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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호적과 스즈키의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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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  2022 년 6 월 [통권 제110호]  /     /  작성일22-06-07 09:31  /   조회47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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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중국의 불교학자들 18 | 호적胡適 1891~1962 ② 

 

현대에 선불교는 대체로 두 가지 방식으로 연구되고 있다. 하나는 원전 중심의 문헌학적인 방법과 역사적 연구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철학적, 해석학적 접근 방식이다. 

 

현대 선불교 연구방법의 두 가지 시각

 

역사적, 문헌학적 접근은 근대 이래 실증주의에 바탕을 둔 방법론으로, 불교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용하는 가장 보편적인 연구 방법이다. 선불교를 역사적 사실로 해석하고 시대의 맥락과 함께 설명하려는 입장인 것이다. 반면에 철학적, 해석학적 접근 방법은 선불교를 역사적 차원을 넘어선 초시간적 진리, 본질적인 불변의 진리라고 보는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이 두 가지 서로 다른 입장을 따르는 연구자들은 객관적 추론과 주관적 체험, 역사와 역사 초월, 이론과 수행이라는 대립적인 전제를 바탕으로 상대를 비판하고 있다. 

 

사진 1. 호적과 스즈키 다이세츠. 

 

이와 같은 시각은 선불교가 이론인가, 수행인가 하는 문제의식과 연관되어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선불교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진리의 근원이라고 여기는 수행자의 태도와 그러한 선의 본성에도 불구하고 선불교가 역사를 떠나서 있을 수 없음을 주장하는 역사주의적 태도가 충돌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선불교를 역사 실증주의로 접근한 호적의 연구 방법과 본질론적으로 접근하는 스즈키의 연구 방법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호적과 스즈키의 입장 차이는 역사 실증주의적 연구 방법과 비역사적인 본질주의의 접근 방식 중 어떤 것이 선불교 연구에 적합한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1953년에 있었던 호적과 스즈키의 논쟁이 중요한 것은 이들 주장이 불교 연구의 근대적 방법론의 두 사조인 역사적 실증주의와 본질주의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쟁의 두 가지 대조적인 시각이 보완, 발전되며 현대의 선불교 연구에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사진 2. 호적기념관에 있는 호적胡適(1891~1962). 

 

선불교 연구방법론으로서의 철학적 해석학은 근대 이래의 실증주의적 연구를 거부하고, 연구자와 연구 대상의 분리를 부정한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연구자는 연구 대상과 접촉을 통해 연구 현상의 일부로 참여하고, 주관적인 경험을 중시하게 된다. 어떤 면에서는 불교를 낭만주의적으로 접근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입장이 스즈키의 연구 방법을 이은 것인 반면에 역사적, 문헌학적 방법론은 비판 정신과 합리주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호적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호적과 스즈키의 논쟁: 실증주의 대 본질주의

 

일본 근대 메이지시기 불교사상가들은 전통적인 선불교를 근대적 세계관에 맞게 바꾸려고 시도하였고, 보편적 수행법이라는 ‘순수선’으로 특징화하였다. 종파적이고 제도적인 색채를 탈피하고 사물의 본성을 경험적으로 탐구하는 데 목적을 둔 일본 근대의 이러한 선불교는 1893년 시카고 종교의회 이래 미국에 소개되었고, 이후에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1870~1966)를 통해 널리 전파되었다. 

 

사진 3.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1870~1966). 

 

스즈키는 선불교의 종교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는데, 이러한 본질주의적인 시각은 스즈키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20세기 중엽에는 보편적인 시각이었다. 선불교의 본질, 즉 순수한 반야의 지혜를 강조하면서 누구에게나 그것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면은 선불교의 사회적, 제도적, 윤리적 맥락에서 본질적인 것만 뽑아낸 것으로, 낭만주의적 관념론, 또는 낭만주의와 초월주의의 언어와 사고의 틀로 전통의 선불교를 재구성한 것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스즈키는 전통을 거부하는 본질주의자로 불린다. 선불교에 대한 스즈키의 서구화된 해석은 낭만주의, 초월주의적 성향을 가진 서양 지식인들에게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었다. 호적과 스즈키의 논쟁은 학술지 Philosophy East and West 1953년 1호에 호적의 논문 「중국의 선불교: 역사와 방법」과 스즈키의 「선: 호적에게 답변」이라는 논문이 나란히 실리면서 학계에 소개되었다. 이 논쟁은 선불교의 해석에 관한 것이었다. 

 

호적은 스즈키가 고의적으로 선불교에 대한 역사적인 접근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스즈키의 방식으로는 결코 선을 이해할 수 없다고 공격하였다. 호적은 첫째, 선불교는 중국 역사의 종교운동이라는 새로운 역사적 설명을 시도하였고, 둘째, 선사들의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가르침에 대하여 역사적 접근을 시도하여 선불교 역사 속에서 그러한 수단들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를 알아내고, 선불교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시도하였다. 

 

사진 4. 잡지 Philosophy East and West. 

 

그는 특히 돈황에서 발견된 새로운 자료들에 의지하여 선의 역사를 다시 썼고, 선불교 역사에서 핵심적인 인물들의 역할에 대하여 전통 불교와는 아주 다르게 기술하였다. 전통 불교에서는 오조 홍인대사弘忍大師는 제자들 중 후계자였던 신수神秀 대신 혜능慧能에게 가사와 의발을 전하여 제6대 조사인 육조로 만들었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나 호적이 새롭게 기술한 선불교 역사에서는 신수가 홍인에게서 법法을 물려받았으므로 신수가 선불교 적통을 대표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신수의 사후에 급변하는데, 그 이유는 혜능의 제자인 하택신회神會가 신수의 정통성을 공격하면서 결국 신수의 정통성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호적은 하택신회가 선불교의 정통성을 전복시킬 수 있었던 데 역사적인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보았다. 첫째로 안록산의 난으로 황제가 전쟁 수행을 위한 자금을 마련해야 했을 때, 설법과 자금 모금에서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신회가 황제를 도운 공로로 황제의 후원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신회는 7대 조사인 칠조七祖로 선언되고 혜능이 자연스럽게 육조로 인식되었다는 것이 호적의 주장이다.

둘째로 불교 내에서 확립된 학풍과 수행법에 반대하는 개혁적인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불교는 우상 파괴와 산속에서의 수행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정통에 대한 신회의 도전은 당시의 시대 풍조와 어울리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 불교 박해(845~846) 속에서 선불교는 다른 종파보다 잘 견딜 수 있었다고 보았다.

 

전통적·신앙적 접근방식 반대와 역사적·환원주의적 해석 거부 

 

호적은 이처럼 선불교를 이해하는 데 역사적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선불교가 역사적이고 지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상황 안에 놓이고 그럼으로써 일의 선후관계가 보여질 때 제대로 이해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선불교가 순전히 역사적인 현상이고, 선불교를 역사적인 맥락으로 환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사진 5. 하택신회어록 한글번역본. 

 

이에 대해 스즈키는 호적의 연구 방법을 따른다면 선의 진정한 체험과 스승이 제자에게 전해 주려던 선불교의 본질을 얻을 수 없다고 반대하였다. 선에 대한 역사주의, 환원주의적 해석을 단호히 거부하였다. 호적에 대한 답글에서 스즈키는 이렇게 말하였다. “호적은 선불교 역사에 대하여 상당한 양의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의 행위자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 선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먼저 반야의 지혜 또는 직관지를 먼저 체득한 다음에 그것이 대상화된 표현들을 연구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선불교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선禪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다. 스즈키는 선의 상징적 특성으로 인식되는 돈오頓悟의 가르침을 하택신회가 결정적으로 부각시켰다고 높이 평가한 호적의 주장을 거부하였다. 스즈키와 호적의 논쟁은 선불교 해석을 위해 사용한 방법론의 기본 전제가 부딪히면서 발생한 것이다.  

 

사진 6. 호적과 장개석. 

 

호적의 선불교 연구방법론은 근대시기 불교 연구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호적은 단순히 오래된 전통이라고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겠다는 분명한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는 기존 선불교 전통과 문헌에 대한 의심에서 연구를 시작하였고, 선불교 문헌을 순수하게 사료로 취급하고 역사적 사실 속에서 선종을 이해하려 하였다. 이를 통해 북종선과 남종선 같은 분류법이 아니라 초기 선종사는 능가종에서 시작됨을 밝혔고, 육조혜능이 아니라 그의 제자 하택신회에서 새로운 선종운동이 발동했음을 주장하였다. 나아가 호적은 하택신회가 능가종의 전통을 남종선의 전통으로 개혁했음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획기적인 연구 성과는 이후 선종 연구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호적은 선불교를 연구하면서 선불교 내부의 전통을 답습하거나 그것을 신성한 것으로 보고 신앙적 차원에서 지지하는 행위에 대해 정면으로 반대하였다. 그는 그것이 결코 학술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일반 학문과 마찬가지로 선불교 연구도 실증주의적 검증을 통해서 가능하고, 확인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일곱 가지 증거가 있으면 (일곱 가지 말을 하지) 여덟 가지 말을 하지 않는다.” 

 

※ 이 글은 문진건, 「호적과 스즈키의 논쟁 - 미국 선불교 연구의 방법론적 발전의 기점-」, 김영진, 「후스(胡適)의 선종사연구와 과학방법론」을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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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철학박사. 현재 고려대학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석·박사 졸업. 같은 대학 철학과에서 강의,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초빙교수를 지냈다. 지곡서당 한문연수과정 수료. 조계종 불학연구소 전문연구원 역임. 『웅십력 철학사상 연구』, 『신유식론』,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 등 다수의 저서 및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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