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주인공의 삶]
꽃놀이도 좋지만 선거일엔 투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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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6 년 4 월 [통권 제36호] / / 작성일20-07-21 16:44 / 조회6,350회 / 댓글0건본문
지난주에 꽃놀이를 다녀왔다. 전라도로 내려가 구례를 거쳐 섬진강을 끼고 하동으로 갔다. 마침 매화축제가 열려서 구경 온 사람들과 늘어선 임시 장으로 마을이 북적거렸다. 한참 동안 마을을 산책하면서 활짝 핀 매화의 자태를 눈에 담고 코에 가득 그 향기를 묻히며 하동은 축복받은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쪽으로 섬진강이 흐르는 가운데 천지를 하얗게 장엄한 마을이 강을 따라 길게 펼쳐진다. 서울에서 시멘트 박스 안으로 흐르는 한강만 보다가 모래강변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했다.
걷다 보니 허기가 느껴져 바로 옆 마을 구례로 가서 섬진강 명물인 재첩국을 먹었다. 중국산 냉동 재첩이라는 종업원의 말에 좀 실망을 했지만 고픈 배를 채우기에 충분했다. 구례는 장터로 유명한데 진열된 갖가지 물건들과 그 사이로 오가는 알록달록한 사람들이 그곳을 명물로 만들고 있었다. 하동이 매화의 일색장엄이라면 구례는 물산의 종종장엄이라 하겠다.
이처럼 섬진강변에 붙어 있는 하동과 구례는 이웃 마을이지만 하동은 경상남도요 구례는 전라남도다. 하동은 같은 경남인 부산보다 구례와 훨씬 가깝고 구례는 같은 전남인 목포보다 하동과 지척이다. 섬진강이 허리를 잘라달라고 말한 적이 없으나 사람들이 제멋대로 금을 그어 경상도니 전라도니 한다. 편의상 구역을 나눠놓은 것이지만 선거를 치를 때면 경남과 전남의 구분은 엄연히 실유하며, 그 구분은 효력을 가진다. 꽃 축제로 한창인 두 마을도 선거일이 되면 경상도 유권자로, 전라도 유권자로 표를 던질 것이다.
4년 만에 치루는 총선이 코앞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어느 때보다도 유권자는 고민스럽다. 국민의 밥그릇보다는 제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정치인들이 많아서 ‘그놈이 그놈’인 가운데 좀 덜 그런 놈을 찾자니 피곤하기 때문이다. 여당도 야당도 군소정당도 너무 복잡하다. 큰 정당들은 처음엔 상향식 공천과 당내 민주화를 부르짖더니 결과는 모두 하향식 공천이다. 공천에 명확한 기준이 있으면 좋으련만, 권세를 가진 사람 마음대로 하다 보니 승복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선거판이 더 시끄럽다.
각 당들이 불교계의 공천 시스템을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
기준이 명확한 공천을 불교계에서 찾자면 불멸 후 결집을 들수 있겠다. 경을 결집하는 일에 아난만큼 적임자는 없었을 것이다. 기능적으로만 보면 다문제일이 우선되어야 마땅하나 결집에는 기준이 있었으니, '아라한의 과를 얻은 자'만 참여할 수 있었다. 가섭이 권세를 휘둘러 아난을 배제한 것이 아니라 공천 시스템을 가동시킨 덕분에 불법이 유지되고 지금까지 우리가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를 들자면, 지금 불교계는 그렇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절에서 주지 등의 소임을 뽑는 데는 대방공사라는 시스템이 있었다고 한다. 대중이 다 모여서 공개적으로 후보를 추천하면, 이의제기를 받아 토의를 거쳐 다른 후보를 추천하든지 별 문제 없으면 신속히 결정한다. 임명장 같은 것도 없고 죽비 세 번 치는 것으로 대방공사는 마무리된다. 후보로 추천되었으나 직을 맡기 싫은 스님은 도망가기도 한단다.
이런 예로 해인사 율원장이었던 야반도주 일타 스님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말법의 사바세계 대한민국 선거에서 이런 수준을 기대할 수는 없다. 공천의 기준이 없다 보니 정책은 실종되고 인맥만 남았다. 인맥만 남다 보니 젊은이들에게 헬조선을 안겨준 기득권인 주제에 ‘내 나이가 어때서? 출마하기 딱 좋은 나인데!’를 내걸며 인맥을 타고 또 출마한 연쇄 출마범들도 많다. 그 인맥은 실로 연원과 갈래가 복잡하다. 여당은 친박과 비박으로 나뉘고 친박은 다시 진박, 비진박, 애박(애틋한 박이란다)으로 나뉘며, 비박은 배박, 탈박, 쪽박 등으로 분류된다. 산산조각이 난 야당은 더 말할 것 없다. 새로 생긴 작은 정당들은 흙수저당, 농민당, 비정규직철폐당 등 당명에서부터 정체성을 내세우며 각자 놀기도 하고 연합하기도 한다. 선거판이 쪼개지니 유권자의 고민은 더 깊어진다.
나는 요즘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정당들의 강령이나 정책들을 훑어보고 후보자에 대해서도 꼼꼼히 살펴보는 중이다. 젊었을 때는 선거일을 노는 날쯤으로 생각하던 내가 이렇게 고민하는 유권자가 된 데는 정치가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물론 근본적인 고통이야 부처님의 가르침만이 약이 되겠지만 정치가 당장의 불행과 미래의 불안을 어느 정도는 완화해줄 수 있다는 말이다.
나 혼자 겪는 문제는 아니지만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건 대체로 돈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가족에게서 무엇을 뺏어갈 수 있는지, 돈의 힘은 무자비하다. 가장이 되어 늙고 아픈 부모를 돌보며 살다 보니 부모를 원망하는 마음과 함께 국가의 존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내 부모는 몇 십 년 동안을 거르지 않고 납세의 의무를 다했는데 늙고 아플 때가 되어서는 나라가 별로 해주는 것이 없었다. 오랫동안 국민의 의무를 다한 분들이 늙고 아플 때 어째서 나라에서 돌봐주지 않는가 하는 원망이 들었다.
그런 중에 가끔 고마운 정책을 만났다. 암환자 본인 부담률을 깎아준 정책 덕분에 아버지 아플 때 빚을 덜 질 수 있었다. 몸을 쓰지 못하고 정신도 온전치 않은 엄마를 요양보호사가 매일 네 시간씩 돌봐준 일도 있었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한 달에 백만 원이 넘는 돈을 12만원에 해결할 수 있었다. 일년이면 천만 원, 삼년동안 서비스를 받았으니까 나라에서 삼천만 원을 준 셈이다. 요양보호사 제도가 없었다면 다니던 직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으니 고통은 가중되었을 것이다. 참 은혜로웠다. 세금을 냈으니 받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정책이 없었다면 고스란히 내가 떠안아야하는 부담이다. 이런 경험으로 정치가 중생의 고통을 덜어줄 수가 있고 어떤 정책은 보살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상할 대로 상한 마음을 추슬러 잘 가려 뽑는 것이 최선이다. 이번 선거는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다. 국회의원은 사회 전반을 위해 좋은 정책을 만들고 법안으로 통과시키며 피 같은 세금이 헛되게 쓰이지 않도록 심사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우리 동네에 나와 무관한 시설을 지어줄 사람보다는 의원 본분의 일을 잘할 후보를 골라야 한다. 도 닦을 때는 분별심을 버려야겠지만 선거에는 중생의 심량을 다해 분별력을 발휘해야 한다. 아무리 봐도 우리 지역 후보 중에 뽑아줄 사람이 없다면 할 수 없는 노릇이겠으나, 투표율 높은 것만으로도 정치인들을 긴장시키는 효과가 있으니 표는 던지고 볼 일이다.
거대 여당이 제 밥그릇 챙기자고 내건 캐치프레이즈를 유권자들에게 돌린다.
‘정신 차리자. 한방에 훅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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