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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산중공양을 회향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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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20 년 9 월 [통권 제89호]  /     /  작성일20-09-21 13:58  /   조회7,898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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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크게 유행해 세계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 납승의 가슴을 무엇보다 철렁이게 한 것은 세계의 모든 공항에 멈춰 서있는 비행기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세계의 관광산업이 멈춰 서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충격적인 생각도 떠올랐습니다. 사실 코로나19 유행으로 일어난 생활의 변화는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올해 초파일 행사도 큰 경험이었습니다. 올해는 마침 윤달 4월이 있는 해라 다행이었습니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께서 종단협의회 회장단과 의논해 원래 부처님오신날인 4월30일(음 4월8일)의 행사를 1달 뒤인 5월30일(윤 4월8일)로 연기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동안 질병관리본부의 코로나19 방역 지시에 따라 전국의 모든 사찰이 법회를 중지하다시피 했기에 사찰에 오는 신도님들이 뚝 떨어져 버렸습니다. 초파일 행사에서 제일 중요한 연등 달기에 신도님들이 제대로 참가하지 않아, 각 사찰 주지 스님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던 때, 한 달이라는 시간이 다시 주어진 셈이니, 주지 스님들의 마음이 한결 누그러지는 듯했습니다.

 

 


8월 7일 해인사 공양실에서 진행된 '백련암 산중공양'에 참석한 스님들. 사진=해인 편집실 장혜경. 


그러나 혼신의 힘을 기울여 준비했던 제등행렬도 취소되고 각 절마다 질병관리본부의 예방규칙을 지켜야 되니, 부처님오신날에 적어도 50% 이상의 신도님들이 사찰을 찾지 않았습니다. 초파일날 신도님들에게 특히 실망을 안겨드린 일은 점심공양으로 밥을 드리지 못하고 떡을 비닐 팩에 싸드린 것입니다. “사월 초파일에 불자든 아니든 나라의 백성들은 절집에 가서 비빔밥 한 그릇 잘 먹고 와야, 초파일 하루를 기쁘게 잘 보내는 것이다.”는 우리 민족의 핏속에 흐르고 있는 통념이 깨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스님들은 허허롭고 민망하고, 신도님들은 색다른 풍경에 여간 실망하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은 준비한 만큼 융성하게 치러지지 못하고 약간은 어수선한 채 지나 가버렸습니다.  

 

  한편, 하안거동안거 결제를 하면, 해인사의 비구 스님이 있는 암자가 주최해 결제에 참여한 비구비구니 스님들과 암자의 상주 대중, 산중의 어른스님들, 사중寺中의 소임스님 등을 초청하여 점심 한 끼를 잘 대접하는 풍속이 있습니다. 이를 ‘산중공양’이라고 합니다. 해인총림이 출범한 이후 첫 ‘산중공양’을 올린 암자가 홍제암이었다고 합니다. 백련암은 큰스님 생전에는 ‘산중공양’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부터 ‘산중공양’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산중공양’을 올릴 만한 공간과 손들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큰스님 열반에 드실 때쯤 건물이 몇 동 늘어 대접할 공간이 확보되었습니다. 무엇보다 1993년 11월4일에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7일장을 치르는 동안, 산중의 비구비구니 스님들이 10여 일 동안 밤낮없이 고생하셨기에 큰스님의 다비식이 법답게 잘 치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해 동안거부터 백련암도 ‘산중공양’ 행사에 참석하게 되어 26년 동안 계속하여 오고 있었습니다. 

 

  


음식들이 차려진 상. 사진=[해인] 편집실 장혜경. 

 

 

  올해도 하안거 중에 ‘백련암 산중공양’을 위해 백련암 임원진 보살님들과 의논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로 장소가 부족해, 해인사 큰 식당에서 원당암 산중공양을 거행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소식을 들은 백련암 신도들은 모두 웃음을 띠며 박수를 짝짝 쳤습니다. “우리도 회주 스님 눈치 보며 이말 저말을 못 드리고 있었습니다. 명예 회장님은 큰스님 열반에 드셨을 때가 62살이셨는데 지금은 89살이고, 그때 60대는 지금은 80대고, 그때 50이던 회주스님은 77살이 되셨으니, 이제 우리들도 70, 80, 90 밑자락을 깔아놓고 있습니다. 이런 나이로 50·60대처럼 도마에 칼질하기도 힘듭니다. ‘우리들의 세월’도 이렇게 지나갔으니, 올해부터 백련암 산중공양은 해인사 큰 식당에서 매년 하는 것으로 결정했으면 합니다.”고 회장님이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백련암 산중공양’을 8월7일 오전 11시부터 13시까지 해인사 큰 식당에서 300인분이 넘는 양을 준비해 진행했습니다.

 

  큰절에서 처음 하는 ‘산중공양’이라 걱정도 많았습니다. 백련암에서 하던 산중공양은 백련암 보살님들의 음식솜씨를 자랑할 기회이기도 하고, 수행하는 스님들에게 한 끼를 잘 대접해야 한다는 그 한 생각으로 지극정성으로 준비했는데, 외부의 사찰음식 전문점에 부탁하면 “과연 정성이 배인 음식이 나올까?” 하는 염려가 마음에 가득했습니다. 해인사 교무국장 일엄 스님이 “얼마 전 학승 스님이 경주에 있는 사찰 음식 전문점인 향적원의 혜연 스님에게 부탁해 산중공양을 했는데, 대중 스님들께서 만족하시게 드셨습니다. 그곳으로 정하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해, 향적원 솜씨에 산중공양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8월 7일 해인사 공양실에서 진행된 '백련암 산중공양'에 참석한 스님들. 사진=[해인] 편집실 장혜경. 

 

  사실 요즈음 사찰음식이 세상에 많이 소개되어 사회적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중에 알려진 사찰음식은 고급스럽게 보이기는 해도 산중의 스님들이 드시는 일상의 사찰음식과는 거리가 있는 듯합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향적원의 음식들은 전통의 가식 없는 맛 그대로여서 모이신 스님들에게 대접은 된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어른 스님들 상床은 사찰 식으로 정갈하게 차리고, 대중 스님들은 뷔페식으로 30여 가지 반찬과 과일, 떡, 수정과 등등으로 푸짐하게 준비했습니다. 산중공양에 오신 스님들은 “잘 먹고 간다.”고 덕담을 주셨는데, 비구니 스님들의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습니다.

 

  하루가 지나 경주에 있는 어느 비구니 스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약수암 노스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어제 백련암이 ‘산중공양’을 큰절 큰 식당에서 거행했는데 너무너무 잘 차려있어 잘 먹고 왔다, 먹기만 잘한 것이 아니고 남은 장아찌 반찬들과 쌈장들을 다 싸가지고 왔다, 과일과 떡들도 마음껏 먹고 싸가지고 왔다고 하십니다. 백련암 신도들이 대중 스님들을 위해 늘 산중공양에 정성을 쏟더니, 어제 큰절 대중공양에도 정성을 많이 써 비구니 스님들이 다들 좋아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스님! 감사드리고 수고하셨습니다.”는 내용입니다. 코로나19로 백련암 산중공양이 한 시대의 막을 내리는 사연을 말씀드렸습니다. 지금은 8월이지만 『고경』을 받아 보실 때면 9월에 가까워있으리라 봅니다. 맑은 하늘을 보며 의미 있는 사색을 하는 가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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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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