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산책]
퇴옹성철 스님 - “자기가 바로 본래 부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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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기 / 2020 년 7 월 [통권 제87호] / / 작성일20-07-20 15:21 / 조회9,371회 / 댓글0건본문
백원기 |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문학평론가
1981년 종정에 추대된 퇴옹당 성철 스님(1912-1993)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내린 ‘한글 법어’는 기존의 한문체 법어보다 한결 쉽고 감동적으로 대중들에게 다가왔다. ‘한글 법어’의 핵심은 생명의 참모습, 화합과 상생의 삶을 강조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생명의 참모습’을 설파한 부처님오신날의 법어이다.
“모든 생명을 부처님과 같이 존경합시다.
만법의 참모습은 둥근 햇빛보다 더 밝고
푸른 허공보다 더 깨끗하여 항상 때 묻지 않습니다.
악하다, 천하다, 함은 겉보기 뿐
그 참모습은 거룩한 부처님과 추호도 다름이 없어서
일체가 장엄하며 일체가 숭고합니다.
그러므로 천하게 보이는 파리, 개미나
악하게 날뛰는 이리, 호랑이를
부처님과 같이 존경하여야 하거늘,
하물며 같은 무리인 사람들끼리는 더 말할 것 없습니다.
살인, 강도 등 죄인을 부처님과 같이 공양할 때
비로소 참 생명을 알고 참다운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서로 모든 생명을 부처님 같이 존경합시다.”
(1981년 부처님오신날 법어에서)
모든 생명은 상의상자相依相資 연기성緣起性 속에 있다. 만다라는 낱낱의 살인 폭이 속 바퀴 축에 모여 둥근 수레바퀴인 원륜圓輪을 이루듯이 모든 법을 원만히 다 갖추어 모자람이 없다는 윤원구족輪圓具足을 의미한다. 이는 곧 삼라만상의 존재들이 상호연대를 이루며 내적으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친연성의 형상화를 상징한다. 사실, 자연의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면,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들은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일지라도 그 나름의 존엄하고 경이로운 모습을 지닌 존재이다.
성철 스님의 자기를 바로 봅시다 친필 원고
하여 성철 스님은 만법의 참모습은 태양보다 밝고 푸른 허공보다 청정하며, 아무리 악하고 천한 상대라도 그것은 겉보기일 뿐, 본모습은 부처님처럼 거룩하고 숭고하다고 설한다. 때문에 광대한 우주를 두루 보아도 부처님 존재 아님이 없으니 모든 생명을 부처님과 같이 존경해야 하고, 모든 생명 존재를 부처님과 같이 공경할 때 비로소 생명의 실상에 눈 뜨게 되고 참다운 생활을 하게 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모든 생명존재가 그만의 고유한 존재가치를 지니고 있기에 부처님처럼 존경해야 한다는 성철 스님의 생명존중사상은 만법이 불법 아님이 없고, 악한 사람 착한 사람 모두 부처님의 모습이고, 맑은 물 탁한 물 모두 자비의 줄기이니 모든 생명을 축복해야 한다고 설하고 있는데서 선명히 드러난다.
“동녘 하늘에서 오색구름이 열리고,
둥근 새해가 찬란한 빛을 놓으니
우주의 모든 생명이 환희와 영광에 가득 차 있습니다.
만법이 불법 아님이 없고
만사가 불사 아님이 없어서
높은 산, 흐르는 강은 미묘한 법문을 설說하고
나는 새 기는 짐승은 무한한 행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악한 사람 착한 사람 모두 부처님의 모습이요,
맑은 물 탁한 물 모두 자비의 줄기이니
온 세상에 훈훈한 봄바람이 넘치고 있습니다. … …
우리 모두 두 손을 높이 모아 이렇듯 신비한 대자연 속
아름다운 강산에서 춤추며 노래하여
모든 생명을 축복합시다.” (1982년 1월1일 신년법어)
새해 아침, 붉은 둥근 해가 솟아올라 찬란한 빛을 발하자 우주의 모든 생명이 환희와 영광에 넘쳐 있고, 만법이 불법 아님이 없고 만사가 불사가 아님이 없으며, 산과 강이 미묘한 무정설법을 설하고, 새와 짐승이 무한한 행복을 노래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더하여 선인 악인 모두 부처님 모습이고, 청탁의 물은 자비의 줄기고 훈훈한 춘풍이 충만한 법계이다. 이와 같이 모든 대립과 갈등이 소멸되고 본래로 가장 안락하고 행복한 세계, 이는 모든 생명을 축복하고 보듬는데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성철 스님은 설하고 있다.
선과 악, 사탄과 부처, 시비는 허황된 분별일 뿐 본모습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 성철 스님의 가르침이다. 죄의 유무나 지위의 높고 낮음과 무관하게 사람 그 자체는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고 보호받아야 할 소중한 생명임을 일갈하였다. 스님의 이러한 생명존중사상은 만물이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자신의 삶의 영역을 확보하고 공존하는 상생의 관계임을 강조하는 신년 법어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붉은 해가 푸른 허공에 빛나
험준한 산과 아름다운 꽃밭을 골고루 비추니
암흑이란 찾아볼 수 없으며
오직 광명만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에 일체가 융화하고 만법이 평등하여
바다 밑에서 불꽃이 훨훨 타오르고
불꽃 속에 얼음기둥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악마와 부처가 한 몸이요,
공자와 노자가 함께 가며 태평가를 높이 부르니
희유한 성인 세상이란 이를 말함입니다. ……
향기 가득한 황금독의 물을
앞집의 장 선생과 뒷집의 이 선생이
백옥잔에 가득 부어 서로서로 권할 적에
외양간의 송아지와 우리 속의 돼지가 함께 춤을 추니
참으로 장관입니다.
때때옷의 저 친구들은 앞뜰에서 뛰놀고
녹의홍상의 아가씨는 뒷마당에서 노래하니,
서 있는 바위 흐르는 물은 흥을 못 이겨서
환희곡을 합주합니다.” (1991년 1월1일, 신년 법어)
살아 번쩍이는 아름다운 화엄의 세계, 온 우주의 사물들을 아름다운 부처의 꽃으로 장엄되어 있음을 설하고 있다. 새해의 밝은 해가 온 우주를 두루 비추니 어둠은 사라지고 광명이 충만하여 ‘일체는 융화요, 만법은 평등’하다. 아울러 바다 밑에서 붉은 태양이 찬란하게 솟아오르고 그 불꽃 속에 얼음기둥이 높이 솟아 있다. 악마와 부처가 한 몸이고, 공자와 노자가 함께 어울려 태평가를 부르니 희유한 태평성대의 원융 살림이다. 뿐만 아니라 이웃지간에 황금독의 감로수를 서로 권하고, 축생들이 춤추며, 때때옷 입은 꼬마들이 뛰놀고 연두저고리와 다홍치마 입은 아가씨가 노래하는 세상이다. 이런 장관에 부동의 바위와 흐르는 물이 흥에 겨워 기쁨의 노래를 합주한다.
이러한 원음圓音의 노래는 우주 만물이 서로 비추고 비추는 동시에 하나로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말해준다. 이런 경지는 마음 밖에 경境이 없고 경境 밖에 마음이 없는, 마음과 경이 둘이 아님을 알 때 가능하다. 실로 깨달음의 선지가 번득이는 신년 법문에는 모든 대립적 경계선이 지워진 원융의 생명살림 미학이 있다.
무엇보다도 성철 스님은 내 안의 보물창고는 결국 마음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 핵심은 ‘마음을 본래 모습대로 닦으면 그것이 곧 부처’라는 것이었고 이를 닦는 방법이 바로 참선이었다. 이러한 스님의 법어 중 중요한 가르침의 하나는 자기를 바로 보는 것이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바로 본래 부처입니다.
자기는 항상 행복과 영광에 넘쳐 있습니다.
극락과 천당은 꿈속에 잠꼬대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고 무한합니다.
유형, 무형 할 것 없이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자기입니다.
그러므로 반짝이는 별, 춤추는 나비 등등이 모두 자기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모든 진리는 자기 속에 구비되어 있습니다.
만약 자기 밖에서 진리를 구하면,
이는 바다 밖에서 물을 구함과 같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오셨습니다.”
(1982년 부처님오신날 법어에서)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고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하고 무한하며, 모든 것은 자기 속에 구비되어 있음을 강조한 법문이다. 부처님은 중생이 본래로 성불한 것, 즉 인간의 절대적 존엄성을 알려 주려고 이 땅에 오셨음을 설하고 있다. 아무리 악하고 천한 사람이라도 인간은 모두 지고지선한 절대적 존재이다. 하여 이것이 부처님이 고창高唱하신 본래의 성불이다. 그렇다면 자기를 바로 본다는 것은 자신이 완전한 존재이고 지혜와 자비의 실천적 삶을 살아가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스님께서 이르신 “자기를 바로 봅시다.”는 가르침은 내 안의 부처를 찾으라는 가르침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만약 자기 밖에서 진리를 구하면, 이는 바다 밖에서 물을 구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세계일화世界一花’ 이는 온 우주는 오직 한 생명이고, 나의 밖에 남이 없다는 것이다. 성철 스님 역시 우주의 한 공간에 속에 있는 존재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조화로운 화엄의 세계를 ‘천지는 나와 같은 뿌리요, 만물은 나와 같은 몸’이라고 역설했다.
“천지는 나와 같은 뿌리요 만물은 나와 같은 몸입니다.
천지 사이에 만물이 많이 있지만은 나 외엔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남을 도우는 것은 나를 도우는 것이며,
남을 해치는 것은 나를 해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해치고자 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 이치를 깊이 깨달아 나를 위하여 끝없이 남을 도웁시다.”
(1981년 6월28일, 정초우 총무원장 취임식 법어에서)
나와 삼라만상은 모두 근원적으로 동일성을 지닌 생명 공동체이다. 자아가 동일시를 통하여 자신 아닌 존재들을 받아들임으로써 개체적 자아를 확장하여 큰 자아Self로 승화된다. 그 이면에는 차별과 대립을 넘어선 ‘천지만물이 한 몸’이라는 선지禪旨가 다분히 함축되어 있다. 천지만물은 크고 작음, 길고 짧음, 높고 낮음 등 천차만별로 나타나 같은 것이 없다.
그런데 중생들은 이 차별상에 집착해 망상을 일으키고 있다. 이 차별현상의 근원을 무아, 무심으로 찾아가면 일체가 같은 뿌리요 같은 본체임을 발견하게 되어, ‘천지와 나는 같은 뿌리요, 만물은 나와 한 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그러니 남을 도우는 것은 나를 도우는 것이며, 남을 해치는 것은 나를 해치는 것이라고 설파했던 것이다. 생명경시가 팽배한 오늘날, 성철스님께서 그토록 ‘삼천 배’를 강조한 것은 바로 진정한 참회와 비움의 자리에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며, 다른 생명이 귀하고 그 귀한 생명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일깨워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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