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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출가계의 인순 재가계의 여징 근현대 중화권 불교학의 쌍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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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  2021 년 8 월 [통권 제100호]  /     /  작성일21-08-04 15:52  /   조회3,56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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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중국의 불교학자들 8. 인순印順 1906-2005 ① 

 

 

‘인간 불교’는 중국 근대에 처음 제기된 개념으로, 태허太虛(1890-1947)가 3대혁명을 통해 최초로 ‘인간 불교’ 개념을 제기하였다. 

 

‘인간 불교’

 

인간 불교는 근대시기 중국 불교 개혁운동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닌다. 태허는 인간 불교에 이은 ‘인생 불교’를 주창하며 죽음이 아닌 삶을 위한 불교를 주창하였다. “인간 불교는 인간이 인류 사회를 떠나서 신이나 귀신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 출가시켜 산속에서 승려로 살게 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불교의 도리로 사회를 개조하고 인류가 진보하게 하여 세계를 개선하는 불교이다.”는 태허의 주장이 인간 불교가 지향하는 방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진 1. 노년의 인순 스님.

 

태허의 제자로서 태허 사상을 이어서 발전시킨 인순印順(1906-2005, 사진 1·2)은 근대적 학승의 대표자로 꼽힌다. 그는 부처가 인간 세상에 태어나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점을 근거로 불법의 실천을 강조하는 인간 불교를 강조하였다. 인간 불교는 한 마디로 전통 불교가 출세간의 ‘산중 불교’이자 죽음 이후의 내세에 관심을 가진 종교인 데 반해서, 세속의 현실 참여, 현실 개혁의 성격을 띠고 현생에 관심을 가진 불교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 사회와 문화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참여 불교’를 인간 불교라고 할 수 있다.

  

인순은 대만 불교가 인간 불교적 성격을 띠게 된 사상적인 근거를 제기한 근현대 시기 불교 사상가이다. 현대 대만 불교의 4대 교단의 지도자인 불광산사의 성운星雲 스님(1927- ), 중대선사의 유각惟覺 스님, 자제공덕회의 증엄證嚴 스님(1937- ), 법고산의 성엄聖嚴 스님 등 모두 인순의 ‘인간 불교’ 사상에 바탕을 두고 포교나 불법의 실천·학술·수행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교리적인 측면에서는 태허에서 인순으로 이어지는 발전이 대만의 불교학 성장에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평가된다. 실제로 대만에서는 인순을 인간 불교의 아버지로 추앙하는 분위기이다. 

 

‘귀신 종교[鬼敎]’에서 탈피

 

인순은 「불재인간佛在人間」이라는 글에서 ‘인간 불교’의 핵심 개념을 제기하였다. 그는 전통 불교가 삶과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을 궁구하였고, 죽음과 귀신을 보는 것도 중시하였다고 보았다. 

 

“중국 불교에는 죽은 귀신에게 흐르는 편향과 인도 후기 불교가 천신天神에 흐르는 혼돈이 있을 뿐 아니라, 인도 후기 불교는 불교의 진정한 뜻마져 등졌다. 이것은 인간을 본위로 하지 않고 천을 본위로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일신一神 경향의 범천을 중시하였고, 뒤에는 범신론적 경향의 제석천을 중시하였다.) 그로 인해 불교가 항상 되지 않은 변화를 가지게 되었다.”

 

 

 

사진 2. 인순 스님. 바이두 캡쳐. 

 

인순은 전통 불교가 귀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과 인도 불교에서 천신을 중시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본위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중국 세속의 민속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고 보았는데, 불교도 이러한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적지 않은 불교도들이 죽음과 귀신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 때문에 많은 불교도들이 죽은 뒤 귀신이 될 준비를 하였고, 그를 위하여 각종 음식과 제사물품, 의복 등을 준비하였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불교가 ‘귀신 종교[鬼敎]’가 되었다고 탄식하는 학자도 있을 정도였다. 

 

인순은 이러한 상황이 불교가 인간을 본위로 하지 않고 천天, 달리 말하여 신神이나 형이상학 진리, 이데올로기 등 무엇이 되었든 인간이 아닌 외적인 권위에 매달릴 때, 불교가 진정한 종교 정신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현상들은 불교가 현실의 사회와 인생을 떠나면서 점차 몰락의 길로 나아가는 징조라고 보았던 것이다. 

 

‘인간 중심’이 진정한 불교

 

인순은 불교가 귀신화 되는 편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특히 ‘인간’이라는 두 자로 그것을 치유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사망과 귀신에 편향한 것을 치유하는 동시에 귀신과 영생에 대한 편향도 치유한다.”고 단언하였다. 죽음과 귀신, 영생 등 인간이 아닌 인간 외적인 권위에 매달리는 것은 불교에 큰 해를 끼칠 폐단이고,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인간’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가 인간 불교를 제창한 의도이다. 그리하여 그는 “진정한 불교는 인간적이다. 오직 인간의 불교라야만 불법의 진정한 의미를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 불교’의 진정한 뜻을 계승하고 인간의 불교를 발전시켜야만 한다.”고 단언하였다. 

 

인순에게 부처는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 중에서 최고의 깨달음을 갖춘 이에 불과하고, 불교 역시 초월적 가치를 지닌 종교가 아니라 인간이 창립한 종교일 뿐이다. 불교는 본래 ‘인간’이어야 하고, 내생이나 귀신, 인간 외적인 것이 아니라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현실과 인간 그 자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 시기 불교가 귀신에 관심을 기울이고 인생과 현실에서 벗어난 길을 가게 된 것은 잘못된 일이므로, ‘인간 불교’를 다시 세우는 일이야말로 생기와 활력을 획득하는 길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인순은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인간의 불교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여기에서 불교는 인간학이 되고, 인순의 인간 불교가 도달한 최고의 인문학적 선언이 된다. 

 

서양·기독교의 인간관 비판 

 

중국의 전통 불교는 불성의 탐구에 편중하였고, 인간의 본성인 인성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인순처럼 인간 불교를 제창하려면 인간을 떠나서는 안 되고, 따라서 불성과 동시에 인성을 탐구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인순이 인간의 본성의 문제에 특히 관심을 기울인 이유일 것이다. 불교의 교화 대상은 본래 중생이고, 이 중생은 특별히 인간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중생이란 천天, 인간, 아수라, 지옥, 아귀, 모든 동물을 포함한 여섯 부류로 나누어진다. 이 때 천에는 천성이 있고, 귀신에는 귀신의 본성이 있으며, 동물에는 수성이 있고, 인간에게는 인성이 있다. 인순은 서양의 인간관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사진3. 『인순법사불학저작전집印順法師佛學著作全集』. 전23권. 北京: 中華書局, 2009

 

 

“일반적으로 인간에게는 신성神性도 있고 수성獸性도 있다고 한다. 이것은 신의 종교를 말하는 서양학자들의 학설에 영향 받은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 수성의 성분을 띠고 있으며, 인간의 성격이 잔혹하게 발달하여 인성을 잃어버린 것이 그 예라고 한다. 이것은 금수와 구분이 없다. 기독교 신학에서는 인간을 세 부류로 나눈다. 첫째, 몸이다. 즉 생리 본능적이고 순전히 육욕의 발전으로서, 생각이 어디로 가든 이 본성에 따라 전적으로 육체적 욕망의 지배를 받는다. 이것은 타락이고, 수성에 가깝다. 둘째는 영靈이다. 이것은 신성으로서, 신이 인류의 영성을 준 것으로 지극히 선하고 아름답다. 순전히 이 영성에 의거하여 활동하면 신이 구제하여 위로 천당에 태어나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살게 된다. 셋째는 혼魂이다. 신이 특히 인류에게 영성을 부여하니, 영성과 신체가 결합하여 낳은 것이 혼이다. 전적으로 정욕에만 속한 것은 아니지만, 신성과는 거리가 있다.” 

 

이렇게 인간의 본성을 셋으로 구분한 것이 인순이 파악한 기독교 신학의 인성론이다. 그는 인간을 선악을 겸비한 존재로 보는 이러한 해석은 전적으로 기독교 신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특히 인간의 신체는 전적으로 육체적 욕망의 지배를 받는 악한 것이고, 오직 신이 인간에게 넣어준 영성만이 인간을 선으로 이끌고 “영원히 죽지 않고 살게 한다.”는 입장이 그러하다. 인간의 현실적인 정신인 혼은 이 두 가지의 혼합이고,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인순은 인간을 선과 악의 혼합으로 보는 기독교 신학의 입장에 대해 기본적으로 반대한다. 현실적인 인간을 선악의 혼합체로 보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그는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선성善性’을 믿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서양 기독교와 동양 정신의 차이이고, 동양 정신은 유학의 ‘인성人性’과 불교의 ‘불성佛性’으로 구체화된다고 할 수 있다. 

 

인간 본성의 중시 - 인성과 불성

 

인순은 동양의 인성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 『서경』에서는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을 말하였다. 그 개요는 ‘인심은 오직 위험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정욕의 충동을 받고 육체의 편안함을 갈구하려고 한다. 이러한 물질적인 탐욕이 그치지 않으므로, 여러 위험이 발생하게 된다. ‘도심은 오직 은미하다.’ 미묘하여 생각하기 어려운 도심은 천리에 계합하는 마음이다. 중국에서는 한 결 같이 이 두 가지의 조화로운 결합을 중시하여, ‘그 중中을 충실히 잡을 것’을 주장하였다. 도심으로 인심을 제어하면 정욕에 

편향하지 않는다. 인심을 도심에 합치시키면 이성에 편중되지 않는다. 성리학에서는 불교의 영향, 즉 진상유심론眞常唯心論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인순에 의하면, 유학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인심과 도심으로 나누어서 일견 선악의 혼합체로 보는 서양의 인간관과 유사한 듯 보인다. 그러나 유학에서는 위험한 인심과 은미한 도심의 ‘중中’을 잡는 능력을 신뢰한다. 이러한 능력이 있음으로 해서 인간은 결코 위험한 욕망에 빠져들지 않고, “도심으로 인심을 제어하면 정욕에 편향하지 않는다.” 또한 외부 규제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해서 “인심을 도심에 합치시키면 이성에 편중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성과 감성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조화되는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유학적 인간상이 가능해진다. 특히 송대 성리학으로 발전하면서는 “불법의 영향, 즉 진상유심론眞常唯心論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여 모든 것을 참되고 선한 것으로 파악하는 관점을 피력하고 있다. 

 

진상유심론이란 현상계를 참되고 항상 되며 깨끗한 당체의 자기 현현으로 파악하는 것이므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선하고 깨끗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간은 결국 선한 존재가 된다. 여기에서 중국 불교의 진상유심론과 유학의 성선설이 만나는 지점이고, 인순이 이를 정확히 인식하였던 것이다. 인순의 인간 불교는 스승 태허가 전통불교를 중시하였던 방향으로 발전 성립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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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철학박사. 현재 고려대학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석·박사 졸업. 같은 대학 철학과에서 강의,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초빙교수를 지냈다. 지곡서당 한문연수과정 수료. 조계종 불학연구소 전문연구원 역임. 『웅십력 철학사상 연구』, 『신유식론』,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 등 다수의 저서 및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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