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
봉정암 참회기도와 성철스님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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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승 / 2022 년 5 월 [통권 제109호] / / 작성일22-05-04 11:25 / 조회4,877회 / 댓글0건본문
은암당 고우스님의 수행 이야기⑦
고우스님은 30대 초에 문경 운달산 금선대에서 서암스님을 만나 선지식으로 모시며 평생 동행했다. 결제 때는 묘관음사 선원으로 가서 향곡스님께 법문을 들으며 대중 생활을 하며 정진하고, 해제 때면 문경 운달산 금선대로 와서 서암스님을 모시고 산철에 정진했다.
운달산 금선대 선지식들
그때 제주도 원명선원의 대효스님도 갓 출가한 행자로 금선대에서 만났다. 대효스님은 서옹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1965년 성철스님은 김용사에서 주석하며 처음으로 대중설법을 시작하여 선풍을 크게 일으키자 봉암사 결사 도반이었던 자운스님이 해인사로 청하여 1966년 가을에 해인사로 가셨다. 그 뒤 김용사는 서옹스님이 주지를 맡게 되어 대효스님도 은사스님을 따라 김용사에서 행자 생활을 하며 공양주를 살았다. 서옹스님께서는 김용사 주지 직은 맡았지만, 도봉산 천축사 무문관으로 가시어 정진하게 되었다. 행자였던 대효스님은 큰절보다 금선대에 수좌들이 오가며 정진하는 모습이 좋아보여 당신도 자주 금선대에 올라와 서암스님의 법문도 듣고 정진을 같이하게 되었다.
서암스님은 따로 법회와 같은 격식의 법문은 하지 않았지만 밥 먹고 설거지하고 일하는 일과 중에 차를 마시며 한 말씀하셨다. 그것이 그대로 살아 있는 법문이었다. 그야말로 생활과 수행이 하나인 조사선이었다. 그때 젊은 수좌 고우스님이나 행자 대효스님은 서암스님이라는 선지식을 통해서 불교와 선에 대한 새로운 안목이 섰다.
봉정암 참회기도
고우스님은 우리나라의 수많은 명산 중에 유달리 설악산을 좋아했다. 선禪을 한반도에 최초로 전하여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조로 모셔진 도의道義조사가 30년 당나라 구도행 끝에 귀국하여 주석한 곳이 설악산(진전사)이니 설악산은 선의 성지이기도 하다.
고우스님은 첫 안거를 묘관음사에서 정진하고 1966년 봄에 설악산 구경을 갔다가 백담사에서 여름 안거를 지내면서 청량한 설악산 기운에 매료되어 더 좋아하게 되었다. 고우스님은 도반들과 오세암을 복원해서 선원을 세우려 했지만 시절인연이 되지 않았다. 그 뒤에 직지사 사미계 수계 도반인 도윤(1931~2018)스님이 설악산을 자주 오가며 오세암과 봉정암을 복원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설악산으로 갔다.
설악산 봉정암은 삼국시대인 643년 신라의 자장(590~658) 율사가 당나라에 유학하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와서 5대 적멸보궁을 조성하였는데, 그중 가장 높은 곳에 자연풍광이 수려한 천혜의 도량이다. 봉정암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이래로 우리나라 최고의 기도 도량으로 수많은 불자들의 참배 기도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1950년 한국전쟁 때 진신사리를 모신 탑만 남고 전각은 전소되고 말았다.
도윤스님은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오세암에 초막을 짓고 낮에는 산에서 약초를 캐고 농사도 짓고 밤에는 참선하는 주경야선晝耕夜禪을 하며 오세암과 봉정암 복원 불사를 시작했다. 또 백담사 주지를 맡았을 때에는 설악산 골짜기의 화전민들과도 잘 어울렸고, 그분들의 어려운 처지를 살피고 여러 모로 도와주었는데 그것이 불사에 큰 힘이 되었다.
고우스님이 도윤스님을 찾아 봉정암에 갔을 때 도윤스님은 전쟁 때 설악산 일대에서 죽은 군인들의 유해 수백 구를 화전민들과 수습하여 천도재를 지내고 있었다. 고우스님도 도윤스님을 도와 천도재에 동참하여 전란으로 비운에 간 무주고혼들의 극락왕생을 기도하였다. 봉정암에서 천도재를 마치자 도윤스님은 동안거 동안 지낼 양식을 마련하러 산을 내려갔다 올 테니 고우스님에게 절을 지켜 달라고 했다. 만약 결제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고우스님은 결제하러 떠나라고 하였다.
그렇게 하여 고우스님은 늦가을 설악산 봉정암에서 혼자서 보름 동안 절을 지키며 기도를 하게 되었다. 봉정암에서 혼자 조석으로 예불하면서 기도를 하던 중 눈물이 하염없이 났다. 가족을 위해 고생만 하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회한의 눈물이 저절로 났다. 스님은 철없던 시절 어머님의 고생을 알지 못하고 세상에 대한 원망을 끌어모아 어머님을 더 힘들게 해드렸다는 생각에 너무나 죄송스러워 일주일 기도하는 동안 내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폐병을 얻은 것도 결국 어머니와 세상을 원망하고 비관하여 자기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그 편견이 병을 만들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불치병을 만나 세상을 더 비관하다 죽으려는 심정으로 산속 깊은 절에 들어오게 되었다. 다행이 운이 좋게도 불교를 만나 부처님 지혜로 마음을 밝혀 보니 스스로 만든 편협한 사고가 병의 원인이란 것을 알게 되어 병이 저절로 나았던 것이다. 고우스님은 봉정암에서 칠일기도하면서 어머님에 대한 참회와 부처님 법을 만난 고마움에 회한과 감동의 눈물을 칠일기도하는 내내 흘렸다고 회고하였다.
봉정암에서 혼자서 일주일 참회기도를 마친 고우스님은 며칠을 더 기다렸으나 도윤스님이 오지 않았다. 동안거 결제가 임박하여 스님은 설악산을 내려와 기장 묘관음사 선원으로 찾아가 결제 방부를 들였다. 그해 동안거 공부가 정말로 순일하게 잘 되었다고 회고하였다.
1967년 해인총림 설립과 선림회 성철스님 법문을 듣고 감동
고우스님이 출가한 직후인 1962년 비구·대처 통합 대한불교조계종이 출범한 이후 전국 사찰은 정화의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대처승들을 내보내고 절 운영을 맡은 비구승들도 사찰 운영에 서툴렀다. 또 종단의 주요 소임이나 주요 사찰을 누가 맡느냐 하는 문제로 문중 간에 개인 간에 서로 갈등하는 모습도 보였다.
전국 사찰의 어수선한 상황에서 선승들은 선풍 진작과 선원 수좌들의 단합을 통한 정진 분위기 형성을 위해 1967년 봄에 팔공산 동화사에서 선림회禪林會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에 석암스님을 추대했다. 선림회는 총무원에 선풍 진작과 해인사 등 주요 사찰에 총림 설치 등을 건의하였다.
이에 7월에 해인사에서 조계종 중앙종회가 열리어 정화 이후 처음으로 해인사에 해인총림 설치가 결의되었고, 초대 방장에 파격적으로 50대의 성철스님이 추대되었다. 종단이 수행 종풍의 본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해 10월에 선림회 총회가 해인사에서 열려 80명의 수좌들이 모였다. 그 자리에 고우스님도 있었고, 설악산 백담사 도반 법화스님도 동참했다. 선림회 수좌들이 80명이나 해인총림에 모이자 방장 성철스님이 법문을 해주셨다.
그때 고우스님은 처음으로 성철스님 법문을 들었다. 법문은 확철대오의 깨달음을 강조하시고 수좌들은 화두 참선이 생명이니 정진할 때는 책도 보지 말고 오직 화두만 일념이 되게 하라 하셨다. 성철스님이 그렇게 법문하자, 맨 앞 어간에 앉아 계시던 향곡스님께서 갑자기 “저 위에 백련암에 있는 책 다 불살라 버려야겠네!” 하고 툭 던지셨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성철스님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연꽃이 더러운 물에 있어도 그 물에 젖지 않아!” 하고 되받아쳤다.
수좌들에게 책 보지 말라 하면서 성철스님은 왜 그렇게 많은 책을 가지고 있느냐고 힐난한 것인데, 성철스님은 나는 아무리 책을 많이 봐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동갑의 향곡 조실스님과 성철 방장스님의 살아 있는 문답이었다. 두 분의 그런 모습에 고우스님은 감동했다. 그래서 그해 겨울인 1967년 동안거는 성철스님이 방장인 해인총림 선원에서 지내기로 결심하고 방부를 들이고 김장까지 하면서 안거를 준비하였다.
그땐 몰랐지만, 훗날 고우스님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성철스님의 『백일법문』은 인류 최고의 불교입문서”라고 상찬한 전설의 ‘백일법문’이 설해진 그 해인총림 첫 동안거를 스님은 김장까지 하고서도 결국은 동참하지 못하고 말았다. 아직 성철스님과 만날 시절인연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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