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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중국 11 |성적性寂 성각性覺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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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  2020 년 11 월 [통권 제91호]  /     /  작성일20-11-25 11:21  /   조회6,58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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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은 동아시아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불교 문헌 중 하나이다. 동아시아 불교의 공통적인 사상적 토대를 이루고,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사상적 특색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특색은 물론 『대승기신론』이 제기한 진여연기眞如緣起관이다.     

 

『대승기신론』의 특징

 

진여연기관은 동아시아 불교만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에서 유식을 중심으로 발전되었던 불교 사상은 중국에 들어온 이후에는 『대승기신론』으로 발전하였고, 이러한 바탕 위에서 진심眞心을 중심으로 한 또 다른 체계를 완성하였던 것이다. 『대승기신론』의 ‘한 마음에 열린 두 개의 문’[一心開二門]은 바로 진여의 불변不變의 측면과 수연隨緣의 측면을 융합시킨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단순한 ‘공空’뿐 아니라 ‘묘유妙有’를 강조하는 중국 불교가 발전해가게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그리하여 『대승기신론』을 ‘중국적인 불교를 성립시킨 촉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과정은 바로 유식불교가 『대승기신론』의 진심眞心·진상심眞常心, 또는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사상으로 변화하는 과정이다. 

 


사진1. 여징. 바이두 캡처. 

 

진상심 사상에서는 해탈과 구원의 근거를 불성이라고 달리 부르기도 하는 ‘진상심(진심)’의 관념에 둔다. 현상계의 모든 현상이 진심, 또는 진여에 의거하여 생겨난다고 보고, 이를 진여연기라고 한다. 이러한 체계에서는 불성인 진심, 또는 진여가 본체이고 여기에서 생겨난 현상계의 모든 대상이 작용이 되어, 본체와 현상이 따로 분리되지 않는다. 이것은 연기 공성空性과 진심眞心을 결합한 설명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불성佛性에 공空만 있다면 스스로 생기生起할 수 없지만, 진심과 하나가 되면 생기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진여를 아라야식의 현현인 현상과 분리시켜보는 유식불교와 대조되는 특징이다. 종밀은 대승불교를 공종空宗, 유종有宗, 성종性宗으로 나누었고, 근대의 학자인 인슌(印順, 1906-2005)은 성공유명론性空唯名論, 허망유식론虛妄唯識論, 진상유심론眞常唯心論으로 나누었다. 이 때 『기신론』은 성종이나 진상유심론 계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대승기신론』은 『화엄경』, 『능엄경』, 『승만경』, 『능가경』, 『열반경』 등에 나타난 사상을 진심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전통불교에서 발전되어 나온 성각性覺 사상을 통합하여 중국 불교사상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고 평가된다. 

 


사진2. 만년의 여징. 바이두 캡처. 

  

중국 불교가 진상심眞常心 사상 중심으로 된 것은 현실을 중시하는 중국인의 경향성 때문인데, 유학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현상계가 본체인 진심의 현현임을 말하는 진상심 사상은 현상계의 모든 존재들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유학의 성선론性善論 경향과 일치한다. 『대승기신론』의 심성론 주장은 중국 유학의 핵심 흐름인 맹자의 성선론과 서로 부합한다. 그래서 현대 신유학자인 모종삼(牟宗三, 1909-1995)은 중국불교의 축도생竺道生과 혜능慧能 등은 맹자가 불교에서 재현된 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 사람이면 누구나 진심眞心,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불성佛性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중국 불교의 인식은 사람은 본래부터 선성善性, 양지良知, 사단지심四端之心을 가지고 있으므로 모든 사람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유학의 사고방식과 전적으로 일치한다. 따라서 『대승기신론』의 중국불교적인 성격은 사실은 유학 사상에 대한 긍정과 연결될 수 있고, 근대 중국에서 새로운 불교인 ‘현대現代 신불교新佛敎’와 ‘현대現代 신유학新儒學’이 본체와 현상을 이분하는 유식불교의 견해를 비판하며 태동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대승기신론』의 “한 마음에 열린 두 개의 문”의 진여연기론과 근대 중국의 대표적 사상인 현대 신유학의 눈에 띄는 특징인 ‘체용불이體用不二’론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유식과 『대승기신론』의 차이

 

1920년대 이래 중국 불교학계는 격렬한 논쟁을 전개하였다. 유식불교와 『대승기신론』을 둘러싼 논쟁이 구양경무(歐陽竟無, 1871-1943)와 태허(太虛, 1889-1947)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그 뒤에는 남경내학원南京內學院과 무창불학원武昌佛學院 학자들로 이어졌다. 그리고 1950년대에 인순印順과 여징呂澂의 논쟁으로 재현되었다. 『대승기신론』을 비판하는 구양경무의 입장은 후대에 장태염, 왕은양 등 내학원 학자들과 여징의 견해로 계승되며, 이에 반대하는 태허의 입장은 양계초, 진유동, 당대원 등 불학원 학자들과 인순의 견해로 이어졌다. 따라서 중국 근대불교는 구양경무가 재생시키려 한 유식불교와 태허의 전통 중국불교의 옹호가 중요한 두 축을 이루고, 유식불교에서 시작했지만 이를 비판하고 유학과 결합하여 근대화된 새로운 철학을 시도한 웅십력(熊十力, 1885-1968)의 ‘신유식론’이라는 새로운 조류가 덧붙여졌다. 논자는 중국 근대불교를 크게 유식불교, 『대승기신론』, 신유식론新唯識論이라는 세 조류로 나누어 파악한다. 웅십력의 『신유식론』은 『대승기신론』을 옹호하는 흐름과 사상적인 연관성을 갖고 있다.

 


사진3. 웅십력. 바이두 캡처. 

 

유식불교는 원래 인도 사상에 속하는 것이고, 중국불교의 전통은 『대승기신론』 계통의 천태∙화엄∙선이라고 할 수 있다. 『대승기신론』 계통의 법성종法性宗은 맹자의 성선설을 흡수하여 인간이 본래 불성을 가지고 있고 종교적 실천을 통하여 그 불성의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때 불교가 서양철학과 대응할 수 있는 철학적 논리 체계에 비중을 두어야 하는지, 아니면 중국불교 전통의 깨달음에 기반을 둔 종교성을 강조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대두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인도 유식불교의 계보를 이은 현장-규기 계열의 유식불교를 진정한 불교 철학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중국적 전통을 이은 『대승기신론』의 이론을 진정한 불교 철학으로 볼 것인가 하는 논쟁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러한 논쟁은 당시의 지적 분위기와 연관된다. 서양 문화의 충격으로 동양의 전통 철학을 반성하게 되는 지성적이고 비판적인 분위기에서 지적인 이해가 없는 신앙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지식인들은 신앙을 강조하는 『대승기신론』을 비판하였다. 따라서 『대승기신론』과 완전히 대조적인 성격을 지닌 유식불교가 관심을 끌게 되었던 것이다. 반면 『대승기신론』이 중국불교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은 그를 비판하는 것은 중국의 정신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러한 비판에 대항하였다. 

 

내학원 학자들은 『대승기신론』으로 대표되는 중국불교와 인도불교의 차이점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대승기신론』을 비판한 목적은 한편으로는 인도불교의 본래 정신으로 되돌아가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식불교, 그 중에서도 현장 유식의 이성적, 사변적 논리 정신으로 근대이래 서양 철학의 유입에 대응하려는 것이었다고 보여진다. 불학원의 학자들도 『대승기신론』과 중국화 된 불교와의 관계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승기신론』을 부정하는 것은 중국화 된 불교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때문에 극력 『대승기신론』의 합법성을 옹호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종교적인 신념을 강조하고 역사적·과학적 역사 방법을 거부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 각종 방법을 통해 『대승기신론』과 인도불교를 하나로 보고, 유식불교와 『대승기신론』이 서로 회통한다고 주장하였다. 

 

여징呂澂과 웅십력熊十力의 대론

 

그런데 사실 본체와 현상을 분리해 보는 것은 서양 형이상학의 전형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국 근대 유식불교와 『대승기신론』 추종자들 사이의 논쟁은 서양철학과 중국 전통철학의 대리전쟁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논쟁은 정확하게 천태∙화엄∙선과 현장 유식의 논쟁, 중국불교와 인도불교의 논쟁의 연속이다. 이 논쟁을 서양 철학과 중국 전통철학의 갈등의 다른 측면으로 파악하는 것은 논자의 독자적인 견해이다. 현대의 대표적인 불교학자 여징(呂澂, 1896-1989, 사진 1)은 신新불가이자 신유학자인 웅십력(熊十力, 1885-1968, 사진 2)의 『신유식론新唯識論』이 중국의 위서僞書와 같은 맥락에 속한다고 비판하였다. 여징의 논리대로라면, 중국불교는 인도불교의 위서에 지나지 않으므로 별 가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사진4. 만년의 웅십력. 바이두 캡처

 

여징은 웅십력의 사상이 인도불교의 ‘성적性寂’설과 달리 천태∙화엄∙선 등 중국불교의 ‘성각性覺’설과 동일한 입장이라고 본다. 웅십력 철학은 『대승기신론』의 ‘심성본각心性本覺’의 관념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웅십력의 『신유식론』과 유식불교의 분기는 ‘성각性覺’과 ‘성적性寂’의 분기이며, 중국의 위경僞經, 위론僞論과 현장 유식의 분기라고 하였다. 따라서 『대승기신론』을 추종하는 견해는 전적으로 중국불교의 발전 방향과 일치하는 것이다. 웅십력은 본체와 현상의 분리를 주장하는 유식불교의 입장을 비판하고, 『대승기신론』의 진여연기론적 입장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이 새로운 유식학은 『대승기신론』의 유학적 해석이라고 할 만하다. 여기에서 중국 근대불교가 개척한 하나의 새로운 길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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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철학박사. 현재 고려대학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석·박사 졸업. 같은 대학 철학과에서 강의,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초빙교수를 지냈다. 지곡서당 한문연수과정 수료. 조계종 불학연구소 전문연구원 역임. 『웅십력 철학사상 연구』, 『신유식론』,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 등 다수의 저서 및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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