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수]
일법(一法)-하나의 법인 마음 만사萬事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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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스님 / 2021 년 1 월 [통권 제93호] / / 작성일21-01-15 10:05 / 조회6,870회 / 댓글0건본문
법수(法數)란 숫자로 표현한 불교용어를 말한다. 뿐만 아니라 불교용어를 숫자별로 분류・정리한 것도 법수라고 한다. 예를 들면, 일승一乘, 이법二法, 삼학三學, 사성제四聖諦, 오온五蘊, 육입처六入處, 칠각지七覺支, 팔정도八正道 등이다. 중국불교에서는 불교용어를 기수基數의 순서에 따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이처럼 동아시아불교 전통에서는 법수가 곧 불교 사전이었던 셈이다.
중국에서는 최초로 명대明代의 석일여釋一如 법사가 『대명삼장법수大明三藏法數』를 편찬했다. 이 책을 근거로 계속적으로 수정・보완한 것이 현재도 활용되고 있는 『삼장법수三藏法數』이다. 따라서 법수를 모르면 불교교리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 불교의 중요한 교리는 모두 법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불멸 후 제자들은 붓다의 교설을 전승함에 있어서 두 가지 방법을 채택했다. 하나는 숫자별로 분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제별로 분류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류법은 ‘어떻게 하면 붓다의 교설을 잘 기억하여 미래 세대에까지 전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현존하는 니까야 중에서 숫자별 모음집은 『앙굿따라 니까야(Aṅguttara Nikāya(增支部)』이고, 주제별 모음집은 『상윳따 니까야(Saṃyutta Nikāya(相應部)』이다. 『앙굿따라 니까야』는 하나의 모음에서부터 열한 가지 모음까지 순서대로 붓다의 가르침을 정리하여 편찬한 것이다.
대림스님이 번역한 <앙굿따라 니까야> 한글번역본
그러나 주제별 모음과 숫자별 모음이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사성제四聖諦는 ‘진리(sacca, 諦)’라는 주제에 편입시킬 수도 있고 ‘넷’이라는 숫자의 모음집에 편입시킬 수도 있다. 따라서 사성제는 『상윳따 니까야』의 「진리 상응」과도 관련이 있고, 『앙굿따라 니까야』의 「넷의 모음」과도 관련이 있다. 마찬가지로 사념처(四念處)도 ‘사띠(sati, 念處)’라는 주제에 포함시킬 수도 있고, ‘넷’이라는 숫자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 그런데 『상윳따 니까야』가 먼저 결집되었고, 『앙굿따라 니까야』가 나중에 결집되었다. 이 때문에 『상윳따 니까야』에서 설정한 56개의 주제와 관련이 있는 것은 『상윳따 니까야』에 수록되었고, 56개의 주제와 관련이 없는 것은 법수에 따라 『앙굿따라 니까야』에 수록되었다. 이 때문에 법수로써 붓다의 교설을 파악하고자 할 경우에는 『상윳따 니까야』와 『앙굿따라 니까야』를 대조해 보아야 한다.
이 지면에서는 『삼장법수』의 순서에 따라 『상윳따 니까야』에 나타난 법수와 『앙굿따라 니까야』에 나타난 법수를 비교해 가면서 붓다의 교설 가운데 중요한 불교술어를 가려 뽑아 그 의미를 되새겨보는 작업을 시도할 것이다. 이 작업을 통해 불교 교리의 정수精髓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법[一法]
초기경전에는 ‘하나의 법(eka-dhamma, 一法)’으로 붓다의 가르침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명칭nāma, 마음citta, 갈애taṇhā, 열반nibbāna 등이다. 이처럼 한 단어만으로 이루어진 법수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일법一法이라는 법수에서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일법이라는 법수는 숫자별 모음집인 『앙굿따라 니까야』에 수록되어야 자연스럽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상윳따 니까야』가 먼저 편집되었기 때문에 『상윳따 니까야』에 수록되었다.
일법 가운데 가장 먼저 거론되고 있는 것이 ‘명칭nāma’이다. 『상윳따 니까야』의 「나마 숫따(Nāma-sutta(名稱經)」(SN1:61)에 의하면, 어떤 천신이 붓다에게 “무엇이 모든 것을 이기고, 무엇이 그보다 더 나은 것이 없으며, 어떤 하나의 법이, 모든 것을 지배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붓다는 “이름(명칭)이 모든 것을 이기고, 이름보다 더 나은 것이 없으며, 이름이라는 하나의 법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답변했다.(SN.Ⅰ.39)
주석서에 따르면, ‘이름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것은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든 명칭을 떠나서는 중생이든 현상이든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나무나 돌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이름 없는 것(annāmaka)’이라는 이름을 붙여 그것을 부른다.”(SA.Ⅱ.95)
사람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이름(명칭)을 부여하여 다른 것과 구별한다. 한번 부여한 이름은 고유한 개념이나 정체성으로 자리 잡는다. 이렇게 확립된 개념은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한다. 이른바 ‘고정 관념’으로 정착하게 된다. 한번 고착화 된 고정 관념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그대로 지속된다. 이 때문에 이름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붓다는 ‘이름’이라는 하나의 법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천명했던 것이다. 이처럼 붓다가 이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은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한편 「찟따 숫따(Citta-sutta, 心經)」(SN1:62)에서는 ‘마음’을 하나의 법이라고 설하고 있다. 천신이 붓다에게 “무엇이 세상을 이끌고, 무엇에 의해 끌려 다닙니까? 어떤 하나의 법이 모든 것을 지배합니까?”라고 물었다. 붓다는 천신에게 “세상은 마음이 이끌고, 마음이라는 하나의 법에 의해 모든 것이 지배”된다고 답변했다.(SN.Ⅰ.39)
주석서에 의하면 ‘모든 것이 지배된다’는 것은 마음의 지배하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즉 철저하게 마음에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상을 철저하게 알지 못하는 자들은 완전히 마음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오온五蘊을 철저하게 알아서 번뇌를 제거한 자들은 마음의 지배하에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이 그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SA.Ⅰ.95)
「찟따 숫따」에서 ‘세상은 마음이 이끌고’라고 한 대목은 마음먹기에 따라 각 개인의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담마빠다(Dhammapada, 法句經)』의 제1게와 제2게에서 붓다는 모든 행위는 마음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이른바 “모든 일은 마음이 먼저 가고 마음이 가장 중요하며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만약 나쁜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이 그를 따른다. 수레바퀴가 소의 발자국을 따르듯.” 또 “모든 일은 마음이 먼저 가고 마음이 가장 중요하며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만약 선한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행복이 그를 따른다. 떠나지 않는 그림자처럼.”
「찟따 숫따」의 핵심은 번뇌에 물든 그릇된 마음이 세상을 이끌고, 그릇된 마음에 의해 모든 것이 지배된다. 그러나 오온을 철저하게 알아서 번뇌를 제거한 자들은 마음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교설은 『화엄경』에 나타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원형으로 보인다.
『앙굿따라 니까야』에서도 ‘마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아깜마니야 왁가(Akammanīya-vagga)」(AN1:3:1~10)에서는 다루기 어려운 것이 ‘마음’이라고 설하고 있고, 「아단따 왁가(Adanta-vagga)」(AN1:4:1~10)에서는 제어하기 어려운 것이 ‘마음’이라고 설하고 있다. 두 경은 모두 다섯 쌍으로 마음을 언급하고 있다. 경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아깜마니야 왁가」에 의하면, ①이렇듯 계발되지 않고 다루기 힘든 것도 마음이고, 이렇듯 계발되고 유순한 것도 마음이다. ②이렇듯 계발되지 않아 큰 해로움으로 인도하는 것도 마음이고, 이렇듯 계발되어 큰 이로움으로 인도하는 것도 마음이다. ③이렇듯 계발되지 않고 분명하지 않아 큰 해로움을 가져오는 것도 마음이고, 이렇듯 계발되고 분명하여 큰 이로움을 가져오는 것도 마음이다. ④이렇듯 계발되지 않고 많이 수행하지 않아 큰 해로움을 가져오는 것도 마음이고, 이렇듯 계발되고 많이 수행하여 큰 이로움을 가져오는 것도 마음이다. ⑤이렇듯 계발되지 않고 많이 수행하지 않아 괴로움을 초래하는 것도 마음이고, 이렇듯 계발되고 많이 수행하여 행복을 가져오는 것도 마음이다.
이와 같이 단 하나의 법인 마음을 계발하지 않으면 큰 해로움을 가져오지만, 마음을 계발하면 큰 이로움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아단따 왁가」에 의하면, ①제어되지 않아 큰 해로움을 가져오는 것도 마음이고, 제어되어 큰 이로움을 가져오는 것도 마음이다. ②보호되지 않아 큰 해로움을 가져오는 것도 마음이고, 보호되어 큰 이로움을 가져오는 것도 마음이다. ③지켜지지 않아 큰 해로움을 가져오는 것도 마음이고, 지켜져서 큰 이로움을 가져오는 것도 마음이다. ④단속하지 않아 큰 해로움을 가져오는 것도 마음이고, 단속되어 큰 이로움을 가져오는 것도 마음이다. ⑤제어되지 않고 지켜지지 않고 단속되지 않아 큰 해로움을 가져오는 것도 마음이고, 제어되고 보호되고 지켜지고 단속되어 큰 이로움을 가져오는 것도 마음이다.
위에서 살펴본 앞의 구절은 번뇌의 속박에 얽매인 범부의 마음을 나타낸 것이고, 뒤의 구절은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성자의 마음을 나타낸 것이다. 이처럼 참으로 제어하기 어려운 것이 마음이다. 따라서 이 마음을 제어하고 보호하고 지키고 단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어되지 않고 보호되지 않고 지켜지지 않고 단속되지 않은 마음은 번뇌에 오염된 것을 의미한다. 불교의 수행은 번뇌에 오염된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번뇌의 단절’ 혹은 ‘번뇌의 소멸’을 수행이라고 한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온갖 번뇌를 절복시키는 것이 바로 불교수행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 마음을 제어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음은 너무나 빨리 변화하기 때문이다.
붓다는 “비구들이여, 이것과 다른 어떤 단 하나의 법도 이렇게 빨리 변하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하나니, 그것은 바로 마음이다. 비구들이여, 마음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그 비유를 드는 것도 쉽지 않다”고 했다.(AN.Ⅰ.9) 마음은 찰나생 찰나멸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하나의 ‘흐름sota’에 불과하다. 이처럼 빨리 변화하는 실체가 없는 마음에 이끌려 행동하면 번뇌에 물든 마음의 지배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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