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근대 실천불교의 이론가·개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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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 2022 년 1 월 [통권 제105호] / / 작성일22-01-05 09:15 / 조회4,550회 / 댓글0건본문
근대중국의 불교학자들 13 | 담사동譚嗣同 1866-1898 ③
『논어』의 삶에 대한 불교식 재해석
『논어』에 보면 자신의 인생을 나이별로 한마디로 요약한 이야기가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공자의 이 인생 이야기에 공감하고 자신의 삶을 비추어 보는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담사동은 『인학』에서 이를 불교식으로 재해석하였다. 『인학』은 유학과 불교를 포함한 모든 전통사상을 융합하여 새로운 철학을 열고자 했던 실천불교의 이론가, 개혁가인 담사동의 대표 저서로, 중국 근현대사상사의 기념비적인 저작이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고(지학志學), 서른 살에 홀로 섰고(이립而立), 마흔 살에는 헷갈리지 않았다(불혹不惑). 쉰 살에는 하늘의 뜻을 알았고(지천명知天命), 예순 살에는 귀에 거슬리는 일이 없었으며(이순耳順), 일흔 살에는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를 넘는 일이 없었다(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논어』 위정편)
우선 공자는 초발심 때 이미 깨달음의 단계까지 갔기 때문에 공부하는 차례를 따로 둘 필요는 없지만, 설법의 서술이라는 점에서 구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는 것은 뜻을 성실히 하였다는 것이고, 서른 살에 홀로 섰다는 것은 그 뜻이 어지럽지 않게 하나로 전일하였다는 것, 마흔 살에 헷갈리지 않았다는 것은 ‘묘관찰지’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쉰 살에 천명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자아에 대한 집착, 아집은 단멸되었지만 그래도 법집은 아직 끊어지지 않은 단계이다. 육십 세에 진리가 귀에 순순히 들렸다는 것은 아집과 법집이 완전히 단멸한 진여의 상태인 ‘평등성지’를 이룬 것이다. 일흔 살에 마음대로 해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는 것은 큰 거울에 사물의 형상이 그대로 비치는 것처럼,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표현해 내는 단계인 ‘대원경지’로 전환된 것이다. 아라야식이 남김없이 지혜의 경지로 전환한 것이다. 공자가 요약해 말한 삶의 성장 과정은 아집과 법집이 사라져서 깨달음에 도달하는 불교의 과정으로 재해석하여 설명하였다.
유식불교에서 ‘식을 전환하여 지혜를 이룬다’[전식성지轉識成智]는 과정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일어난다고 한 것을 담사동은 받아들였고, 유식 불교와 유학의 심성론을 연결시켜 설명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지혜를 이루기 위한 수행의 과정이 유학의 『대학』 공부 순서와 합치한다고 보았다.
『대학』 ‘8조목’에 대한 화엄불교적 해석
담사동은 『대학』의 8조목을 화엄불교의 사법계 이론을 활용하여 설명하였다. 『대학』은 유학의 주요한 경전 중 하나로, 학문의 목적을 실현하는 정치적·사회적 방법론을 제시한 것으로 대단히 중요한 책이다. 이 중 다음 부분이 핵심이다.
옛날 자기의 밝은 덕을 온 세상에 밝히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렸다(치국治國).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였다(제가齊家). 그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려는 사람은 먼저 그 자신을 수행하였다(수신修身). 그 자신을 수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였다(정심正心).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기 뜻을 정성스럽게 하였다(성의誠意).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기의 앎을 이르게 하였다(치지致知). 앎에 이르는 것은 격물格物에 있다. (『대학』 제1장)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사고방식이다. 정치를 하거나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자기 자신을 수행하고 집안도 질서를 잘 잡은 후에 정치를 하라는 권고가 이어지곤 하는데, 바로 이것이 『대학』의 위의 방법에 근거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 담사동은 『대학』을 화엄불교 이론을 활용하여 해석하였다. 화엄불교의 ‘사법계四法界’와 전적으로 합치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격물은 ‘사법계事法界’이고, 치지는 ‘이법계理法界’이다. 성의, 정심, 수신은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이고, 제가, 치국, 평천하는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라고 주장하였다.
화엄불교에서 말하는 ‘사법계四法界’는 화엄불교의 우주관으로서, 전 우주가 한마음[一心]으로 통일되어 있고, 이것을 현상과 본체의 입장에서 보면 네 층위의 세계로 구별될 수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이 중 ‘사법계事法界’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상 세계, 모든 차별된 세계를 가리킨다. 우주의 사물들은 모두 인연에서 생겨났으므로 각각 구별되고 한계를 지니지만, 세속에서 인식하는 특징은 공통성이 없기 때문에 사물의 차별성만을 인식의 대상으로 삼게 된다.
사법계는 사물의 차별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대학』의 ‘격물格物’, 즉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것과 상통할 수 있는 개념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법계理法界’는 이치의 세계, 우주의 평등한 본체세계를 가리킨다. 불교에서 우주의 본체는 진여이고 평등하고 무차별하다. 이법계는 개체와 개체의 동일성, 공통성을 본 것이므로 모든 사물에 편재해 있는 이理의 보편성과 연계해 생각할 수 있고, 『대학』의 ‘치지’, 이치에 도달하는 것에 해당된다. ‘이 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는 화엄불교에서 현상과 본체가 서로 떨어진 관계가 아니고 하나의 걸림없는 상호 관계 속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사건과 원리가 완전 자재하고 융섭하는 경지이다. 그러나 지혜의 최고 인식 단계는 아직 아니다.
『대학』의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은 현상계에 인仁을 실현하기 위해 내면의 마음을 수양하는 단계에 해당한다.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는 개체와 개체가 자유롭게 융섭하고, 현상계 그 자체가 바로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라는 의미이다. 현상계의 모든 존재자들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하나가 되어 원융무애한 무진연기를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화엄불교의 법계연기이다. 이는 『대학』의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는데, 유학에서 인仁을 실현하는 궁극적 단계가 바로 여기에 속하기 때문이다. 현상계의 사물 하나하나가 진리 그 자체라는 깨달음의 단계이다.
담사동은 유식불교, 화엄불교와 『대학』의 다양한 개념을 활용하여 서로 배대시킴으로써, “(유학의) 육경六經은 불경佛經과 합치하지 않는 곳이 없고 불경을 도외시할 수도 없다.”는 인식에 도달하였다. 이것은 유학적 사유와 불교적 사유의 합치의 경지이다. 담사동은 그를 통해 당시 중국 사회가 필요로 했던 ‘근대성’, 즉 변법을 통한 ‘반反봉건, 반反외세’의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하고자 하였다.
담사동의 주저 『인학仁學』은 정치적으로는 민주제도의 정립, 경제적으로는 국제 경쟁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확립, 윤리적으로는 삼강오륜이라는 봉건 윤리의 폐기와 남녀평등, 만민평등을 주장하는 저작이다. 담사동은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공자교孔子敎’라고 주장하였고, 따라서 자신의 저작을 『인학』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한편 인仁을 유삼唯心이자 유식唯識이라 하여 불교적으로 해석하였다.
양계초와 당시 근대사상가들은 담사동의 이론이 “복잡하고 유치하다”라고 폄하하였다. 그러나 왕국유는 『인학』을 평가하며 독자의 흥취는 유치한 형이상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정치상의 견해에 있다고 말하였다. 에테르라는 서양과학 이론까지 받아들여서 전통철학인 유학과 불교를 결합하여 서양철학에 대응하는 근대의 새로운 철학을 시도한 담사동 사상이 얼마나 학문적 엄밀성과 정합성을 띠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상이 궁극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정치적, 사회적 목표가 무엇인가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말이다.
장태염 역시 담사동의 사상에 학문적 엄밀성이 부족하다는 데 불만을 가지고 수정하려 하였다. 그러나 담사동 철학은 ‘심식心識’에의 길을 열고 근대를 준비하려 한 방향성 자체가 중요한 것이고, 이러한 시도가 장태염 철학을 거쳐 웅십력의 『신유식론新唯識論』에까지 도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담사동과 그 이후 현대신유학, 또는 현대신불교가 대부분이 유학과 불교, 특히 유식불교와의 결합의 형태를 취하였던 것이다. 담사동의 『인학』은 중국 근현대 사상사에서 새로운 근현대철학이라는 제3의 길의 방향을 잡은 불후의 명작이자, 실천불교의 중요한 이론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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