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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빛의 말씀]
자기를 비우고 남을 존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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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  2021 년 9 월 [통권 제101호]  /     /  작성일21-09-06 09:14  /   조회3,47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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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제6·7대 종정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사바세계를 위한 청량법문을 보시布施해 주셨으면 합니다.

 

“대개의 종교는 현실을 상대유한相對有限으로 봅니다. 그리고는 현실을 떠난 절대무한絶對無限의 세계가 따로 있으니 이 현실을 버리고 절대로 들어가자고 주장하지요. 그러나 불교는 현실을 떠난 절대의 세계를 부정하고, 현실 이대로가 절대임을 주장합니다. 절대인 현실을 상대로 보는 것이야말로 착각된 오해일 뿐이니 이같은 착각을 버리면 현실이 즉 절대임을 바로 볼 수 있지요. 

착각은 허망한 물욕이 마음의 눈을 가렸기 때문에 생기는 겁니다. 물욕만 없으면 마음의 눈이 자연히 열려서 현실이 절대임을 똑바로 보게 돼요. 

그러나 물욕을 버리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요즘은 종교도 물질만능의 물결에 휩쓸려 본래의 사명을 상실하고 있어요. 우리는 영원한 생명과 절대적 행복의 현실 속에 살면서도 삼생의 원수인 물욕으로 인하여 지옥 같은 생활을 하고 있으니, 물욕을 버리고 본래 낙원인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다른 절들은 오색현란한 불탄봉축등 달기가 한창인데 백련암엔 등이 하나도 안 보이는군요.

 

“불탄등佛誕燈은 부처님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며, 모든 생명의 마음의 등불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모든 생명은 무한하고 영원한 마음의 등불을 다 가지고 있어서 항상 우주를 비추고 있습니다. 

초파일에 특별히 등불을 켜는 것은 이같은 마음의 등불을 표시하며 자축하는 거룩한 행사지요. 마음의 등불이란 한낮에 뜬 해처럼 우주를 항상 비추고 있으니, 또 다른 등을 켠다면 이는 대낮에 촛불을 켜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백련암은 초파일 등불을 따로 켜지 않습니다. 이처럼 ‘등불을 켜지 않는 것’은 등불의 본체를 알기 때문이요, 반면에 ‘등불을 켜는 것’은 비단 위에 꽃을 던짐과 같은 것이니, 두 가지 다 좋은 일이지요.”

 

*산은 산, 물은 물과 같은 평상심平常心의 진리는 어떻게 하면 체득할 수 있는지요.

 

“산은 산, 물은 물이라고 함은 누구든지 보고 누구든지 말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깊은 뜻이 있어서 이것을 바로 보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선가禪家에서는 이를 바로 보면 대도大道를 성취했다고 하지요. 자세히 말하면, 인간은 대개가 잡념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잡념이 끊이지 않은 상태로는 이를 바로 볼 수 없으며 잡념을 끊은 무심無心에서도 바로 볼 수 없으니, 이는 무심이 아직 마음의 눈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깊은 심리상태인 무심의 경지를 벗어나 홀연히 마음의 눈을 뜨면 큰 지혜의 광명이 우주를 비추어 ‘산은 산, 물은 물’을 역력히 바로 보는 동시에 일체를 바로 보고 바로 알게 되니, 이것을 깨침이라고 합니다. 이 깊고 깊은 법을 성취하려면 마음 닦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마음 닦는 공부 중에서도 참선이 가장 첩경이니 선종禪宗의 화두話頭를 배워서 열심히 하면 일상 행동할 때에도 화두가 간단없이 계속되며 나아가서는 꿈속에서도 항상 계속되지요. 여기에서 더욱 노력하며 물러서지 않으면 깊은 잠이 들어도 화두는 역력히 계속되니, 이것은 모든 잡념이 완전히 끊기고 무심 상태가 된 증거입니다. 이 숙면일여熟眠一如의 무심에서 활연대오하면 마음눈을 크게 떠서 산은 산, 물은 물이라고 소리치게 되니, 이런 사람을 자유자재한 대해탈인이라고 부르지요.”

 


가야산의 성철스님 

 

*심령학 공부를 하고 계신 줄로 알고 있습니다. 심령 과학과 불교의 공통점이 있는지요.

 

“윤회 사상이 불교의 독창은 아니지만 불교 근본사상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윤회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입증하려면 곤란한 점이 많아서 포교에 큰 지장이 되고 있어요.

근래 심령학이나 초심리학이 크게 발달되어 윤회에 대한 실질적인 자료가 많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아직 완전히 과학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들을 미신이라고 배제하지 못할 정도는 된 것 같습니다. 어쨌든 심령학이나 초심리학에서 제시된 자료가 불교의 윤회 사상을 설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봐요.”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데, 종말론에 대한 스님의 견해는 어떠신지요?

 

“불교는 일체가 상주불멸常住不滅이라고 주장하여 종말은 없다고 봅니다.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자체는 진여眞如라고 하여 영원불멸입니다. 삼라만상은 진여대해眞如大海에서 발현되는 것이어서 피상적으로는 천변만화해도 진여는 불변이며, 따라서 모든 현상도 불멸이지요. 요사이는 자연 과학에서도 우주의 상주불멸, 질량불변의 법칙을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연계를 구성하는 에너지와 질량은 불멸, 불변함이 자연계의 기본 원리이니 자연계가 보존됨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종말론은 인간의 지혜가 어둡던 구시대의 착각이니 지구 종말은 추호도 걱정할 게 없어요. 오직 영원불멸의 이 현실을 바로 보고, 이 거룩한 현실 속에서 인생을 구가할 뿐입니다. 말세론 역시 불변, 불멸의 우주 대법大法이 억천만 년 전이나 억천만 년 후에라도 조금도 변함이 없이 항상 정법正法 그대로 있을 테니, 걱정 말고 절대인 현실 생활만 바로 하면 극락과 천당은 꿈속의 꿈이요, 일체 만사가 원만구족해집니다.”

 

*한국 불교 혁신에 대한 소신이 있으시다면 어떤 것입니까?

 

“불교의 모든 것은 팔만대장경 속에 갖추어져 있으니, 불교를 혁신한다 하여 팔만대장경 밖으로 나가면 이는 불교가 아닙니다. 불교도의 갈 길은 아무리 탁월한 의견을 가졌어도 각자의 주장은 버리고 오직 부처님 말씀을 생명으로 하여 부처님 법을 따르는 것뿐입니다. 어느 종교든 교조敎祖의 말씀은 교도에 한해선 절대적인 것입니다. 교조의 유훈을 준수하지 않으면 교도가 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종교에 있어서는 혁신이란 용어는 해당치 않으며 복원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을 줄 압니다. 우리 불교도 개교 이후 장구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의 위배되는 점이 많다고 봅니다. 삐뚤게 나간 길은 팔만대장경대로 바로잡아야지요.”

 

*불교의 인재 양성을 위한 승려 교육제도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요.

 

“종교인으로서 사회에 봉사하려면 최소한 학사 정도의 자격은 갖추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니 승려가 될 때 대학졸업 이상이 아니면 승려증을 발급하지 말아야 합니다. 

국가의 장래가 2세 교육에 달려 있고, 한 가문의 성쇠도 자녀 교육에 달렸다고 해서 소중한 논밭을 팔아 학비를 보내고 모자라면 마침내는 살고 있는 집까지 팔아서라도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부모의 당연한 열성이 아닙니까. 그러니 불교 교단도 승려 교육을 최대 과제로 새롭게 인식하여 이에 총력을 다 하여야 할 것입니다.”

 

*불교와 다른 종교와의 대화 필요성은 어떠한지요?

 

“불교는 일체 만법의 간격이 없고 평등하므로 자타 종교와 구별을 않지요. 몇 해 전 연세대 신학대학원의 독일인 교수가 고명한 한국인 교수와 함께 와서 대화를 나눈 일이 있어요. 그때 ‘나는 한국인, 당신은 독일인, 또 당신들은 예수교, 나는 불교이니 각자의 입장을 고집하면 대화가 될 수 없다, 한국인, 독일인, 예수교, 불교 다 버리면 결국 남는 것은 사람뿐이니 사람끼리 얼마든지 대화할 수 있지 않느냐’고 제의했습니다. 모두들 찬동하여 밤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참으로 허심탄회하게 많은 의견을 교환하고 즐겁게 헤어졌어요.

이렇게 각각 자기를 비우고 남을 존경하는 대화는 얼마든지 좋습니다. 그러나 각자의 고집을 버리지 못하면 싸움만 계속될 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1983년 5월20일 중앙일보 이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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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성철스님은 1936년 해인사로 출가하여 1947년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봉암사 결사’를 주도하였다. 1955년 대구 팔공산 성전암으로 들어가 10여 년 동안 절문 밖을 나서지 않았는데 세상에서는 ‘10년 동구불출’의 수행으로 칭송하였다.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여 ‘백일법문’을 하였다. 1981년 1월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어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1993년 11월 4일 해인사에서 열반하였다.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곁에 왔던 부처’로서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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