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및 특별서평]
종교적 정성으로 그린 스님들 진영 보는 이 감복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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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 필자 / 2020 년 10 월 [통권 제90호] / / 작성일20-10-21 14:45 / 조회8,556회 / 댓글0건본문
이 책 | 김호석 화백의 『모든 벽은 문이다』
장 요세파 수녀 | 창원 트라피스트 봉쇄수녀원
고흐의 그림을 싫어한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 듯합니다. 물론 일일이 만나보지 않았으니 단정 내릴 일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그의 그림이나 삶에 대한 오해도 상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까마귀 나는 밀밭’은 고흐가 죽기 전 정신병이 심했던 시기에 그린 그림인지라 많은 이들이 까마귀를 고흐 자신의 불우한 상황과 정신 상태의 표현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행히도 고흐는 자신의 평생 지원자이자 소울메이트였던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를 남겼습니다. 또한 그림을 시작하기 전 보리나주라는 곳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시절 그의 삶의 모습이 남아있어 그의 그림과 삶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자료를 우리에게 줍니다. 한 마디로 고흐의 작품 세계는 그의 삶의 모든 것을 불살라, 이 말이 뜻하는바 그대로 에누리 없이, 참 생명과 예수의 정신을 살고자 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빼고 그의 그림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일상적인 관념과 사고 아래서는 밀밭의 까마귀는 흉조이나 그에게는 예수의 십자가처럼 이 까마귀는 황금빛 밀밭과 함께 새로운 생명을 알리는 길조입니다. 이미 그에게는 고난을 통하지 않은 생명이 없듯, 길흉이 다른 차원에서 따로 놀지 않습니다.
사진1. 김호석 글. 그림 <모든 벽은 문이다>, 선출판사, 2016
이런 해석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최소한의 자료는 필요합니다. 아무리 작품이 작가 손을 떠나면 보는 이의 시선에 맡겨진다 하지만 지나친 과장은 오히려 그림을 통해 참된 진리와 생명을 체험하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서론을 길게 쓰는 것은 김호석 화백의 그림과 삶도 위와 같은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화백의 그림은 쉬운 듯 어렵습니다. 현대 많은 화가들의 그림은 거의 첩보전의 암호풀이 수준을 요합니다만, 화백의 그림은 특별히 어려울 것이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일상의 가까운 소재들을 잡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그 앞에 서면 막막함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확실히 있습니다. 그 이유는 화백의 생각과 마음이 은유, 도치, 풍자, 역풍자로 그 안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법적 문제뿐만 아니라 화백은 매일 아침 묵상으로 하루를 열고, 그림 이전 삶과 정신을 자신의 어떤 그림들보다 소중히 여깁니다. 그래서 삶의 자세, 삶의 양식 이런 것들에 그림 이상의 정성을 들입니다. 값비싼 옷과 먹거리를 피하고, 쓸데없는 외출은 하지 않고, 술 담배를 멀리합니다. 그는 자신의 삶의 핵심을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망설임 없이 말합니다. 그의 그림에는 이런 삶이 담겨있고, 이 삶을 이해하는 만큼 그의 그림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책, 즉 김호석 화백의 『모든 벽은 문이다』(선善출판사, 2016, 사진 1)는 이런 의미에서 화백의 그림을 제대로 보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특히 인물화, 스님들의 진영 중심의 이 책은 무엇보다 화가의 정신을 아는데 자신이 직접 쓴 책이기에 더욱 소중합니다. 또한 작품 한 점에 기울이는 그의 정성은 거의 종교에 가깝습니다. 이런 정신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많은 그림들 중에서도 성철 스님(사진 2)의 그림들입니다.
‘세수하는 성철 스님’(사진 3)은 이런 배경 없이 본다면, 그저 가볍게, 그 도와 덕 높은 스님도 이런 평범한 면이 있다는 것을 잘 포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해석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작가의 글은 거기서 멈출 수 없게 합니다. 몸 없는 성철 스님의 그림도 그렇습니다. 밖이 아닌 속이 중요하다는 정도로 볼 수도 있지만 화가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그 이상의 무엇이 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불교 정진의 길에서 이 시대에는 아직 성철이란 산을 넘을 만한 인물은 없는 듯합니다. 사실 몸 없는 옷뿐임에도 마치 산을 마주 한 듯 묵직합니다.
사진2. 성철 스님, 김호석 화백 그림.
하지만 불교 깨침의 길에서 이처럼 방해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성철이란 산 앞에 막힌다면 그것은 깨침과는 반대의 길일 터이니 말입니다. 성철도 부처도 훨훨 털고 자신의 길을 가라는 성철 스님의 손짓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세숫대야 물속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구름도 와서 놀고 옆에 선 나무의 푸른 잎들도 성철 스님이랑 함께 놀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성철이기 때문이지 다른 무슨 뜻이 있지 않습니다. 컴컴한 배경과 옷차림의 성철 스님은 또 어떻습니까? 어둠도 묻지 못할 스님의 빛이 어둠이라 더 형형하게 빛납니다.
성철 스님에 관한 논문 백 권을 읽는 것보다 화백의 그림은 성철 스님을 더 가깝게 느끼게 해줍니다. 한 사람을 모델로 30편을 그렸으니 아마 화백의 그림 중 가장 많은 숫자일 것입니다. 그만큼 성철 스님은 화백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음이 틀림없습니다. 특히 다비식은 그 앞에 서면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그 수많은 그리움의 물결은 한 사람 성철을 통해 하나의 강물을 이룹니다. 어쩌면 원래 흐르던 강물이 성철과 수많은 이들의 그리움이 만남으로써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는지도 모릅니다. 그 강물이 우리 안으로 흘러들어옴에 그리움은 더욱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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