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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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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  /  2021 년 4 월 [통권 제96호]  /     /  작성일21-04-05 10:24  /   조회4,06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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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잡지 산책 4 | 『조선불교계』(통권 3호, 1916.4-1916.6)

 

발행기관과 발행인(사진 1. 조선불교계 창간호, 해인사 백련암 소장)

 

 『조선불교계』는 1916년 4월 불교진흥회에서 발행한 불교잡지다. 『조선불교계』는 『불교진흥회월보』의 후속잡지로서, 발행과 편집의 주체는 『불교진흥회월보』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두 잡지는 발행의 기관이 같고, 발행 겸 편집인도 이능화로 같다. 잡지의 휘보란에 30본산과 말사의 주지 임명의 상황을 수록하거나, 불교진흥회 정기총회 내용을 상세히 게재한 점, 그리고 총독부의 행정 지시 사항을 중요하게 게재한 점에서 두 잡지 사이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발행기관인 불교진흥회는 승속을 아우르는 불교계 지식인의 연합체로, 1914년 9월 출범하여 1917년 2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이 기간에 2종의 잡지가 발행되었는데 지난 호에 소개한 『불교진흥회월보』는 1915년도에, 『조선불교계』는 1916년도에 등장한 유일한 불교잡지로서 불교계 소식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자료의 보고이다. 

 

 

 

사진 1-1. 조선불교계 창간호 표지(백련암 소장). 

 

상황이 이러한데 굳이 잡지의 제호를 달리한 까닭은 무엇인가. 1916년 1월 2일 선교양종30본산연합사무소의 5회 주지총회 회록에 보면 그 직전에 ‘불교진흥회 사건’이 일어났고, 그 여파로 출범 당시의 회주 이회광을 대신하여 부회주인 강대련이 사무를 대신하게 하였다. 이회광이 관련된 모종의 정치적 사건으로 생각되는 ‘불교진흥회 사건’으로 인해 불교진흥회는 그야말로 순수한 일반 신도, 즉 거사 중심의 단체로 변화하였다. 『불교진흥회월보』는 승려 및 거사가 함께 주축이 되고, 『조선불교계』는 거사가 주축이 되어 발행한 잡지인 셈이다. 그러나 실상은 『불교진흥회월보』의 경우에도 강대련의 「송거당문답松居堂問答」이 교리부분에 7회 연재된 것을 제외하면 집필진에 스님이 차지하는 예가 거의 없다. 따라서 불교진흥회의 주도 세력에 인적인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집필진은 불교학술계, 불교문화계의 거사로서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사진 1-2. 조선불교계  속표지(2호). 

 

 

 『조선불교계』 제3의 판권장을 보면, 발행 겸 편집인 이능화李能和, 인쇄인 심우택沈禹澤, 인쇄소 성문사誠文社, 발행소 불교진흥회본부, A5판 82면, 정가 15전이다. 전체 글감을 대체로 산출해 보면 총 70편(연재 누적, 시 제외. 필자 편자 역자 포함)의 글 가운데 이능화 23편(33%), 양건식 14편(20%), 권상로 9편(13%)으로 이들을 합하면 66%를 차지하여 거의 절대적인 분포를 보인다.

 

 

사진 1-3. 조선불교계 속표지(3호).

 

 

 『불교진흥회월보』의 필진으로 이능화 69편(39%), 양건식 31편(17%), 최동식 23편(13%)으로 이들의 합계가 총 69%인 것과 비교할 때 상당한 유사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선행 잡지에 등장하는 최동식의 비중이, 후행 잡지에는 권상로로 교체된 것 정도가 차이라면 차이다. 권상로는 제1, 2호에 수록된 삼십본산주지총회의 회의록에 편집 겸 회계 담당 임원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잡지의 발행과정에도 일정 부분 관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발행 목적과 방침(사진 2. 이능화의 「발간사」, 1호)     

 

잡지가 지향하는 목적은 이능화의 「조선불교계 발간사朝鮮佛敎界發刊詞」에서 개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조선불교계! 조선불교계! 산에는 구백 사찰, 칠천 법려가 있고 들에는 사십 교당, 십만 신도가 있으니, 이는 본 잡지가 조선불교계라는 명칭을 붙인 까닭이요, 또 장차 이로써 칠천 법려의 耳目이 되며, 십만 신도의 이목이 되어 총명에 도달하여 그 견식을 밝게 하여 널리 우리 동토 천오백만인의 동포중생에게 권하여 모두 安身立命하여 저 서방 십만 팔천 리 극락세계에 응당 왕생하여 모두 함께 부처를 뵙고 법문을 들으리니, 이는 본 잡지의 목적인 까닭이다.”(1호)

 

 발간사의 서두이다. 먼저 당시 불교계의 현황- 즉 구백 개의 사찰, 칠천 명의 승려, 사십 개의 도심 교당, 십만 명의 불교신도-을 제시하면서 그것이 잡지 제호를 ‘조선불교계’라 한 이유라고 하였다. 잡지의 목적은 칠천 승려, 십만 신도를 계도하여 깨우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조선의 동포 중생을 안신입명하게 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도록 하는 것이라 하였다. 종교잡지로서 당연한 포교의 매체임을 선언한 것이다.

 

 

사진 2. 조선불교계 발간사(1호). 

 

 

 현재 확인할 수 있는 3호의 판권란에는 주의사항과 발행사항이 수록되어 있다. 주의 사항에는 5-6항에 걸쳐 발행일, 회원의 의무, 구독비용, 배부 등의 기본적인 잡지의 간행 정보와 함께 주권상실의 시대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본보에 투고코져 하시는 제씨는 정치 치담侈談과 시사 득실을 제한 외에는 본보 목차에 의하여 수의 기고하시되 매월 15일을 기한으로 하고 주소씨명을 상기하여 송부하심을 요함.”이라 하였다. ‘치담’이라는 것은 담론과 같은 말인데 이에 더하여 과대 해석되고 부적절한 담론의 의미도 있다. 원천적으로 시대상황과 정치 이야기는 부적절한 것으로 제약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잡지도 마찬가지지만 『조선불교계』는 모든 주제에서 현실 정치와 관련된 것은 배제하다 보니 불교발전에 대한 논의가 매우 좁은 영역에서 이루어진 결과 개혁적인 담론보다 탈정치적인 일반 교리의 강연과 연구, 과거의 역사자료에 대한 소개에 국한된 경향을 보인다. 문화적 영역에서도 문체나 내용에 있어 과거 지향적이고 고답적이어서 활발한 담론을 생성하기에는 제한적 영향력이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포교 현실과 포교 모델의 제시(사진 3. 이능화의 논설 「포교규칙과 오인의 각오」, 1호)   

 

  『조선불교계』에 실린 논설은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시사적인 내용을 제외한 상태에서, 그래도 불교계가 처해 있는 현실을 나름대로 개선해 보고자 하는 잡지 발간 주체의 메시지를 담았다. 이능화의 「포교규칙과 오인의 각오」는 1915년 10월 1일부터 조선총독부령으로 시행된 ‘포교규칙 제1조’(“본령에서 종교라 칭함은 神道 佛道 基督敎를 위함”)를 글의 실마리로 삼아 신도, 불교, 기독교의 포교 상황과 당시까지 조선에 끼친 영향에 대해 차례로 서술한 글이다. 필자는 신도는 조선에 광포되는 실적이 없다고 하여 간략히 존재 양상만 소개하였다. 

 

 

사진 3. 이능화 논설(포교규칙과 오인의 각오)(1호). 

 

 

  기독교에 대해서는 조선에 기독교가 전래된 시초와 경과, 학교 의료 자선사업 등의 포교현실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하였다. 최종적으로 불도에 대해서는 불교가 조선에 전개된 상황을 약술하고 최근 서구의 불교 유입과 연구 상황에 대해 소개하였다. 이어 「불도의 선포방법」을 소제목으로 하여 과거와 현재의 포교 현황을 소개하였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불교진흥회를 설립하여 실제 사업을 전개하고자 계획을 세우는 상황을 소개하였다. 마지막으로 1916년 1월 선교양종삼십본산주지회의에서 김상천 거사가 건의한 재미齋米 일체 시행건을 실행하는 운동을 소개하며 그 가능성을 타진하였다. 서두에서 총독부의 종교시책을 제시하여 일제의 종교정책을 충실하게 구현하는 잡지 간행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비판할 수 있지만, 기독교의 포교를 모델로 삼아 나름대로 새로운 포교 모델을 부각시킨 것은 잡지의 책무와 역할을 실현한 한 예라 할 수 있다.

 

 주제별 불교사 연구(사진 4. <가찬석존전>과 <이조신주범종사>, 1호)

    

  발행인인 이능화의 역사 자료 발굴 성과는 『불교진흥회월보』에 이어 『조선불교계』에서도 계속되었다. 개별적인 자료의 소개와 병행하여 두 편의 주제사를 연재하였다. 「이조신주범종사李朝新鑄梵鍾史」와 「불조유골동래사佛祖遺骨東來史」다. 「이조신주범종사」는 조선에서 새로 주조한 범종의 역사를 소개하는 글로 총3회 게재하였는데, 이는 『불교진흥회월보』 제9호에 연재를 시작하여 실제로는 2, 3, 4회를 연재한 셈이 된다. 수록 순서는 <원각사종명병서>(최항 찬), <금강산장안사신주종명병서>(청허선사 찬), <황해도잔악군연등사사적비명 병서>(방순 찬, 1700) 등이다. 「불조유골동래사」는 부처의 영골(유골과 사리)이 이 땅에 전래된 자취를 사례별로 3회에 걸쳐 소개한 것으로서 이 잡지에 처음 수록한 글이다. 1호에는 동화사 금당탑 사리, 2호에는 지리산의 세 탑(화엄사 세존사리탑, 대원사 세존사리탑, 법계토굴 세존사리탑), 3호에는 통도사 금강계단불사리, 황룡사 구층탑 불사리를 소개하였다. 사리를 신앙 대상으로 삼아 온 이 땅의 자취와 탑으로 구현된 양상을 역사적 근거를 갖추어 소개한 의의가 있다.

 

 

사진 4. 가찬석존전과 이조신주범종사(1호). 

 

 

 이응섭 원작, 권상로 윤색의 <가찬歌讚 석존전釋尊傳>은 『조선불교계』에서 모처럼 시도한 근대불교의 문학적 재창조의 결과물이다. 제1장 총설의 1단락과 3단락을 보자.(한자는 한글로 바꿈)

 

1.

지금부터 회고ᄒᆡ, 삼천여년전

넓고넓은 인도하, 모든 상류에

망망한 관개구역, 사천여리오

양양ᄒᆞᆫ 옥토전원, 일망무제라

 

3.

구십여파 철학자, 이론토론코

대소제국 왕후들, 패권닷호네

엄ᄒᆞ다 민족계급, 사등분ᄒᆞ야

바라문족 찰제리, 페다 수타라

 

 7․5조 창가로서 4행이 묶여 1단락을 구성하였다. 제1호에는 제1장 총설(27단락), 제2장 석존의 祖先(8단락), 제3장 석가의 강탄(13장)이 수록되어 있다. 제2호에는 제4장 석존의 출가(19단락), 제5장 석존의 고행(27단락)이, 제3호에는 제5장의 28-39단락), 제6장 석존의 성도(16단락), 제7장 석존의 설법(10단락)이 수록되었다. 이렇듯 미완으로 끝난 <석존전>은 1927년 5월 간행된 『불교』 제35호에 4․4조 가사 <석존일대가>로 재창작되었다. 불교가 합리적 종교로서 탐구의 대상이 되며, 교주의 일대기 기술에서도 신이함을 배제하고 위인 석가의 일대기를 합리적으로 제시하려는 경향은 근대불교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일본의 율격에서 영향을 받아 국내에서 크게 유행한 7·5조 음수율의 창가조로 재창조한 것은 근대불교학의 문학적 재현으로서 의의가 있다. 

 

선 혹은 공안公案 소설의 창작(사진 5. 양건식의 소설 <아의 종교>, 3호)    

 

  양건식은 ‘소설’ <한일월閒日月>과 <아我의 종교宗敎>를, 이능화는 ‘소설’ <수월연水月緣>을 발표하였다. 이들 소설은 본격적인 문학적 평가를 받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나, 나름대로 특색이 있다.

 <한일월>을 보면, 당 현종 대에 호남지방 담주潭州의 대위산大潙山에 백장 대지百丈大智의 제자 영우靈祐 화상이 있어 6백 제자를 거느리고 독특한 종법을 선양하였는데 이름 대신 ‘위산’이라 부른다. 그 위산과 별명이 유철마劉鐵磨인 비구니 제자와의 법거량 일화를 소설식으로 표현하였다. 공안이나 법거량을 소재로 구성한 일종의 선禪 소설의 성격을 보여준다.

 

 

사진 5-1. 양건식 소설 한일월(1호). 

 

 

 <아의 종교>도 위와 같은 성격의 짤막한 소설이다. 당 말엽의 포대布袋 화상을 대상으로 하여 외모, 행동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함께 사람의 미래 운명을 예지하는 능력이 있음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포대화상이 늘 메고 다니는 포대 주머니布囊를 하나의 공안으로 보고 그 종교적 의미를 천착하였다. 현토체로 쓰인 이능화의 <수월연>은 역사학자인 필자가 역사 사적과 관계있는 전설을 소설화한 것이다. 옥과 성덕산 관음사에 전하는 관음설화를 모티프로 하였고 마지막 부분에는 불교사가로서 자신의 평가를 첨부하였다.

 

 

사진 5-2. 이능화 소설 수월연(2호). 

 

 

 결국 『조선불교계』는 편제, 내용, 문체에 있어 고답적이고 보수적인 경향이 없지 않지만, 당대의 불교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부분적인 성과가 없지 않다. 예를 들어 근대불교학의 사조를 담은 석가일대기를 재창작하고, 공안(화두)을 모티프로 한 소설 창작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은 문화사적으로 평가할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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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
불교가사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 불교문학의 다양한 양상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조선시대 불가 한문학의 번역과 연구, 근대불교잡지의 문화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불교시가의 동아시아적 맥락과 근대성』 등이, 번역서로 『정토보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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