끝이 없다. 때문에 제불이 출세하여 애써 설파하여 그들로 하여금 신‧심 가운데서 구경에 신‧심의 자성은 끝내 없음을 일깨워주고, 법신의 진지真智는 본체가 원명함을 보도록 해주었다.

 

소위 신‧심의 본성이 공임을 이해하면 그 사람과 부처가 어찌 다르겠는가. 이것은 진어이고 실어이므로 독자들은 잘못됨이 없음을 볼 것이다. 혹 칠불의 게송을 번역한 사람을 보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어째서인가. 말하자면 이야말로 달마조사가 당시에 이조에게 면수한 것이므로 어찌 번역에 의지하겠는가. 마치 달마조사가 양 무제를 처음 만나서 일문일답한 경우와 같다. 범어와 중국어에 어찌 간극이 있겠는가. 고인은 그것을 선의 근원이라고 말하였는데 그럴듯한 말이다. 송의 경덕 연간에 도원道原 선사는 <전등록>을 집성하였는데, 칠불게송을 서두에 내놓았다. 그것은 진실로 불조의 심법이기 때문에 후대에 계속된 『전등록』에서는 모두 그것을 반복하였다. 진실로 만세의 법도이다.”

 

  ②도 전문을 수록하고 논평해 놓았다. “달마 조사가 이미 전법하였는데 다시 이문理門과 행문行門의 이문을 제시한 것은 무릇 후인이 달마의 그 소견을 실천하기를 바라는 것일 뿐이다. (중략) 견도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불법에 따라서 수행해야만 탐구貪求가 영원히 그치고, 분별지해가 발생하지 않으며, 집착이 발생하지 않아서 원冤과 친親에 평등할 터인데 어찌 원보冤報를 추구하겠는가. 이와 같이 한다면 곧 가히 불심종을 해명하여 해解와 행行에 이지러짐이 없어서 조도祖圖라는 이름을 붙일 수가 있으므로 바라건대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때문에 조사가 이 사행을 가지고 납자들에게 제시하면 일체의 제행이 모두 이 가운데 들어있어서 그들로 하여금 사事에 즉하여 입도入道하므로 가장 긴요하다고 말한다. 무릇 진심으로 수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매일 세 번씩 반복함으로써 생생하게 입도사행을 힘써 닦을 수가 있을 것이다.”

 

  ③에 대해서는 전문을 수록하고 논평해 놓았다. “삼조의 <신심명>은 무릇 584언言 146구句인데, 구마다 후학을 위해서 심체를 직지해주고 심병을 가려내어 귀원歸元의 길을 제시하여 무작無作의 공功을 일으켜 후학으로 하여금 자신自信하고 자긍自肯하여 향외에서 추구하지 않도록 해준 것이다. <법화경>에서는 수보리 등 사대제자가 일생동안 신해한 즉 수기를 받았다. 고덕古德은 ‘일단 신문信門에 들어가면 곧 조위祖位에 오른다는 말이 어찌 거짓이겠는가.’라고 말했다. 비록 그렇더라도 심心이 곧 어떤 것이 길래 신信이란 말인가? 신信이 어떤 것이 길래 심心이란 말인가? 물로 물을 씻지 못하고 쇠로는 쇠를 펴지 못한다. 때문에 ‘신심불이信心不二이고 불이신심不二信心이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이고 비거래금非去來今이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만약 다시 의義와 해解로 헤아린다면 그것은 바로 눈을 뜨고 꿈을 꾸는 것과 같다.”

 

  ④에 대해서는 <단경> 가운데 일행삼매와 일상삼매의 대목을 발췌하고 논평해 놓았다. “육조는 80생 동안 선지식으로 불식문자不識文字이면서 종통과 설통이 원명함을 보였다. 이종삼매는 이에 수행인이 일용日用에 실천하는 현도玄塗의 첩경이다. 조사의 의도에 의거하면 일상삼매一相三昧는 곧 경계에서 실상을 통달하여 환상幻相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고, 일행삼매는 곧 마음이 항상 질직하여 실상에 안주하는 것이다. 제이념에 떨어지지 않고 심心과 경境이 모두 공하여 이치에 부합하는 삼매라고 말한다. (중략) 일행삼매에 들어간 사람은 모두 항사의 제불이 법계와 차별이 없음을 안다. 대저 법계가 일상인즉 일상삼매이다. 그러므로 법계에 계연한 즉 일행삼매이다. 이것이 이치와 수행의 차별이다. 그러나 혜능조사의 의도는 이종삼매가 모두 수행으로서 그것이 이치에 계합함으로써 구경에 무이無二라는 것이다. 달자達者들은 자세하게 살펴야 할 것이다.”

 

  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논평해 놓았다. “영가현각 선사는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널리 삼장을 탐구하였는데 천태의 원묘법문에 정통하였다. 사위의 가운데서 항상 선관에 명합하였다. <유마경>을 읽고 확연하게 대오하였다. 이에 종지를 조계로부터 인가받았다. 영가가 석정을 흔들고 혜능조사의 주위를 돌고나서 조사와 몇 마디 문답한 것을 살펴보면 단지 일상에서 응대하는 가운데 곧장 격외로 초월하였고, 깊이 심오한 경지에 들어갔으므로 혜능 조사가 어찌 깊이 수긍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겨우 일숙한 까닭에 당시에 일숙각이라고 불린 것도 방자한 호칭이 아니다. 이에 <증도가> 1수를 지어 선종의 교외별전의 도를 발명하였고, 권權‧천淺의 병病을 가려내주었는데, 이것은 모두 자증심自證心에서 유출된 것이었다. 그가 사邪를 꺾어주고 정正을 드러낸 것은 마치 갑匣 속에서 꺼낸 막야검鏌鎁劍의 광명이 하늘을 찌르는 것과 같아 그 세력을 범할 수가 없었는데, 종문이 존재한 이래로 겨우 한 번만 볼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고금에 득도得道한 사람이 많았다. 요컨대 저 대해수와 같아 아수라가 바다생물에 이르기까지 마음껏 마셔버리면 배가 충만하게 된다. 만약 영가라면 가히 대하를 흔들어 남김없이 기울여버렸다고 말할 수가 있다. 진실로 선관禪關의 추요樞要이고 별전別傳의 현결顯訣로 서천까지 전포되었는데 모두가 그것을 찬미하여 <증도경>이라고 말하였는데, 거짓이 아니다.”

 

  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석두 화상은 <조론>을 읽다가 만물이 자기이다[萬物為己]는 말을 이해하고 마침내 성인은 자기가 없지만 자기 아님도 없다는 이치를 깨쳤다. 또한 꿈속에서 육조와 더불어 영지靈智의 배를 타고 자성의 바다를 노닐었다. 이것이 바로 <참동계>를 짓게 된 까닭인데, 구절마다 모두가 법이다. 대개 사람들로 하여금 언설을 계승하여 종지를 이해시키고자 한다면 눈으로 본즉 그대로 도를 이해하는[觸目會道] 것뿐이다. 이 밖에 별도로 어떤 법도 사람들에게 가르쳐줄 것이 없다.”

 

  ⑦에 대해서는 진정견해真正見解에 대한 법어를 들고 논평했다. “호타 호타滹沱는 하천 이름으로 임제 의현이 임제원을 짓고 주석했던 곳이다.

 노인의 법어는 <경덕전등록>에는 「제방광어諸方廣語」 가운데 겨우 이 일편一篇만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 이것을 임제의 근본적인 법어로 하여 후인이 입도하는 첩경으로 남겨두었다. 그런데 만약 이것을 통해 깨침이 진실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고인이 꾸짖었던 소위 인식신認識神인데 곧 그 허물은 후인에게 있지 임제의 허물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사람이 갖추고 있는 택법안擇法眼으로, 잘 간택해야 할 것이다.”

 

  ⑧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보경삼매>는 조동종의 근원이다. 그 단서가 되는 것을 열어보면 곧 ‘여시법은 불조가 은밀하게 부촉한 것이다. 그대도 지금 그것을 터득하였으므로 반드시 잘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법은 가히 지유자知有者의 말을 잘 보호하도록 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만일 잘 보호하지 못한 즉 상응하지 못한다. 소위 ‘약간의 차이만 있어도 그에 상응하지 못한다’는 말이 그것이다. 또한 중립中立의 종취宗趣에서 규구規矩를 시설하고 군君‧부父를 받들고 따르며 법집을 씻어내어 지유자知有者로 하여금 이 법을 보호하지 않음이 없도록 해준다. 마치 허공에 새가 날아간 흔적처럼 모든 흔적이 다 공空으로 원래 실법實法이 없다. 진실로 부지유不知有하여 헛되게 언구만 천착한다면 곧 검劍을 잃어버린 지 오래 지나 검을 찾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의 경우와 같게 된다. 참으로 애달픈 일이다.”

 

  ⑨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십현담> 앞의 5수는 철법원저徹法源底이고, 뒤의 5수는 이천현도履踐玄塗이다. 동산오위와 더불어 명연하게 계합된다. 대개 자비로 나아가기 때문에 무방편無方便 가운데서도 방편을 드리우고, 무점차無漸次가 가운데서도 점차를 내세운다. 이에 마음을 비춰주는 명경明鏡이고 집으로 돌려주는 대도大道이며 선병을 치료해주는 양제良劑이고 법문의 대전大全이다. 또 그 언사는 명백하고 간이하며 자비롭고 간절하여 매번 청풍風清과 월백月白아래 때를 맞추어 일음영一吟詠하고, 이제면명耳提面命 남의 귀를 끌어당겨 알아듣게 직접 가르쳐 준다는 뜻으로 친절한 가르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분발하도록 해준다. 그래서 마치 저 선재 동자가 미륵 보살의 누각에 들어가 역겁토록 수행한 것을 모두 보고 있는 것과 다름이 하나도 없다. 뜻을 가진 사람[有志者]이라면 여기에서 마음을 씻고 깊이 스스로 연구하고 궁리하여 점차 들어감으로써 현증現證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⑩에 대해서는 이렇게 논평해 놓았다. “부산구대浮山九帶는 부산법원이 납자에게 널리 종문의 어구를 제시한 것이다. 그것을 납자들이 편집하여 스승에게 명칭을 붙여달라고 보여드리자, 부산이 「불선종교의구대집佛禪宗教義九帶集」이라고 명명했다. 이것을 줄여서 「부산구대浮山九帶」라고도 한다. 이 구대는 불선종교의佛禪宗教義의 대강격大綱格을 총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것은 불교의 선종의 교의로 의주석依主釋이다.  … … 그리고 10편의 전체에 대하여 총평한다. 이들 10편은 예부터 불조강종佛祖綱宗의 말[言]로, 진실로 선해여의禪海如意이다. 고산노인鼓山老人(위림도패의 스승 영각원현)이 특별히 염출하여 찾아온 납자들에게 보였는데 과연 심心에 즉卽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구경에 깨치면 어떤 법문인들 갖추어지지 않겠는가. 또 매 편마다 논평을 가한 것은 마치 장승요張僧繇가 용을 그린 것과 같아, 일경一經에 점안하자 곧 벽을 타파하고 비등飛騰하는 형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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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귀
동국대 선학과 대학원에서 <묵조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및 학술교수 역임.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저서에 <묵조선 연구>,<선의 어록>,<선문답의 세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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