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법문 해설]
행사行捨, 호수처럼 평온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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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20 년 10 월 [통권 제90호] / / 작성일20-10-21 10:36 / 조회8,613회 / 댓글0건본문
연초에 설을 쇠기 위해 고향을 방문할 때만 해도 코로나19는 먼 나라 일로만 여겨졌다. 그러다 신천지 교회에서 감염자가 폭발하면서 코로나19는 갑자기 우리들의 문제가 되었다. 그래도 그 고비만 잘 넘기면 일상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실제로 방역당국과 온 국민이 노력한 덕분에 우리는 이른바 ‘K방역’으로 칭송받으며 위기를 잠재웠다. 나아가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도 OECD 국가 중 성장률 1위를 달성하며 일상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대상에 흔들리는 마음
그러나 그것은 성급한 희망이었다. 전국의 교회에서 동원한 인파가 광화문에서 집회를 강행하면서 코로나19는 들불처럼 다시 번졌다. 겨우 버티고 있던 수많은 소상공인들은 다시 가게 문을 닫거나 영업을 단축하면서 폐업의 위기로 내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범을 보여야할 교회가 현장예배를 고집하면서 사람들의 가슴에는 분노가 쌓여 갔다.
올 한 해 우리는 이렇게 기대와 희망으로 들뜬 상태와 절망과 분노로 침잠하는 심리상태가 교차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삶에서 느끼는 이와 같은 감정의 기복은 수행에서도 중요한 이슈가 된다. 마음이 차분하고 안정되지 못하고 들떠 있는 불안한 상태를 도거掉擧라고 한다. 번뇌의 대상에 마음이 자극받아 요동치며 들떠 있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반대로 침울한 감정에 빠져 가라앉아 있는 상태를 혼침昏沈이라고 한다. 이 두 심리상태는 어느 것도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행은 이와 같은 극단적 심리상태를 다스려서 고요하고 평온하게 머물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들뜬 마음과 침울한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선심소의 열 번째에 해당하는 ‘행사行捨’이다. 한자의 의미 그대로 해석하면 ‘버림의 행함’ 또는 ‘내려놓음의 실천’ 정도가 된다. 이런 맥락에서 성철 스님도 행사에서 버려야할 대상은 혼침昏沈과 도거掉擧라는 부정적 감정이라고 설명했다. 설일체유부에서도 혼침과 도거에서 벗어난 마음을 행사라고 정의하고 있다. 도거와 혼침은 수행자를 괴롭히는 마음의 장애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고요하게 유지하기
상술한 바와 같이 행사라는 한자의 의미는 ‘버림’, ‘내려놓음’ 등이다. 하지만 행사에서 ‘행行’은 오온 가운데 행온行蘊에 포함된 심소라는 의미다. 이와 대비되는 말이 바로 ‘사수捨受’이다.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뜻하는 사수는 수온受蘊에 포함된다.
『성유식론』에는 행사로 표기되어 있지만 다른 문헌에서는 주로 ‘사(捨, upekṣa)’라고만 표기되어 있다. 번뇌를 내려놓거나 버리면 자연히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해진다. 여기서 행사는 ‘버리다’는 의미에서 확장되어 ‘평정심’ 또는 ‘평온’ 등의 의미를 내포하게 되고, 종국적으로 ‘마음을 고요하게 유지하는 상태’를 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행사는 마음이 언제나 고요한 상태인 ‘적정寂靜’, 마음을 항상 고요히 유지하는 ‘정주靜住’, 마음이 늘 고요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적정이주寂靜而住’ 등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행사는 어떤 실체적 심소가 있어서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는 것은 아니다. 『성유식론』에 따르면 행사에 대해 “별도의 실체는 없다[無別體].”고 했다. 즉 마음을 고요히 하는 행사라는 별도의 심소나 기능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사가 마음을 평정하게 하고 고요히 할 수 있을까? 『성유식론』의 설명을 따르면 행사의 특성과 역할은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행사는 네 가지 선심소를 활용하여 마음을 고요히 머물게 한다. 즉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행사의 본질은 정진精進, 무탐無貪, 무진無瞋, 무치無癡라는 4가지 선심소이다. 이들 네 심소를 통섭하여 마음을 고요하고 평화롭게 하는 것이 행사인 셈이다. 다시 말해 탐·진·치 삼독심을 잘 다스리고, 그런 다스림을 게을리 하지 않고 꾸준히 정진해 나갈 때 마음에서 번뇌가 사라지고, 평화롭고 고요한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이들 네 가지 법을 떠나서 행사라는 심소의 실체가 있거나 작용이 있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둘째, 행사는 도거를 다스려 “마음을 고요히 머물게 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靜住為業].” 번뇌의 대상에 자극받아 들뜬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리는 것이 행사의 핵심적 작용[業]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행사는 대상에 대한 선善과 불선不善 등의 갖가지 생각을 모두 ‘버림’ 또는 ‘내려놓음’을 통해 “도거 등의 장애를 멀리 여의고[遠離掉舉等障] 마음을 고요히 머물게 하는 것[靜住].”이다. 이를 통해 마음이 평등平等과 정직正直을 얻어서 번뇌의 대상에 자극받아 요동치는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 행사의 주요 작용[業]이다.
마음을 고요하게 유지하는 3 단계
『성유식론』에 따르면 행사는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은 정도에 따라 평등平等, 정직正直, 무공용주無功用住라는 세 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세친의 『대승오온론』에서도 행사는 “네 가지 선심소에 의지하여 마음의 평등성[心平等性], 마음의 정직성[心正直性], 마음의 무발오성[心無發悟性]을 얻는다.”라며 세 단계를 설명하고 있다.
제1단계는 평등平等을 얻은 경지를 말한다. 여기서 평등이란 도거와 혼침, 좋고 나쁨, 선善과 불선不善, 이익과 손해와 같은 분별심分別心을 떨쳐버리고 대상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이 들떠 있거나 침울하게 가라앉는 것은 모두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과 같은 차별심에 의해 빚어진다. 따라서 치우친 생각 없이 대상을 바라보는 평등한 마음을 얻으면 번뇌의 대상에 물들어[雜染] 마음이 침잠하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렇게 번뇌의 대상에 물듦에서 벗어남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것[相續]이 평등한 마음이다.
제2단계는 정직正直을 얻은 상태를 말한다. 내 마음에 욕심이 가득하고 삿되고 왜곡되어 있으면 자연히 갖가지 대상에 쉽게 물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 마음이 바르고 올곧으면 갖가지 대상에 마음이 현혹되거나 물드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마음이 바르고 곧으면 행여 대상에 물들지 않을까 염려하는 ‘두려운 마음[怯慮]’도 사라진다. 자신이 바르고 올곧기 때문에 번뇌를 유발하는 대상에 마음이 휘둘리지 않기 때문이다.
제3단계는 무공용주無功用住를 얻은 상태를 말한다. 무공용無功用이란 힘써 노력하는 등 공용功用을 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번뇌의 대상을 향해 자기 의도대로 하려고 애를 쓰거나 무엇을 얻으려고 발버둥치지 않음으로 마음이 항상 고요하고[寂靜], 고요함에 안주[靜住]하게 된다. 『대승오온론』에는 ‘무공용주’를 ‘심무발오성心無發悟性’이라고 표현했는데 의미가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즉 마음이 ‘경계의 자극을 받아도 나쁜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 성품’을 말한다. 이 보다 더 구체적인 표현이 『현양선교론』에 등장하는 ‘심무발동心無發動’이다. 즉 ‘마음이 번뇌의 대상을 만나도 동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상의 세 단계 중에서 마지막 단계인 심무발동의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마음이 번뇌의 대상에 오염되지 않고 고요히 머무는 ‘불염오주不染污住’가 가능하다고 했다. 평등과 정직의 단계에서는 부분적으로 물듦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행사의 핵심은 마음이 ‘좋다’, ‘나쁘다’와 같은 분별심을 버리고 대상을 평등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마음이 정직하여 사악한 생각이 없고, 온갖 대상에 자극받지 않고 마음이 고요히 안주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대승오온론』은 이런 행사의 마음상태에 대해 ‘물들지 않고 평안하게 머문다[無染安住]’라고 설명하고 있어 선종에서 말하는 ‘무념無念’과 의미가 상통함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이 나쁜 경계나 좋은 경계에 물들게 되면 자연히 마음이 들뜨는 도거의 상태가 되거나 또는 침울하게 가라앉는 혼침의 상태가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음이 대상을 대함에 있어 평등한 상태를 유지하고, 스스로 마음이 정직하고, 대상에 자극받지 않는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행사의 상태에서는 마음이 번뇌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여 번뇌가 침입하지 못하는 평온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행사는 비단 수행자에게만 필요한 덕목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가장 필요한 것 중에 하나가 마음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쉽게 흥분하며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생활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또 작은 역경만 만나도 침울해지는 사람은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기 때문에 큰일을 감당할 수 없다. 반대로 조금만 상황이 좋아지면 흥분하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중요한 결단을 그르치게 된다. 따라서 늘 마음이 바위처럼 굳건하고 흔들림이 없어야 스스로 번뇌에 휘둘리지 않고, 돌아가는 상황을 명료하게 인식하고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런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행사이므로 수행자뿐 아니라 보통 사람에게도 행사는 꼭 필요한 덕목임을 알 수 있다.
파주 용미리 마애불 입상. 보물 제93호. 사진=선 출판사 김윤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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