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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와 사상]
원자와 인법무아人法無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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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진  /  2020 년 11 월 [통권 제91호]  /     /  작성일20-11-25 10:51  /   조회7,98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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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 요소라고 여겨졌던 원자 

 

데모크리토스(기원전 약460-371)는 영원불변의 딱딱한 물질인 원자로 세계가 이뤄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스어로 원자atom는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다indivisible.”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돌턴(1766-1844)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근대적인 원자 개념으로 계승했다. 그는 모든 물질은 더 이상 나눠지지 않는 아주 작은 알갱이인 원자로 구성돼 있다고 했다.

 

 그는 서로 다른 원소element의 원자들이 서로 다른 크기와 원자량을 갖는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는 수소가 가장 가벼운 원소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수소를 기준으로 다른 원소의 원자량을 정했다.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원소는 원자번호가 1인 수소에서 원자번호가 92인 우라늄까지의 92가지다. 그 이상의 원자번호를 갖는 원소는 모두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런 원자들은 불안정해서 순식간에 원자량이 적은 원자들로 붕괴된다.

 

 원자 이하의 세계

 

톰슨은 1897년에 음의 전기를 띠는 전자electron를 발견했다. 이는 전자가 원자를 구성하는 요소의 하나임을 의미한다. 원자가 그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어서, 원자의 하부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원자가 나눠질 수 없다는 믿음은 여기서 붕괴됐다. 원자가 세계를 구성한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원자가 세계의 궁극적인 물질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 이후 지속돼왔던 원자의 개념이 근원적으로 바뀌면서, 물리학은 원자의 내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전의 관심사가 얼마나 많은 종류의 원소가 존재하느냐 그리고 그들 원소의 물리화학적 성질이 무엇이냐 였다면, 새로운 관심사는 원자의 구성요소가 무엇이고 이들이 어떤 형식으로 서로 엮여져 있는지 즉, 원자가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가 됐다. 원자의 내부를 살펴보자.

 

원자의 모습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돼 있으며, 원자핵은 다시 양의 전하를 띠는 양성자proton와 전기적으로 중성인 중성자neutron로 이뤄져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질량이 거의 같고 그 질량이 전자 질량의 1,800배 정도다. 따라서 원자의 질량은 99.9% 이상 원자핵에 몰려있다.

 

 

이미지 출처: 한국원력연구원

 

 아주 작은 원자나 원자핵의 크기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100억분의 1m인 1옹스트롬A0을 기준단위로 사용하면 편하다. 전자는 그 크기를 잴 수 없을 정도로 작아서 거의 점이라고 생각되며, 양성자는 반지름이 1 펨토미터fm 정도이다. 1 펨토미터는 1옹스트롬의 10만분의 1이다.

 

 가장 간단한 구조의 수소 원자는 양성자 하나와 전자 하나로 이뤄져 있다. 그 반지름은 0.5옹스트롬 정도다. 즉, 수소원자의 반지름은 수소 원자핵의 반지름의 5만 배나 된다. 이 숫자가 너무 작은 것이어서 그 모양을 상상하기가 어려우니, 크기를 좀 늘려보자. 원자핵을 반지름이 1cm인 공으로 늘린다고 하자. 커다란 방울토마토의 크기다. 그러면 수소원자는 반지름이 500m이고 지름이 1,000m인 구가 된다. 북한산 백운대의 높이가 837m이니, 이 구를 인천 앞바다 해안가에 놓으면 그 끝은 백운대보다도 위에 있게 된다. 엄청나게 큰 구다.

 

 이렇게 큰 구 안에 방울토마토만한 크기의 원자핵이 중심에 있고, 그 작은 영역에 원자 질량의 99.94%가 몰려있다. 원자 질량의 0.06%만을 차지하는 전자가 원자핵을 제외한 나머지 아주 넓은 영역을 돌아다닌다. 아주 좁은 영역에 모든 질량이 몰려있는 원자핵을 제외하면, 수소 원자 내부는 거의 비어있는 공간이다. 이는 수소 원자뿐 아니라 다른 원자도 모두 마찬가지다.

 

 텅 빈 물질과 블랙홀

 

우리 주변의 물질은 모두 원자로 이뤄져 있고, 원자는 속이 텅 비어있다. 이렇게 속이 비었기 때문에 중력이 아주 강력한 상황이 되면 물질이 고도로 응축할 수 있다. 아주 큰 질량이 모이면 그 중력에 의해 물질이 고도로 응축되고, 그 결과 시공간spacetime의 변형이 일어나면서 빛도 탈출할 수 없는 블랙홀이 형성된다.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의 구성원들이 태양의 중력에 의해 태양 주위를 공전하듯이, 우리은하(태양계가 속한 은하) 안의 모든 천체는 우리은하의 중심 주위를 공전하다. 태양계 안의 모든 천체를 공전하게 하는 태양이 태양계의 중심에 있듯이, 우리은하 안의 모든 천체를 공전하게 하는 블랙홀이 우리은하의 중심에 있다. 이 블랙홀을 관측한 두 사람이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 블랙홀은 지구에서 2만 6천 광년 떨어져 있으며, 질량이 태양의 400만 배에 이른다.

 지구는 자체 질량이 적어서 그 자체로는 블랙홀이 될 수 없지만, 지구가 블랙홀의 일부가 된다면 그 반지름은 1cm보다 작아져야 한다. 지구는 지구 반대편으로 가려면 비행기로 최소 10시간이 걸릴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지만, 지구의 그 모든 것이 방울토마토 정도의 크기로 응축돼야 블랙홀이 될 수 있다. 이렇게 고도로 응축된 천체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 물질 자체가 비어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빈 공간끼리의 밀어내기

 

현대물리학이 옳다면, 세상은 거의 완벽하게 비어있는 공간이다. 새가 날아가는 허공만 허공이 아니라 모두가 다 허공이다. 그렇다면 빈 공간인 우리 몸이 역시 빈 공간인 벽을 뚫고 지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빈 공간인 우리 몸이 역시 빈 공간인 방바닥을 지나, 중력에 의해 땅 밑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지구 중심으로 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것이 거의 빈 공간이라도 원자의 외곽을 돌고 있는 전자들 사이의 정전기적 반발력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정전기력은 두 물체간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므로, 거리가 가까워지면 전자 사이의 전기적 반발력은 무한대로 증가한다. 전자 사이의 반발력 때문에 일정한 거리 이상으로 두 원자가 접근할 수 없다. 원자 사이의 화학결합이 깨지면서 물체가 부서지지 않는 한, 한 물체가 다른 물체를 통과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땅속으로 빠져들지 않고 의자에 앉아서 이 글을 읽을 수 있다.

 

촉감 경험과는 다른 세계

 

세상이 온통 비어있다는 물리학적 설명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촉감 경험과 상당히 다르다. 우리 몸이 벽을 통과하지 못하는 경험을 하면서, 우리는 벽이 무언가로 꽉 차 있다고 생각한다. 촉각을 통한 이런 판단은 장애물에 부딪히지 않고 이동할 수 있게 하는 데에 유용하다. 그래서 촉각 경험은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 더구나 태어나서부터 머리를 벽에 찧으면서 한 생생한 경험이어서 이를 부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벽이 꽉 차 있다는 판단은 세계의 실제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 전기를 띄지 않는 중성자나 중성미자는 우리 몸이나 벽을 비롯한 모든 물질을 거의 자유롭게 통과한다. 이는 우리 몸이나 벽이 다른 물질이 통과할 수 없게 무언가로 꽉 차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 몸이나 벽이 어떤 물질이 통과할 수 없다는 그 스스로의 변치 않는 고정된 특성, 즉 자성自性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우리 몸이나 벽은 무언가로 꽉 차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물질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는 자성을 지니는 것도 아니다. 우리 몸도 무자성無自性이고 벽을 비롯한 우리 주변의 모든 물체도 무자성이다. 다만, 전자로 둘러싸인 물체가 전자로 둘러싸인 다른 물체를 만나면, 그들 사이에 전기적 반발력이 생길 뿐이다. 서로에 대한 전기적 반발력이라는 인연이 성립되면서, 우리 몸이 벽을 통과하지 못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날 뿐이다. 다만 그뿐, 그 이상의 무엇이 없다.

 

 우리가 그리는 세계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우리 몸이 벽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경험해 왔다. 이 경험을 통해 우리는 벽이나 우리 몸이 다른 물체를 통과하지 못하는 자성을 지닌다는 관념을 갖게 된다. 이런 경험으로 인해 우리는 벽이란 통과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관념을 갖게 되고, 이 관념을 통해 세계를 바라본다.

 

 우리가 세계 안에 존재하는 대상에 대해 인식하고 이에 대해 관념을 만들어 내고 명칭을 부여하는 것은 대상이 나의 밖에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와 대상 사이에 무한한 인연이 그런 방식으로 지금 이 순간 성립함으로써, 그 대상이 그런 방식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뿐이다. 다만 그렇게 나타났을 뿐이다. 그뿐이어서 일체가 무아無我이다.

 

 인법무아人法無我

 

우리의 마음에 그려지는 모든 것이 무아다. 나의 몸과 벽 등 나에게 나타나는 모든 것이 다 무아고, 이를 그리는 우리의 마음 또한 무아다. 인人과 법法의 둘이 모두 무아여서, 인법무아人法無我가 된다. 『능가경』에서는 이 두 가지의 무아상無我相, 곧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를 잘 살펴야 한다고 하였다. 『원각경』 「보안보살품」의 게송을 인용한다.

 

  “일체 중생의 몸과 마음은 모두 허깨비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몸은 사대에 속하고 마음은 육진六塵으로 돌아간다. 4대가 각기 흩어지면, 4대가 화합한 너는 어디에 있는가? 이같이 점차로 수행하면 일체가 모두 청정하게 되어, 움직임이 없이 법계에 두루 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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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진
고려대학교 과학기술대학 물리학과 교수. 연구 분야는 양자정보이론. (사)한국불교발전연구원장. <산하대지가 참 빛이다 (과학으로 보는 불교의 중심사상)>, <양형진의 과학으로 세상보기>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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