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빛의 말씀]
사람이면 ‘사람’을 찾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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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 2021 년 8 월 [통권 제100호] / / 작성일21-08-04 14:16 / 조회6,003회 / 댓글0건본문
*지난 겨울은 몹시 추웠습니다. 그동안 스님께서는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나는 본시 산중에 사는 사람이라 늘 대하는 것은 푸른 산, 흰구름입니다. 푸른 산이 영원토록 변하지 않고 흰구름이 자유로이 오고 가는 것을 보며 사는데, 거기에서 모든 것의 실체를 볼 수 있습니다. 또 무궁무진한 변화도 보면서 살고 있지요.”
*연세도 많으신데, 건강은 어떠신지요?
“건강, 국민학교 3학년이지요. 내가 아마 3학년 학생은 될겁니다.”
*재작년에는 낙상도 하셨고, 최근에는 신경통으로 불편하시다고 들었습니다.
“낙상한 팔은 다 나았는데, 요샌 신경통 때문에 다리가 아파 가지고. 마음대로 안 되는군요. 보행은 크게 관계가 없는데, 험한 길이나 먼 길은 못 가지요.”
*스님의 섭생 방법이 독특하다고 들었습니다. 건강을 어떻게 유지하십니까?
“건강 유지라, 그렇게 말하면 곤란하지요. 살만큼만 먹고 사니까. 아주 조금 먹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3분의 1 정도 될까. 의사들도 놀랍니다. 밥 적게 먹고 매운 것 안 먹고 무염식으로 수십 년 살았습니다. 어떻게 견디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지만, 괜찮습니다.”
*키도 크시고 몸도 크신데, 그렇게 적게 잡수시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무염식을 하시게 된 동기가 따로 있습니까?
“뭐, 동기가 따로 있나요. 몸에 좋으라고 골라 먹는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나는 맵고 짠 것을 먹는 성질이 아닙니다. 좋은 음식은 잘 안 먹고, 먹기도 싫어요. 젊었을 때부터 생식生食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음식에 매달리는 걸 보면 우스워요. 대개가 음식을 보면 정신을 못차리거든. 몸 유지될 만큼만 먹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조금만 먹습니다. 조미료는 절대 안 넣고요.”
(종정 스님의 식사 상에는 솔잎 가루와 콩, 무 등 두, 세 접시의 반찬만이 오른다고 한다. 밥도 그릇의 3분의 1 정도만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루마기는 얼마나 입으신 건가요? 아주 많이 해어졌는데 말입니다.
“이 누더기, 오래 되었지요. 한 삼십 년 될까? 많이 떨어져서 앞자락을 좀 고쳐달라고 했더니 새걸 대가지고 옷을 버려버렸어요. 웃음. 조금 있으면 또 떨어지겠지요.”
(함께 자리한 법정 스님이 “새 시대의 옷이 됐습니다.” 하니 좌중에 웃음꽃이 피었다. 기운 곳이 백여 곳도 넘을 진짜 누더기를 소중하게 대하는 종정 스님의 태도가 퍽 인상적이었다.)
*종정이 되신 지 3년이 되셨지요. 요 몇 해 동안 한국 불교계는 불행히도 줄곧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지난해 종헌 개정으로 스님께서는 한국 불교 교단의 상징적인 존재에서 실질적인 종단의 대표자가 되셨습니다. 그동안 종단을 위해 많은 심려가 계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산중에만 계셔서 그 역할이 어렵지 않겠습니까?
“상징이니 대표니 하지만 그런 말이 나한테는 실제로 관계가 없습니다. 종정 역할이 어떤 건지도 몰라요. 다만 ‘안 한다’는 소리만 하지 말라고 해서, 안 그러면 종단이 큰일 난다고 합디다. 그래서 ‘한다’ 소리도 안 했지만 ‘안 한다’ 소리도 안 했어요.”
*국정자문위원으로 임명받으시고도 안 나가신다고 들었습니다.
“그것도 그렇지요. 청와대에서 사람이 와서는 국정자문위원회를 만드는데 신임 종정이 들어와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 거 뭐하는 거요.’하고 물으니 뭐라고 이야기를 합디다. 나는 그런 재주도 없고 생각도 없어서 못하겠다고 했지요. 그거야 세속 사람들이 할 일이지요. 그네들 갈 길이 따로 있듯이 난 또 내 갈 길이 따로 있는 거고.”
*돌아가신 청담靑潭 스님하고 친하셨다고 하던데요. 청담 스님은 가끔 만나기도 했습니다만.
“그건 사람마다 개성이 달라서지요.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요. 청담 스님하고 가까운 편이었습니다. 친하긴 했지만 성격은 정반대였지요. 정혜사에 만공滿空 스님 계실 때니 내가 서른 살 때쯤 만났습니다. 그이는 나보다 열 살 위였지요. 정혜사에 있는데 청담 스님이 오시더군요. 이야기를 해보니 통해요. 나보다 나이가 더 많았지만 좋아하더군요.”
(청담 스님이 성철 스님을 무척 아끼고 좋아했다고 법정 스님이 일러줬다. 사진 기자가 실례지만 좌중의 자리를 좀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찍었잖아. 그래, 조선일보 돈 많으면 많이 찍어가.”
(좌중에 또 웃음이 터졌다.)
*스님을 만나려면 부처님께 3천 배를 먼저 해야 한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스님을 만나 뵙기 어렵다는 이야기로 이해되기도 하고, 스님이 오만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오해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래, 당신들은 3천 배 하셨소? (웃음) 왜 3천 배를 시키는가, 이 말이지요? 중이 신도를 대하는데 사람은 안보고 돈과 지위만 본단 말입니다. 그래서 난 백련암에 들어올 때는 돈보따리와 계급장은 소용없으니 문 밖에 걸어 놓고 알몸만 들어오라고 합니다. 사람만 들어오라 이 말입니다.
들어오면 ‘내가 뭐 잘났다고 당신들을 먼저 만날 수 있겠는가.’합니다. 부처님 찾아왔다면 부처님부터 뵈라는 말이지요. 부처님을 정말로 뵈려면 절을 3천 번은 해야지요. 부처님한테는 신심이 제일입니다. 부처님을 알 때까지 절하는 정신이 중요한 거지요. 그래야 부처님께서 ‘너 왔구나’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이면 나도 옆에서 좀 도와주지요. 중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입니다. 그러니 부처님을 믿어야지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스님이 되셨습니까?
“지리산에 대원사가 있었지요. 집에서 가까웠거든. 거기 가서 한동안 있었습니다. 그런데 살생을 금하는 게 불교의 근본인데 경찰서장이 온다니까 중들이 법석을 떨며 큰 돼지를 잡고 술을 몇 통씩 메고 개천에 나가고 난리더군요.
(일제강점기 때인 당시 대원사에는 대처승들이 살았다고 한다.)
젊었을 때 사상적으로 이리저리 헤매다가 불경을 보니까 불교가 가장 마음에 들더군요. 그래서 참선 좀 하려고 찾아갔던 절인데 그 모양입니다. 그러니 부처님 믿고 불교는 믿어도 중은 안 되겠다고 결심했지요. 당시에 대원사 탑전이 참 좋았습니다. 그래, 그곳에 들어가서 좀 있자니 누가 펄쩍 뜁디다. 본시 탑전이란 게 스님만 있는 곳이지 속인은 들어가지 못한다면서.
그래서 한판 했지요. ‘너희들은 계집 다 있고, 소 잡아먹고, 술장사 떡장사 다 하고 그러고도 중이냐.’ 된다, 안 된다 한참 실랑이를 하는 도중에 주지가 바뀌고 젊은 중이 주지 대리인가를 맡았는데 그와는 말이 통했어요. 그래서 그 탑전에 있으면서 한겨울을 보냈는데, 중들이 보기에 이상했던 모양입니다. 보기도 싫고 그래서 해인사에 공문을 보냈다나 봐요. (대원사의 본사가 해인사였다고 법정 스님이 알려주셨다.) 이상한 청년이 와서 있는데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어본 게지요.
그때 해인사에는 백용성白龍城 스님, 송만공宋滿空 스님이 계셨어요. 유명한 도인들이었지요. 그분들이 나를 데려오라고 했다더군요. 그래, 최범술崔凡述이라는 스님이 대원사로 와서는 해인사가 절도 크고 좋은 곳이니 가자고 합디다. 나는 이곳도 조용한데 해인사는 왜 가느냐고 반대했지요. 꼭 오라고 하면서 그이는 떠나고, 얼마쯤 있다 생각해 보니 큰절도 괜찮겠다 싶어서 여기 해인사로 왔는데 그 범술 스님은 없고 이고경李古鏡이란 스님이 주지를 하고 있더군요. 찾아가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습니다. 나는 중은 싫어하는데 부처님을 좋아해 공부를 좀 하려고 그런다고. 이리저리 말을 해보니까 통하더군요. 유명한 스님이었습니다. 화엄학도 연구하고.
그 이튿날 다시 내가 공부하러 왔다고 했더니 원주 스님을 부릅디다. 그런데 그 원주가 안 된다는 거야. 속인을 선방에서 받은 일이 없다는 거지요. 주지가 이 청년은 다른 사람과 다르다면서 야단치더군요. 주지가 받으라면 받지 무슨 말이 많으냐면서. 그러니까 모르겠다며 고개를 흔들면서 나를 선방으로 데려가더군요.
(속인이 선방에 들어간 것은 전무후무한 예외라고 법정 스님이 설명했다.)
그래, 내가 처음이고 마지막일 거야. 당시 해인사에 김법린金法麟이라고 전에 문교부장관 하던 이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나를 볼 때마다 책을 내놔요. 그리고 자꾸 책을 바꿔 주면서 교학敎學을 함께 공부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참선하지 말고. 그래서 내가 ‘우리 집이 부자는 아니지만 책 살 돈은 있소이다.’ 하고 거절했지요.”
*그때 연세가 몇이셨지요?
“스물 다섯.”
*그때 해인사에서 출가하신 겁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선방에 있으니까 여러 사람이 찾아오더군요. 노장들에게 이것저것 물었지. 그런데 하나도 모릅디다. 그때 하동산河東山 스님이 오셨어요. 건방지다고 할까, 언제나 그렇듯이 단도직입적으로 ‘나는 이런 사람으로 이리저리 공부를 했는데 스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초면인데 참 이상하다는 표정이야, 혼자 웃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당신은 백련암에 있다면서 놀러오라고도 해요. 그래서 찾아갔지요. 반갑게 맞아주더니 나보고 중이 되라고 합니다. 난 중 안 되려고 원력을 세웠다고 했어요. 통 마음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내 이름을 지었다며 성철性徹이라는 겁니다. 지금 이름이지. 그리고 모월 모일에 계戒도 준다더군요. 참 이상도 하지, 중은 안 되려고 했는데 그 노장을 가만히 보니까 싫지가 않아요. 그래서 억지로 이상하게 되어 버렸어요. 강제로 계를 받은 거지요. 동산 스님의 상좌가 된 턱이지.”
*중 되신 것 후회 안 하십니까? (법정 스님이 웃으며 물었다.)
“전혀 후회 안 했지요. 혼자 살았으니까.”
*스님께서 출가하실 때 댁에서는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반대했지요. 내가 장자長子인데 반대 안 할 턱이 있소? 그렇지만 여러 가지 수단이 있거든. ‘중이 안 되면 내가 죽을 사주랍니다.’라고 거짓말을 했지요. (웃음) 나를 그냥 두면 곧 죽는다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부모들이 그런데 제일 약하거든. 죽지만 말라고 그러지요.”
*부인께서는?
“찾아오는 이는 어머니였는데, 내가 원체 무섭게 하니까 딴 사람은 안 왔어요. 금강산에 있을 때 어머니가 찾아오셨더군요. 막 무어라고 하니까 ‘난 너 보러 안 왔다. 구경하러 왔지.’ 그러시더군요.”
(종정 스님은 세상 인연 다 그런 것이라는 듯 미소만 흘리고 있었다. 출가 전에 결혼한 부인 이야기에는 직접적인 응답이 없이 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는데, 아들을 여러 번 찾으셨던 모양이다. 성철 스님은 그 낌새를 알면 산으로 못 올라오도록 어머니가 다치지 않을 만한 거리에서 돌을 던지며 피했다고 한다. 그러면 어머니는 가지고 온 옷이나 음식을 바위 위에 올려놓고 돌아갔다가 며칠 후 다시 찾아와 그 물건들이 그냥 있는지 확인했다고 한다. 없어졌으면 ‘아들이 가져갔겠지’ 하고 좋아했을 모정. 그래서 실례인 줄 알면서도 다시 물었다.)
*연緣을 끊기가 어렵지 않았습니까?
“장사를 하는데 말이지요, 이쪽에 10원짜리가 하나 있고, 저쪽에 백만원짜리가 있다면 10원짜리를 버리고 백만원짜리를 갖지 않겠습니까? 세상 삶이 10원짜리도 안될 때가 있거든요. 알겠소? 내가 보는 것은 돈으로 가치를 칠 수 없는 좋은 길인데 이 조그만 10원짜리 가치가 눈에 띄겠느냐, 이 말입니다.”
*부모와 처자식을 버린 것은 스님만의 이기심 때문이 아닌가요?
“그것도 모르는 소리지요. 출가란 조그만 가정과 가족을 버리고 큰 가족인 온 세상을 위해 사는 겁니다. 출가의 근본정신은 자기를 완전히 버리고 일체를 위해서 사는 데 있어요. 이것이 불교의 참 정신입니다. 자기중심이 되어 산다면 그것은 출가가 아니라 재가인 거지요. 출가한 이들이 이 정신을 잃게 되면 온갖 부정과 갈등과 분쟁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은 모두 위도僞道입니다.”
*그동안 사시면서 정말 한번도 후회 안 하셨습니까?
“참말로 내 생활에 후회 안 했는데, 종정하면서부터 지금 후회하고 있어요. 이건 아주 몹쓸 사람들한테 들려있는 것 같아. 지금 당장 조처하고 싶지만 종단 사정이 곤란하게 되어 있어서 할 수 없이 있는데, 조계종 밥 50년 먹었으니까 그 밥값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내가 중 안 됐으면 종정 이런 거 안 했을 건데.”
*그렇다면 그들을 좀 바르게 구제하셔야지요.
“거, 내 힘으로 잘 안돼요. 말을 들어야지. 그러나 결국은 사필귀정事必歸正입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언젠가는 되겠지요.”
*그러면 종정을 그만두시면 되지 않습니까?
“종정을 ‘안 한다’고는 하지 말라고 해서 내가 그러겠다고 했으니 ‘안 한다’고는 할 수 없지요. 여러 가지 곤란해서 한 말이지만 약속은 지켜야 할 게 아닌가.”
*그럼 종정 스님 혼자만 약속을 지키시겠다는 말씀이신지요?
“천하 사람하고 약속을 했는데, 천하 사람은 모두 안 지켜도 나는 지켜야지.” (아주 고집스런 억양이다.)
*스님께서 서울에 가시든지 총무원 스님들을 이곳에 부르시든지 하시지요.
“나는 가지 않을 게고, 그들이 오지도 않을 게여. 나는 나대로 여기 있으면서 보는 게지.”
*이심전심이랄까, 사필귀정까지 기다리려면 너무 시간이 걸리지 않겠습니까?
“그건 모르겠어요. 그래도 1천 6백년 역사를 가진 우리 불교가 일조일석一朝一夕에 망하기야 하겠소.”
*당초 3월까지 조계종의 제도 개혁이 마무리 될 것으로 여겼는데 다소 시간이 더 걸릴 모양이지요. 종정께서도 빠른 시일에 제도 개혁을 하라고 말씀하셨고. 너무 시간을 오래 끌면 개혁의 신선한 의지가 퇴색하지 않을지요.
“조계종단 하면 싸움하는 종단이라고 한다면서요? 유감입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가 참다운 개혁을 해서 싸우지 않는 종단을 만들어야 해요. 그래서 제도 개혁을 하라고 한 겁니다. 이 일이 워낙 큰 사업이라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다는데 나도 고의로는 안 봐요. 그러나 늦어도 오는 사월 초파일에는 우리의 새로운 모습을 국민과 종도宗徒 앞에 보여야지요. 만약 그때까지도 개혁된 새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국민과 종도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게 될 겁니다.”
*어떤 방향의 개혁을 구상하고 계십니까?
“종교의 개혁이란 본시 교조敎祖의 근본 사상에 입각해서 해야지, 거기에 조금이라도 배치된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고 역행逆行입니다.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교법에 위배되고 폐단이 생기게 되는데, 변질된 폐단을 완전히 청소하고 교조의 근본 사상으로 환원하는 것이 개혁이라고 생각해요. 불교의 승려라면 독신으로 청정한 수행과 교화를 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결혼하여 가정을 가진 사람을 승려라 한다면 그것 불법이 아닙니다. 아무리 수십 년을 두고 청정한 수도 생활을 했다 하더라도 일단 결혼을 하면 그는 신도이지 승려라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부처님의 근본 사상에 입각해야만 참다운 개혁이 이루어지리라고 봅니다.”
*불교계에 어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승려들의 자질이 지적되고, 그에 따른 교육 문제가 거론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렇다 할 조치는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승려 교육의 개선책을 어떻게 구상하고 계시는지요?
“부끄러운 말이지만 승단에는 현대적인 교육이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일반 사회는 자꾸 발전하여 국민의 교육 수준도 날로 향상되고 있는데 우리 승려 교육은 그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1천 6백년 역사를 지닌 종단에서 승려의 전문 교육 기관인 승가대학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는 것은 실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 시대를 이끄는 교역자가 되려면 최소한 승가대학을 만들어 거기를 거쳐 나온 사람에게만 승려의 자격을 부여해야 해요. 그래서 내 생각으로는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고 처음 절에 들어오면 승가대학에 들어가 4년 간 불교의 기본 교육을 배우고 익히게 한 후 비로소 비구계를 주어 승려가 되도록 해야할 거라고 봅니다.
승려의 교육 수준이 대학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앞으로 불교 교단은 자멸하게 될 것이고, 이 시대의 골동품이 될 거예요. 기성 승려들도 재교육의 기회를 주어 대학 수준에 이르도록 해야지요.”
*아직도 한국 불교의 대다수는 기복적인 신앙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참된 불공이 무엇인지, 공양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이런 기회에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요새 어떻게 보면 한국 불교가 무속巫俗인지 종교인지 분간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기복, 즉 복을 비는 일은 순전히 이기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자기만을 위해 절에 다니고 불공을 한다면, 그것은 불공과는 역행하는 거지요.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남을 돕는 일이 불공이라고 했습니다. 남을 돕는 데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물질적인 도움이 있고, 정신적인 도움이 있고, 육체적인 도움도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고민하는 사람을 위로해 주는 것도 불공이고,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주는 것도 불공이며,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주는 일도 불공입니다. 뿐만 아니라 물에 떠내려가는 벌레를 구해 주는 것도 불공이 됩니다. 불공이란 인간끼리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체 중생을 보호하고 도와주는 것은 모두 불공입니다. 처음에는 잘 안 되지만 자꾸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됩니다. 나를 해롭게 하고 원한이 맺힌 원수를 돕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나를 해롭게 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가장 존경하고 돕는 것이 참된 불공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불교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도 있지만, 불교에서는 설사 내 부모나 자식을 죽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부모와 같이 섬기라고 했습니다. 보통 사람을 돕거나 존경하기는 쉽지만 원수를 그렇게 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비입니다. 이런 것이 진정한 불공이고, 또한 불교의 근본 사상입니다.”
*스님들이나 신도를 가릴 것 없이 요즘의 한국 불교도들은 불조佛祖의 법문인 경전이나 어록을 별로 읽지 않는 것으로 여론 조사 결과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 점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참 문제입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의 말씀인 법문을 믿는다는 것인데, 부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그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지 않는다면 불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느 종교든지 그 교조의 성전을 생명으로 삼고, 그것을 잘 배우고 연구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 신도의 도리입니다. 기복 불교의 폐단도 바로 이런 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우리가 불교를 믿는다고 한다면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생활 습관을 버리고 부처님 가르침대로 생각하고 또한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잘못 이해하고, 경전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불립문자란 최상급에서 하는 소리입니다. 문자도 필요 없다, 부처님 법문도 필요 없다, 조사의 법문도 필요 없다는 소리로 알아서는 큰일입니다. 약이 필요 없다는 것은 병이 없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소리이지 병자에게는 약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본래의 건강을 회복하기까지는 약을 곁에 두고 먹어야 합니다.
부처님이나 조사의 말씀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럼 무엇을 의지하겠다는 것인가. 제멋대로 생각하고 산다면 그건 외도요 악인이 되기 쉽습니다. 부처님이나 조사의 말씀이 필요 없을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반드시 그 가르침에 의지해야 바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어떤 종교에서는 오로지 자기네가 믿는 종교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점을 불교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것 참 곤란한 문제입니다. ‘너는 내 말만 들어야지 남의 말을 들으면 살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두고 인격을 지닌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배척하면서 자기만을 내세운다고 해서 자기가 내세워지겠습니까?
성철 스님.
종교도 마찬가지지요. 오히려 내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살길을 열어 주는 것이 진정한 종교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종교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지 다른 종교를 믿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우긴다면 문제가 큽니다. 불교는 일체법一切法이 개시불법皆是佛法, 즉 모든 것이 불교 아닌 것이 없다고 선언합니다. 다시 말하면 한 법도 버릴 게 없는 것이 곧 불교라고 합니다. 이렇게 활짝 문을 열어 놓은 채 자기 자신을 바로 보아라, 자기를 바로 알고 이웃을 도우라고 가르칩니다. 불교에서는 부처님 믿고 안 믿고는 큰 문제가 안됩니다. 자기 마음을 바로 보고 바로 쓰면서 바른 행동을 하는 것이 근본 입장입니다. 그러니 석가모니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해탈할 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종교계 일각이 물량주의와 거대주의에 도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많은 서민들의 생활 수준은 밑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나라는 빚에 허덕이는 실정인데, 수십 억짜리 교회나 성당을 세우고 야단스런 법당을 짓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정신적인 양식을 개발하고 공급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사람이란 물질에 탐착하면 양심이 흐려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종교든지 물질보다 정신을 높이 여깁니다. 부처님의 경우를 보더라도 호사스런 왕궁을 버리고 다 해진 옷에 맨발로 바리때 하나 들고 여기저기 빌어먹으면서 수도하고 교화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교화의 길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철저한 무소유에서 때묻지 않은 정신이 살아난 것이며, 그 산 정신을 널리 전파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마구간에서 태어난 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한 불교도 혹은 기독교도라면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생활태도 그대로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정신이 병든 것은 물질 때문입니다. 종교인이 청정하고 올바른 생활을 하려면 최저의 생활로 자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유 있는 물질은 반드시 사회로 환원해야 죄를 덜 짓게 됩니다.”
*산중에 있는 이름 있는 절은 정부가 추진하는 국토 개발의 시책으로 거의 공원이 되고 말았습니다. 비교적 덜 오염된 송광사나 봉암사까지도 당국에서는 공원으로 개발하겠다고 서두릅니다. 이에 대해서 불자들이 크게 분개, 그 개선책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스님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찰은 수도장입니다. 도를 닦고 교화하는 곳이지 관광하고 유람하는 유흥장이 아닙니다. 사찰을 공원으로 만드는 것은 사찰을 완전히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사찰이 수도원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유흥장으로 변모된다면, 거기에 와서 노는 국민의 정신마저 결국 황폐하게 되고 말 겁니다. 그윽한 수도원의 환경이 파괴된다면 시민들은 어디에 가서 정신적인 양식을 찾고 휴식을 할 것인지 당국에서는 배려해야 할 줄 압니다.
이러한 문제는 특정 종파의 문제이기 이전에 국민의 정신 계발 차원에서도 재고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불자들도 사찰을 이 이상 관광위락지로 만들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반대 운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과제는 더 말할 것도 없이 통일입니다. 분단 체제로 인해서 민족의 저력은 남과 북 모두 부질없이 소모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도 마침내 이 분단 체제의 틀에 걸리고 맙니다. 스님이 생각하시는 국가나 통일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산중에 사는 사람이라 잘은 모르지만, 우리가 남과 북으로 분단된 것은 우리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고, 국제적인 사정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38선이 혹은 휴전선이 몇 개 그어졌다 해도 남쪽이나 북쪽이 다 같은 한 민족 아닙니까. 선을 그어 놓았다고 피가 달라지겠습니까, 민족이 달라지겠습니까. 언젠가는 하나를 이루고 말 것입니다. 서로가 인내력을 가지고 아집만을 주장할 게 아니라 한 덩어리가 되도록 노력해야지요.”
*로마 가톨릭 교황께서 사월 초파일 직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십니다. 초청일자와 행사 장소를 두고 교단 일각에서는 말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천주교회 측에서도 미안해하면서 불교계 지도자와 만나 협조 방안을 의논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바 있습니다. 스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그동안 초파일 행사를 여의도 광장에서 해 왔는데 하필 초파일 무렵에 교황을 초청, 남의 행사를 방해할 수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우리 불교는 1천 6백 년 동안 초파일 행사를 해마다 해 왔고 앞으로도 할 것이니, 교황 같은 종교계의 지도자가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타종교의 입장에서도 같이 환영하고 경사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설사 우리 행사에 다소 지장이 있더라도, 어떤 장소에서든지 행사가 원만히 이루어지도록 불교도들도 협력을 하는 것이 진정한 종교인의 자세일 것입니다.”
*스님의 뜻에 저도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일반인들이 궁금해할 것 같아서인데요, 스님의 하루 일과를 이런 기회에 조금 열어 보이시겠습니까?
“나는 해가 뜨는지 달이 뜨는지 그런 걸 모르고 살아요. 배고프면 밥 한술 뜨고 곤하면 자는 것이 내 하루야.”
*한도인閑道人의 거리낌 없는 일과를 남들이 부러워하겠습니다. 스님은 인간의 삶과 죽음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생사生死란 바다의 파도와 같습니다. 끝없는 바다에서 파도가 일어났다 꺼졌다 하듯이 우리도 그렇게 났다가 죽었다 합니다.
그러나 바다 자체를 볼 때는 늘고 줌이 없지요. 삶과 죽음 그 자체도 그렇습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만물의 자체는 바다와 같이 광대무변廣大無邊하고 영원해서 상주불멸常住不滅이며 불생불멸不生不滅입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삶과 죽음은 하나이지 둘로 볼 수 없습니다.”
*스님께서 젊었을 때 읽고 감명이 깊었거나 영향을 받은 서적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젊어서는 다독주의였어요. 처음 볼 때는 뭔가 있나 하다가 곧 싫증을 내곤 했지. 그래서 지적으로 방황도 했어요. 그러다가 불교의 『신심명』과 『증도가』를 얻어 보고 캄캄한 밤중에 횃불을 만난 것 같고 밤중에 해가 뜨는 것 같았지요. 내 갈 길이 환히 비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출가하기 전에도 감명 깊게 많이 외웠습니다. 지금도 『신심명』과 『증도가』로 생활해 가고 있는 셈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선사禪師를 한 분 들라면 누구를 드시겠습니까?
“나는 조주趙州 스님을 좋아합니다. 조주 스님 법문은 아주 평범하면서도 뜻이 깊고 높아요. 그 생활이 참으로 도인의 생활입니다. 철저한 무소유의 수도인이었지요. 신도들 신세 안 지고 자작자업으로 살아갔습니다. 나중에 세상에 덕망이 알려지자 왕이 큰절을 지어 주려고 했는데, 펄쩍 뛰면서 ‘나를 위해 돌 한 덩이 풀 한 포기 건드리면 여기 살지 않고 떠나겠다.’
고 할 정도로 결백했어요.”
*스님은 선禪과 교敎에 당대 제일이 아니십니까?
“모르는 소리예요. 모르는 사람들은 천자문 하나만 외어도 문장같이 보거든. 알고 보면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스님께서는 장좌불와長坐不臥 8년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한 번도 눕지 않고 8년을 지나신 것이 아닙니까?
“8년 동안 기대지도 않았지. 나는 성질이 고약해서 염분을 안 먹는다면 철저히 무염식을 하듯 한번 안 한다 하면 안 하지요. 그러나 억지로 하려면 안됩니다. 자기가 좋아서 해야지요.”
*그런 고된 수행을 통해서 얻은 소득이라면 무엇이 있는지요?
“뭐, 소득? 어떤 소득이라면 알겠나? 봉사 보고 단청 보라는 이야기지.”
(그 경지를 모르는 사람은 설명을 해줘도 모를 것이라는 뜻이다. 질문한 기자가 한 순간에 장님이 되어버린 격이니 좌중에 다시 한 번 폭소가 터졌다.)
*깨달음의 경지는 어느 정도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큰스님을 포함해서 묻는다면 실례가 되겠습니다만.
“온 천하가 피바다지.”
*예? 모르겠는데요.
“깨달은 것은 전부 ‘무無’입니다. ‘무’라고 가정을 하거든요. 그렇다면 온천하가 피바다가 되는 거지. 그래, 알겠소?”
(“깨달음의 경지가 되면 온천하가 피바다가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게 답입니다.” 법정 스님이 설명했지만 쉽게 깨달을 수 없는 선답이었다.)
*단청 말씀이 나왔으니까 말입니다만 백련암에는 단청이 전혀 안 되어 있던데요.
“단청? 무엇하려고?”
*불교 예술의 한 분야가 아니겠습니까?
“단청이라, 난 그거 반대해요. 신도들이 아무리 와서 단청하자고 해도 내가 안 듣지요. 어떤 스님은 단청을 하면 집의 수명이 배로 늘어난다고 그럽디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2백 년 갈 것이 4백 년 간다 이건데, 하지만 나는 싫습니다. 그래서 내가 죽으면 몰라도 살아 있을 때는 절대 안 된다고 하지요.”
*대부분의 법당에는 단청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건 부처님이 계신 곳이니까. 사람 사는 곳에 단청한다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여자들이 화장하는 것도 이해 못하겠습디다. 속은 썩었는데 겉만 번지르르 하면 뭐하나. 본시 마음이 문제지, 겉에만 잔뜩 바른다고 그 마음이 바뀌어지나요.”
*요즘 절에는 없는 것이 없더군요. 텔레비전, 냉장고, 가스레인지, 전화, 심지어 자가용까지도 있고.
“승려는 최저 생활을 하며 남을 위해 기원하는 사람입니다. 출가한 남자를 ‘비구’라고 하지요. 그 비구라는 말이 걸인이라는 말입니다. 얻어먹는 사람이에요. 옷도 마음대로 입는 게 아닙니다. 버린 헝겊을 주워 깨끗이 해서 입는 거지요. 그것도 두 벌 이상 가지면 안돼요. 옷은 헌 것을 입고 밥은 얻어 먹고, 이게 부처님이 가르친 철칙이지요. 부처님의 법을 지켜야 하는 승려들이니, 시대가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검소하게 살아야지요. 내가 오늘 조선일보에 너무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아.”
(법정 스님이 말을 받아 “종정 스님 오늘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지요.” 하고 말했다. 좌중은 다시 한 번 웃었다.)
*신문은 보십니까?
“천하 신문 다 봅니다. 인쇄 안된 내 신문 늘 보지요. 시자들이 오려서 오는 불교 관계 기사도 보고. TV도 있어요. 뭘 보냐하면 불교 성지 등을 테이프로 봅니다. 카메라도 있어요. 놀러오는 어린이들을 찍어주곤 하지요. 나는 어디 가든지 사람이 눈에 잘 안 들어오는데 꼬마들은 눈에 쏙 들어옵니다. 꼬마들이 내 친구예요. 노래도 부르고 춤도 함께 추지.”
*요즘도 불쌍한 어린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미혼모들이 버리는 경우도 있고. 갈 곳이 없는 노인들도 적지 않은 것 같구요. 불교계에서 이들을 돌봐줄 고아원이나 양로원 등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사회 복지 운동을 편다면 큰 효과가 있지 않겠습니까?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남을 돕는 것을 알게 하면 안돼요. 모르게 모르게 해야 합니다. 남이 알게 하는 것은 자기 선전에 불과해요.”
*보충설명을 안 하면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법정 스님이 덧붙였다.)
“불교의 사회봉사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금강경』이나 반야 사상 같은 데서 어떠한 선한 일을 하더라도 아무 자취 없이 하라고 강조합니다. 그것을 상相이라고 하는데 생각의 자취마저 남기지 못하도록 합니다. 내가 선한 일을 하려고 생각했다면 벌써 보살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기독교 단체에 비해 불교가 미온적인 것 같지만 제가 알기로는 남들 모르게 좋은 일을 하는 불교 신자들이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도소나 고아원, 양로원 같은 곳에 정기적으로 가는 단체도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의 말씀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조직적인 것이 효과적이지 않겠습니까?
“조직적으로 하더라도 비밀결사를 하듯이 쥐도 새도 모르게 하면 참말로 남을 도울 수 있겠지요.”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그 선한 일 자체도 부자유로 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쇠사슬만이 사슬이 아니고 황금사슬도 사슬이 된다는 것입니다. (법정 스님이 부연 설명을 했다.)
“그렇지요. 황금사슬도 사슬이지요. 참으로 남을 돕는 사람은 아무 말 안 하고, 오히려 남이 볼까 두려워합니다. 좋은 일이라도 남이 알게 하면 위선자가 됩니다. 그래서 남모르게 도우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합니다. 이게 보살정신의 기본입니다.
또 하나 조건이 있습니다. 남을 도와줄 때 불쌍한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인간의 가치란 누구나 똑같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면 다리 없는 사람, 코 깨진 사람, 눈먼 사람도 있어 다 다르지만 사람의 속은 똑같은 겁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불쌍한 생각을 한다면 저쪽 인격을 무시하는 겁니다. 남을 도우려면 존경하는 마음으로 하지, 그렇지 않으면 하지 말라고 불교에서는 가르칩니다.”
*고민하는 현대인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가치관의 혼돈 속에 갈피를 못 잡고 있다고나 할까요. 현대인들에게 삶을 위한 법문을 주시지요.
“그거 별거 아닙니다. ‘내가 사람이다’하고 생각하면 모든 고통이 없어질 겁니다. 사람이라고 하면 사람의 본분을 지켜야 하거든요. 개, 돼지 같은 짐승처럼 날뛸 수 없다는 말입니다. 개는 똥만 보면 뛰어가지요. 사람도 물질만 보면 쫓아가는 이들이 있어요. 뭐 다를 게 있습니까. 욕심의 노예가 되면 동물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 없지요. 사람들이 욕심을 없애면 바로 이곳도 극락입니다. 사람이면 ‘사람’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천지간天地間에 ‘사람’이 없단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나는 사람이다’ 하고 살아야지요.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산다면 뭐 걱정할 게 있겠습니까. 그러려면 자기 자신을 보는 눈이 날카로워야지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법칙因果法則이란 무엇입니까?
“인과법칙이란 우주의 근본 원리입니다. 불교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지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이,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가 나지요. 남을 위해 기원하면 나를 위한 것이 되고, 남을 해치면 결국 나를 해치는 게 되는 겁니다. 생태학에서도 그렇다고 할 겁니다. 농사에서도 그렇지요. 곡식이 밉다고 곡식을 해쳐보십시오. 누가 먼저 배고프겠어요.”
*스님의 좌우명 같은 것도 듣고 싶습니다.
“내가 무슨 좌우명이 있겠습니까. ‘차나 한 잔 마셔라.’는 것으로 좌우명을 삼지요. 차란 불교 안 믿는 사람도 마시지 않습니까.”
*스님, 차 한 잔 마시고 다들 정신을 바짝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장시간 귀찮게 굴어 죄송합니다. 좋은 말씀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1984년 3월17일 법정 스님, 조선일보 안병훈 편집부국장·인전길 문화부장·서희건 기자와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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