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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禪, 禪과 시] 꽃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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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  2022 년 5 월 [통권 제109호]  /     /  작성일22-05-04 10:37  /   조회82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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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행무상諸行無常과 염화미소拈花微笑 

 

친구들과 함께 와룡산 용미봉으로 벚꽃, 진달래꽃을 보러 갑니다. 올해는 예년보다 꽃이 늦게 피어서 아마도 벚꽃은 보기 힘들지 싶습니다. 계성고등학교 옆으로 올라가다가 첫 번째 갈림길에서 우회전합니다. 와룡산 3부 기슭을 가로지르는 길입니다. 한참 걷다가 정자 쉼터에서 휴식한 다음 용미봉 정상을 향해 곧장 가파른 비탈로 올라갑니다.

 

와룡산의 동쪽 사면 3부 기슭은 호젓합니다. 봄날이라 하지만 아직은 잎이 돋지 않아 그늘이 없어 따뜻한 길입니다. 산은 커튼을 열고 그 안쪽 풍경을 보여줍니다. 잎사귀도 없이 마른 나뭇가지뿐이지만 오히려 정신적 풍요를 느끼게 해 줍니다. 

 

봄날은 간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용미봉 정상 부근에 있는 벚꽃터널에 도착합니다. 작년 이맘때는 벚꽃이 만발했는데 올해는 아직 피지않았습니다. 이곳은 해발 220m 정도에 불과하지만 길이 가팔라 천천히 올라왔습니다. 벚꽃은 활짝 피었을 때도 아름답고, 질 때도 아름답지만, 막 피려 할 때도 아름답습니다. 

 

사진 1. 와룡산 기슭의 봄날. 

 

용미봉 아래 진달래 군락지입니다. 꽃피는 기쁨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마 살아가기 힘들지 않을까요. 꽃과 숲과 강과 산 그리고 하늘이 겹겹이 겹친 이 풍경은 절경입니다. 이 풍경 하나를 보려고 봄날이 가기 전에 와룡산 용미봉에 오른 것입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주1)

 

기억이 맞는다면 나는 이 노래를 K중학교 합격생 예비소집 날 처음 들었습니다. 노래를 부른 사람은 당시 사회를 보던 교무주임 이길우 선생님(수학)입니다. 선생님 애창곡이 바로 「봄날은 간다」였고, 떨리던 그 음색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사진 2. 아아, 활짝 핀 진달래꽃이여.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대목에서 가슴에 뭉클한 울림이 남았습니다. 그 울림은 지금도 내 가슴속에서 그 부분을 읊조릴 때면 되살아납니다. 마음을 뒤흔드는 말 한 마디는 언제 들어도 새롭습니다.

 

전쟁 중에 삶의 터전은 파괴되어 잿더미만 남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죽거나 헤어졌습니다. 당시의 시대정신이 제행무상을 노래하는 「봄날은 간다」를 낳았습니다. 이 노래의 정서는 당대의 보편적인 심리상태였으니 한 시대의 문화적 상황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이 웃고 같이 울던’ 사람이 있기 때문에 슬픈 곡조는 어느 정도 완화됩니다. 혼자서는 느낄 수 없지만, 연대를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어떤 감정이 있습니다. 심금을 울리는 무언가를 함께 나눈다는 감각,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

 

전쟁을 통하여 인생의 덧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그에 걸맞은 통찰력이 있는 노래를 부르며 세월마저 덧없이 지나가게 합니다. 이러한 태연함 속에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애틋한 정감을 삭여냈던 것입니다.

꽃을 보면서 제행무상을 노래하는 수백수천의 시가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꽃이 피는 것을 애타게 기다리고 꽃이 지는 것을 애통해하며 거듭거듭 제행무상을 노래했습니다. 당나라의 방랑시인 우무릉(810~?)의 시 「권주勸酒」입니다.

 

금빛 빛나는 잔에 술 한 잔 권하노니

철철 넘치는 이 잔, 그대는 사양 말고 받으시게

꽃이 피면 으레 비바람이 많으니

인생이란 원래 이별이 가득 차 있다네.(주2)

 

화발다풍우花發多風雨 인생족별리人生足別離!

이 시의 마지막 10글자는 제행무상을 노래하며 1,200년 동안 읽는 사람의 가슴을 뒤흔들었습니다. 슬픔은 인간이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감정 중 하나입니다. 이런 정감은 단지 ‘아름다운 지금의 모습’을 바라보는 데에서 오는 감정보다도 더 깊고 섬세한 감정입니다.

 


사진 3. ‘같이 웃고, 같이 울던’ 친구들. 

 

삶의 한가운데에서 ‘삶이란 덧없는 꿈’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얼마나 아련한 슬픔일까요. 한갓 꿈같은 인생길에서도 활짝 핀 꽃을 보는 것은 즐겁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슬픔의 세계와도 만나는 것입니다. 정취는 자연에서 얻는 것이 깊고 학문에서 얻는 것은 얕다(주3)고 했는데 과연 그러하지 않습니까. 

 

염화미소拈花微笑

 

꽃에 대해서는 아무리 말해도 남김없이 다 말했다 싶은 경지에 이르지 못합니다. 어떤 이야기보다 더 영적이고 철학적 의미가 담긴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겠습니다. 꽃에 대한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이야기는 천 년 전 중국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세존은 옛날 영취산의 집회에서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셨다. 그때,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오직 가섭존자 한 사람만이 얼굴의 긴장을 풀고 활짝 미소 지었다.

세존은 말하였다. “나에게 정법안장, 열반묘심, 실상무상이라는 미묘한 법문이 있다. 불립문자, 교외별전이라는 방편으로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노라.”(주4)

 


사진 4. 와룡산 아래로 흘러가는 금호강. 

 

석가모니가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여주었는데 아무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가섭만이 파안미소破顔微笑, 즉 얼굴을 ‘깨뜨리며’ 미소지었습니다. 보이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설명도 없고 아무런 신호도 없습니다.

 

가섭의 ‘파안미소’는 행복의 징후였을까요, 신비 체험의 표현이었을까요. 가섭의 체험은 인간의 헐렁한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불립문자不立文字’란 말이나 글에 의지하지 않고 곧장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 보면 부처가 된다는 것입니다. 선종은 이렇게 ‘파안미소’ 속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 설화는 믿기 어렵습니다. 불교 역시 제자들이 모여 문자로 기록했기 때문에 전해지는 것입니다. 가섭은 마음으로 무슨 요체를 전해 받은 것이 아니라 불경 편찬의 발기인이었습니다.(주5) 뿐만 아니라 이 이야기는 대장경에는 나오지 않고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이라는 경전에 처음 등장합니다.(주6) 이 경은 위서僞書입니다.

 

한편의 아름다운 드라마와 같은 ‘염화미소拈花微笑’는 이처럼 11세기에 송나라에서 만들어진 설화입니다. 송대에 이르러 선가禪家에서는 언어의 한계를 깨달은 것입니다. 선승들의 생생한 깨달음과 그 과정을 인류의 허술한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뒷받침할 위경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하나의 종교나 종파가 시종일관한 논리의 배열에 도달하려면, 일반 관념들에 토대를 둔 언어를 개발함으로써 그런 관념을 다룰 수 있어야 하고, 또 그것을 정의하는 문헌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주7)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세계 위에 또 하나의 차원으로서 언어세계가 겹쳐져 있고, 우리들 인간은 현실 그 자체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언어라는 필터를 거쳐서 ‘언어에 의해 구축된 현실’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존재의 해탈이라고 하는 것은 언어의 부정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러한 언어의 부정을 ‘불립문자’라고 한 것입니다.

 

‘불립문자’, 이게 과연 가능한 걸까요? 우리의 감각 경험 이면에 자리 잡은 이야기와 배경지식을 모두 들어내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요? 가능하다면 언어가 없는 인간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진달래꽃을 바라보는 우리들 마음속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끝없이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범부의 경계는 이처럼 언어의 재잘거림 속에서 정신이 방황하기 때문에 진정으로 현재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모처럼 자신을 벗어나 보는 하루

 

영산홍 군락지까지 내려갔지만 영산홍은 아직 피지 않았습니다. 발아래 금호강은 팔달교, 매천대교, 금호대교를 걸치고 유유히 흘러갑니다. 버드나무의 연두색은 우리들 내부에서 움트고 그 뒤로 반투명의 산맥이 있습니다. 하늘의 높이와 대지의 숨결 같은 것은 사람이 감히 잴 수 없는 것들입니다.  

 

사진 5. 와룡산의 호젓한 산길.

  

돌아오는 길, 호젓한 산길, 우리는 꽃을 보고 나무를 보고 흙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타박타박 걸을 때면 우리가 곧 죽을 사람은 아니로구나 생각합니다. 가끔은 한물간 노인이 아니라 한창때라는 착각마저 일어납니다. 안경, 임플란트, 각종 보조장치와 더불어 갖가지 알약의 도움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푹 빠져서 자잘한 근심거리에 매여 있다가 모처럼 자신을 벗어나 보는 하루입니다.

 

 

<각주>

(주1) 「봄날은 간다」, 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백설희 노래, 1953.

(주2) 『唐詩選』 巻6, 于武陵, 勸酒, “勸君金屈卮 滿酌不須辭 花發多風雨 人生足別離.”

(주3) 袁宏道, 『袁中郞全集』, 卷一

(주4) 『無門關』, 1228 : (第六則 世尊拈花) 世尊, 昔在靈山會上, 拈花示衆, 是時衆皆黙然, 惟迦葉尊者, 

破顔微笑 世尊云, “吾有正法眼藏, 涅槃妙心, 實相無相, 微妙法門, 不立文字, 敎外別傳, 咐囑摩訶迦葉.”

(주5)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석가모니가 열반한 해에 가섭이 아난타 등 500명을 소집해 최초의 불전 결집을 주도했다고 한다.

(주6) 『가려 뽑은 송나라 선종3부록 권2』 (감역 벽해 원택, 장경각, 2019)에 실린 『人天寶鑑』(1230), 51 왕안석의 해박한 불교지식 조에 보면 ‘세존의 염화시중’ 출전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주7)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종교란 무엇인가』,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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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1976년 시). 전 대구시인협회 회장. 대구대학교 사범대 겸임교수, 전 영신중학교 교장.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저서로 『보물찾기』(시와시학사, 2000), 『납작바위』(시와반시사, 2012), 『글쓰기 노트』(집현전, 2018) 등이 있다.
jtsu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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