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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불교]
과거 현재 미래가 연기緣起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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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진  /  2021 년 8 월 [통권 제100호]  /     /  작성일21-08-04 15:27  /   조회5,06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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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불교 15. 고생대의 삼엽충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갈릴레이의 샹들리에

 

갈릴레이는 피사 성당의 샹들리에가 흔들리는 모습에서 진자pendulum 운동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추의 질량이나 흔들리는 진폭과 상관없이 샹들리에의 주기가 일정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는 이후에 진자를 이용한 시계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이 운동을 물리학에서는 단순조화진동simple harmonic oscillation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의 진자가 단순조화진동을 하지는 않는다. 이는 진자의 진폭이 아주 작고 마찰이 전혀 없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마저도 엄밀하게는 근사적으로만 그렇다. 근사적으로라도 단순조화진동을 하려면, 진자의 끈이 길고 추의 질량이 무겁고 흔들리는 진폭이 작아야 한다. 그러므로 샹들리에를 보면서 그 흔들림이 단순조화진동임을 알아차리는 것은 갈릴레이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관성의 법칙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물체에게는 그 물체가 머무르는 자연스런 장소가 있다고 생각했다. 무거운 돌이나 흙은 땅에 머무르려고 하고, 가벼운 불이나 연기는 하늘에 머무르려고 하며, 별은 천상에 머무르려고 한다. 자연스러운 장소에 머무르는 자연스런 상태에서 물체는 정지한다. 정지해 있는 물체가 움직이려면 이를 밀어주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물체를 미는 작용이 사라지면 물체는 정지한다고 생각했다. 요약하면, 자연스러운 장소에 정지해 있는 것이 자연스런 상태이며, 이 상태에서 물체가 운동하려면 무언가의 작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갈릴레이는 속도가 변화하려면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지한 상태와 움직이는 상태를 서로 다르게 보았다면, 갈릴레이는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상태와 속도가 변하는 상태를 서로 다르다고 보았다. 정지한 물체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힘이라면, 물체의 속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갈릴레이의 힘이다. 그러므로 힘이 가해지지 않는다면 움직이는 물체는 일정한 속도를 유지한다. 이것이 뉴턴역학의 제1원리인 관성inertia의 법칙이다.

 

물리학에서의 이상화 

 

관성의 법칙은 힘이 작용하지 않는 상황을 전제한다. 이게 문제가 된다. 우주의 어느 지점에서도 완벽하게 힘이 사라지는 장소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우주 공간엔 중력의 영향이 거의 없는 지점이 존재하기도 하고, 추락하는 승강기 안에서는 중력의 효과가 완벽하게 사라지기도 한다.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힘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중력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없으므로, 뉴턴역학의 출발점인 관성의 법칙을 지상에서 엄밀하게 확증confirmation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럼 갈릴레이는 어떻게 관성의 법칙을 찾아냈는가? 힘이 작용하지 않는 상황을 만들 수 없었으므로, 힘이 없으면 속도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 대신 힘이 아주 약하게 작용하는 상황을 만들었고, 그러면 물체의 속도가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힘이 아주 약하면 속도가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힘이 없으면 속도가 변하지 않는다는 원리를 유추했다. 관성의 법칙도 단순조화진동과 마찬가지로 실제 상황을 이상화idealization 시켜서 얻은 원리다.

 

이상화의 의의와 어려움 

 

앞의 예에서 보듯이, 이상화는 문제의 핵심을 보이지 않게 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과정이다. 이를 제거해야만 문제의 본질이 드러난다. 먼저, 단순조화운동을 살펴보자. 우리가 보는 샹들리에는 이를 매단 줄이 충분히 길지 않고 추의 질량도 별로 무겁지 않으며 흔들림의 진폭도 아주 작지 않다. 단순조화운동이 성립하는 조건을 어느 것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이러니 눈앞에서 흔들리는 샹들리에의 움직임이 단순조화운동일 수 없다. 그러나 단순조화운동을 하지 않는 샹들리에를 보면서 단순조화운동의 원리를 알아내야 한다. 이게 어려운 일이고, 이게 갈릴레이의 탁월함이다.

 

관성의 법칙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는 공간에서 관성의 법칙은 보이지 않는다. 마찰력이나 지구 중력 등 관성의 법칙이 드러나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아주 많다. 이로 인해 관성의 법칙은 감춰진다. 그 결과, 힘을 주어야 물체가 움직이고 힘이 사라지면 물체가 정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현상이기도 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기도 하다. 힘이 멈추면 정지하는 운동을 보면서,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물체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원리를 알아내야 한다. 이게 뉴턴역학의 출발점이다.

 

인과관계 추적의 어려움 

 

진자의 운동과 관성의 법칙은 물리학의 아주 기본적인 원리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보다 복잡한 경우라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복잡계complex system를 다루는 생물학이나 사회과학에서는 이상화의 상황을 만들기 어렵다. 따라서 원인과 현상 사이의 인과 추적도 어려워진다. 독립 변수와 종속 변수 사이의 인과관계를 알기 위해서는 다른 변수들을 통제하면서 관측 자료를 얻어야 한다. 여기까지는 물리학과 마찬가지로 이상화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복잡계의 변수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인과관계는 확률적으로만 성립한다. 따라서 관측 자료를 통계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샹들리에가 흔들리는 것을 누구나 봤겠지만, 갈릴레이 이전에는 아무도 그것이 단진자 운동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는 기본적인 물리계에서마저도 인과관계의 추적이나 물리현상에 대한 설명이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상화의 과정을 거쳐야 문제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역설적으로 그 어려움을 보여준다. 간단한 계에서는 그나마 이상화가 가능하다. 지구대기, 생명체, 인간의 두뇌와 같은 복잡계에 이르면, 현상을 지배하는 법칙을 알아내고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워진다.

 

환원주의의 성공 

 

이상화와 함께 자연 세계를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방법이 환원주의다. 과학에서 환원주의는 전체 계가 개별 계 내지는 부분 계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제한 후, 전체 계를 부분 계와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환원하여 설명하려고 한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태양계는 이를 구성하는 천체와 이들 사이에 작용하는 만유인력으로 설명된다. 열역학에서 기체 온도는 이상기체 분자의 평균 운동 에너지로 설명된다. 태양계를 천체와 만유인력으로 환원시키고, 기체 온도를 기체의 운동 에너지로 환원시켰다. 이 환원으로 태양계의 운행과 기체 온도를 성공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성공의 원인은 무엇인가?

 

태양계는 여러 천체로 구성돼 있지만,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아주 간단하다. 태양의 영향력이 엄청나므로, 행성 사이의 상호작용이 있더라도 이는 태양과 행성 사이의 상호작용보다 아주 작다. 그러므로 행성의 운행은 거의 전적으로 태양과의 상호작용으로만 진행된다. 이는 기체 운동에서도 마찬가지다. 1 리터 용기 안에는 천억 곱하기 천억 개의 기체 분자가 들어있지만,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충돌뿐이다. 두 계 모두 구성원 사이의 상호작용이 간단하므로, 이상화시킬 수 있었고 환원주의 방법론이 성공할 수 있었다.

 

환원주의의 한계 

 

환원주의가 대상을 성공적으로 설명하려면, 전체 계界가 부분 계의 합이어야 한다. 그러면 전체 계에서 나타나는 효과가 부분 계의 어떤 원인 때문에 발생하는지를 인과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 그러나 상입相入의 연기緣起에 의해 새로운 속성이 창조적으로 나타난다. (『고경』 20년 12월호 참조) 물이 좋은 예다. 물 분자는 산소와 수소 원자로 이루어지지만, 두 원자에서 물 분자의 속성을 찾을 수는 없다. 물의 속성은 두 원자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창발emergence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태양계와 기체 분자의 계에는 이 창발이 없다.

 

창발에 의해 형성된 물 분자 전체는 산소와 수소 원자의 단순 합이 아니라 그 이상이다. 그러면 전체를 부분으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물뿐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전체가 상입相入의 연기緣起가 중층적으로 쌓여 이루어진 세계다. 세계가 원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원자로 세계를 이해하지 못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까지는 공간적인 상호 의존과 연관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에 시간적 인과가 더해지면 환원주의의 한계는 더욱 분명해진다.

 

시간의 연기緣起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선 숨을 쉬어야 한다. 산소 호흡을 못 한다면 우리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이는 우리가 의존적이고 연기적인 존재임을 말한다. 그런데,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산소가 원시지구에는 없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 주변의 산소는 필연적으로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원래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건 38억 년 동안 지구 생명이 만들어 낸 것이다. 산소가 풍부해지면서 산소 호흡을 하는 생명체가 진화의 역사에 등장했다. 우리는 그 후손이다. 그러므로 지구에 산소가 풍부하게 존재하고 우리가 산소 호흡을 한다는 사실은 지금 이 순간의 의존과 연관만으로는 해명되지 않는다.

전체가 부분의 합 이상일 뿐 아니라, 각각의 부분은 원래 그 모습으로 존재했던 것도 아니다. 그들은 모두 역사적 존재다. 생명과 지구의 진화를 통해 과거의 모든 순간이 현재에 와 닿아 있고, 현재는 미래의 모든 순간에 연결돼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기緣起한다.

 

화엄종 3조 법장 스님은 “십세十世는 따로 다름을 구족하면서도 동시에 현현하며 연기를 이루어 상입相入할 수 있으므로 십세격법이성문十世隔法異成門이 성립한다.”고 하셨고(주1), 의상 스님은 「법성게」에서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即”이라고 하셨다.

 

주)

(주1) 과거, 현재, 미래의 각각에 다시 과거, 현재, 미래가 있어 구세九世가 되고, 이 구세九世가 상즉相卽하여 총체를 이룬다. 이 총체와 구세九世의 각각을 합쳐 십세十世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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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진
고려대학교 과학기술대학 물리학과 교수. 연구 분야는 양자정보이론. (사)한국불교발전연구원장. <산하대지가 참 빛이다 (과학으로 보는 불교의 중심사상)>, <양형진의 과학으로 세상보기>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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