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암당 고우 대종사, 홀연히 본래 자리로 돌아가시다 > 월간고경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월간 고경홈 > 최신호 기사

월간고경

[목탁소리 ] 은암당 고우 대종사, 홀연히 본래 자리로 돌아가시다


페이지 정보

원택스님  /  2021 년 10 월 [통권 제102호]  /     /  작성일21-10-05 10:16  /   조회368회  /   댓글0건

본문

모악산 금산사의 뜨거운 하늘 아래서 태공당 월주스님를 떠나보낸 온기가 채 가시기도 전인데, 또 한 분의 큰 어른과 이승의 이별을 하러 희양산 봉암사로 발걸음을 옮기자니 마음이 공허하기만 합니다. 고우스님께선 선풍禪風 진작에 매진하며 한평생 수행자로 살다 가셨습니다. 그래서 지난 9월 2일 조계종립 특별선원 봉암사에서 거행된 스님의 영결식과 다비는 전국선원수좌회장으로 치러졌습니다. 은사이신 성철 큰스님의 열반 28주기를 앞두고 큰스님과의 깊은 인연을 생각하며 제2의 봉암사 결사를 주창하셨던 은암당 고우스님의 영전에 절을 올리고, 불교신문에 난 행장과 가까이 모시던 이의 조언을 참고하여 고우스님의 행장을 돌아보며 추모의 마음을 담습니다.

 

은암당隱庵堂 고우古愚 대종사는 1937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책 보기를 좋아해서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군 복무 중에 폐결핵에 걸리고 제대 후 모친이 갑자기 돌아가시자 인생무상을 느끼고 26세에 한 생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김천 수도암으로 출가했다. 은사는 직지사 영수스님이다.

수도암에서 불교를 처음 만나 공부하니 너무 재미 있어 폐결핵 약도 버렸는데 병이 저절로 나았다. 청암사와 남장사 강원에서 고봉, 관응, 혼해 대강백 등에게 강원 교과를 이수하였는데 불교가 정립되었고, 강원을 마칠 무렵에는 참선에 발심하여 29세에 향곡스님이 주석한 묘관음사 길상선원에서 첫 안거를 지낸 이래 제방선원에서 정진하며 평생 참선의 길을 걸었다.

 

 


사진1. 인자한 미소로 불자들을 제접하고 계시는 생전의 은암당 고우 대종사. 

 

1968년 문경 김용사에서 법련, 무비, 법화, 정광, 혜규 등 십여 명의 선승들이 모여 봉암사가 구산선문의 유구한 수선도량이자 광복 후 성철, 자운, 청담, 보문, 향곡 선사의 결사처인데 전쟁으로 끊어진 전통을 되살리자고 제2 봉암사 결사의 뜻을 모아 봉암사로 가서 당대 선지식 서옹, 서암, 지유스님을 모시고 주지 소임을 맡아 문중을 초월하여 수좌원융도량으로 조계 선풍과 결사 정신을 되살려 지금의 대한불교조계종 종립선원 봉암사 태고선원의 기틀을 만들었다. 

 

1971년에 문경 심원사에서 정진 중 하루는 불현듯 ‘무시이래無始以來’라는 말뜻을 깨닫고 공空을 이해하고는 불교 이론에 대하여 더 이상 의심이 없어져 마음이 편안해졌다. 당시 선원에도 대체로 돈오점수 공부하는 이들이 많았고, 스님도 그런 견해로 공부하던 때라 돈오頓悟했다고 생각하고는 제방을 유력하였는데, 1975년 어느 날 남해 용문사 염불암에서 보임保任한다고 여유롭게 있었는데, 갑자기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창하시는 성철스님이 오셨다. 마침 잘 되었다는 마음으로 가사 장삼을 수하고 삼배를 드리자마자 “스님, 돈오점수頓悟漸修가 맞지 않습니까?” 하고 대들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성철스님은 홱 돌아눕고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셨다.

 

1980년 신군부가 정권을 탈취하고는 불교에 10·27법난을 자행하여 당시 월주 총무원장을 비롯한 종단의 주요 소임자들이 계엄군에 연행되어 총무원 기능이 마비되자 봉암사 대중들이 공사를 열어 조계사에 올라와 총무원을 임시로 운영하게 되었는데, 봉암사 탄성스님을 총무원장으로 모시고 총무부장을 맡아 10·27법난의 원만한 수습과 종헌 개정 등 일대 개혁조치를 한 뒤 3개월 만에 다시 봉암사로 돌아갔다.

 

 


사진2. 불교인재원 주최 『육조단경』 대강좌에서 고우스님을 소개하고 있는 원택스님. 

 

 

1987년 봉화 각화사 동암에서 우연히 『육조단경』 「정혜품」을 보다가 ‘백척간두 진일보’의 뜻을 깨치고 마음이 환해졌다. 이미 돈오해서 공부를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이 깨달음은 무엇인가? 이런 의문을 해결하고자 시중의 모든 불교 서적을 몽땅 구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장경각의 “선림고경총서”와 성철스님의 『백일법문』과 『선문정로』를 보고는 선의 종지와 돈오돈수에 대하여 정안正眼을 갖추게 되었다. 그제서야 성철스님을 다시 보게 되었고, 용문사 염불암에서 큰스님께서 홱 돌아누운 것이 그대로 선사의 진면목이었음을 알고는 그때 더 대들지 못하고 그대로 물러나온 것을 크게 아쉬워했다. 

 

이후 한국 불교의 참선 수행을 바르게 하고 선을 널리 전하기 위해 도반 적명스님과 함께 선납회禪衲會(현 전국선원수좌회)를 창립하고 공동대표를 맡아 1987년에 참선 수행자도 경전과 조사어록을 공부하여 정견을 갖추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성철 종정예하가 주석한 해인총림에서 전국 선승들과 함께 ‘제1회 선화자법회’를 주도했다. 당시 성철 종정께서 『육조단경』 지침 법문을 하고, 서암스님이 『육조단경』 강의, 일타스님이 율장 특강을 했다. 수좌 500여 명이 수일 동안 탁마 정진하는 등 선문에서는 보기 드문 법회를 열어 선풍을 진작하고자 애썼다.

 

 


사진3. 『백일법문』을 강의중인 은암당 고우 대종사. 

 

 

2002년 각화사 태백선원 선원장을 맡아 결제 대중이 15개월 15시간 가행정진결사를 하도록 이끌었다. 각화사 서암에 머무시며 선을 묻는 이가 찾아오면 성철스님의 중도의 가르침으로 불자들을 제접하였다. 2006년 봉화 금봉암을 창건하여 주석하며 제방에서 선禪 법문 청이 오면 원근을 가리지 않고 갔다.

 

조계종 중앙신도회 부설 불교인재원 증명법사로 간화선 입문 프로그램에서 화두법문을 하면서 늘 “성철스님의 『백일법문』이 불교교리서로는 세계 최고의 책이니 특히 앞부분의 「근본불교」편에서 부처님 깨달음이 ‘중도연기’라는 것을 이해할 때까지 반복해서 읽어 완전히 이해하면 정견이 서서 생사의 괴로움에서 영원한 행복으로 갈 수 있다.”라고 했다. 이렇게 하여 화두와 법명을 준 재가 수행자가 1천여 명이 넘었다. 2012년 조계사 선림원 증명법사에 추대되어 불교인재원과 더불어 서울 도심에서 재가자들에게 중도 정견과 화두 참선을 안내하는 데 힘쓰셨다. 특히 『백일법문』 대강좌에는 수백 석 강의장이 꽉 차서 더 들어갈 수가 없었다.

2021년 8월 29일 홀연히 본래 자리로 돌아가시니 법납 60년, 세수 85세이다.

 

한국 불교의 유구한 전통인 화두 참선의 진작을 위해 한평생을 바치신 고우 대종사의 행장을 이렇게 간략하게 정리하고 나니, 대종사님을 더 가까이에서 친근하게 모시지 못한 것이 애통할 따름입니다. 늦게나마 참회하는 마음으로 스님의 영전에 추모의 마음을 올립니다. 

지금 백련암 뜨락엔 가을날 아침 햇살이 고요히 퍼지고 있습니다. “원택스님, 나는 돈오점수주의자요.” 하시며 눈을 부릅뜨시던 봉암사 적명 대종사와 “성철스님이 주창하신 중도의 돈오돈수가 참 진리요.” 하시던 자애로운 금봉암의 고우 대종사, 두 선배님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홀연히 떠나신 선배님들의 거룩한 모습이 가슴에 찡하게 새겨집니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원택스님님의 모든글 보기

많이 본 뉴스

추천 0 비추천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우) 03150 서울 종로구 삼봉로 81, 두산위브파빌리온 931호

발행인 겸 편집인 : 벽해원택발행처: 성철사상연구원

편집자문위원 : 원해, 원행, 원영, 원소, 원천, 원당 스님 편집장 : 조병활

편집부 : 02-2198-5100, 영업부 : 02-2198-5375FAX : 050-5116-5374

이메일 : whitelotus100@daum.net

Copyright © 2020 월간고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