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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경안輕安, 마음에 날개 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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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20 년 8 월 [통권 제88호]  /     /  작성일20-08-28 12:12  /   조회6,943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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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크고 무거운 것은 활동성이 적고 정체되는 경향이 있다. 바람은 창공을 자유롭게 떠돌고, 시냇물은 대지를 휘돌아 드넓은 바다로 흘러간다. 하지만 크고 무거운 돌은 늘 그 자리에 정체되어 있다. 물결 따라 굴러가는 모래와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지만 정체된 바위에는 이끼와 먼지가 끼는 법이다. 『금강경』에서 ‘머물지 않는 마음[無住心]’을 강조하는 것도 사람의 마음도 정체하면 번뇌의 이끼가 끼고 병이 되기 때문이다. 

 

무겁고 처지는 마음

 

사람들은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마음이 무겁다’라거나 ‘침울沈鬱하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감정이 상하거나 걱정 근심이 생기면 마음이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무거운 돌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듯이 마음도 무거워지면 침잠하고 가라앉는다. 그 때 마음은 마치 돌덩이에 짓눌린 것 같이 가슴이 답답해진다. 자연히 일에 대한 의욕도 사라지고 무기력하게 침잠하게 된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하고 흘러가는데 마음이 정체되면 뒤처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마음이 무겁게 처지는 것을 방치하면 마음에 병이 됨은 물론 삶을 갉아먹게 된다.

 

일체유심조라고 했듯이 인간의 삶에서 모든 것을 주도하고 결정하는 것은 마음이다. 마음은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설계자이자 행위를 통제하는 지휘소와 같다. 따라서 마음이 침울하게 가라앉으면 부정적 에너지에 지배받게 되고, 의욕은 사라지고 부정적 감정에 포로가 되고 만다. 목동이 고삐를 움켜쥐고 소가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게 하듯이 마음이 무거운 번뇌에 걸려 가라앉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무겁게 침잠하는 마음을 가볍고 유연하게 전환하는 것이 중요함으로 유식唯識에서도 이를 다스리는 선심소善心所가 제시되어 있다. 선심소의 여덟 번째 항목인 ‘경안輕安’이 그것이다. 현장 스님이 번역한 『성유식론』에 따르면 경안이란 “거칠고 무거운 번뇌를 멀리 하고[遠離麤重] 몸과 마음을 조율하여 유연하게 펴고[調暢身心] 선법을 감당하는 성품[堪任爲性]으로 혼침을 다스려[對治惛沈] 전환하는 것이 업[轉依爲業].”이라고 설명했다. 또 『대승아비달마잡집론』에서는 그냥 ‘안安’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몸과 마음의 무거운 번뇌를 멈추게 하고[止息身心麤重], 몸과 마음을 조율하여 유연하게 펴는 것을 본체로 삼으며[身心調暢為體], 모든 장애를 제거하는 것을 업으로 한다[除遣一切障礙為業].”고 설명하고 있다.

 

가볍고 평온한 마음

 

위 논소의 내용을 정리하면 경안심소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원리추중遠離麤重으로 ‘추중을 멀리 하는 것’이다. 여기서 ‘추중麤重’이란 거칠고 무거운 번뇌에 의해 마음이 결박된 상태를 말한다. 두려움에 짓눌리거나 큰 걱정거리나 업무에 대한 중압감에 시달리면 가슴에 돌덩이가 들어있는 것 같이 느껴지고, 자연히 몸과 마음이 경직되어 움츠려 들게 된다. 경안에서 ‘경輕’은 ‘가볍게 한다’는 뜻이므로 크고 무거운 번뇌를 제거하고 몸과 마음을 가볍고 유연하게 전환하는 것이 경안의 핵심이다. 따라서 경안은 마음을 깃털처럼 가볍게 만드는 것이며, 마음에 날개를 달고 번뇌의 늪에서 날아오르게 하는 것이다.

 

둘째는 조창신심調暢身心으로 ‘몸과 마음을 잘 조율하여 유연하게 편다’는 뜻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표현이 바로 ‘창暢’이다. 이 글자는 ‘펴다’, ‘마음이 누그러지다’, ‘통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크고 무거운 번뇌가 가슴에 가득하면 자연이 마음이 짓눌려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이 느껴진다. 신체의 신진대사도 둔해져 체증滯症도 자주 발생하게 된다. 경안이란 그와 같이 종잇장처럼 구겨진 마음을 매끈하게 풀어주고, 기와 혈액 등이 잘 소통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가볍고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다.

 

셋째, 감임위성堪任爲性으로 무엇이든 잘 감당해 내는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다. ‘감임堪任’이란 ‘감당하다’, ‘일을 잘 해내다’라는 뜻이다. 거칠고 무거운 번뇌가 가득 차 있으면 마음 씀씀이에서도 여유가 사라진다. 번뇌 덩어리가 마음을 차지해 버렸기 때문에 심리적 여유는 사라진다. 자연히 작은 일에도 화를 내거나 쉽게 좌절에 빠지는 등 속 좁은 언행을 하게 된다. 반대로 번뇌를 제거하고 여유가 생기면 나쁜 일을 당해도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는 아량이 생겨난다. 이처럼 마음이 넓어져 자기 앞에 놓인 상황을 감당해 낼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향상시켜 주는 것이 감임이다. 번뇌를 비우면 마음의 용적이 넓어지고, 그로 인해 유연함이 생겨나고, 결과적으로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넷째, 대치혼침對治惛沈으로 ‘혼침을 다스리는 것’이다. 세친의 『아비달마구사론』에 따르면 혼침이란 “몸과 마음의 무거운 성질[重性], 몸과 마음의 유연하지 못한 성질[無堪任性], 몸과 마음의 혼미하고 침울한 성질[惛沈性]”이라고 했다. 몸과 마음이 무겁고, 유연하지 못하고, 혼미하게 가라앉은 상태가 혼침이다. 추중의 상태처럼 번뇌에 마음이 짓눌려 작은 일에도 화를 내거나 의기소침해짐으로 상황을 감당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경안은 이런 심리상태를 치료하여 마음을 가볍고 유쾌하게 만드는 것이다.

 

마음에 날개 달기

 

마음이 번뇌로 인해 무거워지면 표정도 무겁고 침울하게 변한다. 화를 잘 내게 되고, 자존감이 줄어들고, 소외감에 시달리게 되어 상황에 대응하는 역량이 떨어진다. 반대로 경안은 마음을 가볍고 여유롭게 하는 것이다. 마음이 경쾌하고 아량이 넓은 사람은 역경이 닥쳐도 좌절하거나 무너지지 않고 슬기롭게 극복해 내는 능력을 발휘한다.

 

나아가 밝고 경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도 평화와 행복을 느끼게 해 준다.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말은 부드럽고, 행동은 따뜻하다. 이런 행동거지는 재물을 갖지 않고도 보시를 실천하는 무외시無畏施와 다를 바 없다. 문수 동자 게송에도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面上無嗔供養具]’라고 했다. 밝은 표정으로 사람을 대하고, 따뜻하게 말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무한한 보시를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과 다름없다.

 

다만 유식의 경안심소는 선심소의 특징에 대해 논할 뿐 어떻게 그런 마음으로 전환시킬 것인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마음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것이지 수행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안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거운 번뇌를 털어내고 날개를 단것처럼 마음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마음의 수행이 필요하다.

 

첫째, 바른 진리에 입각해 보고 생각해야 한다. 번뇌는 집착으로부터 생기고, 집착은 무명無明으로부터 생긴다. 따라서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라는 제법의 실상을 바로 보는 지혜의 눈을 떠야 한다. 지혜의 눈으로 보면 어리석음이 사라지고, 부질없는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부정적 대상[境界]에 마음이 물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금강경』에서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모든 상相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에고와 자기중심적 고정관념을 버리라는 것이다. 나라는 에고를 버리고, 무아無我의 이치를 통달하면 감정을 자극하는 부정적 대상[逆境界]를 만나도 마음이 물들지 않고, 감내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난다.

 

셋째, 바른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발심發心과 원력願力을 세우는 것이다. ‘어떻게 머물러야 하는가[應云何住]’라는 수보리의 질문에 대해 부처님은 일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마음을 내라고 하셨다. 자기중심적 생각에서 탈피하여 모든 중생의 행복을 추구하는 자비의 원력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질 때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을 허공처럼 넓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우화등선羽化登仙이라는 말이 있다. 날개가 돋아나 하늘로 승천하는 신선을 말한다. 질척거리는 번뇌의 늪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이 되려면 경안이라는 날개가 필요하다. 다만 우리를 비상하게 하는 날개는 어깨에 돋아나는 그런 날개가 아니다. 그 날개는 대상을 바라보는 지혜로운 눈이며, 상황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의 씀씀이다. 불법을 공부하고 수행하는 것도 결국은 마음에 그와 같은 날개를 다는 과정이다. 지혜와 자비라는 두 날개를 달고 번뇌의 늪에서 훨훨 날아오르는 것이 불자가 지향하는 삶이다.

 


경주 남산 마애불입상, 통일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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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불교평론>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성철사상연구원 연학실장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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