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만해가 창간 청년을 위한 수양의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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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 / 2021 년 6 월 [통권 제98호] / / 작성일21-06-04 14:14 / 조회4,680회 / 댓글0건본문
근대불교잡지 산책 ⑥『유심惟心』 (통권 3호, 1918.9-12)
발행 목적과 성격
『유심』은 만해 한용운(1879-1944)(사진1)이 조선 청년들의 수양을 독려하기 위한 목적에서 창간한 잡지다. 총권 3호로, 1918년 9월 1일 창간되어 10월에 제2호, 12월에 제3호가 간행되었다.
일반적으로 잡지는 잡지를 기획한 의도나 발행을 기념하는 서문이나 기념사, 논설이 앞에 제시되어 있어 그 성격을 확인할 수 있는데, 『유심』은 그러한 전통을 따르지 않은 채, 권두언 <처음에 씀>과 <心>이라는 시 형식의 글로 잡지 발간의 의도와 지향하는 목적을 문학적으로 추상적으로 제시한 후 논설 「조선청년과 수양」에서 발행의 목적과 지향을 제시하였다.
이 글에서 만해는 ‘조선청년’을 표제로 제시하여 이 잡지가 조선의 청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드러내었고, ‘現時’의 조선청년을 위하여 무슨 일을 도모하는 자는 그들의 심리를 이해하는 것이 선결과제임을 밝혔다. 결론에서는 당시 사회에서 물질문명의 유입으로 방황하는 청년을 위한 극복 방안으로 학문, 실업 등 다양한 영역에 대한 논의가 많다 하면서, ‘마음’의 ‘수양’을 행동 규범으로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만해는 조선 청년의 마음의 수양을 닦기 위한, 독려하기 위한 시의성 있는 운동으로 『유심』지를 창간한 것을 알 수 있다.
사진1. 만해(만해마을 만해문학박물관).
『유심』 표지는 별다른 도안 없이 ‘惟心’이라는 제목이 공들인 필체로 적혀있고, ‘경성 유심사 발행’이라는 간단한 정보가 기재되어 있다.(사진2, 표지) 판권장에는 ‘구독가의 주의’라 하여 대금과 송금, 잡지 청구의 방법, 반송시의 유의사항이 상단에 기재되어 있고, 하단에는 정가표와 광고료 정보 및 간행 정보가 기재 되었다. (동국대 불교학술원 ABC 아카이브 참조)
1, 2호의 판권장에 따르면 편집 겸 발행자는 한용운(경성부 계동 43번지), 인쇄인은 최성우, 인쇄소는 신문관(경성부 황금정 2丁目 21번지), 발행소는 유심사(주소는 한용운과 같음)이다. 3호에는 인쇄인이 심우택으로, 인쇄소는 성문사로 교체되었다. 정가는 한 권이 18전. 『유심』을 배포하는 서점[分賣所]는 경성 종로의 광익서관, 동양서원, 운니동의 장문사서점, 황금정의 신문관이다.(1호의 안내문)
신문관은 1908년 최남선이 세운 인쇄소 겸 출판사로 각종 계몽잡지와 교양서적을 출판하여 이 땅의 근대문화를 선도하였다. 아울러 같은 건물에 있는 조선광문회는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각종 고전을 출판한 근대지성의 집합체로, 이 역시 최남선이 주도하여 결성하였다. 한용운이 『유심』지를 신문관에서 인쇄, 제작하였고, 『유심』에 스님들뿐 아니라 조선광문회 인사들이 다수 투고한 사실은, 기본적으로 최남선, 조선광문회가 『유심』지의 외연을 형성하는 지적 인프라임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유심』지 이전에 등장한 불교잡지는 모두 불교계의 구심이 되었던 종단의 기관지 성격을 지니고 있다. 원종종무원(『원종』『조선불교월보』), 조선선교양종 각본사 주지 회의원(『조선불교월보』), 조선 선교양종 삼십본산 주지회의소(『해동불보』), 불교진흥회(『불교진흥회월보』『조선불교계』), 삼십본산연합사무소(『조선불교총보』) 등에서 주관한 잡지로서 교계 소식 전달이 기본적 목적이었으며, 총독부 종교 정책을 전달하는 체재 내의 잡지였다.
『유심』은 앞에 소개한 불교잡지와 그 출발이 다르기 때문에 일제 치하의 종교 제도와 정책을 홍보하거나 교계의 활동과 사찰 단위 행정 처리 등 공적인 내용을 전혀 담아내지 않았다. 『유심』이 불교잡지임은 분명하나, 내용상 불교의 홍법만을 강조하지 않았다. 또 함께 활동한 임제종 스님들 외에도 민족주의 계열 다수의 지식인을 필진으로 초대하였다.
『유심』은 만해의 불교 사상과 실천 의지가 기본적인 동력이 되어 청년을 호명하고 그들의 심성을 개량함으로써 대중을 교화하는 보살행을 실천하고자 한 독특한 잡지다. 『유심』은 한용운 자신이 그동안 축적해 온 문화적 자산과 활동 방식에 따라 창안한 잡지로서 단순한 불교잡지가 아닌 복합적 학생 대상의 교양 잡지임이 분명하다.
만해의 수양론
만해는 다양한 글을 통해 수양론을 전개하였는데, 권두언을 제외하고 직접 수양의 의미를 전달한 글은 <心>(사진3)과, 10편의 산문(논설)이 있고, 잡지의 끝머리에 <수양총화>라는 제목으로 다양한 동서고금의 격언을 모아놓은 격언집이 있다.
만해의 권두 논설은 ‘심’의 수양 논리를 전개한 특징이 있다. 「조선청년과 수양」(1호)에서는 조선청년의 마음의 상태를 ‘未定’이라 진단하고, 물질문명에 휩쓸린 조선 청년의 심적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정신문명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수양의 실력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는 앞에서 소개한 대로 『유심』지 창간의 논리이자 지향을 담은 선언문에 해당한다.
「마魔ᄂᆞᆫ 자조물自造物이라」(2호)는 불교나 야소교 등의 종교와 일체 사업에서 말하는 ‘魔’의 실체에 대해 논한 글이다. 마는 자심自心의 망각妄覺에서 나온 환영幻影이며, 자기의 심마心魔이므로 자심을 믿는 자의 앞에는 마도 없고 적도 없으니, 자신自信의 힘을 증장하여 분투 노력하자고 당부하였다.
「자아ᄅᆞᆯ 해탈ᄒᆞ라」(3호)에서 만해는 사람은 온갖 사물에 계박繫縛되기 쉬운 존재인데, 이를 면하고자 노력하는 것도 또 다른 계박이라 하였다. 일체의 해탈을 얻고자 하는 자는 먼저 자아를 해탈해야 하나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수양의 일도一道’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결국은 자기의 노력으로 심성을 수양하여 실천궁행의 향상을 도모해야 하며, 그 결과 품성이 도야되고 인격이 단련되어 궁극에 대 해탈을 이룬다고 하였다. 조선 시대 인물인 강위(추금), 김시습(매월)의 예를 들고, 유교적 덕목과 연결하는 방식으로 자아 해탈의 도리를 평이하게 설명하였다.
이상의 논문에 이어 만해는 실생활에서 적용 가능한 다양한 사례와 감상을 위주로 한 부수적인 글을 수록하였다.
고통과 쾌락은 모두 사람을 오뇌하게 하는 것이며 그 원인은 물질이 아니라 ‘심’에 있다는 「고락과 쾌락」, 일시의 물질적 궁핍을 견디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등산과 같은 수행 방식을 권장한 「고학생」, 권리와 의무가 없는 패자가 되지 말고 근면 용진의 자세로 우자, 승자되는 천국으로 나가자는 내용을 담은 「전로를 택하야 진하라」(이상 1호), 금강산에 있으면서도 평생 금강산을 보지 못한, 미루기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경계를 담은 「천연遷延의 해害」, 내 소유는 아니지만, 앞집 뒤뜰에 있는 오동나무가 필자에게 주는 풍취를 담담하게 서술한 수필 「전가前家의 오동」, 쓸데없는 걱정의 예를 제시한 후, 인생의 최대 기회는 현재이며, 인생의 구 할은 평상한 일에 있다는 내용의 「무용無用의 노심勞心」, 신문 잡지의 등장으로 소문의 빠르기가 배가된 현대에 이를 무시하는 대담성이 있어야 만인의 이상理想을 초월하는 쾌사를 창조한다는 내용의 「훼예毁譽」(이상 3호) 등이다. (이는 인터넷의 발달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공격적 언사 속에 살아가는 우리 시대에도 절실한 의미로 다가온다.)
이처럼 『유심』에 수록한 만해의 수양담론은 전체와 부분, 논리와 일상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배치하였고, 독자 수준에 맞는 평이한 표현으로 자신이 기획한 주제를 일관되게 펼쳐 나갔다.
종합교양지 지향 … 문예현상 공모도
「항공기발달소사」, 「과학의 연원」(1,2)은 필명이 없거나 ‘記者’ 이름으로 작성한 과학기술 기사인데, 『유심』이 기본적으로 만해 1인 편집 잡지기 때문에, 모두 만해가 작성한 글로 보아도 무방하다.
「항공기발달소사」는 20세기 초까지 전개된 공기구空氣球, 항공선航空船, 비행기의 개발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비행기는 당시 개발 단계에 있으나, 장차 ‘심력을 기울여’ ‘항공술이 이상적으로 진보되면 육해陸海생활의 인류가 공중생활의 인류가 될는지도 모르는’ 낙관적인 미래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그 이상이 실현될 때 창공에서 종횡 자재하는 호방하고 장쾌한 기상을 느낄 수 있다 하여 조선의 청년들을 계발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냈다.
사진3. 시 작품(창간호)
「과학의 연원」은 역시 20세기 초까지 등장한 10대 발명가(과학자)를 소개한 과학 기사이다.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발견한 아르키메데스, 천문학자인 요한 케플러,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한 늬우론(뉴턴), 진화론을 주장한 다윈, 잡종유전의 법칙을 발견한 멘데르(멘델), 종두법을 발견한 제너, 광견병과 미생물학을 연구한 파쓰톨(파스퇴르), 결핵균과 콜레라균을 발견한 세균학자 로베르트 콧흐(코흐), 무선전신의 아버지 말코니(마르코니), 발명가 도마쓰(토마스 에디슨) 등의 생애와 업적을 소개하였다.
『유심』의 지향이 정신적 수양을 위주로 하고 있지만 육체적 수양, 생활 태도, 위생 관념등도 중요한 지식의 하나로 전달하였다. 더 나아가 과학기술에 대한 글을 통해 만해는 과학 기술에 대한 정보도 학생들이 흡수해야 할 지식의 하나이며, 근대지식을 확보하여 객관적이고 현실감 있는 세계관을 가지게 하는 것도 잡지가 추구하는 사명으로 판단한 듯하다. 『유심』은 이처럼 단순한 종교잡지 성격을 벗어나 학생의 수양을 격려하고 추동하는 종합 교양지로 자리잡고 있다.
『유심』 창간호에는 『정선강의 채근담』(한용운), 『무정』(이광수), 분매소의 출판사 광고가 있어 교양 잡지로서 일반 청년층을 독자층으로 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불교잡지로서는 처음으로 학생 세대를 대상으로 한 ‘문예현상’제도를 운영하였다. 작품은 보통문, 단편소설, 신체시가, 한시를 구분하여 원고를 받았고, 1, 2호에 공고하여 3호에 입선작을 발표하였다(사진4).
사진4. 문예현상 광고(2호)
입선작으로는 세 편이 선정되었다. <(학생소설)고학생>(상금일원, 견지동118, ㅈㅎ生), <인생의 진로>(상금50전, 평양 창전리 89번지, 김순석), <마음>(상금50전, 견지동 118, ㅈㅎ生) 등이다. 당선작을 보면 제목과 내용, 주제가 『유심』지에서 수양의 실제를 소개하며 강조했던 여러 주제들-고난의 극복, 그리고 미래지향적 탐구 자세, 마음의 수양 등-을 내면화한 작품들이다. 특히 ‘ㅈㅎ생’은 아동문학가로 유명한 방정환(1899~1931)의 필명이다. 당시 보성전문학교 법과 신입생인 방정환은 최남선의 잡지 『청춘』과 한용운의 잡지 『유심』에 많은 작품을 투고하며 문학가로 성장하게 되는데, 특히 『유심』에는 만해가 강조한 내면의 수양에 대해 내면화한 작품을 창작하고 있다는 점에서 만해의 젊은 학생층에 대한 영향력의 실제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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