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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대승비불설론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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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14 년 7 월 [통권 제15호]  /     /  작성일20-08-24 09:15  /   조회5,58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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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비불설의 등장

 

조계종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은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비구들에게 설법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금강경> 뿐만 아니라 우리가 독송하는 거의 모든 대승경전들은 부처님의 설법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되는 이런 형식은 그 경전이 부처님에 의해 설해졌음을 강조하여 듣는 이에게 믿음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불교학에 문헌학이 접목되고 텍스트에 대한 고증이 치밀해지면서 불경의 성립시기가 하나씩 밝혀지게 되었다. 예를 들면 <법화경>이나 <화엄경>의 범어본을 언어학적, 문법학적으로 연구한 결과 이 경전들은 부처님 당시에 성립된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돌아가시고 약 5~6백년이 지난 뒤에 편찬된 경전임이 밝혀졌다.

 


부처님이 금강경을 설한 기원정사의 모습 

 

자연히 대승경전은 부처님이 직접 설한 경전이 아니라는 주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이 그것이다. 이 주장의 요지는 ‘아함’과 ‘니까야’만 부처님께서 직접 설한 경전이고 나머지는 불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근거로 대승경전에는 많은 부처님들(多佛)이 등장하고, 기복적 성격이 강하고, 스스로 불설을 강조하고, 중국에서 편찬된 여러 위경을 예증으로 든다.

 

대승비불설에 관한 논의는 이미 4~7세기경 인도에서부터 제기된 바 있고, 중국에서도 4세기 경 도안이 편찬한 <종리중경목록>에 30권이 넘는 위경이 등장한다. 도안은 위경은 부처님으로부터 전해진 경이 아닌 것으로 의심된다는 뜻에서 ‘의경(疑經)’이라 이름붙이고, 잡초를 솎아 내듯이 뽑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대에 와서 학계에서 일고 있는 대승비불설의 발신지는 일본이다. 일본에서 이런 주장을 가장 먼저 한 사람은 18세기에 활동한 도미나카 나카모도(富永仲基)로 알려져 있다. 그는 대장경 전반을 검토하고 집필한 <출정후어(出定後語)>라는 책에서 부처님께서 직접 설한 경전은 아함뿐이며 대승경전은 여기에 내용을 첨가한 것이라는 이른바 ‘가상설(加上說)’을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학계에 널리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문헌학적 고증이 뒷받침되기 시작한 20세기 초였다. 당시 많은 학자들이 대승경전을 연구한 결과 ‘대승경전은 부처님이 친히 설한 경전이 아니다’라고 판단하면서 대승비불설이 널리 회자되기 시작했다.

 

텍스트인가 가르침의 내용인가?

 

비불설로 분류된 경전에는 <능엄경>, <원각경>, <대승기신론> 등 동아시아 불교와 선종의 사상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경전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연히 이들 경전을 불설로 믿고 있던 불교계에는 커다란 파장이 일어났다. 신앙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자 일본의 저명한 불교학자 우이 하쿠주[宇井伯壽]는 ‘부처님의 근본사상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부처님의 중요한 사적(史蹟)을 기초로 당시 인도사상을 참고하고, 가장 오래된 초기경전의 내용을 종합하여 부처님의 근본사상을 찾고자 했다. 이런 과정에서 학계가 주목한 것이 율장(律藏)이었다. 율장은 시대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나 부처님 당시의 사실을 그대로 전하고 있는 문헌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율장에는 부처님께서 5비구에게 설한 최초의 설법으로 알려진 초전법륜(初轉法輪)이 수록되어 있고,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담겨 있다.

 

“세존이 다섯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출가자는 이변(二邊)에 친근치 말지니, 이변이란 고(苦)와 낙(樂)이니라. 여래도 이 이변을 버린 중도를 정등각(正等覺)했다 한다.”

 

율장에 기록된 최초의 말씀에서 부처님은 5비구에게 고(苦)와 낙(樂)이라는 두 가지 극단에 집착하지 말고 중도를 바르게 깨달으라고 설했다. <중론>에는 생멸(生滅), 단상(斷常), 일이(一異), 내거(來去)라는 여덟 가지의 이변이 등장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고락 두 가지만 등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수행자들이 고행을 수행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고락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이슈였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처음으로 법문을 하신 녹야원 

 

부처님은 당시 이분법적 변견의 핵심이 되고 있는 고락의 문제를 통해 고와 낙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중도의 가르침을 설하셨다. 따라서 여기서 고락은 선악(善惡), 시비(是非)를 비롯해 모든 극단적 사유를 대변하는 명제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부처님의 최초설법이 중도설법이고, 문헌학적으로도 가장 앞선 문헌에 기록된 법문이 중도이므로 불교사상의 핵심은 중도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초전법륜이 중도라는 내용이 등장하는 문헌은 <남전대장경> 율부 외에도 경전 성립사적으로 율장보다도 더 앞선 시기에 편찬된 &lt;숫타니파타&gt;에도 등장한다. <숫타니파타>의 「피안도품」에는 “양 극단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그 가운데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라는 중도사상이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가장 오래된 불교문헌을 토대로 볼 때 부처님의 최초 설법은 중도사상이므로 불교의 근본은 중도사상이라는 것이 성철 스님의 논지다.

 

나아가서 대승불교가 불멸후에 성립되고, 대승논사들에 의해 편찬된 경전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중도사상에 입각한 내용이라면 곧 불법의 핵심을 담고 있음으로 불설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으로 본다면 천태종과 화엄종, 나아가 선종 역시 중도사상을 근본으로 삼고 있음으로 이들 종파 역시 불교의 근본에 입각해 있다는 것이다. 성철 스님은 이런 논지를 토대로 “학자들이 잘 몰라서 대승불교를 의심하고 소승불교만이 부처님 불교가 아닌가 하고 연구해 보았지만 부처님의 근본불교가 중도사상에 있다는 것이 판명된 뒤에는 대승비불설은 학계에서 사라졌다.”고 강조했다.

 

대승은 근본불교 복구운동

 

대승비불설을 논하는 사람들은 대승불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용수의 사상에 대해서도 불교가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근본불교의 핵심이 중도사상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용수의 핵심사상이 중도이므로 용수는 부처님의 근본사상을 계승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한 발 더 나아가서 성철 스님은 “용수보살이 주창한 대승불교의 근본 뜻은 부파불교에서 벗어나 부처님의 근본불교로의 돌아가자는 복구운동”이라고 평가했다.

 

부파불교시대의 교리는 영원한 실체가 있다는 유견(有見)과 그런 것이 없다는 무견(無見)으로 갈라져 대립했다. 이를테면 부파불교는 유무(有無)라는 변견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설일체유부 등에서 ‘삼세실유 법체항유(三世實有 法體恒有)’라는 명제를 통해 삼세에 걸쳐 존재의 실체가 항존한다고 보았다. 존재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은 제법무아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비불설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용수는 <중론>과 <대지도론>을 저술하여 부처님의 근본사상인 중도를 천양한다. 따라서 용수의 중관사상은 부파불교의 왜곡된 유론을 논파하고 부처님의 근본으로 돌아가기 위한 운동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평가다. 이런 맥락에서 용수의 대승불교 사상은 ‘삿된 것을 부수고 바른 것을 드러냄[破邪顯正]’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용수의 대승사상은 유무에 사로잡힌 부파불교의 변견을 깨고 제법무아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로 세우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대승비불설의 요지는 대승경전이 부처님 당시에 성립되지 못했다는 문헌학적 비판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그런 관점에서 보면 소승경전 역시 각 부파에서 편집되어 전승되었다는 반론에 직면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내용이 가필(加筆) 또는 개필(改筆)되면서 부처님 당시의 내용이 그대로 전승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부처님 당시에 완성된 문헌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무엇이 불법의 핵심 가르침이냐일 것이다. 성철 스님은 대승경전이 비록 시대적으로는 후세에 성립된 문헌이 맞지만 사상적으로 보면 대승불교야말로 부처님 근본사상을 정통적으로 계승한 불교라고 옹호하고 있다.

 

대승비불설 비판의 의의

 

붓다는 “연기(緣起)를 보는 자 여래를 본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연기를 깨닫고 그와 같은 가르침을 담고 있다면 그것이 곧 여래의 말씀이고 불전(佛典)일 것이다. 설사 아함과 니까야를 마르고 닳도록 외워도 연기적 사유와 실천이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비불설이다. 뗏목은 강을 건너는데 목적이 있다. 경전 또한 텍스트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말씀을 담아 전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뗏목이 아니라 뗏목에 실려 전해진 가르침에 주목하는 것이 맞다.

 

불법의 핵심은 텍스트 속에 있지 않기 때문에 선사들은 오히려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지향했다. 만약 문자에 속박되어 있다면 설사 니까야의 홍수 속에 살아도 마음의 평화와 행복은 없을 것이다. 부처님의 마음을 알고, 삶 속에서 그것을 실천한다면 대승경전 아니라 위경을 읽어도 불법은 오히려 그곳에 있을 것이다.

 

최근 학계와 교계 언론에서 대승비불설을 둘러싼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성철 스님은 적어도 우리 학계보다 수십 년 앞서 대승비불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할 것인가에 대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불교사상의 핵심이 중도라고 규명하고 그것을 계승하고 있는가 아닌가가 불설과 비불설을 나누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논쟁을 넘어 불설과 비불설을 바라보는 원칙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해야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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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불교평론>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성철사상연구원 연학실장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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