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장자 철학에 대한 유식적 해석과 불교적 평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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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 2022 년 3 월 [통권 제107호] / / 작성일22-03-04 09:30 / 조회4,864회 / 댓글0건본문
근대중국의 불교학자들 15 | 장병린의 근대적 자유·평등관 ②
장태염은 도가의 대표적 고전인 『장자』의 「제물론」편에 주석을 붙여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해석을 시도하였다. 이것이 그의 대표적 주저인 『제물론석齊物論釋』이다. 여기에서 그는 ‘제물’의 뜻을 평등의 담론이라고 명확하게 규정하였다. 그것도 단순히 중생을 평등하게 보고 우열이 없다고 보는 것뿐만 아니라, “언설상을 떠나고 명자상을 떠나고 심연상을 떠난 것이 평등이다.”라고 불교적으로 해석하였다.
‘제물齊物’, 장태염의 이중적 평등관
장태염의 이러한 해석은 과거 철학자들의 해석과 차이가 있다. 만물이 ‘스스로 그러함[自然]’을 제시하거나 논의의 동등한 가치를 주장하는 것과 달리, 그의 제물 개념은 서양의 근대적 평등 개념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자 「소요유」편은 자유이고, 「제물론」편은 평등이다.”라는 말에서 장태염이 자유·평등의 근대적 가치를 주장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장태염의 제물 개념은 단순히 서양근대의 사회적·정치적 평등 개념을 포괄할 뿐 아니라 불교적 의미의 평등 개념으로서 사회·정치 그 이상의 차원을 지향하는 것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제물의 실질적인 의미가 단순히 중생, 즉 만인을 동등하게 보고 우열이 없다고 보는 ‘만인의 평등’에 그치지 않고, 『대승기신론』에 의거해 언설상, 명자상, 심연상을 떠난 ‘궁극적 평등’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태염의 ‘제물’ 개념은 서구적 의미의 사회적 평등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포괄하면서 불교의 궁극적 평등을 제시한 점에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한 장태염이 『대승기신론』을 인용하며 제물 개념을 해석한 것은 당시의 사상적 배경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그가 유식불교를 중시하되 그 설명 방식이 구양경무나 내학원 학자들과 달리 『기신론』 적 사유 방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진여의 차원에서는 “일체의 법이 모두 참이고”, “일체의 법이 모두 똑같다.” 이러한 입장은 『기신론』의 진여연기의 입장에 근거한 평등관이다. 적극적인 사회주의의 제도적 변혁이나 소극적인 평화주의만으로는 진정한 평등인 제물의 차원에 이룰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내성외왕內聖外王의 도: 서양 제국주의 비판
그러나 장태염이 서구 근대의 사회적 평등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제물론」의 취지가 ‘내성외왕內聖外王의 도’에 있다고 본다. 내성외왕은 안으로는 도덕적·인격적으로 완성된 성인聖人이 되어 밖으로 사회적·정치적 실천인 왕도정치를 행한다는 유학의 전형적인 정치방법론이다.
그런데 『장자』는 유학과 정반대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도가 철학의 책인데, 장태염은 왜 이를 굳이 내성외왕의 도로 평가하였을까? 그것은 첫째 장태염이 ‘내성內聖’의 측면에서 유식唯識·유심唯心의 불교적 해석을 했다는 것이고, 둘째 ‘외왕外王’의 측면에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정치술을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유식불교를 통하여 유식의 이치를 깨달아 “인人과 법法을 끊어 없애고” “견상見相을 공으로 하게 되면,” “감정에 피차가 없고 지혜에 시비가 없어” 자연히 명가, 즉 예禮의 분별적 계급 질서를 부정하게 된다. 그것이 진정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길이라고 본 것이다.
장태염의 「제물론」에 대한 유식불교적 해석은 명상의 부정을 통해 자아 관념을 부정하여 근원적 평등 개념을 제시하려는 일차적 목표를 가지지만, 그와 동시에 봉건주의 예제를 부정하려는 사회 변혁적 성격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장태염이 장자를 불교적으로 해석하여 사회 변혁, 혁명을 추구하고자 한 것이다.
“결국 세속법에는 차이가 있고, 세속에는 문명과 야만이 있다. 야만은 스스로 그 누추함을 편안히 여기고, 문명은 우아한 것에 뜻을 둔다. 둘이 서로를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평등이다.”는 논의가 이러한 입장에서 가능해진다. 장태염이 보기에 문명과 야만에는 문화의 우열론이 없고 인간의 생활 습속의 차이가 나란하지 않은[不齊] 그대로 병존하는 것이 『제물론석』에서 말하는 ‘평등’ 개념의 본지이다.
그는 근대 서양 제국주의와 같이 문명의 이름으로 야만을 구제한다는 것은 실은 인간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는 불합리한 상황을 합리화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던 것이다. 장태염은 성인과 지혜, 문화를 숭상하는 것은 오히려 큰 도둑을 돕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성인과 지혜, 문화를 숭상하지 않고 세속법의 차이를 인정하고 문명과 야만의 동등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장자가 말하는 제물, 참된 의미의 평등이라고 본다. 문명의 이름으로 야만을 무시하는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장태염이 ‘제물’ 개념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상아喪我’, 자아의 극복과 혁명의 도덕
『장자』 「제물론」 첫머리에 남곽자기라는 인물이 제자에게 “나는 나를 잊었다[吾喪我].”라고 말하는 구절이 나온다.
남곽자기가 팔뚝을 안석에 기대고 앉아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길게 한숨을 쉬는데, 멍하니 몸이 해체된 듯이 자기 짝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안성 자유가 앞에서 모시고 서 있다가 말했다. “어쩐 일이십니까? 육체는 진실로 시든 나무와 같아질 수 있으며, 마음은 진실로 불 꺼진 재와 같아질 수 있는 것입니까? 지금 안석에 기대고 계신 모습은 이전에 책상에 기대 계시던 모습이 아니십니다.”
남곽자기가 대답했다. “언아, 너의 질문이 참으로 훌륭하구나. 지금 나[吾]는 나[我]를 잃었다. 너는 그것을 알고 있는가! 너는 ‘인뢰人籟(사람의 음악 소리)’는 들었어도 아직 ‘지뢰地籟(대지의 음악 소리)’는 듣지 못했을 것이며, 지뢰는 들었어도 아직 ‘천뢰天籟(하늘의 음악 소리)’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자유가 말했다. “‘지뢰’는 땅 위 온갖 구멍에서 나오는 소리이고, ‘인뢰’는 대나무 피리에서 나오는 소리입니다. 그렇다면 ‘천뢰’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남곽자기가 대답하였다. “온갖 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는 각각 다르기는 하지만 스스로 소리를 내는 것이다. 모두 스스로 내는 소리인데, 화를 내는 사람이 누구인가?” (『莊子』,「齊物論」)
장자는 그 경지를 육신은 마른 나무와 같고 마음은 꺼진 재와 같은 상태라고 구체적으로 표현하였다. ‘오吾’와 ‘아我’를 구분하여 참된 나인 ‘진아眞我’가 자기를 상실함으로써 만물일체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이 이 부분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이다. 장자의 인간 이해는 일반적으로 이 ‘상아喪我’와 ‘진인眞人’이라는 두 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장자 철학의 개념이 불교의 ‘무아無我’, ‘진아眞我’ 개념과 대단히 유사하다.
장태염은 현상세계의 존재들이 명칭과 형체를 가진다고 보는 근거가 ‘개체 자아[人我]’와 ‘개별 대상[法我]’이 실재한다고 보는 세계관에 의한 것이라고 파악하였다. 그는 「제물론」을 유식불교적으로 해석하여 자아와 대상이 실재한다는 세계관을 타파하고, 개체 자아와 개별 대상을 일심一心에 합치 시키겠다는 의도를 가졌다. 결국 현상세계의 존재들을 일심에 합치시킴으로써, ‘제물’, 근원적인 평등의 경지에 도달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사진 4】
장태염은 앞의 ‘삼뢰三籟’를 유식불교적으로 해석하였다. 지뢰에서 시작하는 바람소리를 우리 마음의 온갖 분별에 비유하고, 만 가지 구멍에서 포효하는 서로 다른 소리를 세계의 소리들이 각각 다른 것에 비유하였다. 집에서 키우는 닭이나 야생의 까치도 각각 다른 음을 내서 자기의 뜻을 펼친다는 것이다. 천뢰는 아라야식 중의 ‘종자種子’에 비유하는데, 후대에는 혹 원형관념이라고도 부른다.
이것은 단지 이름이나 언어일 뿐 아니라 형상의 본질이므로, 다양하게 불어오지만 서로 전적으로 다르다. 이것은 장태염과 전통적인 다른 주석가들과 해석의 차이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구절이다. 그는 ‘제물’이 명칭[名]과 형상[相]을 유일심唯一心에 모으는 심식론을 의미한다고 해석하였다. 지뢰에 의해 일어나는 바람은 우리 마음의 분별지이고, 천뢰는 유식불교에서 아라야식에 저장되어 있는 종자이다. 그런데 지뢰를 명칭과 언어의 다양성으로 보지 않고 여러 가지를 스스로 취하는 것은 제6 자아의식이 천뢰라는 아라야식에 집착하여 자아를 세우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처럼 장태염은 장자 철학을 유식불교적으로 해석하여 자아와 대상이 실재한다는 세계관을 타파하고, ‘제물’, 근원적인 평등의 경지에 도달 해야한다고 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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