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소리]
체로금풍의 계절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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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21 년 12 월 [통권 제104호] / / 작성일21-12-03 09:07 / 조회5,813회 / 댓글0건본문
소소히 낙엽이 지고 나무의 본래 면목이 드러나는 체로금풍體露金風의 계절입니다. 가야산을 붉게 물들이던 단풍이 낙엽으로 지는 동안 소납은 어느 때보다 분주하고 뜻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난 10월 21~25일은 성철 대종사 열반 28주기 추모 참회법회 기간이었습니다. 지난 호에 “대종사 법계 품서식을 앞두고”라는 글에서 저간의 심정을 적었는데, 품서 당일인 10월 21일 은 성철 전 종정 예하의 열반 28주기 추모 입재일과 겹치게 되었습니다. 품서식은 동화사 통일대불전 큰법당에서 진행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법당이 아닌 통일대불전 앞마당에서 진행되고, 대종사 당사자와 시자 한 명만 입장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백련암 신도님들은 모두 기도에 동참하고, 상좌 3~4명과 함께 동화사에서 열리는 대종사 법계 품서식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소납이 대종사 법계를 품서 받은 뒤에도 조계종 원로회의에서 두 차례나 더 대종사 품서 의결이 있어서 비구 스님은 모두 66명, 비구니 스님은 명사 15명이 품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품서식 날은 식이 끝나고 사진 찍기가 바쁠 뿐이었지 모인 대중이 없어서 행사는 간단히 끝이 났습니다.
성철 전 종정 예하의 추모법회 3일째 되는 날은 해인사 운양대 사리탑 전에서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3천배를 올리는 날인데, 토요일이라 300여 명이 모여 지성껏 3천배를 올렸습니다. 아침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에 입재식을 올리는데, 그에 앞서 소납의 대종사 품서를 은사이신 성철 큰스님께 알리는 고유문을 올리고 품서를 축하하는 간략한 의식을 가졌습니다. 사리탑을 둘러싸고 있는 직경 1m 20cm의 원둘레 주변을 견성성불을 서원하면서 한 바퀴 도니, 그 자리에 모인 불자들의 박수 소리가 가야산에 울려 퍼졌습니다. 10월 25일 10시 30분부터는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열반 28주기 추모식을 엄숙히 올렸습니다.
사진 1. 동안거 입재를 앞두고 백련암도 가을의 깊이를 더해 가고 있다.(사진 현봉 박우현 거사)
10월 28일, 금강굴에 주석하고 계시는 불필스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삼성의 홍라희 여사님과 이재용 부회장이 해인사 방장 큰스님과 주지스님을 친견하러 오신다고 합니다. 점심은 금강굴에서 드시고 간다 하니, 원택스님이 기회를 봐서 산중 어른 스님들에게 알려드리고, 주지스님께는 이재용 부회장이 해인사를 난생처음 참배하는 만큼 팔만대장경 판전 내부를 꼭 참배할 수 있도록 선처를 바란다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31일에 어른 스님께 전화로 말씀드리고 주지스님께 물었습니다.
“보통 VIP들께서 해인사를 예방하면 어떤 형식으로 모십니까?”
“일주문에서 하차하여 사천왕문을 지나 계단 길을 걸어서 해인사 좌우의 고건물들을 살펴보며 법당에 이르러 삼배를 드리고 방장실로 안내합니다.” 그렇게 해서 11월 1일 소납이 두 분을 모시고 큰 절로 가게 되었습니다.
12시쯤 금강굴로 가니 두 분께서 좀 늦게 금강굴에 도착해서 점심 공양이 아직 끝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한 15분이 지체되어 출발하게 되었는데 “해인사 관례가 귀인들이 오시면 일주문에서부터 해인사 1200년 역사를 체험 하실 겸해서 걸어서 대적광전까지 오르셔야 합니다. 홍 여사님께서 불편 하시면 따로 모시도록 준비되어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리니, “아닙니다. 제 건강 좋습니다. 부회장과 같이 걸어서 오르겠습니다.”라고 선선히 대답하셨습니다. 예로부터 해인사는 계단이 많아 노인들이 살기 불편하다는 정평이 나 있습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를 때마다 홍 여사가 이재용 부회장의 손을 꼭 잡고 오르는 모습이 그때 해인사를 참배하러 왔던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게 정답게 보였나 봅니다.
홍 여사께서 지치지도 않고 무사히 법당에 드셔서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불전에 향을 사르고 정중히 삼배를 올리셨습니다. 그리고 법당을 나서니 해인사 참배를 온 신도님들 20여 명이 홍 여사와 이재용 부회장을 알아보고 아는 체를 하며 합장하며 인사했습니다. 홍 여사도 합장하여 그분들에게 허리 굽혀 정중히 절하니, 모두들 반갑게 합장하고 예를 올렸습니다. 그 모습이 무척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이 부회장을 보고는 “많이 야위었네.” 하며 안타까워들 하셨습니다.
방장 원각 대종사님과 현응 주지스님에게 두 분이 삼배를 올리고 앉으시니,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두 큰스님이 초면이지만 홍 여사는 안면이 있으셨나 봅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40여 분간 말씀들을 나누시고 주지 스님이 앞장서 팔만대장경 판전으로 향했습니다. 수다라전을 지나 법보전 안으로 들어가니 국장 일한스님이 안내를 맡아 법보전 전체를 소개하여 그곳에서 30여 분간 머물렀습니다.
홍 여사는 “옛날에도 팔만대장경 판전을 소개받았는데, 오늘 와서 이렇게 넓고 크고 수많은 대장경판을 뵈니 옛날의 판전 구경은 입구에 그치고 말았던 것입니다.”하며 매우 흔연해 하셨습니다.
판전을 둘러보고 나오니 여러 참배객들 중에 할아버지 한 분이 홍 여사에게 다가와 “우리 할망구가 꼭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데 허락하시겠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홍 여사가 흔쾌히 허락하여 이 부회장도 함께 사진을 찍게 되었습니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5,60대의 관광객 몇 팀도 덩달아 사진을 찍으며 좋아했습니다.
경호원도 없이 모자가 다니니 그렇게 자유로운 분위기가 생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친화력을 보여주시는 홍 여사가 무척 고마웠습니다. 끝으로 성철 큰스님 사리탑 친견으로 해인사 참배 여정을 마쳤습니다. 지난 역사를 말씀드리면, 큰스님 사리탑 불사에 이건희 회장님과 홍라희 관장님께서 26년 전에 큰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그 고마움을 소납이나 불필스님이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재용 부회장을 해인사에서는 처음 만났지만 2018년 9월 평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저도 특별수행원 신분으로 동행하게 되어 서울 비행장에서 인사를 나눈 일이 있습니다. 11월 1일은 이렇게 바쁘고 뜻깊게 보낸 하루가 되었습니다.
11월 6일은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 소재 겁외사에서 사면불 조성불사 회향식이 있었습니다. 겁외사를 나와 길을 건너면 직경 10여 미터 넓이의 잔디밭 로터리를 지나서 성철스님기념관에 이르게 됩니다.
세월을 보내면서 이 빈 로터리에 무슨 불교 조형물을 설치하면 겁외사와 성철스님기념관을 잇는 완벽한 공간이 탄생할까 하는 화두를 들고 세월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석조 사면불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8세기 이후 통일신라 시기를 맞이하면서 신라의 국운이 4방으로 뻗치길 기원하고, 약사여래불 신앙의 발달로 동쪽에 약사여래불, 남쪽에 미륵불, 서쪽에 아미타불, 북쪽에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형태로 사면불 불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사진 3. 성철 대종사 사리탑 전에서 열반 28주기 추모 3천배를 하기 전에 가진 고유식을 마 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신도들이 대종사 법계 품서를 축하하며 화환을 선사했는데, 난생처음 목에 걸어본 화환의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 국운 융성을 위해 전국 곳곳에 사면불을 세웠듯이 소납도 겁외사 로터리에 오늘의 사면불을 모셔서 국운 융성과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것이 성철 큰스 님의 서원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재근 산청군수로부터 겁외사 로터리 사업예산안이 책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높이 6.1m의 사면불을 모시고 점안식을 봉행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기쁜 일이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1989년 종교인연합회의 청으로 ‘통일을 바라며’라는 제목으로 헌시를 내리신 일이 있습니다. 저는 이 헌시를 비에 새겨 사면불 옆에 세움으로써, 우리나라의 국운 융성과 남북의 자유 왕래, 남과 북의 평화로운 통일과 불법이 널리 홍포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10월 20일에서 11월 6일까지 일어난 일을 돌이켜보니, 한편 가슴 벅차고, 한편 반가운 분들을 해인사에서 맞이할 수 있었고, 한편 겁외사에 성철 큰스님을 모시는 성지聖地를 완성하였다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이 모든 불사가 원만히 회향될 수 있도록 신심을 모아주신 관계자 여러분과 신도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올 한 해를 잘 마무리하시고 더 기쁜 날들을 맞이하시길 부처님 전에 두 손 모으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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