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다도]
한국의 茶道 / 돈수 스님의 차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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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룡 / 2021 년 5 월 [통권 제97호] / / 작성일21-05-04 14:42 / 조회5,601회 / 댓글0건본문
차는 종합예술이다
두 번째 차 스승인 돈수 스님의 차 야야기는 너무도 많아 최소한 5회 정도는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시골 토굴에서 조용히 공부 하시는 스님을 너무 드러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남은 이야기를 줄여 이번에 끝내려 한다. 많은 이야기를 한 번에 전해 드리려니 두서없고 어수선하지만 꼭 전해 드리고픈 마음에 실례를 무릅쓴다. 다음 호부터는 세 번째 차 스승 이야기를 시작할 생각이다.
고고한 사슴의 자태, 돈수 스님(주1)
효림 스님(주2)은 세수世壽와 출가出家 시기가 돈수 스님과 비슷할 뿐만 아니라, 여러 철을 같은 선방이나 토굴에서 수행하신 도반道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효림 스님이 본 돈수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당신 글에서, “썩 잘생긴 미남에다가 아주 순한 눈과 이지적인 콧날을 지녔다. 마치 한 마리 산 사슴 같은 첫 인상이었다.”고 언급하시면서, 제호題號를 「고고한 사슴의 자태, 돈수스님」이라 하셨다.
사진 1. 茶, 필자 습작품, 28 x 25mm.
필자는 스님의 선방에서의 생활은 알 수 없으나 27년간의 인연 중에 3년 혹은 5년씩 여러 번 말로만 듣던 무문관(주3) 수행을 하신 것을 목도하였다. 스님께서는 그렇게 열심히 수행을 하시면서 정작 필자에게는 공부(주4)하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전각篆刻을 해보라는 말씀은 하셨다.
전각의 멋
전각은 문기文氣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문사文士들의 소중한 애호품이다. 까닭은 방촌(주5)의 좁은 공간에 가슴 속에 담고 있는 서권기書卷氣를 압축된 문장이나 그림으로 새겨 넣어 뜻의 생동감을 극도로 고조시키는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이유로 스님이 ‘전각을 시작 해보라’고 하셨던 게 아닐까 한다.
사진 2. 서귀암 말차법을 위한 찻상.
보통 전각은 수십 년 글씨 공부 끝에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초등학교 습자 시간에 붓을 들어본 이후 한 번도 붓글씨를 써본 경험이 없는 필자에게 스님께서는 너무도 쉽게 가르쳐 주셨다. 전각을 할 때는 정좌正坐하여 묵상黙想하고 시작하라. 인고印稿가 구상되면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고 일주일 이상 오가면서 보았을 때 마음에 들면 인석印石에 묘사描寫하라. 칼을 쓸 때는 칼끝에 힘이 다하여 마치 사자가 먹잇감을 잡는 것처럼 일기가성一氣呵成으로 완성하라고 하셨다.
전각을 하며 다른 생각을 찰라刹那라도 하면 획이 날아가든 손을 다치든 둘 중에 하나가 반드시 일어난다. ‘아차’ 하는 순간 이미 때는 늦게 되는 것이다. 어느 일이나 하나에 집중하면 내 마음의 흐름을 알 수 있게 되지만 필자에게는 전각이 마음으로 다가왔다. 그것을 스님께서는 간파看破하고 계셨던 것이다.
하루는 우리나라 해남석을 구해 집에 도착해 한손에는 해남석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열쇠로 문을 여는 중에 그만 전각석을 떨어뜨려 깨뜨리고 말았다. 버리는 셈치고 인고印稿 없이 바로 칼을 들고 ‘茶’자를 새겼는데 여러 사람이 좋아하는 작품이 되었다(사진 1), 이 일로 무심無心이 제일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렇듯 장점이 많은 전각도 ‘눈[眼]’이 따라주지 않아 새기기를 멈추었더니, 백여 점의 모각模刻과 백여 점의 연습작만 곁을 지키고 있다.
차의 음기 제거법 개발
차의 음기陰氣 혹은 잘못된 법제法製, 혹은 쇠독을 제거하지 못한 무쇠솥 등에서 생기는 쇠독을 함유된 차를 많이 마셔 몸에 독이 쌓이는 것을 ‘차적茶積’이라 한다. 요즈음은 그런 차가 거의 없으나 스님들 가운데 이런 덖음차를 지나치게 드시고 몸을 상한 분들을 위해 차독을 제거하는 ‘녹차 우리는 법’을 돈수 스님이 개발하셨다.
사진 3. 제5회 서귀암 말차법 수료식.
처음 ‘차우림 그릇[茶罐]’(주6)에 덖음차를 넣은 후 냉수를 부어 40초 정도 두었다가 물을 버린다. 그리고 끓는 물을 바로 차관에 부어 1-2분 우린 후 마신다. 이때 차관의 뚜껑은 닫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2-3탕을 계속 냉·열 방법으로 반복하면 차도 부드럽고 감미로울 뿐 아니라 차의 성격이 따뜻해지는 덖음차의 음기를 제거할 수 있다고 가르쳐 주셨다.
서귀암 말차법 창시
말차(주7)는 우리나라 고려 때 성행했다. 이조의 배불숭유排佛崇儒 정책은 차는 불교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이유로 일반의 차생활은 산중으로 숨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차가 좋다는 것을 안 지식층, 소위 양반들은 ‘차’를 마신 것이 아니라 ‘다茶’를 마시게 되니 ‘茶’자의 발음이 ‘차’가 아닌 ‘다’로 고착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첫 회에서 언급하였다.
돈수 스님은 혼돈스럽고 바쁜 일상 속에서 꾸준한 반복 행다行茶를 통하여 절제된 감정을 갖고 그 속에서 정제된 의식을 행하여야 하며, 행다를 통해 인간의 본능적인 문제를 때로는 절도 있는 행동으로, 때로는 한잔의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다듬어 가는 데 진력하는,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하셨다.
사진 4. 서귀암 옆 국화밭.
손[手]은 마음의 뜻을 나타낼 수 있는 수련미를 가져야 하며, 마음은 손의 산란함을 늘 단속해야 하고 혈기는 마음의 뜻을 넘지 않게 하여 늘 조화를 찾는데 노력하며, 자신만이 갖는 차 문화의 특징을 절제된 동작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하셨다.
서귀암 말차법은 다화茶花 들어 보이기, 시詩 읊기, 다선茶筅 적시기, 격불擊拂, 헌다獻茶 등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다화를 들어 보이는 것은 생과 멸을 의미하고, 찻사발 내에서 다선을 적시는 과정에서 ‘小’자를 그리는 것은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작게 하자는 의미가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마시기 전에 가장 존경하는 분께 미리 헌다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진 5. 안동의 여러 국화차.
돈수 스님이 수십 년 동안 매일 아침 행다 하며 완성한 한국식 서귀암 말차법은 사단법인 설가차문화연구원 설가蔎檟 김우영 원장에게 전수되어 문경 찻사발 축제에서 발표되었고, 설가차문화연구원에서 여러 제자들도 배출되었다. 그 중 춘천의 준혜헌駿慧軒 송양희 씨는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에서도 여러 차례 서귀암 말차법에 대한 발표회를 가져 많은 호평을 받았다(사진 2·3).
대용차 개발 보급
돈수 스님이 국화차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덖음차의 음기가 몸에는 지나친 것이어서 이것을 대신해 마실 차를 찾다가 개발하셨다. 우연히 옛 문헌에 국화차에 관한 내용이 눈에 띄어 그것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다양한 국화 품종을 수집하여 그 중 모양과 빛깔이 고운 것, 향기가 좋은 것, 그리고 무엇보다 독성이 적은 것을 취했다.
사진 6. 석창포차.
수많은 국화를 일일이 맛본 뒤에 최종적으로 찾은 것이 전통 우리 감국이었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일 년에 수십 명이 국화차를 마시고 독성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다. 차로 마시기 위하여 독성제거 제다법을 개발하는 것이 필수여서, 이를 위해 공복에 진한 국화차 2되 가량을 마시고 그것이 오장육부에 미치는 것을 관찰하고 독성을 확인하는 등 수많은 시험 과정을 거쳐 삼 년여 만에 법제법法製法을 완성했다.
개발된 국화차 법제법은 업계에 기술 이전되어 전국으로 퍼졌으며 ‘금국’ ‘가을신선’ 등 안동 국화차가 우리나라 국화차의 대명사가 되었다(사진 4·5).
사진 7-1. (앞)一味房, 필자의 경북대 유일의 좌식연구실 현판.
사진 7-2. (뒤)飮茶人生第一樂, 돈수 글 금천 새김. 74 x 17 x 4cm.
한편, 석창포石菖蒲는 창포과의 여러해살이 풀로 부추를 닮았다고 하여 요구妖韮라고도 하고, 잎줄기가 마치 양날이 선 칼처럼 매끈하여 수검초水劍草라 부르기도 한다. 속기를 벗어난 말끔한 풍모, 겨울의 찬 공기에 잎을 가늘게 떨면서 풍기는 산뜻한 향기에 반하여 스님께서는 즐겁게 감상하시다가 오래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귀와 눈이 밝아지며 정신이 또렷또렷해져 슬기를 돕고 수명을 길게 한다는 옛글이 떠올라 이 풍만한 양기로 음기를 제압하는 차로 만들었다(사진 6).
이상과 같이 스님의 차 생활은 항상 생각하며, 스스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였다. 차는 몸으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마시는 것이라는 것,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자신만의 향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차가 없어도 차의 향기가 차인茶人의 몸과 마음에서 같이 배어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차를 너무 어렵게 대하지 말고 일상생활의 하나가 되어야 하며, 차뿐만 아니라 매사每事에 항상 한결같은 마음을 가져야 하며, 타인의 행동이나 행차行茶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니, 왜 다를까 생각해 봐야 한다 하셨다.
또한 흐르는 물처럼 장애가 있으면 돌아가고, 길이 좁으면 빨리 가고, 모든 것을 수용하여 정화하고, 불처럼 주위를 밝게 하고, 남을 따뜻하게 해주고, 나쁜 것은 태워 버려 맑게 하며, 차처럼 부드러우나 기능성이 있고, 양변에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 참된 차인의 생활 습관이라고 가르쳤다. 특히 차는 종합예술이니 차 마시는 공간에 뜻이 좋은 이름을 지어, 쓰거나 새겨서 붙여 놓고 오가며 그 뜻을 생각하는 것을 권하셨다(사진 7-1·7-2).
끝으로 스님께서 주석하시는 토굴의 글담에 새겨진 시를 소개하면서 돈수 스님의 차이야기를 마칠까 한다.
등불이 없어도
오감은 어둡지 않고
붉은 화롯불
눈 내리는 창
차 다리는 손길 본래 담담하나
잘 익은 풍경을 만나면
차의 맛은
불꽃과 같다.
주)_
1) 효림, 『그 산에 그 스님이 있었네』, pp 51-56, 바보새(2003).
2) 효림 스님은 1968년 승려가 된 이후 줄곧 전국 선원에서 운수납자雲水衲子로 수행하셨음.
3) 무문관無門關; 일정한 기간 동안에 외부출입이 금지된 상태에서 생활하며 수련하는 것으로, 스님께서는 일주일 분량의 쌀과 된장을 들여보내 주되, 먼저 넣어 준 쌀이 그대로 있으면 죽은 줄 알라며 스스로 시멘트로 문을 막고 수행하셨음.
4) 공부工夫; 지식智識을 습득習得하는 학습學習과 달리, 진리眞理를 궁구窮究하여 체험體驗하는 일.
5) 방촌方寸; 전각은 사방 한 치(약 3cm)의 정사각형의 옥돌에 새기는 것이 기본임.
6) ‘차우림 그릇’을 우리는 차관茶罐이라 하고 중국인들은 차호茶壺라 부르며 차 담는 통을 우리는 차호茶壺라 하고 중국 사람들은 차관茶罐으로 양국은 서로 바꾸어 부른다.
7) 말차의 한자표기는 농차濃茶를 抹茶, 박차薄茶를 沫茶, 가루녹차를 末茶로 쓰나, 보통 우리는 抹茶, 일본은 沫茶, 중국은 末茶로 쓰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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