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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이야기 ] '‘이입'과 '행입' 제시, '불성'과 '반야'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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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  2021 년 4 월 [통권 제96호]  /     /  작성일21-04-05 12:00  /   조회40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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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이야기 4 | 달마達摩-혜가慧可의 능가종楞伽宗

 

북조의 선학은 발타跋陀 - 승조僧稠 계통의 정학定學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 남방으로부터 북상한 보리달마菩提達摩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다른 측면으로 보자면, 정학 계열의 상당한 견제와 핍박에 의하여 발생한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들이 보인다. 사실상 북조는 승관제도를 통하여 불교가 철저히 황권에 복속되어 있었고, 불타와 승조, 승실僧實 등이 모두 황제에게 중시를 받았다는 기록들은 당시 정학이 이른바 ‘습선習禪’의 계통을 주도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이로 말미암아 달마-혜가계의 자료는 상당히 빈약하다고 할 수 있다. 

 

달마 - 혜가계의 가장 믿을 수 있는 자료는 바로 당대唐代 도선(道宣, 596-667)이 찬술한 『속고승전續高僧傳』이라고 하겠다. 도선은 서문에서 남북조의 고승들에 대한 자료가 기껏해야 행장行狀 정도만이 남아있음을 한탄하면서 “혹은 앞선 이들에게 널리 자문하고, 혹은 수행인[行人]에게 물었으며, 혹은 직접 눈으로 보고 기록하였고, 혹은 수집한 전기들을 대조하여 검토하였다. 남북조南北朝의 국사國史에 첨부된 고승들의 덕행들과 시골의 비석들에 새겨진 고승들의 뛰어난 덕을 모두 찰요撮要하여 그들의 뜻과 행적, 그 법기法器를 요약했다.”(주1)라고 밝히고 있듯이 자료의 수집에 철저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도선은 철저한 율사律師로서 남산율종南山律宗을 개창하였으니, 그가 수집한 자료와 그를 바탕으로 한 기술은 보다 믿음이 간다고 하겠다. 따라서 『속고승전』을 중심으로 달마 - 혜가계의 활동과 선사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속고승전』에 실린 보리달마의 전기에 따르면, 달마는 남월(南越. 지금의 廣東省 남부 일대)을 통하여 중국에 도래했다고 하는데, 그로부터 바다를 통해 입국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에 북상하여 북위北魏에 이르렀다고 한다. 북위에서 달마가 법을 펼치자 “정법定法을 듣고는 많은 비방이 일어났다.”(주2)라고 한다. 당시 달마는 도육道育과 혜가(慧可. 僧可라고도 함)를 만났는데, 그들은 “처음으로 법장法將을 만나 도道에 귀의歸依할 바가 있음을 알고, 친히 달마를 모시기를 4, 5년이 지나도록 공양을 올리며 법을 묻자, 그 정성에 감동되어 진법眞法으로 가르쳤다.”(주3)라고 한다. 여기에서 달마가 가르친 ‘진법’이 바로 ‘이입사행二入四行’이며, 그에 대하여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도선은 전기의 마지막에 “그 말과 가르침을 기록하여 책을 만들어 세상에 유포시켰다. 달마는 자신의 나이가 150여 세라고 하였으며, 돌아다니며 교화함에 힘썼으므로 어떻게 생을 마쳤는지는 알 수 없다.”(주4)라고 기술하고 있다.

 

달마가 “150여세”라는 것은 양현지楊衒之의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에서 언급된 것(주5)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달마는 후대에 이르러 수많은 전설들이 부가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유명한 것들이 양무제梁武帝와의 문답, 혜가의 단비구법斷臂求法과 광통율사光統律師와 보리유지菩提流支에 의해 여섯 차례에 걸쳐 독살되었다는 등의 내용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발생했다는 전문傳聞이나 자료가 있었다면, 도선이 분명하게 언급했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 하지만 달마 - 혜가계가 당시 발타 - 승조계의 정학으로부터 상당한 견제와 박해를 받았다는 것은 명확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겠고, 후대에 동토東土의 초조初祖로 추앙되면서 그러한 역사적 상황에 스토리텔링을 부가한 것이 아닐까 한다.

 

달마의 법을 계승한 이는 바로 혜가이다. 도선은 달마 - 혜가계의 전기를 찬술하면서 “비문碑文에 (이들의 행적이) 드물게 보이며, 가르침도 전해지지 않는다.”(주6)라고 한탄하고 있듯이 이들에 대한 자료가 상세히 전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혜가의 전기에 따르면, 혜가는 나이 40세에 달마를 만났으며, “달마가 낙수洛水 물가에서 멸화滅化하자”, 혜가는 몸을 숨겼으나 수많은 승려와 신도들이 그를 찾아와 법을 물었다고 한다. 후에 동위東魏 천평天平 연간(534-537)에 신업新鄴 지방에서 비원祕苑을 열어 법을 설하자 많은 호응이 있었다. 그에 따라 당시 그곳의 정학으로 유명한 도항道恒은 사람을 보내어 법을 듣게 하였는데, 오히려 혜가에게 감복되자 “도항은 마침내 깊은 원한을 품고, 혜가(승가)를 비방하고 괴롭히고, 세간의 관부에 뇌물을 주어 이치에 맞지도 않는 구실로 그를 해하려고 하였는데, (혜가는) 애초에 하나의 원한도 없었는데도 그를 거의 죽을 지경에 몰아넣고, 도항의 무리들은 기뻐하였다.”(주7)라고 한다. 전기에는 또한 “도적을 만나 팔을 잘렸다.”(주8)는 구절이 나오고, 법림法林 역시 팔을 잘려 당시 사람들이 “무비림無臂林”이라고 칭했다는 기사가 보이는데,(주9) 이 역시 정학 계열의 박해로 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달마대사가 9년 면벽했다는 소림사 달마동

 

 

 그러나 당대唐代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정학’의 계통은 사라지고, 달마 - 혜가계가 상당히 득세를 하게 되며, 그에 따라 ‘조통부법설祖統付法說’이 제창되면서 달마와 혜가는 선종의 초조初祖와 이조二祖의 영예를 안게 되었고, 그와 부응하여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다양한 전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달마-혜가계의 선사상은 어떤 것인가? 주지하다시피 달마의 선은 흔히 ‘안심법문安心法門’으로 칭해진다. 이러한 ‘안심’의 연원은 이미 동한東漢 시기에 최초로 경전을 번역한 안세고安世高나 지루가참支婁迦讖의 역경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지루가참이 번역한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에는 “마음이 부처를 짓고[心作佛], 마음이 스스로 보며[心自見], 마음이 부처의 마음이고[心是佛心], 부처의 마음이 나의 몸[佛心是我身]이다.”(주10)라고 하여 ‘심’의 위상을 극대화하고 있는데, 이로부터 ‘안심’의 연원을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이 『반주삼매경』은 여산廬山 혜원慧遠이 동림사東林寺에서 중국 최초의 정토결사인 ‘연사(蓮社. 白蓮社라고도 함)’를 일으킨 소의경전이기도 하여 상당히 광범위하게 유행하였다. 주지하다시피 ‘백련사’는 원흥元興 원년(402) 7월에 결성되어 지금까지도 결사를 유지하고 있으니, 16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단체이다.(주11) 또한 남북조시기에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을 ‘안심’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보인다. 특히 당대에 정각淨覺이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를 찬술하면서 ‘안심법문’의 기원을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로 설정하고,(주12) 달마가 그를 계승하였다고 밝히고 있지만,(주13) 후대에 이르러서 구나발타라는 언급되지 않는다. 주지하다시피 4권본 『능가경楞伽經』은 바로 구나발타라가 번역한 경전이다.

 

달마의 선사상은 바로 『속고승전』의 전기에 보이는 ‘이입사행二入四行’에서 엿볼 수 있다. 도선은 “그 말과 가르침을 기록하여 책을 만들어 세상에 유포시켰다.”라고 기술하고 있는 것처럼 전기에 기록된 ‘이입사행’은 바로 그 책으로부터 인용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능가사자기』에서는 달마의 저술로 『약변대승입도사행略辨大乘入道四行』이 있으며, 제자 담림曇林이 서문을 썼다고 하고,(주14) 또한 담림이 달마의 언행을 기록하여 1권으로 엮었으며, 달마가 좌선하는 대중을 위하여 『석능가요의釋楞伽要義』 1권을 찬술하여 『달마론達摩論』 2권이 있지만, 세상에는 위조된 『달마론』 제3권이 유행하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주15) 그에 따라 후대에 달마의 이름을 가탁한 저술들이 출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가장 원초적인 달마의 선사상은 바로 『속고승전』의 전기에 기술된 내용이라고 하겠고, 그를 통해 달마의 선사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속고승전』의 달마 전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이와 같은 안심법安心法을 벽관壁觀이라고 한다. …… 그러나 입도入道에는 방법이 많아도 핵심은 오직 두 가지뿐으로, 이理와 행行이다. 교에 의지하여 종지를 깨달아[藉教悟宗], 모든 중생들은 동일한 진성眞性임을 깊이 믿게 하는 것이다. 객진客塵이 가로막기 때문에 거짓을 버리고 진실로 돌아가[捨偽歸真] 벽관에 응주凝住하면, 자自・타他가 없고 범凡・성聖이 평등하여 하나와 같다. 견고하게 머물러서 움직임이 없고, 다른 가르침에 떨어지지 않으며, 도와 명부[與道冥府]하여 적연무위寂然無爲함을 이입理入이라 칭하고, 행입行入은 사행四行으로 만행萬行이 함께 포섭된다.”(주16)

 

이로부터 달마의 핵심적인 선사상을 도출할 수 있는데, 바로 ‘자교오종藉敎悟宗’을 통한 ‘이입理入’과 ‘행입行入’이며, 이것이 ‘안심’을 이룰 수 있는 ‘벽관’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벽관’의 의미는 실제로 좌선하여 ‘벽’을 관하거나 마음의 경계를 ‘벽’과 같이 관한다고 해석하기도 하고, 혹은 정심定心, 응심凝心, 간심看心 등으로 보는 다양한 해석이 나타날 수 있으며, 후대에 달마가 중시되면서 ‘벽관’의 해석에 따라 서로 다른 선사상이 출현하였다. 또한 ‘자교오종’을 제창하였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교’는 바로 혜가의 전기에 나오는 바와 같이 달마가 전수한 4권본 『능가경』이며,(주17) 이 경전에서는 궁극적인 가르침을 ‘종통宗通’(주18)으로 설하는데, 달마가 말하는 ‘오종悟宗’의 ‘종’이 이로부터 온 것이라고 하겠으며, 이는 “언설言說・문자文字・망상妄想”을 원리遠離하기 때문에 후대에 ‘불립문자不立文字’의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달마는 바로 ‘자교오종’을 통하여 ‘여도명부’・‘적연무위’에 이르는 과정을 ‘이입’이라고 하였고, 이러한 ‘이입’을 바탕으로 ‘행입’을 제시하는데, 이것이 바로 보원행報怨行・수연행隨緣行・무소구행無所求行・칭법행稱法行의 ‘사행’이다. 이러한 ‘사행’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이입’과 ‘행입’은 마치 새의 양 날개와 같아 어느 하나가 결여될 수 없다고 하겠다. 또한 이는 바로 전통적인 제법시설의 형식으로, 이론적인 ‘의설義說’을 설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수행법인 ‘법설法說’을 제시하는 것과 같다.

 

 

김명국의 달마절로도강도


 

이러한 달마의 선사상은 중국선사상사에서 다양한 측면에서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두 가지 측면을 지적할 수 있다. 당시 북조의 ‘정학’은 오랜 기간에 걸쳐 체계적으로 훈련해야 하는 차제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에 반하여 달마가 제창한 선사상은 ‘이입’과 ‘행입’의 두 가지로 상당히 간결하게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보다 중국인들의 사유구조에 적합한 것이라고 하겠다. 두 번째 측면은 바로 여래장 계통과 반야성공의 두 측면을 융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상세한 논증은 생략했지만, 『능가경』에 입각한 ‘자교오종’으로 ‘이입’을 제시하고 있는데, ‘행입’에 있어서는 분명하게 ‘반야’의 논리에 입각하고 있음을 볼 수 있으며, 이는 후대의 달마 - 혜가계의 능가종楞伽宗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이로부터 중국선사상은 바로 ‘불성’과 ‘반야’라는 하나의 전형적인 틀이 형성되었고, 이후의 모든 선사상은 이 틀에 입각하여 전개되고 있다고 하겠으며, 이러한 측면에서 선종의 동토 초조初祖로 추대된 것이 아닐까 한다.

 

 주)_

1) [唐]道宣, 『續高僧傳』卷1(大正藏50, 425b) “或博諮先達, 或取訊行人, 或即目舒之, 或討讎集傳. 南北國史附見徽音, 郊郭碑碣旌其懿德, 皆撮其志行舉其器略.”

2) 앞의 책, 卷16(大正藏50, 551c) “乍聞定法多生譏謗.”

3) 앞의 책, “初逢法將知道有歸, 尋親事之經四五載, 給供諮接, 感其精誠誨以真法.”

4) 앞의 책, “錄其言誥卷流于世. 自言年一百五十餘歲, 遊化為務不測于終.”

5) [元魏]楊衒之撰, 『洛陽伽藍記』卷1(大正藏51, 1000b), “時有西域沙門菩提達磨者, 波斯國胡人也. …… 自云年一百五十歲歷涉諸國.”

6) [唐]道宣, 『續高僧傳』卷16(大正藏50, 552b) “碑記罕聞, 微言不傳.”

7) 앞의 책(大正藏50, 552a) “恒遂深恨謗惱於可, 貨賕俗府非理屠害, 初無一恨幾其至死, 恒眾慶快.”

8) 앞의 책(大正藏50, 552b) “遭賊斫臂”

9) 앞의 책, “故世云無臂林矣.”

10) [後漢]支婁迦讖譯, 『佛說般舟三昧經』(大正藏13, 899b) “心作佛, 心自見, 心是佛心, 佛心是我身.”

11) 원대元代 지대至大 원년(1308)에 ‘백련사’를 황제의 명령으로 금지시켰다가 동림사東林寺의 우담보도(優曇普度, ?-1330)가 『여산련종보감廬山蓮宗寶鑑』 10권을 찬술하여 황제에게 상주하여 그 종지宗旨를 밝힘으로 황경皇慶 원년(1312)에 다시 재개되었고, 그 이후 수많은 왕조의 교체와 전란에도 단 한 차례의 중지됨이 없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12) [唐]淨覺, 『楞伽師資記』(大正藏85, 1284b) “지금 말하는 안심安心이란 간략하게 네 가지 종류이다. 첫째는 이치를 등지는 마음[背理心]으로, 이는 범부의 마음과 같다. 둘째는 이치를 향하는 마음[向理心]이다. 이는 생사를 싫어하고, 열반을 구하며, 작장寂靜으로 향한다. 이는 각 상문聲聞의 마음이다. 셋째는 이치에 들어가는 마음[入理心]이다. 비록 장애를 끊고 다시 이치를 드러내나, 주체와 객체[能所]가 다하지 않았음을 이른다. 이는 보살의 마음이다. 넷째는 이치의 마음[理心]이다. 이치[理] 밖의 이치가 아니고, 마음 밖의 마음이 아니어서, 이치가 곧 마음이다. 마음은 평등할 수 있으므로, 그 이름을 이치라고 한다. 또한 이치는 비추어서 밝힐 수 있으므로, 그 이름을 마음이라고 한다. 마음과 이치는 평등하므로, 그 이름을 불심佛心이라고 한다.[今言安心者, 略有四種. 一者背理心, 謂一同凡夫心也. 二者向理心, 謂厭惡生死, 以求涅槃. 趣向寂靜, 各聲聞心也. 三者入理心, 謂雖復斷障顯理, 能所未亡, 是菩薩心也. 四者理心, 謂非理外理, 非心外心, 理卽是心, 心能平等, 名之爲理, 理照能明, 名之爲心, 心理平等, 名之爲佛心.]”

13) [唐]淨覺, 『楞伽師資記』(大正藏85, 1284c) “第二, 魏朝三藏法師菩提達摩, 承求那跋陀羅三藏後, 其達摩禪師.”

14) 앞의 책(大正藏85, 1284c) “略辨大乘入道四行, 弟子曇林序.”

15) 앞의 책(大正藏85, 1285b) “弟子曇林記師言行, 集成一卷, 名曰達磨論也. 菩提師又為坐禪眾, 釋楞伽要義一卷, 有十二三紙, 亦名達磨論也. …… 偽告達摩論三卷, 文繁理散, 不堪行用.”

16) [唐]道宣, 『續高僧傳』卷16(大正藏50, 551c) “如是安心謂壁觀也. …… 然則入道多途, 要唯二種, 謂理行也. 藉教悟宗, 深信含生同一真性. 客塵障故, 令捨偽歸真, 凝住壁觀, 無自無他凡聖等一. 堅住不移, 不隨他教, 與道冥符寂然無為名理入也, 行入四行萬行同攝.”

17) 앞의 책(大正藏50, 552c) “달마선사는 혜가에게 四卷 楞伽經을 주면서 말하기를, ‘내가 중국 땅을 살펴보니, 오직 이 경전만 있을 뿐이므로, 그대는 이 경전에 의지하고 수행하여 스스로 세속을 구제하라.’고 하여 玄理를 전하고 咐囑하였다.[達摩禪師以四卷楞伽授可曰: 我觀漢地惟有此經, 仁者依行自得度世. 可專附玄理.]”

18) [宋]求那跋陀羅譯, 『楞伽阿跋多羅寶經』卷3(大正藏16, 497b-c) “宗通者. 謂緣自得勝進相. 遠離言說文字妄想. 趣無漏界自覺也自相. 遠離一切虛妄覺相. 降伏一切外道衆魔. 緣自覺. 趣光明暉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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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부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원광대, 서울불교대학원대학, 동국대(경주)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중국불교거사들』, 『중국불교사상사』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조선불교통사』(공역), 『불교와 유학』, 『선학과 현학』, 『선과 노장』, 『분등선』, 『조사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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