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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사찰에 관한 종합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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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후  /  2021 년 9 월 [통권 제101호]  /     /  작성일21-09-06 11:08  /   조회4,75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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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사서史書 9 

『범우고梵宇攷』 ②

 

 

『범우고』(사진 1)는 조선 전후기 전국 8도 330개 지역 사찰의 증가와 감소를 수록하고 있다. 더욱이 1530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사찰도 수록하고 있어 조선 전 시기 사찰의 증감을 토대로 불교계의 동향을 살필 수 있다. 우선 『범우고』에 실린 조선 전후기 각도 사찰의 증감 여부를 살펴보고자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범우고』를 통해 조선 전기와 후기 8도 328군현 사찰의 존립과 폐망을 통한 증감여부를 살펴보았다. 각 도의 시기별 증감이나 존립실태를 살펴보면 『범우고』에 실린 『신증동국여지승람』 상의 존립 사찰은 1,583사가 되고 이 수치는 중간시기에 918사가 폐망하고, 후기까지 672사가 존립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 『범우고』에 상에 나타난 ‘속續’으로 표기된 전체 사찰 수는 1,180사이고, 이 가운데 103사만이 폐망하고 1,066사가 존립하였다. 이렇게 해서 조선 전기와 후기까지 8도에 존립했던 사찰은 모두 1,747사이다. 

 

 

사진1. 범우고 경기도 부분. 

 

 

8도에서 조선 전후기에 걸쳐 존립 사찰 수가 가장 많은 도는 경상도다. 경상도는 71개 군현으로 8도 가운데 가장 많은 군현을 구성하고 있었다. 조선 전기 283사가 존립했지만, 중간에 135사가 폐망하고 148사가 존립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조선후기 『범우고』 편찬 당시 276사가 새롭게 창건되었는데, 이 수치는 조선 전기에 존립한 사찰 수에 육박한다. 더욱이 21사만이 폐망하고 255사가 존립하여 사찰 수 대비 가장 적은 수의 사찰이 폐망하였다. 

 

각 고을의 상황을 보면 칠곡·풍기·고성·기장·웅천·자인·영양은 조선 전기에는 사찰의 존립이 보이지 않지만, 후기에 새롭게 사찰이 창건되어 폐망한 사례가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자인慈仁은 후기에 15사가 창건되어 중간에 폐망하지 않고 그대로 존립하였다. 안동의 사찰증감은 조선 전기와 후기가 현저히 다르다. 전기는 7사가 존립했지만, 4사가 폐망하고 3사가 후기에 잔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후기에는 12사가 창건되어 1사만이 폐망하고 11사가 모두 존립했다.

 

 


  

경상도는 전기 이후 가장 많은 사찰이 폐망되었지만, 후기까지 403사가 존립하였다. 전라도와 

평안도가 다음을 차지하고 있다. 대체로 물산이 풍부한 삼남지방은 8도 가운데 존립 사찰 수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폐망한 사찰 수도 많았다. 특히 충청도는 조선 전기 252사가 존립했지만, 158사가 폐망할 정도였고, 조선 후기 창건된 사찰 수 역시 경상도와 전라도에 비해 87사로 가장 적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충청도는 전체 52곳의 군현에서 252사가 조선 전기에 존립했지만, 중간시기에 158사가 폐망하고 95사가 조선 후기까지 존립하였다. 반면 조선후기(1799년)에는 107사가 창건되었고, 이 가운데 22사가 폐망하고 85사가 존립하였다. 각 고을의 상황을 보면 8개 군현이 조선 전기에는 사찰이 존립했지만, 후기에는 모두 폐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영춘永春은 존립 자체가 없다. 또한 39군현은 조선 후기동안 사찰이 창건되거나 건립된 사례가 보이지만, 13군현은 창건된 사례가 보이지 않는다. 아울러 12군현은 『범우고』 기록에서 사찰이 폐망한 사례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으로 보아 조선후기 충청도 사찰은 전기와는 달리 후기에 존립한 사찰이 폐망하지 않고 존립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것은 『범우고』 편찬 당시 조사된 사찰 수의 폐망이 현저하게 적은 것은 아마도 전란 이후 불교계의 수탈과 착취가 정조대에 들어와 스님들에게 부과된 의승방번전義僧防番錢을 반감시킨 것이라든가 관청의 잡역雜役과 잡공雜貢으로 인한 피해를 지속적으로 최소화시키거나 금지시킨 결과라고 생각한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조선후기 『범우고』 편찬 당시 새롭게 밝힌 사찰 수는 당시 창건된 사찰도 있었겠지만, 이전 전국 지리지가 지닌 한계 상 조사의 미비로 인한 누락된 수치를 새롭게 밝혀내어 수록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범우고』가 편찬되기 약 40여 년 전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의 내용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도표 2).

 

『여지도서』는 1757년(영조33)-1765년(영조41)사이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邑誌를 모아 만든 책이다. 당시 8도의 295개 읍지와 17개의 영지營誌 및 1개의 진지鎭誌 등 총 313개의 지지地誌가 수록되어 있는데, 사찰 현황은 다음과 같다. 

『여지도서』 역시 형식은 다르지만 ‘금폐今廢’, ‘신증新增’, ‘금즉허공今則虛空’ 등의 표기로 사찰 존립상태를 알려주는데, 연구 성과에 의하면 ‘금폐 사찰’을 제외하고 전체 1,537개의 사찰이 존립存立했다. 두 책은 약 40년 정도 차이를 두고 각각 편찬됐는데 사찰 수는 약 210개나 증감增減이 있다. 

 

이와 같은 차이의 원인은 일차적으로 『여지도서』가 지니고 있다. 당시 행정구획을 고려할 때 빠진 곳이 『여지도서』에는 39개 지역인데 비해 『범우고』에는 경기도의 한성부漢城府와 개성부開城府, 경상도의 산음山陰·안음安陰의 4개 지역에 불과하다. 『여지도서』에 누락된 지역의 사찰 수를 『범우고』를 통해 보충하면 다음과 같다.

 


  

표에 의하면 경기도가 19사, 충청도가 7사, 경상도가 33사, 전라도가 57사로 전체 116사가 『여지도서』에 빠져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수치는 4개 지역이 1개의 사찰도 존립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가 크다고 하겠다. 결국 『범우고』가 전국 지리지 차원의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성과 완성도가 높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범우고』는 조선 후기 전국적으로 조사된 사찰 현황 가운데 수적으로 가장 광범위하게 정리되었으며, 조선 전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사찰의 수적 추이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조선 전기 『신증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된 이후 『범우고』는 그 범례에 따라 편찬되었지만, 사찰만을 수록한 것이나, 약 40여 년 전에 편찬된 『여지도서』에서 누락된 39곳, 210여 개의 사찰을 보충하여 8도 328군현, 1,747사를 수록하였다. 

 

이 수치는 일반적으로 불교 탄압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조선후기 사찰의 감소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었다는 이왕의 연구 성과를 재검토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특히 전기에 비해 후기 사찰 존폐와 증감은 불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긍정적 변화를 대변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전기에 존속된 사찰이 후기에 이르러 918사가 폐망한 것에 비해 후기에 창건되거나 새로 조사된 사찰 가운데 폐망한 사찰이 103사인 점에서도 알 수 있다. 결국 『범우고』에 나타난 이 수적 추이를 통해 조선왕조의 불교정책이나 불교계의 동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범우고』는 정조의 불교인식과 그 정책을 살필 수 있는 자료다. 정조는 『범우고』의 제문題文에서 『범우고』를 짓는 까닭은 비구대중들이 깊은 산골짜기의 우거진 숲속이나 큰 늪을 진정시켜 예악·교화·풍속이 존속되도록 힘썼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대체로 조선 후기 사찰에 관한 부연敷衍 설명에서는 임진왜란과 같은 국난에 스님의 국가 사회적 기여나 왕조의 번영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과정에서 불교의 가치를 인식한 것이다. 

 

비록 집권 초기에는 배불정책의 태도를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의승번전제를 반감시키고 스님의 잡역을 금지시킨 일, 그리고 호국護國에 기여한 사찰에 사액을 내린 일 등은 그의 호불정책이 맹목적인 것이 아닌 왕조의 유지와 번영에 불교계가 기여한 점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범우고』의 편찬은 스님도 조선의 신민臣民이고, 왕조를 위기에서 지킨 공로를 인정하여 사찰과 스님을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범우고』는 광범위한 자료수집과 정리를 통해 사찰의 연혁을 파악할 수 있는 사적기事蹟記의 가치뿐만 아니라 불교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사찰의 수적 통계뿐만 아니라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사찰의 연혁과 인물을 비롯한 전반적인 사항을 대체적으로 정리하였다. 기초자료의 유형은 유학자의 시를 비롯한 영찬문詠讚文, 사찰의 사적과 인물의 비문, 사적기 등을 소개하였고, ‘세전世傳’혹은 ‘속전俗傳’이라 하여 사찰과 관련한 전설과 설화도 수록하였다. 이와 같은 자료는 이 시기 불교사정을 알 수 있는 관련 자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런 이유로 『범우고』는 사찰에 관한 종합자료집이자 귀중한 사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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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후
동국대 및 동 대학원 사학과에서 공부하고 「조선후기 사지寺誌편찬과 승전僧傳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 저서로 『조선후기 불교동향사』, 『사지와 승전을 통해 본 조선후기 불교사학사』, 『한국근대불교사론』, 『석전영호대종사』(공저), 『신흥사』(공저)등이 있다. 조선시대와 근대를 중심으로 한 한국불교사에 관한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동국대 불교학술원 전임연구원 역임.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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