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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사찰 중창과 불교사 찬술 시초로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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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후  /  2021 년 7 월 [통권 제99호]  /     /  작성일21-07-05 10:58  /   조회3,36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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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사서 7 | 『불국사고금창기』와 『불국사사적』 

 

  1937년 강유문姜裕文을 중심으로 한 경북불교협회가 불국사의 역사를 담고 있는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를 간행했다. 이 책은 본래 1740년(영조 16) 활암 동은活庵東隱이 찬술한 『불국사사적기』로 원래 제목은 『경상도강좌대도호부경주동영토함산대화엄종불국사고금역대제현계창기慶尙道江左大都護府慶州東嶺吐含山大華嚴宗佛國寺古今歷代諸賢繼創記』이다. 대암大庵의 문인이었던 동은이 지은 것을 그의 제자 만연萬淵 등이 다시 교정했다. 불국사의 역사적 배경과 유물·유적 등에 관해서 종합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사진 1. 불국사고금창기 표지. 

 

  예컨대 불국사 창건 이후 중창과 18세기 중반까지의 불국사 연혁을 강목체綱目體 형식으로 서술했다. 그러나 동은이 찬술했고 1937년 경북불교협회가 손질하여 세상에 내놓았지만, 그 이전의 불국사에 관한 사적기 원본을 손으로 옮겨 쓴 것이다. 다음의 기록은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만력 40년 대사 해안이 범종각·좌경루·우경루·남행랑을 중건하였다[萬曆四十年, 大師海眼重建, 梵鍾閣·左經樓·右經樓·南行廊].”

 

광해군 4년인 1612년 중관 해안中觀海眼이 전란의 참화가 극심했던 경주 불국사의 범종각梵鍾閣․좌경루左經樓․우경루右經樓 그리고 남행랑南行廊을 중건했다는 기록이다. 해안이 당시 경주에 있었다는 것은 「연곡사燕谷寺의 모임이라는 시」에 나오는 “계림雞林의 선원禪苑에 있었다.”는 구절에서 알 수 있다. 아울러 남공철南公轍이 지은 「사명대사기적비명四溟大師紀蹟碑銘」에 해안이 임진왜란 때 영남지방에서 의승군(義僧軍)을 조직하여 활동하며 불국사에 주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마 이때 『불국사고금창기』의 기초가 된 ‘불국사사적기’를 찬술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해안이 임란 이후까지 경주 불국사에 주석하며 전란으로 소실되어 거의 폐허가 되어버린 불국사를 중창하기 위해 진력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는 수행자였지만, 왜적 방어에 진력했고 수행과 사원의 중건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의 문집에 “몸은 산림山林에 있으며 이름은 조정의 높은 벼슬아치에까지 퍼져 임진년(壬辰年, 1592)에서 정축년(丁丑年, 1637)까지 승려의 장의총통승군仗義摠統僧軍으로 있었던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기재되어 있다. 그의 삶의 대부분이 전란과 함께 했다는 것을 이 구절에서 짐작할 수 있다. 해안은 당시 조선의 어지러운 상황과 전란 속에서 의승군으로 활동하는 가운데 조선불교계가 안고 있는 현실을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전란으로 폐허가 된 불교유산을 보고 조선불교의 역사와 정체성을 되새겼을 것이다.

 

 

표1은 해안이 찬술했다고 알려진 각 사적기의 구성을 목차에 따라 비교 정리한 것이다. 먼저 각 사찰이 소재한 지역과 사찰의 연혁을 정리하였고, 사찰의 전각과 부속암자 등을 기록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고대 불교사를 석존의 생애와 불교의 전파와 함께 수록했다. 우리나라 고대 불교사에 대한 정리는 고대의 승전僧傳을 통해 설명해 비교적 상세하다. 『불국사고금창기』는 다른 사적기보다 약 100년 후에 편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략한 편이지만, 내용은 다양하다. 이전의 ‘불국사사적기’ 기록을 동은東隱이 편찬하면서 수정과 증보를 시도한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각 사적기가 시기를 달리하여 찬술되었지만, 구성이나 내용이 유사하거나 거의 동일하다.  

 

비록 사찰과 그 지역의 연혁이나 전각의 중건 그리고 부속암자와 같은 사찰 고유의 면모는 다르지만, 찬술동기부터 석존釋尊의 생애나 불교의 동전東傳, 삼국불교의 시초와 선종 전등과 같은 일반적인 불교사에 대한 기술은 동일하게 정리되었다. 아울러 각 사찰과 관련된 인물들의 전기 또한 동일함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대둔사와 화엄사 그리고 불국사가 대둔사 화엄사와 함께 같은 해인 528년에 창건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사찰명과 법흥왕의 재위 연도, 그 간지干支가 차이를 보이는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동일하다. 

 


사진 2. 불국사고금창기 본문. 

 

 

또한 사적기의 구성이 대부분 우리나라 고대불교사로 편중되어 있다. 삼국의 형세나 원효․자장․의상․아도와 같은 우리나라 불교 초전기 신라의 승전僧傳과 삼국의 불교 전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고려 태조의 훈요십조訓要十條 가운데 불교 관련 항목이나 공민왕의 왕도王道와 불도佛道에 관한 견해를 담은 기록과 사찰의 조선시대 중건 사실을 제외하면 나머지가 모두 고대의 기록인 것이다. 사적기가 이와 같이 고대불교사 기록을 수록하고 있는 것은 당시에 찬술된 일반 역사서가 자국自國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가 지닌 정체성을 표방하기 위해 고대사를 적지 않게 수록하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요컨대 해안의 『금산사사적』, 『화엄사사적』, 『대둔사사적』은 그가 1612년 무렵에 찬술했던 『불국사사적기』가 그 저본이 되었을 것이다. 그와 같은 사실은 다음 인용문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표2는 『불국사고금창기』와 다른 사적기 기록을 비교한 것이다. 사료들이 전하고 있는 기본적인 내용은 “진흥왕이 어머니 지소 부인只召夫人을 위해 흥륜사興輪寺를 창건하고, 황룡사皇龍寺 장육동상丈六銅像을 주조하였으며, 만년에 출가하여 호를 법운자法雲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내용은 불국사, 화엄사, 대둔사의 각 기록에 동일하게 보이고 있다. 그리고 『불국사고금창기』 또한 불국사의 창건을 법흥왕 때로 잡고 있으며, 진흥왕 때인 574년에 중창하였으며, 그 당시엔 사찰 이름이 ‘화엄불국사華嚴佛國寺’·‘화엄법류사華嚴法流寺’ 등이었다고 했다. 따라서 『삼국유사』에서 경덕왕 때 김대성金大城이 불국사를 세웠다는 기록과는 엇갈리고 있다. 그런데 다른 모든 부분은 『삼국유사』의 기록을 답습하고 있음이 눈에 띈다.  

 


 

 

표3은 『불국사고금창기』와 다른 사적기에 인용된 『삼국유사』의 기록들이다. 사적기에 보이는 다른 인용 자료에 비해 양적인 측면에서 『삼국유사』의 기록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으며, 전체적인 내용의 기초가 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승전僧傳 마지막 부분의 일연이 지은 찬문讚文 또한 ‘고사찬古史讚’으로 표기하여 소개했다. 이밖에 『불국사고금창기』는 호남의 사적기보다는 그 인용 자료가 비교적 광범위하다. 즉 『동국승전東國僧傳』, 『계림본기鷄林本記』, 「최후본전급효사행장崔侯本傳及曉師行狀」, 『고전古傳』, 『삼국승록三國僧錄』, 『사급향전事及鄕傳』, 「복장기腹藏記」, 「동조비문東祖碑文」, 「동국승사비東國僧史碑」, 『향전鄕傳』, 『석원사림釋苑詞林』, 「상량문上樑文」, 「최치원찬문崔致遠撰文」, 『언전諺傳』, 『나사승록羅史僧錄』 등. 그러나 대부분의 기록이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역사적 사실에 덧붙인 후대의 위작僞作일 가능성이 큰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1937년에 간행된 『불국사고금창기』는 1740년 활암 동은이 찬술한 책을 저본으로 삼았다. 동은의 책 역시 1612년 중관 해안이 찬술한 『불국사사적』을 저본으로 그 변화상을 첨부한 것이다. 비록 1600년대 중관 해안이 찬술한 사적기에 비해 역사적 사실과 동떨어진 내용이 많고 고대불교사와 관련된 내용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그 형평성에서 문제가 되고 있지만, 전란 이후 본격화된 사찰의 중창과 함께 사찰 역사와 불교사 찬술의 시초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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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후
동국대 및 동 대학원 사학과에서 공부하고 「조선후기 사지寺誌편찬과 승전僧傳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 저서로 『조선후기 불교동향사』, 『사지와 승전을 통해 본 조선후기 불교사학사』, 『한국근대불교사론』, 『석전영호대종사』(공저), 『신흥사』(공저)등이 있다. 조선시대와 근대를 중심으로 한 한국불교사에 관한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동국대 불교학술원 전임연구원 역임.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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