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다도]
센 리큐, 일본 다도의 대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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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정 / 2021 년 2 월 [통권 제94호] / / 작성일21-02-05 10:44 / 조회7,578회 / 댓글0건본문
이번 호에는 일본 다도를 대성시킨 센 리큐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센 리큐(千利休, 1522-1591, 이하 리큐로 표기, 사진1)는 다케노 조오의 다도를 이어 일본적 선다도를 대성시킨 다성茶聖으로 일컬어 진다. 그의 다선일미의 선다풍과 정신은 일본 다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사진 1. 리큐 초상. 하세가와 토하쿠長谷川等伯 필.
한편 리큐가 역사적 다인으로 등장하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다력과 함께 당시의 정치적 배경도 빼놓을 수가 없겠다. 전국 시대의 선두에 있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와 그의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는 전국통일을 목표는 삼는 과정에서 전공을 세운 무사들에게 다회 개최의 기회를 허락하거나 다회에 사용되는 다도구를 하사하는 식으로 다도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정책인 다도정치御茶湯御政道를 꾀했기 때문이다. 당시 무역과 차문화가 꽃피던 사카이에서 유력한 다인 중 한사람이던 리큐는 히데요시에게 발탁되어 다도의 정치적 프로듀서의 역할을 하며 무사권력의 측근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리큐는 임진왜란 발발 1년 전 히데요시에게서 할복의 명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 이와 같이 리큐라는 역사적 인물의 등장과 활약, 그리고 죽음에는 정치적 역사적 거물인 히데요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는 점도 주목된다.
리큐의 사후 다이묘 제자들은 무사 다도로 이어가 현재 엔슈류遠州流, 세키슈류石州流, 야부노우치류藪ノ内流, 소헨류宗偏流, 후마이류不昧流와 같은 대표적 유파로 이어오고 있다. 한편 리큐의 자손들은 삼센케三千家 즉, 우라센케裏千家, 오모테센케表千家, 무샤노코지센케武者小路千家로 이어져 다도의 명문가를 이루고 있다. 리큐의 다도를 알고자 할 때 아쉽게도 그가 직접 남긴 다서는 없기 때문에 그의 다도를 계승한 제자의 다서와 그가 개최한 다회에 대한 기록과 일화 등을 통해 그의 다도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겠다.
리큐의 성씨 센千
리큐는 스승 다케노 조오와 마찬가지로 자유무역으로 번성하던 자치도 시인 사카이 출신이었다. 이름은 다나카 요시로田中与四郎. 부친은 도토야魚問屋라는 상호를 가진 상인으로서 상당한 지위와 재력을 지닌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리큐가 다나카가 아닌 센千이라는 성씨를 사용하게 된 것은 조부 센아미千阿弥의 ‘센’한 글자를 따서 오다 노부나가에게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조부가 아시카가 요시마사장군 가문의 예능을 담당하던 도보슈로서 센아미라는 이름으로 사카이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리큐와 히데요시
사진 2. 히데요시의 황금 다실. MOA미술관 재현.
한편 리큐라는 이름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관련이 있다. 히데요시는 하극상의 시
대에 최하급 무사에서 승승장구하여 마침내 천황으로부터 최고 지위인 관백의 자리를 얻게된다. 관백 수여에 대한 감사의 의례와 그의 권위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히데요시는 황금다회(1586)를 열었다. 차를 제외한 모든 기물을 금으로 장식한 황금다실에서 황금다완으로 천황에게 그린의 말차를 올렸다(사진 2). 이 황금다회를 프로듀스한 인물이 바로 리큐였다.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다실설계와 다회를 기획하였지만 상인 계급인 리큐는 궁중 출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오기마치正親町천황에게 리큐라는 거사호居士号를 특별히 하사받음으로서 출입을 허가받았던 것이다. 그의 생전에는 대덕사에 참선하여 받은 소에키宗易라는 법명을 주로 사용하고 있었다.
사진 3. 기타노 대다회. 기타노신사北野神社 소장.
여기에 등장한 황금다실로 상징되는 히데요시의 황금차는 리큐의 선다 풍인 와비차와 비교되어 리큐가 할복의 명을 받는 원인 중의 하나로 보는 설도 있지만 이에 대한 언급은 여기서는 생략한다.
기타노대다회
황금다실은 이후 히데요시가 전국 평정을 선언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 기타노대다회北野大茶湯(1587)에 다시 등장한다(사진 3). 기타노대다회 또한 리큐가 프로듀스한 작품이다. 대규모로 행해진 기타노 다회는, 교토의 기타노신 사北野天満宮에서 10월1일부터 열흘간 개최 예정이었다. 참고로 기타노신사는 매화를 사랑한 헤이안시대 대학자인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를 학문의 신으로 모시고 있기 때문에 교토 수학 여행시 필수코스가 되어 있는 곳이다. 개최 안내문에는 다도에 관심있는 자라면 신분과 지위, 지역을 막론하고 참가할 수 있다고 적었다. 귀족에서 승려, 무사, 상인, 농민 등 누구든 참가할 수 있으며 심지어 중국에서의 참가도 환영한다고 야무진 포부를 밝혔다. 사실상 정치적으로는 히데요시에게 항복한다는 의사를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참가자들은 명물 다도구를 히데요시에게 뺏길지 모른다는 불안도 있었지만 명물을 가지고 참가했다. 명물을 갖지 못한 와비다인이라면 차솥 하나와 뚜레박 물동이 하나와 차만 있으면 된다고 적었다. 차 조차도 없다면 보리차를 가지고 다회를 열어도 된다고 하였다. 여기서 다회를 여는 일은 지금은 자유로운 개인의 취미활동이지만 앞서 다도의 정치화를 살짝 언급했는데 당시는 무사인 경우는 허락받은 자만이 다회를 개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다회는 예정과 달리 하루만에 끝났지만 히데요시도 황금다석을 차렸고 전국에서 모인 이들의 다석은 무려 800석에서 1500석이 넘었다고 전해진다. 기타노대다회는 성공적인 개최의 결과, 천하는 히데요시의 것으로 확인되었고 이와 동시에 리큐의 다풍과 명성은 전국적으로 확장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리큐의 정원 청소
리큐가 스승 조오에게 입문할 때의 일화는 유명하다.
17세의 리큐가 다도 입문을 하고자 조오를 찾아갔다. 리큐를 맞이한 조오는 리큐에게 정원 청소를 하도록 말한다. 리큐가 정원에 나가보니 정원은 이미 손 댈 곳없이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다. 나뭇잎 한 장도 떨어져 있지 않았으며 마치 방금 이슬을 맞은 것처럼 청정한 느낌이 들도록 물까지 뿌려져 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청소가 끝난 정원이었다. 이미 청소된 정원을 또 청소하라는 조오의 시험에 리큐는 난감했다. 어떻게 답해야 할 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드디어 결심한 듯 리큐는 갑자기 나무를 흔들기 시작했다. 깨끗하게 청소한 정원 위에 나뭇잎을 떨어뜨렸던 것이다. 그리고 조오에게 청소가 끝났다고 알렸다. 정원의 모습을 본 조오는 흡족해 하며 리큐를 제자로 받아 들였다고 한다. 조오는 리큐의 자연적 풍류를 시험한 것이 었다(사진 4).
다회에서 일곱 가지 가르침
어느 날 리큐는 제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다회에서 지켜야 할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리큐가 대답하기를 “차는 마시기 좋도록 내며, 숯불은 찻물이 잘 끓도록 피우며, 꽃은 들에 핀 것처럼, 여름은 시원하게 겨울은 따뜻하게, 시간은 조금 일찍이 서두르며, 맑은 날에도 우산을 준비 하고, 같이 온 손님에게 마음을 써라”고 일곱 가지로 대답하였다. 그러자 제자는 리큐의 대답이 불만스러운 듯 “그 정도쯤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특별한 답을 기대한 제자로서는 그 정도라면 누구나 아는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진 4. 정원의 모습
이에 리큐는 “그렇다면 지금 내가 말한대로 다회를 해 보거라. 만약 그대로 된다면 내가 자네의 제자가 되겠노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대덕사의 쇼레 쇼킨笑嶺宗訢선사(리큐 참선의 한 스승)는 “리큐의 대답은 당연하다. 조과도림(鳥窠道林741~824)선사가 제자에게, 모든 악은 행하지 말고 모든 선을 받 들어 행하라(諸悪莫作衆善奉行)고 가르친 것처럼, 세 살짜리 어린아이도 아는 지극히 당연한 것을 여든 노인이 행하고자 하면 어려운 것이다”라고 『남방록南坊録』에 전해진다. 『남방록』은 리큐의 다도를 제자가 들어 전하는 양식으로 편집된 다서로서 ‘다도는 먼저 불법을 수행 득도하는 것이다’라는 다선일미의 다도관을 보여주는 책이다. 우리가 지극히 당연하다고 알고 있는 것을 실제로 행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 가는 것보다 어려운 것임을 말해주는 가르침이다.
차는 그냥 마실 뿐 일지니
앞서 언급된 리큐의 정원 청소 이야기와 다회에서 중요한 일곱가지 가르침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은, 리큐와 그의 스승이 다도에서 중요시 했던 점이 무엇인지를 잘 알게 해준다. 그것을 나는 ‘자연스러움’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 자연스러움은 가장 자유롭고 진정함을 느낄 수 있는 행복한 경지라고 하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자연스러움’의 경지란 세 살짜리 아이에게 되는 일일지라도 여든 노인에게는 어려운 것일 수 있다. 여기서 우리에게 수행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남방록』에는 이렇게 강조했던 것이다. ‘다도는 먼저 불법佛法을 수행 득도하는 것’이라고. 같은 책에서 다도 수행을 짧은 노래로 지어 불렀다. ‘다도는 찻물을 끓여 차를 마시는 그 근본을 알 지니라’ 그리고 이런 노래도 함께 싣고 있었다. ‘다도는 찻물을 끓여 그저 차를 마실 뿐일지니.’
(리큐에 대한 글은 다음호에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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