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어록의 뒷골목]
한 방울의 물을 지키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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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연 / 2017 년 3 월 [통권 제47호] / / 작성일20-07-27 11:56 / 조회7,175회 / 댓글0건본문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은 대승불교의 핵심이 되는 논서다. 신라 원효 스님이 이에 대한 소(疏)를 붙여 우리 역사가 배출한 최고의 대사상가로 등극했다. 참다운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설명했다. 어느 종교나 근본은 믿음이다. 그저 부처님을 믿는 것이라면 이른바 ‘하나님’을 믿는 행위와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에 대한 믿음이 진짜 신심이다. ‘지금 내가 있는 그대로 한없이 깨끗하고 고귀한 부처’라는 확신. 기신론은 ‘본래부처’를 말하는 조사선의 이론적 준거로도 볼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믿으면 나의 삶에 만족하게 된다.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밥 먹을 입이 있으면 그게 축복이다. 범어사 승가대학장 용학 스님에게서 많이 배웠다. 해는 따뜻하고 달은 그윽하고 별은 아름답고 똥은 후련하다. 인생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모두 ‘한 글자’다. 이들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건실하다. 중생이 오판하고 실수하는 까닭은 ‘더 나은 나’에 대한 갈애 때문이다. 자성청정심의 지평에서 바라보면, 명성(名聲)은 망상이다. 입을 함부로 놀리면 주둥이가 된다. 더 먹겠다고 설치면 남들의 입은 죄다 주둥아리다. 그저 살아가고 있다는 게 바로 기적이다.
제78칙 운문의 호떡(雲門餬餠, 운문호병)
어떤 승려가 운문문언(雲門文偃)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와 조사의 경지를 뛰어넘는 말입니까?” 운문이 답했다. “호떡이니라.”
“거친 밥, 도정한 밥, 사람마다 자기 입맛 따라 취한다. 운문의 호떡이나 조주의 차 한 잔도, 이 암자의 무미식(無味食)만 하랴(麤也飡 細也飡 任爾人人取次喫 雲門糊餠趙州茶何似庵中無味食).” 고려 말기 태고보우(太古普愚) 선사가 지은 태고암가(太古庵歌)의 한 구절이다. 시적 화자의 안빈낙도를 떠받치는 근본은 ‘맛없는 밥’, 무미식이다. 모름지기 밥맛이 없어야 덜 먹게 되고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맛은 살을 부른다. 맛있는 밥은 알고 보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밥이다. 맛있는 밥만 찾아다니는 세태다. 방송은 ‘먹방’ 천지다. 이곳이 돼지들의 나라임을 인증하고 있는 셈이다.
운문 선사는 호떡을 입에 달고 살았던 인물이다. 물질로서의 호떡은 즐겨 먹었고, 언어로서의 호떡은 법문에 자주 썼다. 호떡을 씹으면서 “천신의 콧구멍을 물어 뜯는다.”고 농담했고 수행이 더딘 제자에겐 “호떡 값을 내놓으라.”며 다그쳤다. 그에게는 무엇이든 호떡이었다. 선악(善惡), 고저(高低), 미추(美醜), 자타(自他)가 전부 평범한 밀가루덩어리로 수렴된다. 호떡 이상을 바라지 않고 황금 보기를 호떡 보듯 하는 것이 행복임을 가르쳤다.
제79칙장사의 진보(長沙進步, 장사진보)
장사경잠(長沙景岑)이 어떤 승려를 시켜 회(會) 화상에게 묻게 했다.
“남전(南泉)을 보기 전엔 어떠했는가?”
회가 입을 다물었다. 승려가 다시 물었다.
“본 뒤에는 어떠한가?”
“딴 것이 있을 수 없다.”
승려가 돌아와 대화의 내용을 장사에게 전했다.
“100척 장대 끝에 앉은 사람이여, 비록 들어가기는 했으나 진실 되지는 못하군.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내디뎌야 시방세계가 온통 한 몸이리라.”
승이 물었다.
“어찌하면 그럴 수 있습니까?”
“낭주(郎州)의 산과 풍주(灃州)의 물이니라.”
“뭔 소리랍니까?”
“사해(四海)와 오호(五湖)가 왕의 덕화 속에 있느니라.”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천길 벼랑 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깨달을 수 있다는 뜻이다. “딴 것이 있을 수 없다”는 회(會)의 답변은 절반의 깨달음이다.
딴 것이 없다고는 했지만 ‘딴 것’이라는 분별심에 빠져있는 상태가 아닐는지. 벼랑 끝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떨어지는 것뿐이다. 그래야 비로소 세계가 나와 한 몸이 된다. 죽어서의 나는 속리산의 나무나 시화호의 쓰레기가 되어있을 것이다. ‘나’라고 하는 집착만 버리면 어디든 살 만한 곳이다. 나무는 도망갈 발이 없고 떠들어댈 입이 없어도 잘만 산다. 쓰레기는 하등의 쓸모가 없는 데도, 존재한다. 오래 전 티베트불교를 소재로 한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잊히지 않는다.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물을 지키고 싶다면? 바다에 던져버리면 되지.’
제80칙 용아가 판때기를 건네다(龍牙過板, 용아과판)
용아거둔(龍牙居遁)이 취미무학(翠微無學)에게 물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
취미가 말했다.
“나에게 선판(禪板)을 다오.”
용아가 집어서 취미에게 건네주니 취미가 들입다 선판으로 용아를 때렸다. 용아가 말했다. “때리기야 스승님 마음이겠소만 아직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 없소이다.”
이번엔 임제(臨濟義玄)에게 가서 똑같이 물었다.
“나에게 포단(蒲團)을 다오.”
임제가 받자마자 때렸다.
“아직도 서쪽에서 오신 뜻이 없어요.”
훗날 용아가 어느 절의 주지를 맡았는데 누가 물었다.
“두 어른의 눈이 밝던가요?”
“밝히기는 밝혔으나 아직 오신 뜻은 없다.”
선판(禪板)이란 오래 좌선을 하고 지칠 때 등에 기대어 쉴 수 있는 도구다. 포단(蒲團)은 좌선할 때 깔고 앉는 방석, 곧 좌복을 가리킨다. 여하간 수행에 필요한 물건들이 폭력에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용아는 아파도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았다. 결코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달마의 무심(無心)에 대한 고정관념에 빠져 있는 것이다.
작용즉성(作用卽性)은 조사선을 관통하는 정신이자 생활방식이다. 움직이고 말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바로 부처의 성품이라는 의미다. ‘부처님처럼 웃고 울 줄 아니까 우리도 부처’라는 절대평등의 논리가 성립할 수 있는 근거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는 게 부처의 마음이지 안 아픈 척 참고 있는 것이 반야(般若)는 아닐 게다. 참으면 병이 되거나 끝내 살인이 된다.
구태여 봄이 왔다고 신호를 보내지 않아도 숲은 알아서 봄을 맞아들인다. 봄이 그냥 오듯 꽃도 그냥 핀다. 반면 사람은 명당을 찾아 헤매다가 때를 놓치거나 뜬금없이 겨울에 피겠다고 야단들이다. 선판으로 맞아서 쑤시든 포단으로 맞아서 불쾌하든, 모든 아픔은 꽃이다. 금방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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