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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 비구니 혜해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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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20 년 8 월 [통권 제88호]  /     /  작성일20-08-28 14:10  /   조회31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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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4일 10시30분 제 핸드폰에 보내진 사진 두 장을 뒤늦게 보게 되었습니다. 한 장은 흐린 하늘에 햇무리가 떠 있는 모습이고, 한 장은 스님의 사리 사진(사진 1)으로 그중 몇과의 사리는 영롱한 에메랄드 구슬 같은 신기한 모습이었으며, 30여과가 넘어 보였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도 혜해 스님(사진 2·3)이 열반에 드신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죄송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비구니 혜해 스님은 향곡 큰스님을 스승으로 지극히 모시며 평생을 수행한 스님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다 알려진 것처럼 영천 은해사 운부암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향곡 스님과 성철 스님은 평생 도반으로 함께 지내신 분입니다. 봉암사 결사도 함께 하셨습니다. 봉암사 백련암에서 3주간의 용맹정진 끝에 깨치신 향곡 스님은 성철 스님과 온 산이 떠나가는 쩌렁쩌렁한 소리로 법담을 나누기도 하셨습니다. “이런 모습은 지금도 또 보고 싶은 광경”이라고 묘엄 스님은 자서전 『회색 고무신』에서 밝혀놓고 있습니다.

 

  향곡 큰스님은 일 년에 3-4번은 백련암에 오셨고, 혜해 스님도 일 년에 몇 번 백련암에 찾아 오셨습니다. 당시 저는 백련암 행자였기에 혜해 스님을 뵈올 수가 있었습니다. 1978년 향곡 큰스님께서 세수 67세, 법납 50세로 열반에 드신 뒤 혜해 스님의 발걸음도 뜸해 지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혜해 스님의 상좌 되는 법념 스님이 경주 동리목월문학관에서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에 글쓰기를 직접 배워 불교신문에 ‘향곡 큰스님 일화’를 2년6개월 가까이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읽을 때마다 저는 순정純正한 혜해 스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연세가 많으실 텐데 편안하신가?”하고 떠올리곤 했습니다. 

 

a762ef44eab5c085aca3f1b6818948ba_1598591356_4414.jpg 혜해 스님

 

 

  그랬던 스님인데 2020년 5월29일 오후 9시30분 세수 100세 법납 77년으로 “유골은 금강산에 뿌려 달라.”는 말씀을 남기고, 경주 천경림 흥륜사 법기암에서 고요히 원적에 드셨다는 소식을 늦게야 들은 것입니다. 마침 소납이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본부장을 맡고 있기에 “문도 스님들의 뜻이 제일 중요한데, 남북 사이에 자유왕래가 이루어질 때 종단이 앞장서 혜해 노스님의 부도탑을 신계사에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민추본의 본분일 것이다.”고 생각했습니다. 혜해 노스님의 행장을 간략히 소개합니다.

 

“보주당寶珠堂 혜해慧海 스님은 1921년 4월27일 평안북도 정주군 안흥면 안의동에서 1남 3녀 가운데 삼녀로 태어나셨습니다. 1944년 24세 되던 음력 7월 초하루 금강산 신계사 법기암의 대원 스님을 은사로 행자 생활과 사미계를 수지하셨습니다. 금강산 신계사에서 참선수행 하시던 중 해방을 맞았고, 휴전선으로 남북이 막히고 금강산이 무無도덕, 무無종교, 무無자유의 세상으로 바뀌자, 1946년 10월 자유로운 수행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남쪽으로 내려오시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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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해 스님의 사리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으셨고, 28세 때 해인총림에서 효봉 스님의 각별한 지도하에 용맹정진을 시작하셨습니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전란을 피해 묘관음사로 내려가신 혜해 스님은 향곡 큰스님을 친견한 후 새로 화두를 받으시고, 향곡 큰스님을 선지식으로, 화두를 생명처럼 여기며 제방선원에서 묵언과 장좌불와 등 오로지 참선수행에 매진하셨으며, 부도암에서는 용맹정진 중 향곡 큰스님과 법거량을 하기도 했습니다. 

 

  1971년 향곡 큰스님께서 주석하고 계셨던 경주 이차돈 성사의 순교지, 천경림 흥륜사에 비구니 선원을 개원하셨습니다. 1980년부터 흥륜사 천경림 선원의 선원장 소임을 맡아 결제해제 없이 20여 명의 수좌들이 수행정진 할 수 있도록 늘 죽비를 놓지 않으시며 평생 대중 스님들의 정진을 독려하셨습니다. 스님께선 ‘수좌는 한순간이라도 화두를 놓치면 시체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날 스님께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선방에서 정진 중 흥륜사 선방에서 방광의 빛이 환희 솟으니 동네 사람들이 흥륜사에 불이 났다고 신고해 소방차가 불 끄러오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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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해 스님(가운데)

 

  평소에 신계사 복원과 금강산에 사시기를 염원하셨는데, 2004년 4월에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이 북측과 협의해 금강산 신계사 복원불사를 시작하게 되니, 남북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한 기도에 동참하셔서 스님께서는 꿈을 이루게 되셨습니다. 스님께선 당시 86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2007년 10월 신계사 불사 낙성법회가 열리는 날까지 거의 4년간 신계사에 머물며 남북이 하나 되고 세계가 평화롭기를 기원하며 기도하셨습니다. 뵈면 뵐수록 존경심과 환희심이 더욱 일어나게 하는,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참되고 고귀한 스님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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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금강산 신계사 전경

 

  상좌 스님들이 “스님의 사리를 다 수습하면 90여 과 정도 될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진 속의 사리는 대단히 영롱하고 빛이 났습니다. 혜해 노스님의 상좌인 법경 스님은 “문중 스님들이 노스님의 법골法骨과 사리를 금강산 신계사에 모시는 것을 주저하신다.”며 “제가 은사 스님의 법골과 사리 5과를 잘 시봉하여, 금강산 신계사(사진 4) 법기암에 스님의 부도탑을 언젠가 꼭 모시겠다는 원력을 단단히 세우겠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문도 스님들이 큰 법공양으로 생각하시고, 혜해 노스님의 법골法骨과 더 많은 사리를 준비해 두셨다가, 남북교류가 활성화될 때 금강산 신계사에 모시면 남북불교교류에도 크나큰 복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는 7월16일부터 49일간 경주 흥륜사 법당에서 혜해 스님의 사리친견 법회가 거행된다고 합니다. 사부대중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많이 참배해 주시기 바라며, 혜해 노스님의 부도탑이 금강산에 세워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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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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